[뉴메모리 시대의 암투]③ 폰 노이먼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라...4차 산업혁명 개막에 뉴메모리 춘추전국 시대 열리나

조선비즈
  • 박성우 기자
    입력 2016.11.23 08:00

    “인공지능(AI), 5세대(5G),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무장한 2020년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500억대의 기기들이 서로 연결돼, 지금보다 10배 많은 44조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쏟아낼 것 입니다. 이러한 초연결, 초지능화 사회에서 현재의 컴퓨팅 시스템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수 있습니다. 제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새로운 차원의 ‘뉴메모리(New memory)’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만난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본격적인 발현(發現)을 앞두고 뉴메모리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 초당 기가급 이상의 고용량 데이터를 지연없이 실시간 수준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기존 D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선DB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현대 컴퓨터 시스템의 단점인 ‘폰 노이만의 병목현상(Von-Neumann Bottleneck)’을 해결할 수 있는 메모리가 4차 산업 혁명에 맞는 뉴메모리 시대를 열 것이라는 설명이다. <용어설명 참조>

    가령,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을 생각해보라. 내외부의 다양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0.000001초 내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데, 데이터 이동에 따른 병목 현상이 이 판단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존 폰 노이만 교수가 에드박 컴퓨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컴퓨터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 폰 노이만 컴퓨터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라

    오늘날 현대 컴퓨터의 아키텍처(Architecture·시스템 구성)는 지난 1950년 폰 노이만이 설계한 ‘에드박(EDVAC)’에서 시작됐다. 에드박은 지금 컴퓨터와 같이 프로그램을 내장했고 2진법을 사용했으며,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를 나눠 데이터의 ‘처리’와 ‘저장’을 분리했다. 특히 CPU와 메모리를 나눠 설계한 덕분에 하드웨어(HW) 변경없이 소프트웨어(SW)만으로 여러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컴퓨터가 범용적으로 쓰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폰 노이만 컴퓨터에서 CPU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CPU가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읽어들여야 한다. CPU가 처리한 데이터는 다시 메모리에 저장을 해야 한다. CPU가 아무리 빨리 데이터를 처리하더라도 메모리의 속도가 느리거나 데이터 이동 속도가 느리면 전체 시스템의 성능 저하가 불가피하다. 즉 데이터 이동에 따라 필연적으로 ‘병목현상(甁─現象)’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현대 컴퓨터 아키텍처를 바꾸지 않는 이상 오늘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뉴메모리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병목현상을 줄이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PC에서 CPU와 유일하게 독대(獨對)하는 주기억장치(램·RAM)의 속도를 CPU급으로 끌어올리면 된다. 이는 CPU와 램의 성능 차를 최소화한다는 의미다. 램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보조기억장치의 성능을 개선해도 폰 노이만 컴퓨터 구조의 단점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CPU-주기억장치-보조기억장치로 연결되는 3단계 컴퓨터 처리 방식을 2단계(CPU-주·보조기억장치 통합)로 줄여 속도를 높이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실제 인텔은 CPU 내부에 일반 램보다 더 빠른 ‘캐쉬(Cache·S램)’ 메모리를 탑재해 병목현상을 줄였다. 또 CPU 내부에 캐시메모리 용량을 늘린 ‘ED램’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다.

    CPU-주기억장치-보조기억장치의 데이터 처리속도와 크기, 원가를 비교 /조선DB
    보조기억장치 영역에서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신해, 낸드플래시 기술을 적용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등장했다.

    한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미세화 공정을 통해 ‘동적랜덤액세스메모리(Dynamic Random Access Memory·D램)’의 용량과 속도를 개선해 병목현상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며 “하지만 미세화 공정이 한계에 도달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한계에 도달했고 D램 기술도 노후화한 만큼 데이터 이동에 따른 병목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뉴메모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전이 시대의 중간 계투형 메모리 기술들

    일단 올드 메모리 시대에서 뉴 메모리 시대로 가는 전이(轉移) 지대의 중간 계투형 메모리 기술들이 주목받고 있다. 전이 지대의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소재나 구현 방식의 메모리 기술은 아니지만, 기존 D램의 단점을 크게 보완해 성능을 끌어올리거나 낸드플래시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 병목 현상을 줄인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역폭(bandwith)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만든 ‘고대역폭메모리(HBM) D램’ 기술이 있다. 대역폭은 데이터를 전송하는 공간과 같다. 대역폭이 높을 수록 한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데이터량이 많아지고, 결국 속도가 빨라지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개발에 성공한 HBM D램 /삼성 홈페이지 캡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출시한 HBM D램 기술은 초당 256GB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현존하는 D램 중 가장 빠른 4기가비트(Gb) GDDR5 제품보다 7배 이상 많은 데이터를 처리한다. 와트(W)당 데이터 전송량도 2배 수준 높여 전력효율성도 크게 높였다. HBM은 그래픽카드 평면상에 D램을 배열해야 하는 GDDR보다 D램 면적도 95% 이상 줄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D램과 스토리지 기능을 융합한 스토리지클래스메모리(SCM) 기술도 주목하고 있다. SCM은 플래시 메모리처럼 비휘발성인데다 램(RAM)처럼 고속으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넷리스트가 양산 준비를 하고 있는 하이브리딤 메모리의 모습 /넷리스트 홈페이지 캡처
    넷리스트(Netlist)가 내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는 ‘하이브리드DIMM(Dual In-line Memory Module)’은 세계 최초로 D램과 낸드플래시가 통합된 SCM이다. 데이터 접근 시간은 기존 스토리지 솔루션 대비 1000분의 1 수준으로 빠르고, 비용은 내장형 메모리 반도체 대비 80% 저렴해 가격경쟁력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DIMM은 업계 표준인 DDR4 LRDIMM(Load Reduced Dual In-line Memory Module) 인터페이스를 지원해 바이오스, 하드웨어 변경없이 기존 컴퓨터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넷리스트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로부터 2300만달러(약 254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SCM이 뉴메모리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SCM 시장 선점을 위한 동맹군 결성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마이크론·ARM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차세대 메모리(저장용)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 협의체 ‘GEN-Z’ 컨소시엄을 구축했다. GEN-Z는 D램·낸드플래시를 잇는 SCM 중심의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

    김지범 넷리스트 지사장은 “오는 2018년부터는 클라우드 서비스, 빅데이터 등 정보량의 급격히 증가해 대용량 메모리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DIMM 등 SCM 시장이 커지면서 업계의 치열할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기존 D램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킬로패스의 VLT(Vertical Layered Thyristor) 설계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VLT의 가장 큰 특징은 캐패시터(capacitor) 없이 D램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D램은 메모리 셀에 배치된 커패시터에 전하를 저장한다. 커패시터란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로 D램의 안정된 작동을 위한 필수 부품이다. 하지만 D램 공정이 점점 미세화할수록 커패시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D램 크기는 점점 작아져 커패시터도 줄여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CP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이 14·16나노를 넘어 10나노, 7나노로 향해 가고 있지만, D램 공정은 아직 18~20나노 수준인 것은 바로 커패시터가 배치되는 구조적 한계 탓이다.

    킬로패스의 VLT 설계 기술 설명도
    VLT 기술을 활용해 D램을 생산할 경우 기존 DDR4 기반 D램과 비교해 전력소비를 3분의 1수준, 제조비용을 45% 줄일 수 있다는 게 킬로패스 측의 설명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데이터 서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HDD를 대신해 SSD 채택이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더욱 빠른 컴퓨팅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주기억장치 분야에서도 뉴메모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뉴메모리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 실험실 탈출하는 신기술들

    기존 D램과 소재,구현 방식이 완전히 다른 뉴메모리에 대한 연구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제품을 공개하는 등 실험실 수준의 연구를 벗어나 현실화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현재 D램을 대체할만한 유력한 뉴메모리 기술로는 자기기록식메모리(M램), 상변화메모리(P램)이 손꼽힌다. M램과 P램은 소자 자체의 저항 수치 변화에 따라 정보를 저장한다. 따라서 회로 선폭을 줄여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보다 집적도를 높여 메모리 용량을 늘릴 수 있다. 또 전력 소모, 처리 속도 모두 기존 D램보다 우월하다.

    뉴메모리의 필요조건 /조선DB
    다만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M램은 소자가 지닌 자기적 성질인 자성(磁性)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각 물체 내부에는 미세한 자석이 있어 자성을 띠는데 이런 자성의 정도를 적절히 변화시켜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철과 코발트가 주소재다. P램은 결정(結晶) 구조를 가진 특정 물질에 전류를 가하면 내부 구조가 바뀌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같은 성질을 갖는 셀 물질은 ‘게르마늄 안티몬 텔룰라이드’(GST; Ge2Sb2Te5)가 있다.

    삼성전자와 IBM은 10나노 수준의 속도와 초절전 구조를 구현하는데 성공한 STT-M램을 공개했다. 두 회사는 3년 내에 양산 시스템 갖추겠다는 목표다.

    STT-M램은 성능과 신뢰성, 가격경쟁력이 D램보다 우수하다. 또 10나노대 중반 이하로 갈수록 기술 장벽이 높아져 상용화가 어려운 D램과 달리 STT-M램은 미세화가 쉽다. STT M램은 현재 메모리 저장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낸드플래시 대비 쓰기 속도가 10만배 빠르다. 읽기 속도도 10배 가까이 빠르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도 STT-M램을 수년간 공동 개발해왔고 다수의 메모리 업체들도 STT-M램과 관련한 내부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TT-M램은 기존 D램 공정 장비를 95%가량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차세대 메모리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P램과 함께 10년 이내에 가장 지배적인 기술 흐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올(Yole) Development은 ‘New Emerging-Memory Market’ 리포트에서 2018년에 DRAM 기술을 대체할 가장 적합한 기술오 STT-M램을 꼽았다.

    M램과 함께 유력한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P램도 최근 2년간 눈부신 기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인텔이 마이크론과 협력해 발표한 ‘3차원(3D) 크로스포인트’ 기술도 P램으로 추측되고 있다. 3D 크로스포인트는 낸드플래시 대비 1000배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동시에 D램과 달리,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을 제공한다.

    IBM도 가격은 낮추고 생산성을 향상시킨 P램 기술을 공개했다. 그동안 P램 셀 하나에 1비트를 저장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IBM이 P램 셀 하나에 3비트를 저장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P램은 플래시메모리와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는 D램의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일각에서는 뉴메모리 시대가 금세 올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D램 시장이 10년 이상 더 지속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급자 중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생산성, 수율, 가격경쟁력 등 이미 최적화 된 D램 사업을 버리고, 뉴메모리로 전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 세계 최초로 64Mb P램 시제품을 개발했고, 대용량 256Mb P램을 실현하는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생산성, 수율, 가격경쟁력, 시장성 등이 일반 D램에 미치지 못해 상용화 카드에는 엄두도 못 내도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1990년대 앞으로 50년 후면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시추 기술의 발전과 셰일가스까지 등장하면서 유례없는 저유가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며 “3차원(3D) 적층구조 등 미세화 공정기술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면서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D램 천하(天下)를 뒷받침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아이폰(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피쳐폰 시대가 무너진 것처럼 변화는 순간에 찾아올 수 있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지속적인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뉴메모리 개발을 게을리 해서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유니버설 메모리(Universal Memory)

    메모리 하나로 D램·플래시메모리 등 여러 종류의 메모리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통합형 만능 반도체. 사용하는 부품이 줄기 때문에 IT기기의 제조원가와 소모전력을 낮추고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

    존 폰 노이만은 순수 및 응용 수학에 큰 업적을 낸 헝가리 태생의 수학자다. 노이만은 수학뿐만 아니라 노이만은 양자 역학 연구 등으로 물리학에, 게임 이론에 대한 연구로 경제학에, 컴퓨터의 구조에 대한 연구로 컴퓨터 과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의 내장형 프로그램을 처음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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