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금리 주권... "은행돈 빌릴 땐 미국 달력을 보세요"

조선비즈
  • 안재만 기자
    입력 2016.09.28 06:00

    세종시에 거주하는 이모(40·남)씨는 지난 19일 대출을 받기 위해 시중은행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고정금리 대출 조건을 문의했더니 대출금리가 연 3.0%로 전화 상담을 받았던 3주 전보다 무려 0.3%포인트 가량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준금리가 그대로고 코픽스(COFIX·은행권 자금조달비용지수)도 사상 최저라고 하는데 대출금리가 왜 이렇게 많이 오르냐”고 항의했지만, 은행 측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려고 하다 보니 채권금리가 올라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대출이자 부담에 어쩔 수 없이 연 2.6% 조건으로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가 1.25%로 사상 최저를 유지하고 있고, 8월 코픽스 또한 1.31%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지만, 대출자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으로 금융채 5년물이 7월 말 이후 우상향하고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지점 풍경 /사진 = 장우정 기자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지도로 대출자들에게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할 때가 많다. 그런데 고정금리 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잣대가 바로 금융채 5년물이다. 사상 최저 금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은행권에서는 “우리나라가 금리 주권(主權)을 잃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 우리나라는 그대로인데…美 움직임에 우상향하는 대출금리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28일 1.371%까지 떨어졌던 금융채 5년물 금리는 9월 19일 1.585%로 0.214%포인트 상승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25%로 0.25% 인하한 이후 3개월째 기준금리는 동결돼 있지만, 금융채 금리는 널뛰는 형국이다.

    상승 이유는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 21일(현지시간)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일단 금융채 5년물 금리는 1.5%선 초반대로 밀려났다.

    그래픽 = 이진희 디자이너

    문제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휘청대는 금융채 5년물이 현재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대표 ‘기준금리’라는 점이다.

    시중은행 대출금리는 변동금리의 경우 코픽스를, 고정금리의 경우 금융채 5년물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현재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 유도 정책을 펴고 있다 보니 대부분 대출자가 고정금리 대출을 받고 있고, 이 때문에 코픽스가 사상 최저를 찍었다는 점이 체감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코픽스는 은행의 정기예금 등 자금 조달 비용을 따지기 때문에 금융채 5년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 변수 영향을 덜 받는다.

    대출 금리 상승 이유는 금융채 5년물 금리 상승 때문만은 아니다. 은행이 대출에 대한 리스크를 반영하는 가산금리 또한 상승세다. 가산금리는 올해 들어 매달 0.05~0.1%포인트씩 꾸준히 상승 중이다. 대출금리는 금융채 5년물, 코픽스 등의 ‘시장금리’에다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산금리 상승 이유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에다 대출자의 건전성 악화 가능성, 대출 금리 자율화에 따른 마진 확보,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위기감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7월에는 연 2.6%까지 떨어졌던 고정금리 대출 금리가 최근 들어선 연 3% 안팎으로 치솟았다. 코픽스가 기준이 되는 변동금리 대출은 연 2.5~2.6%로 7월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영업점이 고정금리 대출만 내주고 있어 대출자들은 기준금리가 최저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말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40%까지 높이라고 지시한 상태다. 7월 말 기준 고정금리 대출 비중(잔액 기준)은 32.4% 가량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정금리 대출은 매달 내야 하는 이자가 정해져 있어 변동금리 대출보다 안정성이 높은 편”이라며 “이 때문에 고정금리 대출 유도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내 대출받는다면 FOMC 일정 피해야”

    은행권에서는 올 하반기 대출을 받을 계획이 있다면 대출 실행일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채 금리가 급등락할 수 있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일정이 있는 시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금리 결정을 위한 FOMC는 11월의 경우 우리나라 시간으로 11월 1~2일, 12월엔 13~14일 열린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든 올리지 않든) 그때는 하루 아침에 금리가 급변동할 수 있으니 자금 계획을 세우는 입장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고정금리 대출이 나을지, 변동금리 대출이 나을지에 대해선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시장금리는 단기적으로는 상승할 수 있으나 국내외 경제 여건상 중장기적으로는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정도의 금리 차이라면 변동금리 대출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도 “추세적으로 보면 고정금리 대출을 받는 것이 맞겠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더뎌 지금으로써는 변동금리 대출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판수 우리은행 압구정동 지점장은 “미국이 연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고객들도 아직은 고정금리를 선호하는 상황”이라며 “고정금리는 재무관리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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