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가격 1년 새 13.5% 하락
세계 시장 규모도 6년만에 축소
"그래서 지금 현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것만 내세요."

뉴욕 맨하튼 47번가의 한 보석상 앞에서 두 남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47번가 5~6번 거리는 보석상이 몰려있어 다이아몬드 지구라고 불린다. 달러 인상 기조, 명품 트렌드 변화 등의 다이아몬드 시장이 침체되면서 이 곳은 최근 도심 재개발 위기에 몰렸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를 걷다 보면 보석상이 모인 거리를 만나게 된다. 글로벌 다이아몬드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47번가 ‘뉴욕 다이아몬드 지구(Diamond District)’다. 초가을 황금연휴 47번가는 브로드웨이를 가득 메운 관광 인파와 달리 한산했다.

“다이아를 찾느냐”고 묻는 호객꾼에 이끌려 보석상에 들어갔다. 자신을 감정사라고 밝힌 점원은 1캐럿(carat) 무색 천연 나석 가격으로 8000달러를 불렀다. 비싸다고 주저하자 주인이 나서서 “1000달러를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다시 손사래를 치자 지금 있는 돈만 내라고 물러섰다.

업계 관계자들은 불과 몇년 전 중국과 중동 등 신흥국 부호들의 밀려 드는 수요로 보석상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마이클 그루멧 뉴욕시 47번가 사업개선위원회 담당이사는 “지난해 뉴욕 다이아몬드 지구의 다이아몬드 및 보석류 매출은 242억달러(약 27조원)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241억8000만달러)에서 성장이 정체된 셈이다.

◆ 명품 IT 기기에 밀린 다이아몬드
사치품의 대명사, 다이아몬드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인기 하락은 가격에 반영됐다. 국제 시장에서 무색 다이아몬드 원석 평균 가격은 2014년 캐럿당 8100달러에서 8월 말 7000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지난 6월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1109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이 유찰됐다. 이 상품은 사상 최대 크기로 관심을 모았으나, 입찰 호가는 6100만달러(약 710억원)에 그쳤다. 미국 여성잡지인 는 "입찰 예상치인 1억5000만달러의 절반도 못미쳤다"고 전했다.
RBC 캐피털의 데스 킬라리아 애널리스트는 "럭셔리 시장에서 다이아몬드의 시장점유율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연매출 기준 790억달러를 기록,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다이아몬드 원석 판매는 30% 줄었다.

지난 2006년 발굴된 603캐럿 다이아몬드 원석. 이 다이아몬드는 경매에서 1236만 달러(약 138억원)에 낙찰됐다.

ABN암로는 얼마 전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is Forever)”는 보고서에서 “다이아몬드 산업은 갈림길에 있다”고 우려했다. 다이아몬드 산업 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 변화와 합성 다이아몬드 기술 발달 등이 꼽힌다. 합성 다이아몬드는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저렴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보통신(IT) 기기의 명품 전략에 보석과 시계를 비롯한 전통 명품이 밀려나는 것도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시장 유동성이 줄어드는 것도 변수다. 중국 경제가 주춤한 가운데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개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명품 수요도 급감했다.

◆ 호텔 거리로 바뀌는 다이아몬드 지구

다이아몬드의 빛 바랜 명성을 반영하듯 뉴욕 다이아몬드 거리는 도시정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거리엔 재건축을 염두에 두고 철봉으로 지지대를 세운 빌딩이 심심찮게 보였다. 진갈색의 낡은 천막 위에서 번쩍이는 ‘47번가(47th)’ 네온 사인은 발광다이오드 (LED) 전광판으로 건물 전체를 감싼 타임스퀘어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지난달 초 플로리다 세미놀 부족이 소유한 하드록 인터내셔널은 웨스트 48번가에 플래그십 호텔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엑스텔 디벨롭먼트의 개리 바넷 대표는 47번가와 46번가 빌딩 10채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넷 대표는 맨해튼 센트럴 파크 남쪽 최고급 아파트와 호텔을 결합한 ‘원57(One 57)’을 지어 뉴욕 일대 럭셔리 콘도 열풍을 이끈 인물이다.

뉴욕포스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바넷 대표가 다이아몬드 지구를 호텔로 재건축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지역 주요 임차인인 보석 세공사와 보석상들은 쫓겨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이아몬드 거리에 대부분의 소매상은 1층에 있고 2층에는 커팅(절삭) 폴리싱(연마) 등 가공 업체들이 위치해 있다.

글로벌 보석 업계는 마케팅 비용을 높이더라도, 다이아몬드 매출을 늘릴 방안을 찾고 있다. 일례로 7개 주요 보석 생산업체는 다이아몬드생산업협회(DPA)를 설립하고 올 가을부터 “진짜는 희소하다(Real is Rare)”는 슬로건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한국 다이아몬드 시장도 뉴욕처럼 침체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온현성 소장은 “ 젊은층의 실용성 추구 트렌드로 웨딩 시장에서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꺾였다”며 “국제 거래 가격 만큼은 아니지만 소비자 가격도 소폭 하락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온 소장은 “DPA와 별개로 국내 주얼리 업계도 매출 확대를 위해 마케팅 강화에 나서고 있다”며 “다이아몬드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젊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이아몬드 시장 1위 업체인 드비어스의 지난해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50% 이상 급감했다. 현재 국제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은 드비어스(30~40%)와 러시아의 알로사(20~30%), 호주의 리오틴토(11%)가 과점하는 체제다.

드비어스는 보석 판매는 물론 생산지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비어스는 세계 2대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보츠와나와 오는 2020년 생산 재계약을 앞두고 있으나, 국내 정치 불안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올해 나미비아와 신규 계약을 체결했으나 나미비아에 유리한 조건이다.

◆키워드: 캐럿(carat)
보석 매매의 기준으로 이용되는 질량단위로 다이아몬드 1캐럿의 무게는 0.2g(200mg)이다. 나라나 지방에 따라 달랐던 기준을 1907년 국제도량형총회가 통일했다. 다이아몬드의 캐럿당 가격은 크기가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뉴욕의 경우 최상급 색상에 최고급 컷팅 기준으로 1캐럿 원석 가격은 3만달러지만, 지난해 뉴욕 소더비에서 낙찰된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2200만달러로 캐럿당 가격이 22만달러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