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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병헌이 사자 우리로 간 까닭은? 사진가 조선희의 '100bag' 스토리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8.13 07:00 | 수정 : 2016.08.28 10:53

    “이병헌이 사자 우리로 간 까닭은? 장근석이 거미 소년이 된 이유는?”
    “사진가 조선희 100명의 스타들과 ‘아프리카 소녀 학교 보내기' 기부 사진 ‘100bag’ 촬영”
    “쟝샤를드까스텔바작 가방과 어우러진 스타... 몽환적인 작품 세계 돋보여”

    이병헌이 사진가 조선희의 카메라 앞에서 사자와 포즈를 취했다. 조선희는 쟝샤를드까스텔바작과 ‘아프리카 소녀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해 100명의 스타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 모았다./사진=조선희
    이병헌이 사진가 조선희의 카메라 앞에서 사자와 포즈를 취했다. 조선희는 쟝샤를드까스텔바작과 ‘아프리카 소녀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해 100명의 스타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 모았다./사진=조선희
    먼저 1년 여 전부터 간곡하게 요청한 나의 섭외 전화를 오묘한 방식으로 거절한 까다로운 몇몇 스타와 명사들을 사진작가 조선희의 이번 ‘100bag’ 프로젝트, 100장의 사진 중에서 발견했을 때 흥분과 동시에 좌절을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유명 인사를 설득해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거물일 경우에는 더욱!).

    섭외는 매체의 힘과 프로젝트의 정당성 뿐 아니라 그간 들인 정성과 시간, 실력과 운, 나의 신뢰와 주변의 도움, 상대의 위험 감수와 용기, 이익 셰어 등이 변수로 반영된 고도로 복잡한 방정식이다. 내가 볼 때 대한민국에서 그 방정식을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사람은, tvN의 나영석PD와 MBC의 김태호PD 그리고 덧붙여 사진가 조선희가 아닌가 한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현재 이름이 알려진 셀러브러티들은 나영석과 김태호와 조선희가 두메 산골 혹은 섬마을에 불러 ‘세숫대야에 발만 담그고 있으라’고 해도 응할 것이다. 이유 불문, 그들이 유명할 뿐 아니라, 그들이 만든 컨텐츠의 영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병헌부터 장근석, 김혜수까지, 이외수부터 박칼린, 구본창까지… 조선희의 사진 속에 등장한 당대의 셀러브러티 100명은 도저히 하나의 프로젝트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내가 안 끼면 안되지'라는 여유롭고 한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유가 뭘까?

    도데체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어 보이는 이병헌은 왜 한밤중에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 잠입해 사자를 끌고 다니고, 이외수 선생은 강원도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며, 엄정화는 강화도 바다로 달려가 백마의 고삐를 움켜 쥐는가.

    엄정화. 말과 함께 찍고 싶어했고, 1컷의 사진을 위해 강화도 바닷가로 동행했다./사진=조선희
    엄정화. 말과 함께 찍고 싶어했고, 1컷의 사진을 위해 강화도 바닷가로 동행했다./사진=조선희

    여배우 김혜수. 엄정화와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든 포토제닉한 표현을 해내는 최고의 모델./사진=조선희
    여배우 김혜수. 엄정화와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든 포토제닉한 표현을 해내는 최고의 모델./사진=조선희

    강혜정과 딸 하루. 광주리에 먹을 것을 이고 가는 시골 할머니와 소녀라는 콘셉트로 촬영되었다./사진=조선희
    강혜정과 딸 하루. 광주리에 먹을 것을 이고 가는 시골 할머니와 소녀라는 콘셉트로 촬영되었다./사진=조선희

    한류 스타 장근석. 누구나 심장에 거미줄 몇 개는 치고 살아간다./사진=조선희
    한류 스타 장근석. 누구나 심장에 거미줄 몇 개는 치고 살아간다./사진=조선희
    샘 오취리는 어쩌자고 민머리에 산낙지 모자를 쓰고, 김혜수는 ‘얼굴없는 미녀' 시절의 부풀린 사자 머리에 마리오네트 포즈를 취하고 있는가. 한여름 아스팔트 위로 낚싯대를 던지는 류승룡은 뭐가 그리 즐거운가. 검은 까마귀가 된 타블로와 검은 가면을 쓴 한지민은 그런 가혹한 신체 변형에도 정말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단 말인가.

    사진 작가 조선희를 만났다. 20여 년 간 패션 사진계에서 일해온 스타 사진가. 금발에 석탄처럼 검은 피부, 우렁찬 목청과 자제할 수 없는 폭소로 초면에 피사체를 압도해 버리는 존재감 과잉의 여장부. 한번 만나도 백 번 만난 듯 단숨에 상대를 우정의 비밀 지대로 초대해버리는 통쾌한 사교가.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유아적인 욕구와 “당신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성인다운 외교를 동시에 구사하는 프로 정신이, 그녀를 오늘의 이 자리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바람 부는 전쟁터에 내던져 져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전진할 것만 ‘순전한 열정'도 유지한 채.

    그간 조선희와 함께 수많은 스타를 촬영했다. 할리우드 배우 조시 하트넷부터 중국 배우 양조위까지. 해운대 바닷가에 거대한 야외 세트를 짓고, 조시 하트넷을 만났을 때 그녀가 한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 유 조시? 아이 엠 조씨. 위 아 더 종씨. 으하하하하.”

    사진가 조선희. 연세대 의생활학과 90학번이다. 학창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 작가 김중만 작업실에서 수련 후 20여 년간 패션과 영화계를 아우르는 톱 클래스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사진= 안동수, 이주항
    사진가 조선희. 연세대 의생활학과 90학번이다. 학창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 작가 김중만 작업실에서 수련 후 20여 년간 패션과 영화계를 아우르는 톱 클래스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사진= 안동수, 이주항
    -백(bag)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100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둘 다. 쟝샤를드까스텔 바작이라고 프랑스 디자이너에게서 영감을 받은 백(bag) 브랜드인데, 나한테 론칭을 알리는 광고 화보 의뢰가 왔다. 농담처럼 내 입에서 백(bag)이니까 100명의 셀러브러티가 나오면 좋겠네, 그랬다. 진부하게 광고 냄새 피우지 말고, 클라이언트의 일체 간섭 없이. 백과 100명의 사람을 매칭한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싶었다.”

    -칼 라거펠트가 송혜교를 비롯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에게 샤넬의 ‘리틀 블랙 재킷’을 입히고 찍은 사진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힘이 센 명품 패션 하우스가 스타를 낙점한 프로젝트였다. 이번 100bag 프로젝트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작전이었을 텐데.

    “내 입이 방정이었다(웃음). 100장의 사진을 어떻게 다르게 찍느냐 보다, 100명을 어떻게 섭외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처음에 이게 될 만한 프로젝트일지 주변 사람들에게 떠보았더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된다는 거지. 그래서 자문했다.

    내가 찍는 게 가방과 사람이라면, 그것의 본질은 뭘까? 가방은 여자의 물건이고, 그 첫 행위는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거네… 그렇다면 이 사진을 자기만의 가방을 갖고 싶은 소녀를 위해 써야겠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자아이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를 동시에 가동시켰다.

    사진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100명의 스타의 이름으로 아프리카 소녀 학교 보내기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거다. 돈을 댄 기업은 좋은 이미지로 이름을 알리고, 스타들은 선한 일에 동참하고, 나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셈이다. 대신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했기에, 사진이 상업 광고로 쓰이지 않도록 계약서를 쓰는 등 과정이 꽤 복잡했다.”

    방송인 샘 오취리, 배우 황미영, 방송인 홍진경과 딸 김라엘, 배우 류승룡, 배우 한지민, 배우 문정희/사진=조선희
    방송인 샘 오취리, 배우 황미영, 방송인 홍진경과 딸 김라엘, 배우 류승룡, 배우 한지민, 배우 문정희/사진=조선희
    -브랜드에서는 전혀 간섭이 없었나?

    “전혀. 자칫 잘못하면 가방 들고 폼 잡는 사진이 나온다. 그렇게 찍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이 프로젝트 전체를 아이의 눈으로 바라봤다.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 쟝 샤를 드 까스텔 바작의 그림도 동화적인 색채가 있고, 그래서 이번 작업 전체가 굉장히 판타지 적이다.”

    -대체 100명의 스타는 어떻게 섭외했나?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들 몇 명에게 프로젝트를 알렸다. 영화 홍보사 대표, 가수 백지영 등등. 다들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나 대신 나서서 ‘밑밥'을 깔아주고 섭외를 도와주었다. 해본 사람이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다른 사람을 추천해주는 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100명을 25일 안에 찍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섭외의 주도권을 잡은 비결이 뭔가?

    “일단 ‘기부’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도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컸고. 너무 부탁하는 마음으로 저자세로 나가기보다 자신감 있게, “좋은 일이니까 해!’라고 했더니, 설득력이 커지더라.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어떻게 찍을까만 생각했다.”

    -스타트는 누가 끊었나?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다. 이외수 선생을 촬영하면서도 좋은 인연은 겹겹이 쌓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한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내가 영화 ‘동주' 포스터 찍은 걸 어찌 알고, 윤동주 시집 초판본을 선물했다. 그 친구가 우리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해서, 2주 정도 받아줬는데, 그다음 인턴을 이외수 선생 작업실에서 한다는 거다. 혹시나 해서 공문을 들려 보냈더니, 오케이 사인이 왔다. 시작이 좋아서, 점점 더 자신감이 붙었다.”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 이외수,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 배우 신하균, 배우 정일우, 뮤지션 타블로/사진=조선희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 이외수,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 배우 신하균, 배우 정일우, 뮤지션 타블로/사진=조선희
    -이병헌과 김혜수를 섭외했다면, 이미 게임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야말로 다른 스타들이 넘볼 수 없는 워너비 스타가 아닌가?

    “하하하하. 살인적인 스케줄 상황에서 동참을 해줬으니 고맙다. 이병헌은 해외 촬영 도중 한국에 머무는 이틀 중에 하룻밤을 나한테 주었다. 김혜수는 영화 홍보 일정 중 어렵게 시간을 내줬고. 그런데 작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하기로 한 사람은 어떻게든 해준다. “하고는 싶은데, 너무 바빠서…” 이렇게 나오면 아무리 매달려도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웃음).”

    -이병헌 사진은 뭐랄까, 좀 웃기게 장엄하다. 예전에 ‘이병헌이 영화에서 똥을 쌀 때마다 대박을 터뜨린다'는 분석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역시 비장한데 다소 웃긴, 아이러니가 보인다.

    “이병헌을 생각하면 왕이 생각난다. 외로운 왕이 사자를 반려견처럼 데리고 산책하러 가는 느낌이랄까. 한밤중에 서대문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빌려서 찍었다.”

    -감동적인 태도를 보여준 스타들도 많았을 것 같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 타이거JK가 갑작스럽게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촬영 당일에 링거에 혈당 수치를 맞추는 기계까지 달고 현장에 왔다. 사진은 옷으로 안 보이게 가려서 찍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스케줄을 맞춰서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거다.”

    -스타를 찍는 스타 사진가 조선희의 브랜드 파워를 확인하는 순간들이었겠다.

    “인생을 헛되게 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대부분 나와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한창 잘 나가는 걸그룹 I.O.I의 김세정, 정채연은 대학 동창인 KBS 서수민 PD가 나서서 섭외를 해줬고.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 나중엔 100명이 초과가 돼서 스타 리스트를 줄여야 했다. 다양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과학자, 스포츠 선수, 소설가, 발레리나, 디자이너들도 다양하게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배우 안채현, 모델 이현이와 딸 홍윤서, 배우 안재홍, 발레리나 강예나, 무술감독 정두홍, 음악 감독 박칼린/사진=조선희
    배우 안채현, 모델 이현이와 딸 홍윤서, 배우 안재홍, 발레리나 강예나, 무술감독 정두홍, 음악 감독 박칼린/사진=조선희
    -유명세에 상관없이 사진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베스트 7을 꼽아본다면?

    “바닷가에서 피아노 치는 이승철, 백마를 끌어안은 엄정화, 마이크 빗속에 앉은 백지영… 등등 셀 수 없다. 그중에서 뮤지컬 단역 배우 출신의 황미영은 얼마 전 영화 ‘굿바이 싱글'에도 나왔는데…, 뚱뚱하지만 아주 작은 가방을 들고 찍었다. 그런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이 참 예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온 데이비드 맥기니스는 15년 전 한 번 봤는데, 그 기억으로 한밤중에 만나서 찍었다. 혼혈을 찍어보니, 흑인도 함께 있으면 좋을 듯했다. 머리에 낙지를 올리고 찍은 방송인 샘 오취리 사진은 특별히 맘에 든다.

    영화 ‘크로우' 콘셉트로 찍은 ‘검은 까마귀’ 타블로도 좋지만, 그의 아내 강혜정과 딸 하루를 찍은 사진은 참 맘에 든다. 할머니가 광주리 이고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모녀를 찍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낚시하는 류승룡이나, 버니걸 콘셉트의 한지민 사진도 유머가 있다. 배우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기분 좋게 몰입한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여유는 아주 귀하다. 특히 한지민은 1컷 촬영에, 자기 얼굴을 가리는 가면 콘셉트를 선택했다. 흔치 않은 자세다. 거미줄을 뚫고 나오는 장근석 사진도 애착이 간다. 누구나 심장에 거미줄 몇 개 처져 있지 않나(웃음).”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과 편안함. 그런데 사진은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야 잘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배우 강하늘, 가수 I.O.I.의 김세정, 가수 이승철, 가수 공민지, 모델 김영웅, 가수 씨스타의 보라/사진=조선희
    배우 강하늘, 가수 I.O.I.의 김세정, 가수 이승철, 가수 공민지, 모델 김영웅, 가수 씨스타의 보라/사진=조선희
    -특별히 행복했던 기억은?

    “대부분 행복했다. 20년간 상업 사진을 찍다 보면 행복감이 줄어드는데, 이번 작업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하는 일이었으니까.”

    -이 프로젝트 결과물이 아프리카 소녀들 학교 보내기에 순수하게 사용될 거라고 확신하나?

    “물론! 까스텔 바작 브랜드에서 내가 돈을 받아 세이브더칠드런 캠페인 ‘스쿨 미(School Me)에 건네준다. 일단 5천만 원, 그리고 ‘아하프(AHAF 아시아 호텔 아트 페어)’에 전시회를 해서 사진이 팔리면 그 수익 전부, 사진집 판매 수익금 전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예술의 선순환인 셈인가?

    “브랜드는 이 프로세스가 회자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케팅 이익을 얻고, 스타는 새로운 비주얼 체험과 더불어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고, 내겐 작업이 남고, 아프리카 소녀들은 학교에 갈 기회를 얻는다. 모두에게 좋다.”

    -기부는 평소에도 해왔던 작업인가?

    “나 자신, 엄마가 되고부터 사회 공헌 쪽에 관심이 많았다. 조손 가정 아이들 생활비를 대주기도 했고, 굿네이버스나 세이브더칠드런 등 사회단체에서 하는 사진 재능 기부 활동은 대부분 참여했었다. 아프리카, 인도 등등 많이 다녔다.”

     배우 송윤아, 과학자 정재승, 배우 한예리, 사진작가 구본창, 디자이너 진태옥, 배우 정경호/사진=조선희
    배우 송윤아, 과학자 정재승, 배우 한예리, 사진작가 구본창, 디자이너 진태옥, 배우 정경호/사진=조선희
    - 쟝샤를드까스텔바작이 어떤 브랜드인가?

    “패션 그룹 형지에스콰이어에서 발매하는 새로운 가방 브랜드다. 프랑스 디자이너 장 샤를 드 까스텔 바작과 협업하는 거로 알고 있다.”

    -직업인으로서 조선희는 어떤 사람인가?

    “새로운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 두려움도 많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 자발적으로 100명을 섭외하고 촬영하는 스트레스를 이겨낸 사람(웃음).”


    사진가는 피사체로서도 훌륭하다. 쟝샤를드까스텔 바작의 ‘100bag’프로젝트의 1인으로 참여한 조선희./사진=조선희
    사진가는 피사체로서도 훌륭하다. 쟝샤를드까스텔 바작의 ‘100bag’프로젝트의 1인으로 참여한 조선희./사진=조선희
    -M 스캇 펙이라는 저명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게으름, 오만함, 두려움이 인간의 3가지 죄성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있나?

    “음…, 난 무방비 상태의 시간을 못 견딘다. 산사 체험처럼 한없이 게을러도 되는 시간이면 모를까, 근본적으로 계속 어떤 행위를 하는 걸 좋아한다. 오만함은 언제부턴가 자신감으로 잘 바꿔 쓰고 있는 것 같고, 두려움도 그 안에 빠져 있으면 죄가 되겠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오만함을 조절하는 게, 인생 그라운드 2의 핵심이다. 사진가로 한창 잘 나갈 때, 임신하고 뉴욕으로 갔었던 게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10년 전, 36살에. 그때 내려놓지 않고, 계속 일을 했으면 굉장히 오만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뉴욕에서 아기 낳고 돌아왔더니, 내 자리가 없더라. 이미 젊고 혁신적인 사진가들이 나와서 활동 중이고, 사진계는 디지털화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일이 없었다. 그때 죄를 저지를 뻔했다. 두려움이라는 죄. 너무 두려워서 사진을 그만둘까, 생각했으니까.”


    2006년 여름, 모든 걸 내려놓고 뉴욕으로 가서 출산한 조선희./사진=조선희
    2006년 여름, 모든 걸 내려놓고 뉴욕으로 가서 출산한 조선희./사진=조선희
    - 자신감을 찾은 계기가 있나?

    “그런 거 없다. 일단 사진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난 할 수 있다." 그런 생각만 계속했다. 주변 사진가 친구들에게 물어서 장비도 사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익히고 조금씩 적응해 갔다.”

    -사진가로서 조선희는 스타일면에서 미국 ‘보그'의 전설적인 사진가 애니 리보비츠와 비교되곤 한다. 거대한 세트에서 스타들을 영화적인 비주얼로 재창조해낸다는 점에서. 그런데 애니 리보비츠도 초기엔 ‘롤링 스톤즈'를 따라다니며 히피 생활을 하고 다큐 기록 사진을 많이 찍었다. 대표적인 게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아름다운 나체 사진이고. 당신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나? 장식적인 스튜디오 사진보다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인물의 빛나는 한순간을 잡아내던 시절이…, 연희동 집 담벼락에서 손을 꼭 잡은 서정주 시인 부부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분장실에서 속눈썹 화장을 하던 사진들이 특히 기억난다.

    “말 그대로 가장 사진가다웠던 시절이다. 애니 리보비츠도 나도 클라이언트가 아무리 거대한 세트와 돈을 줘도 그때 그 모멘트를 잡아내는 사진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카메라 셔터 스피드 125분의 1초, 그거에 목숨을 걸었던 아름다운 시절이다. 지금 세트 촬영을 많이 하지만 여전히 그 본능과 직감은 남아 있다.”


    ’보그코리아' 프리랜서 피처사진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들. 두 손을 맞잡은 시인 서정주 부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결정적인 모멘트를 잡아내는데 탁월했다./사진=조선희
    ’보그코리아' 프리랜서 피처사진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들. 두 손을 맞잡은 시인 서정주 부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결정적인 모멘트를 잡아내는데 탁월했다./사진=조선희
    -2009년부터 경일대학교 사진과 교수도 겸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겐 무엇을 가르치나?

    “생각하는 법,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법, 자기를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법도. 사진이라는 게 세상을 찍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거다. 시나 영화를 읽고 떠오른 이미지를 찍어오라고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나?

    “라이팅의 규칙은 태양은 하나라는 것, 그 태양을 어떻게 보는가는 굉장히 주관적인 거다. 태양을 관찰해서 어떻게 그림자를 만드는가는 자신의 경험이 알려준다.”

    -스스로 찍기를 거절하거나 타인에게 욕을 먹은 사진은?

    “국회의원 포스터를 15분 만에 찍으라고 해서 거절했다. 사진가를 너무 무시한다 싶었다. 죽음을 기록하고 싶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염하는 사진을 찍었는데, 친척들에게 ‘냉정한 년'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다.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나?

    “하루에도 열두 번. 다만 내 장점은 자고 나면 잊어버리고, 매일 아침 더 좋은 상태를 그려본다는 것.”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병헌이 사자 우리로 간 까닭은? 사진가 조선희의 '100bag' 스토리
    -지금까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무남독녀. 중학교 때 부반장이었던 그 친구 집에서 고기가 들어간 간장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고 충격을 받았다.”

    -조선희의 질긴 근성은 엄마로부터의 유전인가?

    “아버지는 14살에 돌아가셨다. 난 오남매 중 셋째였기 때문에, 늘 결핍 상태였다. 그래서 더 독립적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딸의 인생에 어떤 역할을 했나?

    “꿈을 심어 주셨다. 아빠는 나한테 “너는 박순천 같은 사람이 돼라." 그러셨다. 당시의 여자 국회의원이었는데, 아빠가 보기엔 여자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새벽에 오남매를 깨워서 낙동강을 달리게도 하셨고, 주말엔 꼭 토요명화를 보여줬다. 식구가 많아서 나는 어릴 적에 할머니 집에서 컸는데, 그게 안쓰러우셨는지 시장통 중국집에서 술 드시다가도 나를 불러 자장면 한 그릇을 꼭 사주셨다. 아주 많이 사랑 받은 느낌이다.”

    -아버지가 지금 사진가 조선희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모르겠다. 그냥 같이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어른이라고 생각될 때는?

    “없다. 먼저 경험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후배들한테도 “어른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네 것을 하라"고 한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병헌이 사자 우리로 간 까닭은? 사진가 조선희의 '100bag' 스토리
    -아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느 날 10살 된 아들이 나를 빤히 보더니 “엄마는 왜 노말(normal)하지 않아요?” 그러더라. “엄마가 친구들 엄마랑 다른 게 부끄럽니?” 했더니, 부끄럽진 않은 데, 신경 쓰일 때가 있대. 그러고 얼마 후 자기도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내가 아이한테 맞춰 살아갈 수는 없다. 각자의 개성대로 사는 거니까.”

    -미래에도 사진가로 계속 먹고살 수 있겠나?

    “당연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할 수 없는 직업 30가지 중에 2위가 사진가다. 1위가 화가와 조각가 2위 사진가, 영화감독은 11위쯤이었다. 말하지 않았나.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다.”

    -축복받은 사진가라고 생각하나?

    “결과적으로 볼 때는.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게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서 달라진 점은?

    “원래 욕심쟁이였는데, 조금 더 괜찮은 욕심쟁이가 된 정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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