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사과의 기술' 저자 바티스텔라 교수 "‘유감’과 ‘통감’은 사과가 아니다"

조선비즈
  • 배정원 기자
    입력 2016.08.11 15:05 | 수정 2016.08.11 15:06

    사과는 피해자의 마음을 돌리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의 기술’

    에드윈 L. 바티스텔라 교수/사진=서던오리건대
    할리우드 배우 멜 깁슨은 2006년 7월 과속과 음주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과정에서 경찰을 향해 유대인이냐고 묻는 등 반유대주의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튿날 멜 깁슨의 홍보담당자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수치심’ ‘사죄’ 등의 용어를 동원하며 사뭇 진지한 자세로 일관했지만, 유대인 차별 반대 단체에서는 사과 수용을 즉각 거부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빚어졌다.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했던 정부 관료가 국회에서 울먹이며 사과했지만, 여론은 더 악화됐다. 대체 그들의 사과는 뭐가 잘못된 걸까.

    이 책은 정치인과 기업인,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사과 사례를 분석해 진실한 사과와 그렇지 못한 사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어 사과의 바탕에 깔린 원칙을 분석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이 소개하는 사례 속 인물들의 스펙트럼은 꽤 넓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조지 부시, 클린턴, 오바마 등 미국 대통령에서부터 오프라 윈프리 같은 유명인들과 독일 등 정부 차원의 사과 사례까지 포함하고 있다.
    서던 오리건대 바티스텔라 교수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에 따르면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의 첫 단계에서 실패했다.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사과의 표현 앞에 ‘잘못을 축소하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멜 깁슨은 “음주로 인한 통제 불능 상태” 탓으로 원인을 돌렸고, 전 교육부 관료는 “영화 대사를 인용했다”며 변명으로 일관해 화를 키웠다. 제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이를 ‘적시의 단계’라 부르는데, 이 요소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도 사과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개 사과의 기술’의 저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 미국 서던오리건대 인문학부 교수는 언어학자다. 언어학에 사회학, 심리학, 문화적 배경 등을 종합해 '사과(謝過`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론'을 펼친다. 그는 “사과도 기술”이라고 말한다. 사과는 단순한 기교 수준을 뛰어넘는 예술에 가까운 기술이란 것. 어떤 공개 사과는 사과한 사람이나 기관의 이미지를 끌어올려 주는 전화위복 효과를 내지만, 어떤 공개 사과는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불쏘시개 구실을 한다.

    -어떻게 사과라는 주제를 연구하게 됐나요?

    “저는 늘 사회적으로 언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과하고, 협상하고, 약속하고, 위협하는 등 언어가 사람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죠. 몇 년 전 한 정치인이 TV에서 부적절한 사과를 하면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누군가는 언어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 사과에 대해 연구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 공인이 ‘민중은 개, 돼지다’라고 말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눈물로 사과했지만, 대중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마도 사과가 진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어떤 표정을 짓는 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장을 얘기했느냐 입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과로 화를 돋우는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책임회피, 거짓말, 핑계, 부인 등 여러 행동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수려한 미사여구 후에 늘 의미심장하게 덧붙이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 유감입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유감이란 말은 결코 좋은 사과가 아닙니다. 언어학적으로 유감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바꿀 능력은 결여된 채 단지 상황을 알려주는 데 그칩니다. 다시 말해 상황을 유감스러워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강조하는 유감은 기업 혹은 정치권 입장에서 볼 때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진실한 사과는 아닙니다. 피해자가 겪었을 아픔에 공감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배우 멜 깁슨은 과거 반유대주의 정서를 드러내 논란이 일었다. 이후 그는 대중 사이에서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져 있다./사진=블룸버그
    -그렇다면 좋은 사과는 어떤 건가요?

    “좋은 사과는 과정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히고, 그 잘못에 대해 미안함을 전달하고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지 전달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수용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며, 피해자와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가치있는 사람’이 되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가해자의 상황만을 강조하는 ‘유감’이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 사과가 아닙니다.”

    바티스텔라 교수가 제안하는 완전한 형태의 사과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갖춰야 한다. 첫째 사과하는 이의 미안한 감정을 전달하고, 둘째 특정한 규칙 위반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비판을 수용하며, 셋째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넷째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하며, 다섯째 일정한 보상 혹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요소에 비춰 보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국민을 분노하게 한 사건들의 사과 행위가 왜 문제를 더욱 불거지게 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좋은 사과의 예를 든다면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932년 미국 보건부는 미국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들에게 매독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치료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가 40년 동안 지속되는 동안 100여명이 매독으로 죽었습니다.

    1997년 클린턴 행정부는 생존자들과 그 가족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1500단어에 이르는 사과문을 통해 정부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질렀고, 정부의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국가가 ‘이상을 구현하는 데 실패’했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신뢰를 저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단순해서 연구에 희생된 남성들이 ‘연구에 이용됐고’ ‘배신당했으며’ ‘정부에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한 사과문으로 국가 위기를 기회로 돌렸다./사진=블룸버그
    아울러 클린턴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사과의 성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과는 첫 단계’고, 신뢰를 회복하고 사안을 개선하겠다는 결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늘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밖에 없습니다. 오직 생존자들에게 용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클린턴 대통령은 추가적인 보완책을 발표합니다. 피해자의 치료를 위해 기금을 지원하고, 소수민족 학생들을 위한 생명 윤리 장학금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가장 완결된 형태의 사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올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국민이 대기업과 정부에 모두 실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제가 한국의 뉴스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경우 본인 임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지만 직접 나서서 사과를 했고,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바꿨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에 국민이 이용당하고 속았기’ 때문이죠.

    사과를 하게 되면 잘못을 인정하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사과를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일하는 대기업과 정부는 그 신뢰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사과의 절차를 밟았는데도, 용서 받지 못하면 실패한 사과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과에 대한 응답은 피해자의 영역입니다. 사과는 수용되거나 거부될 수 있지만, 유일한 선택 사항은 아니죠. 사과가 어떤 식으로든 불충분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더 많은 협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불충분한 사과는 새로운 빌미를 만들거나 또다시 사과 요구로 회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과는 ‘과정’입니다. 사과요구, 사과, 응답의 세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마지막 단계인 '응답'은 피해자의 영역입니다. 결국 완전한 사과는 피해자의 용서까지 포함되고, 그걸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한국인은 유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사과에 대한 접근도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조언을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점은 만국 공통일 것입니다. 사태를 모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지요. 그러기 위해선 언어 선택, 즉 단어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한국에서 ‘개, 돼지’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는 정치인의 경우는 이미 ‘사과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계속해서 ‘미안하다’고만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진정으로 용서 받고 싶다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걸리겠지만, 몇 년 동안 개선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조금이나마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제목에서는 ‘사과는 기술’이라고 했는데, 결국은 진심이란 거군요?

    “그렇지요. 기술이라는 제목은 진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데, 지금 당장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사과하는 것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대중은 개, 돼지처럼 아둔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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