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진출 성공법
루블화·유가 하락 등 변수 대비한 매뉴얼 갖추고
러시아인 특유의 입맛에 맞는 상품 개발해야

사업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러시아에서 한국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2014년 이후 강화된 대(對)러 경제제재, 국제유가 하락 등 러시아 진출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는 많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러시아로 진출할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러시아는 지금 두 팔을 걷어붙이고 외국기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하고 각국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지도 강하다. 러시아 비즈니스의 성공·실패사례를 통해 러시아 시장 진출을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을 위한 필승 전략과 주의점 등을 살펴봤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차를 마실 때 단 것을 곁들여 먹는 러시아 차 문화와 잘 맞아떨어져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 가족의 초상화(T. 미야코프작, 1844년).

① 성공사례 : LS네트웍스
러시아 특화된 위기관리 시스템
LS네트웍스는 지난 2014년 독일과 일본 등 7개 업체를 제치고 러시아 극동지역 유즈노사할린스크 국제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용역을 수주했다. LS네트웍스는 지방정부와 신뢰를 쌓은 뒤, 규모와 범위를 넓히는 상향식 접근 방법을 이용했다. 먼저 지방정부의 소규모 프로젝트(84만달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후 1억달러 규모의 국제공항터미널 설계와 시공 프로젝트로 사업을 키웠다. 이와 동시에 6000만달러 규모의 하바롭스크 주정부 산하 시설관리공단에서 발주한 '폐기물 선별 처리장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나갔다. 이렇게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사업현지화로 착실하게 기반을 다진 LS네트웍스는 러시아 중앙정부와 극동지역 주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지하보도 건설·온수관 확충·도로 건설 등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지역 전문 상사로 거듭났다.

LS네트웍스가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러시아 특유의 사업 환경에 맞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2014년 유가 급락으로 러시아 경제위기가 심화돼 1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추진 여부가 기로에 놓였다. LS네트웍스는 발주처인 유즈노사힐린스크 공항의 주주로 나설 가능성을 타진해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해당 프로젝트의 비용 40%에 해당하는 차관(연이자 5~6%)을 제공받는 데 성공했다. 프로젝트를 살리는 동시에 발주처와 러시아 현지 자치정부의 신뢰를 확보한 것이다.

특히 LS네트웍스는 루블화 가치 변동을 오히려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러시아산 수산물과 곡물을 제3국에 수출하는 3국 간 거래 사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 내 수출입 대금을 루블화로 처리해 리스크를 줄였다. 발주처에서 현지 합작법인에 루블화로 결제하면 합작법인에서 현지 수출업체에 루블화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환헤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② 성공사례 : 팔도·오리온·티알씨코리아
철저한 현지화로 컵라면·초코파이 성공
팔도의 용기라면 '도시락'은 러시아 시장에서 컵라면의 대명사로 통한다. 2014년 도시락 제품의 러시아 시장 매출액은 약 2000억원으로 러시아 전체 라면시장의 20%, 컵라면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경쟁 제품의 2배 가격인 팔도의 라면이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문화에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있는 러시아에는 장시간의 기차여행이 생활화돼 있다. 기차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먹는 컵라면은 간편식으로 알맞은데, 사각용기를 적용하고 높이가 낮아 움직이는 기차에서 안정감 있게 먹을 수 있다. 또 러시아에는 주말이면 가족끼리 별장인 ‘다차’로 가서 오이나 감자 등 채소를 재배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때도 컵라면이 유용하다.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

러시아 시장의 가능성을 본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는 1999년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시장조사를 실시해 극동지역은 얼큰하고 매운 맛을, 모스크바 쪽은 순한 맛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 맞춰 기존 소고기맛에 이어 부드럽고 순한 닭고기맛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현재 시베리아를 포함한 동부지역 매출의 70%가 소고기맛 제품이고, 모스크바를 포함한 서부 지역 매출의 70%가 닭고기맛 제품이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러시아 대통령이 즐겨 먹을 정도로 러시아의 국민간식으로 꼽힌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러시아 매출은 2010년 489억원에서 2014년 827억원으로 약 1.7배 증가했다. 오리온은 러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연구하고 이에 기반한 마케팅을 펼쳤다. 무뚝뚝하지만 믿음직한 ‘멋진 친구(cool friend)’ 이미지를 채택해 포장과 광고 등 모든 마케팅에 적용했다. 2000년에 집권한 푸틴 대통령이 구소련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강한 러시아’ 정책을 추진할 때, 오리온은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와 정책을 브랜드 이미지와 결합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러시아 청소년 하키 리그의 메인 스폰서가 됐다. 또 오리온은 러시아의 독특한 티타임 문화를 연구해 마케팅 전략에 반영했다. 차를 즐겨 마시는 러시아인들은 차를 마실 때 단 것을 곁들여 먹는데 특히 초콜릿을 선호했다. 오리온은 초코로 만들어졌는데도 트랜스 지방이 없어 비만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살 찔 걱정을 하는 여성들을 안심시켰고, 결과적으로 마케팅에 성공했다.

대러 무역·컨설팅 전문 회사인 티알씨코리아(TRC KOREA)는 2001년 러시아에 진출했다. 처음엔 무역으로 시작해 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위한 컨설팅, 국내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제휴·협력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전해주는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기술이전 사업은 더욱 각광받는 분야로, 최근 러시아가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제조기반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의지와 맞물려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티알씨코리아는 현지 화폐 거래 시스템과 같은 현지화 서비스로 러시아 시장을 공략했다. 강남영 티알씨코리아 대표는 “러시아 바이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해외송금’인데, 티알씨코리아는 루블화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해 바이어의 편의성을 최대한 높였다”고 설명했다.

③ 실패사례 : 현대중공업

정책변화·유가·환율 예측 못해 좌절
러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한국기업의 진출은 모두 성공적이었을까. 2010년 한·러 정상회담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 현대중공업의 고압차단기 공장은 2013년 준공까지는 비교적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5300억원을 투입한 공장은 준공 이후 당초 연간 200대 정도의 제품을 구매해주기로 한 러시아 연방송전망공사(FGC)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가동이 중단됐다. 2014년 12월 뒤늦게 러시아 정부는 공장 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연내에 60대의 고압차단기를 구매하기로 약속하고 추가로 40대를 구매하는 협상도 시작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말 이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급락해 해외자재 구입비가 급등하면서 유럽산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현지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저렴해졌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은 러시아 정부의 약속 위반과 대외충격에 약한 자원 의존형 경제, 환율 불안 등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다.
이상준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변심, 유가 하락, 루블화 가치 변동 등 러시아는 굉장히 변수가 많은 국가"라며 "각 변수에 대응할 매뉴얼을 갖추고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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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헤지
해외통화를 이용한 거래에서 기준통화와 해외통화 간 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환율을 미리 고정해 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