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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의 옷장의 인문학] 옷장 앞에서 "내가 이러려고 옷 샀나" 자괴감 들 때

  •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입력 : 2016.11.11 07:00 | 수정 : 2016.11.11 07:52


    옷장(Wardrobe)의 어원은 '온 우주의 나쁜 기운 막아주는 옷의 지성소’라는 뜻
    옷 한벌 한벌은 나를 표현하는 단어와 같다
    한 장의 연설문처럼 명확함, 간결함, 신뢰성, 선명함, 달콤함이 어우러진 옷 입어야

    우리의 삶은 패션을 통해 진화한다./플리커 제공
    우리의 삶은 패션을 통해 진화한다./플리커 제공
    우리는 매일아침 옷장을 열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 한탄한다. 세일기간을 틈타 긁어모았던 수많은 옷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산 옷들은 왜 특정 순간에 입으려고 할 때마다 눈에 띠지 않는 걸까? 내가 이러려고 옷을 산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 패션은 일상이란 무대로 나아가는 ‘우리’를 위한 것

    패션 강의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미 계산이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저 한 시즌을 지낼 트렌드 경향이나 색채, 메이크업 경향, 코디방법 이런 것을 말해줄 거라고 믿는다. 강의에도 온도가 있다면, 딱 이 정도의 온도만 유지하면 된다는 선입견이랄까. 그들에게 패션이란 개념,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메시지의 온도는 딱 여기까지 인거다.

    난 그들의 기대와 달리 결이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옷장을 비우라고 조언하고, 트렌드 따위는 잊어버리고 옷을 사지 말라고 독설을 품기 일쑤다. 그렇다고 반 패션의 선봉자인양 비춰지는 건 싫다. 옷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는 안티패션을 진보나 개성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있다. 반 패션이란 말 자체에 이미 패션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패션은 일상이란 무대로 나아가는 배우들, 바로 우리 자신의 의생활을 통해 삶과 예술, 윤리적 실천과 미학, 생산과 소비, 취미와 집단적 정신을 연결하는 ‘진화하는 삶의 현장’이다. 패션에 대한 글쓰기 소재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옷은 나 자신과 대면하는 것 “옷장을 새롭고 견고하게 설계하라”

    옷을 입는 시간은 가장 친밀하게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이 만남을 선연한 삶의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옷장을 새롭고 견고하게 설계해야 한다. 옷은 내게 말을 건다.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아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옷장은 삶을 스타일링하는 출발점이 된다./픽사베이 제공
    옷장은 삶을 스타일링하는 출발점이 된다./픽사베이 제공
    여러분의 옷장을 열어보라. 옷장(Wardrobe)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14세기 초, 역사적으로는 인간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상층부를 지향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옷을 사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다. 르네상스 시대는 개인의 사회적 성취가 곧 사회내부에서의 내 자리를 만들어내는 유동적인 사회의 신호탄이었다.

    각 개인들은 자신이 구매한 옷의 기록을 남기고 심지어는 오늘날의 패션 블로그에 필적하는 일지를 썼다. 인문학자들은 패션 스타일링과 관련된 책을 썼으며 그런 책은 출간 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때다. 패션은 항상 사회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을 가장 먼저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풍향계였다. 이들에게 옷장은 삶을 스타일링 하는 출발점이었다.

    ◆ ‘옷의 단어’는 정제되고 분명해야

    옷장(Wardrobe)에서 Ward는 악귀를 막는다는 뜻이고, Robe는 세상의 옷을 통칭하는 단어다. 옷장이란 그 의미를 풀면 '온 우주의 나쁜 기운'이 옷에 붙지 않도록 막아주는 옷의 지성소다.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옷장이란 게 일그러진 샤머니즘과 연결된 단어처럼 느껴질까 두렵다. 단연코 아니다. 나는 Ward를 단어란 뜻의 Word로 바꾸어보라고 조언한다.

    옷의 숫자가 많다고 나를 설명할 단어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제된 단어에서 진정한 멋이 나온다./픽사베이 제공
    옷의 숫자가 많다고 나를 설명할 단어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제된 단어에서 진정한 멋이 나온다./픽사베이 제공
    옷장 속의 옷들은 나를 설명해주는 어휘와 같다고 말해준다. 강연장에서 이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옷이 많을수록 좋겠네요. 나를 설명할 단어가 풍성해지는 거잖아요'라고 응수한다. 그러면 나는 말 많다고 사람이 멋져 보이던가요? 라고 쏴 부친다. 우리자신을 설명할 단어가 너무 많아도 탈이다. 단어는 정제되고 분명해야 한다. 사용할 단어의 개수도 세어보아야 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키케로는 ‘연설가론’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의 무게를 재어보는 정교한 계산행위’라고 주장한다. 말의 무게를 잰다는 것은 하나의 단어를 발견하고 선택하여, 연결하고 호흡을 통해 내뱉을 때까지 판단력을 가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말과 주장에는 명확함과 간결함, 신뢰성과 선명함, 달콤함이 배어난다.

    이 다섯 가지가 어우러질 때, 어울림(Decorum)의 미덕이 태어난다. 이 어울림은 우리가 옷차림을 비롯해 외양을 장식(Decoration)하는 각각의 온도차를 빚어내는 척도다. 패션이 우리 내 삶의 다양한 열망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물임을 기억하자. 각자가 주장하는 열망의 무게를 읽기 위해, 그들이 입은 옷 속에 배어난 ‘말의 무게’를 세어볼 것이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김홍기의 옷장의 인문학] 옷장 앞에서 "내가 이러려고 옷 샀나" 자괴감 들 때
    ◆ ‘옷장의 인문학’ 스토리텔러 김홍기는 국내 1호 패션 큐레이터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복수전공으로 연극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 속의 패션에 빠져들었다. 현재 패션과 관련된 각종 교양 다큐나 방송의 자문을 하며, 신문 및 잡지의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옷장 속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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