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창업자 가문 출신 CEO는 월급 적다고 관두지 않아… 오히려 더 열정, 승계 분쟁 땐 외부 인재와 경쟁시켜라

  • 싱가포르=박정현 기자

  • 입력 : 2016.10.15 03:04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150년 역사의 미국 농업회사 카길(Cargill)은 창업주 가족인 카길 가문과 사돈 간인 맥밀런(MacMillan) 가문이 이끌어온 가족 기업이다. 창업주 윌리엄 카길은 1865년 미국 아이오와주(州)의 작은 곡물 창고에서 곡물 재배와 유통 사업을 하며 회사를 키웠다. 그러나 1909년 창업주가 사망하자 회사는 막대한 빚을 떠안고 위기에 몰렸다. 그때 창업주의 사위 존 맥밀런 1세는 채권자들을 만나 부채 상환을 유예해달라고 설득하는 한편, 카길사(社)의 재무구조를 개혁해 회사를 살려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카길과 맥밀런 두 가문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맥밀런 가문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하기 시작하자 창업주의 장남을 비롯한 카길가(家) 후손들은 회사를 빼앗겼다고 느꼈다. 반대로 맥밀런 가문은 장인의 회사를 살려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존 맥밀런 1세가 1944년 사망하면서 두 집안의 후손 간 갈등은 더욱 불거졌다. 카길과 맥밀런 가문은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Getty Images 이매진스
    두 가문은 가족 분쟁이 기업 성장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기 위해, 1965년 가족 문제를 담당할 별도 회사 '웨이크로스(Waycrosse)'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정기적으로 카길과 맥밀런 가족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교육을 하며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 두 가문은 또 가족 개인의 이익보다 기업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로 합의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져가는 배당금을 대폭 줄이는 대신 전체 수익 중 80%를 기업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후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 원칙도 도입했다. 특히 가족 출신 직원도 가족이 아닌 직원과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했다. 가족이 아니라도 능력 있는 직원은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게 육성해, 1960년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임원이 카길사 사장직에 올랐다.

    카길사는 1993년에는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는 카길·맥밀런 가족 72명에게서 회사 지분 17%를 사들여 우리사주신탁펀드를 조성했다. 가족 구성원에게는 책임 의식을, 외부 출신 임직원들에게는 주인 의식을 고취하는 조치였다. 포브스에 따르면 카길사는 지난해 매출 1204억달러(132조원)를 기록, 미국 비상장 기업 중 매출 1위에 올랐다.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농업회사 카길은 1865년 설립된 가족 기업이다. 창립 100주년 해인 1965년 촬영한 미네소타주(州) 앨버타의 카길 곡물 창고 모습. / 카길 제공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Carlock)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는 카길 같은 가족 기업의 성공 비결을 "가족 갈등을 회사와 분리하는 '보호 전략'과 가족의 끈끈한 결속력을 토대로 한 '성장 전략'을 병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족 간 분쟁이 기업에 해를 끼치는 것은 막고, 가족의 장점을 앞세워 기업 경쟁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칼록 교수는 가족 기업 경영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힌다. 그는 인시아드에 가족 기업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8년에는 88개국 2000개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가족기업협회(FFI)에서 '가족 기업 어워드'도 받았다. 싱가포르에 있는 인시아드 아시아 캠퍼스에서 칼록 교수를 만나 가족 기업의 갈등 극복과 성장 전략에 대해 들었다.

    "가족 결속이 가족 기업 경쟁력의 핵심"

    ―가족 기업에서 가족 갈등이 경영에 해를 끼치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영국 비상장 건설업체 웨이츠그룹은 1897년부터 웨이츠 가문이 4대째 경영하고 있다. 사진은 이 회사의 건설 현장 모습. / 웨이츠 제공
    "가족 개개인이 얻는 이익보다 기업을 하나의 사업체로 성공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먼저 가족들은 자신들의 기업이 미래 어느 정도 규모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스스로 묻고 비전과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비전을 세우면 각자 어떻게 기업에 기여할지 계획해야 한다. 개개인이 얼마나 이익을 볼 것인지는 기업이 성공한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어느 가정이든 가족 간 갈등과 다툼은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다툼을 회사로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으로 구성된 경영진은 회사와 나를 감정적으로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텐데.

    "기업의 가치를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단기 수익이 적고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난치병 의약 개발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로슈를 소유한 호프만 가문이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유산)를 남겨주는 것'을 가치로 삼고 장기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한 덕분이다. 이처럼 가족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설정이 이뤄지면 기업은 그에 맞는 의사 결정을 내리고 사업 전략을 짤 수 있다. 만일 가족들이 '단기간 막대한 부(富)의 창출'을 가치로 삼고 있는데, 가족이 소유한 기업이 저수익 사업 전략을 선택한다면 가족과 기업은 부딪칠 수밖에 없다."

    ―가족 기업에서 가족의 결속력과 기업 경쟁력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가족이 일군 회사라면 훨씬 더 헌신적이고 성실하게 일하고 경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보다는 가족 구성원이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가족 기업의 장점이라고 본다. 가족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들이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보다 실적이 훨씬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족 구성원이 최고경영자(CEO)인 경우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더 회사에 열정을 쏟아붓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반대로 가족 결속이 약하면 회사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월스트리트저널로 유명한 다우존스앤드컴퍼니는 1920년대 후반 이후 미국 밴크로프트 가문이 소유해온 가족 기업이었다. 하지만 밴크로프트 후손들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결속하지 못했다. 회사 경영을 위한 가족 회의나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회사 실적이 악화해도 가족 개인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을 높였다. 결국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고, 2007년 뉴스코퍼레이션에 매각됐다."

    로널드 앤더슨 템플대 교수와 데이비드 리브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 구성 기업을 조사해 177개를 가족 기업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실적을 비(非)가족 기업과 비교해 2003년 발표했다. 가족 기업의 주가 상승률 평균은 15.6%인 반면 비가족 기업은 11.2%였다. 매출 증가율은 가족 기업이 23.4%, 비가족 기업은 10.8%였다.

    "외부 인재 활용해 승계 과정 위기 극복"

    '가족 기업 전문가' 랜들 칼록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랜들 칼록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 랜들 칼록 제공
    ―가족 기업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리스크를 줄일 방법은.

    "외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카길사는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가족 간부 한 명과 외부 출신 직원 몇 사람을 경쟁시켰다. 그 결과 외부 인재가 사장이 됐다. 경쟁에서 밀린 가족 출신 간부는 계속해서 연구직에 종사하다가 은퇴했다.

    영국 건설업체 웨이츠(Wates) 그룹은 100년 가까이 가족들이 회사를 경영해왔으나 3세에서 4세로 넘어갈 때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 출신 간부들은 은퇴할 때가 됐으나, 다음 세대는 경영을 맡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고민하던 웨이츠 그룹은 2003년 외부 출신으로 경험이 풍부한 폴 드레슐러를 CEO 겸 회장으로 선임했다. 기업 경영은 드레슐러에게 맡기고, 가족들은 세대 교체에 집중했다. 회사의 미래 경영을 맡을 가족 구성원들을 교육했다. 10년 후인 2013년, 드레슐러는 물러나고 웨이츠 가문의 제임스 웨이츠가 회장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53세였다. 제임스 웨이츠는 1984년 웨이츠 그룹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회장이 될 준비를 했고, 그중 10년은 실력 있는 CEO 밑에서 일을 배웠다."

    ―신흥국에선 가족이 경영하는 대형 상장회사의 승계와 투명성 문제가 때로 논란이 된다.

    "가족 기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바깥에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바깥 사람들이 내부 사정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은 가족 기업이 가진 엄청난 경쟁력이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외부 주주들이 지분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어느 정도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주주들에게 신뢰를 얻을 것이다."

    "자녀들 '평범한 삶' 살도록 해야"

    ―가족 기업에서 가족 출신과 외부 출신 사이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까.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것은 가족 출신 직원들의 승진보다 기업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데려오는 기업도 있다. 가족 중엔 기업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가족 기업인 알 무하이딥 그룹은 가족 출신이 50여명에 이른다. 알 무하이딥 가문은 16세가 되면 '가족 헌장'에 서명을 하고 헌장에 따라 기업에 참여할지 결정한다. 가족 헌장에는 '평가 기준은 업무 능력이다' '가족이든 아니든 알 무하이딥 계열사에서 일하는 일반 직원들과 똑같이 일한다' '가족 직원도 일반 직원들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가족 기업 경영자들의 자녀 교육에 대해 조언한다면.

    "특권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스로 일해서 얻을 줄 알아야 한다. 부유한 가족 기업의 자녀일수록 보통의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수업한 적이 있는데, 강의 도중 갑자기 스타벅스 직원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어떤 중국인 학생이 스타벅스에서 자신이 마실 커피를 따로 배달시킨 것이었다. 학교 복도에 가면 커피 머신이 있는데 말이다. 그 학생은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돈이 많은 삶' 외에 다른 삶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 혜택을 누리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은 좋은 리더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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