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딩 스토리]㉖ 1970년대 고도성장의 상징 '삼일빌딩'…故 김중업의 설계로 우뚝선 한국 최초 마천루

조선비즈
  • 김수현 기자
    입력 2016.09.25 15:01 | 수정 2016.09.26 16:00

    서울 종로구 광화문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20여분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유독 우직한 느낌의 직사각형 빌딩이 모습을 드러낸다. 철골이 가르고 있는 네모 반듯한 유리창에는 짙은 색 유리가 끼어 있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반듯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런 다소 투박한 외관 탓에 이 건물은 각양각색의 현대식 고층 빌딩군 사이에서 더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이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 /김수현 기자
    ◆ 한국 마천루의 효시

    지금이야 50층을 넘나드는 고층 빌딩이 흔하지만, 삼일빌딩이 완공되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층빌딩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연면적 3만6000여㎡에 114m, 31층 높이로 우뚝 선 이 건물은, 1985년 여의도 63빌딩(한화63시티)이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1969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일빌딩. 주변 건물들의 높이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조선일보 DB
    완공 당시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건물 맞은편 길가는 손가락으로 건물 층수를 세어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현재 종로타워가 있는 옛 화신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삼일빌딩 층수를 세는 것이 당시 서울의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정부가 발행하는 홍보 책자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삼일빌딩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이 건물 최고층 스카이라운지에 자주 들러 시시각각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둘러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당시로선 첨단 공법이 사용된 건물이라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건물은 삼미그룹이 발주했고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건축가 고 김중업씨가 설계했는데, 당시에는 드물었던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이 적용됐다. 커튼월 공법이란 철골을 외벽으로 드러내고 철골 사이를 유리로 채우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한다.

    김중업씨는 “31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를 뚫고 닥트를 배열해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고 훗날 회고했다.

    1970년대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 멀리 사진 왼쪽 높은 건물이 삼일빌딩이다. /조선일보 DB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삼일빌딩은 당대의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지은 미국 뉴욕시 ‘시그램 빌딩’과 외관이 유사해 일각에선 ‘베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삼일빌딩이 국내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일빌딩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다본 모습. 멀리 남산타워가 눈에 띈다. /김수현 기자
    ◆ 세월따라 굴곡도 많아

    46년의 세월만큼이나 굴곡도 만만치 않다.

    먼저 김중업씨는 이 빌딩을 완공한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설계비용을 모두 받지도 못한 채 1년 만에 프랑스로 강제 출국돼, 한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삼일빌딩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본 모습. /김수현 기자
    IMF 외환위기 때는 빌딩 소유주였던 삼미그룹이 경영난에 몰려 이 빌딩을 산업은행에 매각했고, 산업은행은 2001년 502억원을 받고 홍콩에 주소를 둔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에 팔았다. 2008년 대우그룹 회생을 위해 구명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던 고 조풍언씨가 이 빌딩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삼일빌딩에서 동쪽으로 내려다 본 모습. /김수현 기자
    한때 한국 최고의 마천루 위상을 누렸던 건물답게, 전망도 최근에 지어진 고층 건물 못지 않다.

    남쪽으로는 삼일대로 주변 고층빌딩 사이로 남산타워를 볼 수 있고, 동·서쪽 높은 업무빌딩 사이로 청계천변이 길게 뻗어 있다.

    북쪽으로는 북악산을 병풍 삼아 탑골공원의 녹지와 중·저층 건물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간 31층에 뷔페 음식점이 있어서 방문객이면 누구나 전망을 즐길 수 있었지만, 지난해 말 음식점이 문을 닫은 뒤로는 입주업체 직원들만 건물을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삼일빌딩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모습. /김수현 기자
    현재 건물 시설관리는 삼일개발이 맡고 있고, IT서비스·컨설팅 업체인 메타넷과 대우정보시스템, 모바일 부동산 앱을 운영하는 직방 등이 입주해 있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빌딩이 청계천변에 있어 주변 전망이 뛰어나고 교통도 편한 곳에 있어 사옥으로서의 기능에도 손색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