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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41살 유지태, 욕망도 야망도 없는 이 남자가 사는 법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9.03 07:00 | 수정 : 2016.09.04 07:08

    야망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영혼 피폐해져
    가정 잘 꾸리고 경영 잘 하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
    3년 간 매달린 시나리오 ‘안까이'는 싸나이 픽처스에서 영화로 만들 예정

    배우이자 감독 유지태(41세). 얼마전 tvN의 법정 수사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권력형 검사 이태준을 연기했다./사진 제공=나무 엑터스
    배우이자 감독 유지태(41세). 얼마전 tvN의 법정 수사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권력형 검사 이태준을 연기했다./사진 제공=나무 엑터스
    타인에게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은 남자의 본능에 가깝다. 힘에 대한 욕구를 빼고 남자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사냥능력으로 힘의 위계가 명확했던 원시 사회 이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남자는 힘을 얻기 위해, 힘의 실체를 느끼기 위해, 시스템 안팎에서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그 힘의 가속도는 때로 속도계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라, 스티브 잡스처럼 ‘현실 왜곡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힘이란 무엇일까? tvN 법정 수사 드라마 ‘굿와이프'가 매회 잘 벼려진 칼처럼, 잘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할 수 있었던 데는, 유지태의 몫이 크다. 등장인물은 그가 곁에 있든 없든, 모두가 그의 힘을 의식하고 두려워한다.

    그는 일종의 빅 브라더다.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에 있을 때도, 다시 검사실로 돌아왔을 때도, 변함없이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초인적인 삶. 죄지은 자를 심판한다는 사법부 스타 검사의 힘은 그러한 걸까?

    ‘나는 옳다. 고로 나는 강하다.' 혹은 ‘나는 강하다. 고로 나는 옳다'...

    스스로 지닌 힘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어 보이는 그 초연한 나르시시스트의 얼굴. 드라마가 끝나도 여전히 기억나는 이미지는 그 힘을 상징하는 유지태의 넓은 어깨, 그리고 강자 약자를 막론하고 결코 흥분하지 않던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다.

    완력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는 배우 유지태. 187cm의 큰 키로 애초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던 유지태는 영화 ‘바이준(1998년)'과 ‘주유소습격사건(1999년)'을 거쳐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완력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는 배우 유지태. 187cm의 큰 키로 애초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던 유지태는 영화 ‘바이준(1998년)'과 ‘주유소습격사건(1999년)'을 거쳐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힘을 뺀 상태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힘들이지 않고 힘을 표현하는, 우리 시대 권력자의 웃음 띤 얼굴.

    13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3년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반대편에 젊은 유지태를 세웠었다. 장도리 액션을 비롯해서 온갖 폭력이 난무했던 영화에서 스물아홉의 유지태는 가장 높은 곳에서 손끝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최민식을 제압한다.

    악랄한 심판자의 지위로 한 남자를 정죄해 십 년 넘게 사설 감방에 가둔 것도 모자라, 제 앞에서 반성하며 무릎 꿇고 개처럼 짖게 하는 자가 유지태다.‘굿와이프'의 법원 앞에서 드넓은 태평양 어깨를 자랑하듯,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는 186cm의 길고 우아한 육체로 펜트하우스에서 기예에 가까운 요가 자세를 선보였다.

    폭력이 아닌 채로 폭력을 능가하는 유지태의 무언의 퍼포먼스.

    그렇게 그의 육체는 구체적인 물리력의 증거로 제출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지태의 육체 앞에 서면 초고층 빌딩이 아니라 피라미드나 중세의 성당을 바라보는 것 같은 초연한 느낌을 받는다.

    피라미드의 비밀의 문이 열리듯, 가끔은 유지태가 15년 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보리밭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섰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자신보다 더 크고 더 강한 남자에게 돌아선 이영애 앞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울먹이던 청년. 청년은 늙으신 할머니의 위로를 받고 들판에 나가 허수아비 자세로 보리밭에 선다.

    바람이 고통을 훑고 지나가면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열리듯, 누구에게나 ‘봄날은 간다'는 자연의 법칙을 두 팔 벌려 제 육체에 아로새기던 젊은 날의 유지태.

    이영애와 함께 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의 유명한 엔딩신. 당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이영애와 함께 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의 유명한 엔딩신. 당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유지태를 만났다. 악수할 때 한쪽 손으로 넓은 가슴을 누르며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는, 겸손의 몸짓이 몸에 밴 사람. 현실의 유지태는 ‘힘의 욕구’와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다.

    -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웃음)저는 욕망도 야망도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맡은 연기와 연출만 최선을 다할 뿐이죠. 야망이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제 영혼도 피폐해져요. 저는 그런 사람이 하루빨리 야망의 날개를 펼치고 제 곁을 떠나길 바랄 뿐이죠.”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유지태는 정치인 유옥우(1914~1984년)의 손자다. 고 유옥우 의원은 목포 일보 사장을 지낸 5선 국회의원으로 196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고 11살에 아버지 사업도 부도가 나면서 유지태는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와 단둘이 단칸방에 살며 자전거로 신문 배달을 하는 등 경제적 궁핍을 헤쳐나갔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교회 성극을 시작한 유지태는 배우의 꿈을 꾸고 마침내 그 꿈을 완성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도 야망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 텐데요. 시나리오부터 캐스팅, 투자, 배급까지 영화 한 편 만들어 개봉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지요.

    “인정합니다. 도박판처럼 영화판은 나름의 ‘판의 논리'를 따라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독선과 힘의 논리가 선명하게 드러나죠. 하지만 다른 길도 있어요.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나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를 보세요. 힘과 돈으로만 영화를 찍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로 해야 할 이야기를 다 하면서요. 그들을 보면서 저를 정돈해요.”

    -요즘 잘 나가는 한국 감독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3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탈고해서 대박 영화를 만드는 그 능력만큼은 저도 배우고 싶어요(웃음). 그건 마치 하루 전날 대본을 받고도, 안정감 있는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능력이거든요.”

    그는 현재 ‘안까이'라는 재중탈북자 이야기를 장편 영화로 준비 중이다. ‘안까이’는 조선족 말로 아내라는 뜻. 감독 유지태는 배우 유지태만큼이나 영화계에서는 익숙하다. ‘자전거 소년(2003년)을 시작으로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년), ‘나도 모르게(2007년)’ 등을 연출했고, 타이 이주 여성의 사랑을 그린 첫 장편 ‘마이 라띠마(2011년)'는 제15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유지태는 용산 참사를 다룬 독립 영화 ‘두 개의 문'의 상영 후원을 시작으로 5년 째 독립 영화관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매년 100개의 좌석을 사서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유지태는 용산 참사를 다룬 독립 영화 ‘두 개의 문'의 상영 후원을 시작으로 5년 째 독립 영화관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매년 100개의 좌석을 사서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직접 썼나요?

    “연출부와 함께 작업했어요. 12번 고쳐 쓰다 보니 3년이 후딱 가더군요.”

    -현실화될지 알 수 없는 작업을 붙들고 3년을 버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천만 관객의 꿈으로 팽창된 영화 투자업계가 밑바닥 사람들의 리얼 스토리를 선뜻 반길 리도 없을 테고요.

    “기만감과 박탈감이 어떤 기분인지 알았어요(웃음). 남에게 계속 속는 느낌과 도태되는 느낌… 컴퓨터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면, 인터넷으로 새로운 작품과 스타들이 쏟아져 들어오죠. 전 감독이기 전에 배우라서 이러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두려움이 밀려와요. 그 와중에도 모니터 커서는 계속 깜빡이며 나를 쳐다봅니다.”

    -많은 감독이 그런 강박적 상태를 지나 한 편의 영화를 만들죠.

    “공황장애, 알콜중독을 겪고 정신병원에 가기도 하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힘 있는 기업의 딸랑이가 되기도 하고요. 어려운 길이에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안 된다고, 아니라고 하는 그 세상을 극복하고 싶어요. 여러 번 투자 기회가 엎어지고 마음은 너덜너덜해졌지만, 결과적으로 시나리오는 점점 더 좋아졌어요. 덕분에 밑바닥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담을 수 있게 됐어요.”

    영화 ‘안까이'의 제작은 ‘검사외전' ‘아수라' 등을 만든 사나이 픽처스가 맡을 예정이다.

    -배우 출신으로 감독 작업도 병행했던 박중훈과 하정우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장편 상업 영화인 ‘톱스타'와 ‘허삼관'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만.

    “(웃음) 그분들은 그래도 100억을 투자받았었죠. 저도 100억을 투자받을 수 있을 때까지 해보려고요(웃음).”

    -그 또한 야망이 아닐까요?

    “소년의 소망 정도라고 해두죠(웃음). 성공해야한다는 그런 마음과는 달라요. 가령 이틀 전에 나온 대본으로도 완성도 있는 연기를 해내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해요. 저는 그 내공을 갖추기 위해 20년을 보냈죠. 감독도 그래요. 누군가 100억을 선뜻 투자해준다면 고맙지만, 투자자들의 각종 요구를 순발력 있게 수용하면서도 내 작가적 소신을 유지하려면 내공이 필요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야죠. 사소하게 타이핑을 빨리하는 것부터요.”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다이얼로그가 참 좋더군요. 목소리의 경영 능력이 탁월했어요. 어떤 식으로 훈련했습니까?

    “발성 훈련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성량을 좀 더 다듬고 키웠어야 했다고 반성합니다. 저는 ㄷ과 ㄴ 발음이 약간 어려워요. 언젠가 한양대 연극과 최형인 교수께 여쭤봤더니 구강구조보다는 과거의 경험에서 이유를 찾으시더라고요.”

    2011년 월드비전 박종삼 전 회장의 주례로 배우 김효진과 결혼식을 올린 유지태. 그는 결혼식 축의금을 미얀마의 학교 설립 기금으로 기부했을 뿐 아니라,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미얀마로 봉사 활동을 떠났다.
    2011년 월드비전 박종삼 전 회장의 주례로 배우 김효진과 결혼식을 올린 유지태. 그는 결혼식 축의금을 미얀마의 학교 설립 기금으로 기부했을 뿐 아니라,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미얀마로 봉사 활동을 떠났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최형인 교수는 동국대학교 안민수 교수와 함께 배우들의 큰 스승이었다. 설경구, 고현정을 비롯해 그의 아내 김효진도 가르침을 받았다. 최형인 교수에게 배운 것 중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고 했다. “제가 연기하는 걸 물끄러미 보시고는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너는 연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으냐? 연기하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야 한다. 기분 좋게 해라.” 그 말이 잊히지 않아요.”

    -이번 작품을 연기할 때는 기분이 어땠습니까?

    “기대가 컸어요. 전도연 선배는 좋은 배우예요. 좋은 배우는 기준을 만들어주고 좋은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리고 저는 요즘 전도연 선배가 출연했던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과 영화 친구가 됐어요(웃음). ‘무뢰한'은 무시무시할 만큼 뛰어난 영화였고, 전도연 선배는 인생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당신 또한 사실주의 연기와 인위적인 연기, 두 가지에 다 능한 편입니다. 수련이 잘 돼 있어서 유려함이 느껴져요. ‘올드보이'에서 박찬욱, ‘여자는 남자는 미래다'에서 홍상수, ‘봄날은 간다'에서 허진호 감독과 함께 하면서 무엇을 배웠나요?

    “그분들 각자 좋아하는 연기가 달랐어요. 덕분에 저는 리얼리즘 연기와 메소드 연기를 다 배운 것 같습니다.”

    -‘봄날은 간다'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들판에서 팔을 벌리던 허수아비 자세도, ‘올드보이'에서 물구나무서서 수직으로 허리를 펴던 요가 자세도 모두 몸에 잘 맞더군요.

    “그걸 통상 이미지 연기라고 합니다. 연기는 대사인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대화할 때보다 안 할 때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요. 평소에입을 다물고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몸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건 배우의 중요한 연기 중 하나지요.

    허공에서 선을 내리긋는 듯한 유지태의 초현실적인 육체.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허공에서 선을 내리긋는 듯한 유지태의 초현실적인 육체.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예민한 감독들은 배우의 몸을 잘 관찰해서, 영화의 맥락에 맞는 이미지를 창조합니다. 박찬욱 감독과 허진호 감독이 그런 경우예요.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당시 ‘올드보이'의 이우진을 저만큼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봐요. 한때 최민식 선배가 이우진 역할을 한석규가 했더라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단언컨대 29살의 유지태가 만든 이우진이 최고였어요.”

    ‘올드보이' 이후 자신이 가진 이미지에 대해 파악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고 그가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중에 흘러나온 말 중 가장 강한 어조였다.

    무심한 표정과 기다란 팔다리를 가진 유지태의 육체는 2000년대 초 한국 영화감독들에겐 신세계였다. 2G폰만 쓰다가 쿨한 스마트폰이 쥐어졌다고나 할까. 그것은 같은 모델 출신이었던 차승원의 육체와도 달랐다. 차승원의 육체가 ‘삼시 세끼'에서 보여주듯 생활감이 느껴지는 확신에 찬 욕망의 육체라면, 유지태의 육체는 중력을 벗어난 무용수의 몸처럼 먼 곳에 닿아 있는 초현실적인 육체였다.

    -지금은 다이얼로그와 이미지를 균형 있게 사용하고 있지요?

    “네. 하지만 여전히 대사는 생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좀 어눌해도 감정만 전달되면 되면 대사로서 역할은 다 했다고 봐요.”

    -권상우와 함께 영화 ‘야수'를 할 때는 다이얼로그에 실패했다고 했어요. 그건 상대 배우의 어눌한 발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가요?

    “제가 냉정하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뭉개지고 감정이 앞섰지요. 서로 과잉 경쟁의식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웃음).”

    배우 유지태의 할아버지는 5선 국회의원이자 1960년대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던 유옥우 의원이다.
    배우 유지태의 할아버지는 5선 국회의원이자 1960년대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던 유옥우 의원이다.
    -41살에 권력형 검사 이태준으로 사는 기분은 어땠습니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요. 저는 남자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야비하면서도 정의를 외치는. 그런데 정작 여자들이 보고 ‘덩치 좋다'고 좋아하시더군요(웃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홍상수 감독과 일할 때는 어땠습니까? 찌질한 남자의 전형을 연기했지요. 큰 키에 102kg으로 몸을 불려 움직임도 둔해 보였어요. 혹 홍 감독이 ‘청순한’ 유지태를 시샘해서 망가뜨리려는 계략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웃음).

    “(웃음)전 대학교수가 인생 목표였던 속물이었어요. 여자한테도 함부로 굴었죠. 저 스스로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곁에서 홍상수 감독의 예술관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홍 감독의 영화와 인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분의 영화는 정말 솔직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영화보다 인생이 더 솔직하더군요(웃음).”

    -여자는 남자에게 무엇인가요?

    “가정을 함께 지키는 의리도 중요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친구 같은 존재예요. 진지하게 대화할 수도 있고 즐겁게 식사할 수도 있어야지요. 저에겐 효진이(아내인 배우 김효진)가 그래요. 그녀는 굿와이프이고, 좋은 엄마예요.”

    -어떤 여자에게 영향을 받았습니까?

    “어머니는 저를 맹목적으로 믿어주셨어요. 저도 어머니처럼 제 아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정도지요. 일례로 ‘굿와이프'에서 전도연 선배가 제게 “꺼져"라고 하는 장면을 보고는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셨답니다(웃음).

    어머니는 지금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세요. 평생을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하셨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지요. 그 삶이 얼마나 쉽지 않은 줄 알기 때문에 저를 더 다잡게 됩니다.”

    차기작으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다룬 영화 ‘꾼'의 강력계 검사 역할을 준비 중인 유지태.
    차기작으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다룬 영화 ‘꾼'의 강력계 검사 역할을 준비 중인 유지태.
    -쇼윈도 부부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는 ‘굿와이프'의 결말에는 동의합니까?

    “아니요. 작가와 연출이 싱글이어서 내린, 지나치게 ‘트렌디한’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모든 걸 다 잃는다 해도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삶의 무게를 받아들여야지요. 이태준은 정치가가 아니라 변호사로 다시 시작했어야 한다고 봐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국선변호사로 말이지요.”

    -사람은 언제 죄를 짓게 될까요?

    “죄와 정의는 한 끗 차이예요. 가판대에서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그냥 나가느냐, 계산을 하느냐. 욕망을 제어하느냐 못하느냐.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11분'을 보면, 11분이 성관계에서 쾌락을 얻는 시간이라고 해요. 남자들은 그 11분을 절제하지 못해 종종 죄를 짓습니다.”

    -인간의 과오와 죄악을 다루는 자극적인 영화계에 정신 차리고 산다는 게 쉽지 않겠지요. 더불어 성공과 실패를 예견할 수 없다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습니까?.

    “요즘엔 신기할 정도로 흥행 예측이 가능합니다. 어디에서 배급하고 누가 관여하느냐를 보면 크게 예상에서 어긋나지 않지요.”

    -대중문화 속에서 사는 게 행복한가요?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좋고(웃음),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연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아요. 얼마 전까지는 힘들었어요. ‘더 테너'라는 영화를 했는데, 투자 문제로 한동안 촬영이 중단되었다 다시 시작한 데다, 1년간 성악 연습을 하느라 도합 4년을 허비했어요. 완성되고 나서는 제대로 개봉도 못 했지요.

    그동안 CF는 다 날아가고, 현장에 가면 대접이 달라져 속상한 일들이 생겼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시간이 있어서 영화도 준비하고, ‘굿와이프'를 만나 과분한 관심도 받고 있죠. 오랫동안 성실하게 베이스를 깔아두면 기회는 늘 다시 오리라고 믿으면서요.”

    -어떤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습니까?

    “가정을 잘 꾸리고 경영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감독도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가을입니다. 문득 ‘올드보이'를 개봉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13년 전, 배우 최민식이 마흔이 되어 맞는 가을이 조금 더 쓸쓸하다는 말을 했어요.

    “이젠 제가 그 나이가 됐어요(웃음). 아들 얼굴 보기도 바쁠 만큼 쓸쓸할 틈은 없는데, 그저 어느새 이렇게 추워졌나, 싶습니다.”

    -가끔은 20대가 그리워지나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주유소습격사건'을 찍던 시절이었죠(웃음).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라이더'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로스트 하이웨이',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에 빠져 꿈을 키우던 시절이었어요. 여행하고 마약 하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전위적인 영화에 흠뻑 빠졌습니다. 저는 미국의 현대 영화를 효진이는 유럽의 고전 영화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영화 친구이자 인생 친구가 됐죠(웃음).”

    남성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 자기만의 청정 구역을 만들어내는 유지태.
    남성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 자기만의 청정 구역을 만들어내는 유지태.
    -어떤 인간이 되고 싶나요?

    “인간 냄새가 나는 사람이요. 쉽지는 않다는 걸 알아요. 목소리 높이고 싶지는 않지만, 내 가족, 내 팀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나서야 할 때도 있을 거고요. 방법이 없지요(웃음).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깎고 다듬을밖에는(웃음).”

    남성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 자기만의 청정 구역을 만들어내는 유지태. 성공 가도를 향해 힘을 주고 직진만 해도 모자랄 남자 나이 41살에, 그는 여전히 의식적으로 힘을 빼며 살아간다.

    아이티, 우간다, 미얀마, 르완다… 나약한 나라, 힘없는 어린아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장 먼저 달려가 손을 잡아주는 월드비전의 홍보 대사로,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를 지속해서 만들어내는 진지한 영화인으로, 5년 째 독립 영화관의 좌석 100개를 사서, 관객에게 선물하는 대안 문화의 후원자로.

    헤어질 때 그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5년 주기로 만났으니, 5년 후에 또 뵙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검은 티셔츠를 입은 41살의 키 큰 사내가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선한 미소를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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