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부회장을 지내고 은퇴한 장호영(가명) 씨는 최근 지하철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 주변의 300억원대 빌딩을 알아보고 있다. 장씨는 이 정도 건물을 사면 임대료로 매달 1억2000만원 정도의 월세를 얻을 수 있고, 앞으로 건물 가치도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남역 주변 빌딩은 역세권 상권이 발달해 유동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공실이 적고, 신분당선 연장선 개통과 같은 호재도 많아 장씨 같은 자산가들이 관심을 보인다.

# 정보기술(IT)업체를 운영하며 350억원 이상의 현금 자산을 보유한 김명진(55∙가명) 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빌딩을 330억원에 사들이고 더 이상의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100억원대의 중소형 빌딩을 추가로 매입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에 섣불리 투자하기보다 안정적으로 임대수익을 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금융시장이 당분간 출렁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빌딩이나 아파트 등 부동산 투자 비중을 높이려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특히 자산가들 사이에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 저금리에 브렉시트까지…“투자는 안전이 최고”

5일 시중은행 PB(프라이빗뱅커)들에 따르면 브렉시트 결정 이후 자산가들의 투자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실물 자산, 특히 부동산으로 투자 노선을 선회해야 할지를 확인하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

또, 올해 하반기로 예상됐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물 건너가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저축을 통한 이자 수익은 더욱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고 반대로 투자를 위한 대출 여건이 더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자산가들의 부동산 투자 패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영동대로 이면도로에 들어선 중소형 빌딩.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상당수 자산가들이 금융자산의 투자 비중을 줄이고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비중을 늘리려고 한다”면서 “이전까지 부동산 구입을 망설였던 자산가들도 브렉시트를 계기로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도 “최근 빌딩 시장이 워낙 활황이라 건물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자산가들이 많아졌다”며 “적게는 30억~40억원부터 시작해서 100억원이 넘는 빌딩에도 투자하는 자산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 500억 이하 중소형 빌딩 인기

KB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중소형빌딩 시장 거래동향 및 리스크 요인 점검’ 보고서를 보면, 작년에 서울 시내에서 거래된 500억원 미만 중소형빌딩 건수는 1036건으로, 2013년 522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거래 금액도 2013년 2조7100억원에서 2015년 5조5300억원으로 역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시중은행 PB들은 자산가들이 500억원 이하의 중소형 빌딩에 관심을 가진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최근 들어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팀장은 “중소형 빌딩을 찾는 수요는 많은 반면, 저금리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괜찮은 매물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강남역 주변 중소형 빌딩을 꼽는다. 시중은행 PB들은 “강남역 주변 빌딩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는 자산가들이 많다”며 “특히 다른 지역보다 임차 수요가 많아 자산가들이 안정적인 빌딩 임대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임대 수요가 많아 임대료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김능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강남역 주변 빌딩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자산가들은 여전히 강남역 일대를 선호한다”며 “빌딩 가격이 다 같이 오름세라고 해도 강남역 일대 빌딩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자산가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 부근 중소형 빌딩도 자산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1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60대 사업가 박정진(가명) 씨는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에 보유하고 있던 280억원짜리 빌딩을 매물로 내놓고, 최근 삼성동 포스코사거리에 있는 중소형 빌딩을 430억원에 사들였다.

삼성역 사거리 일대.

삼성역 일대 빌딩이 인기가 많은 것은 이 일대를 둘러싼 개발 호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삼성역 주변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지하 6층~지상 105층 규모의 그룹 통합 사옥인 현대차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건립에 나섰고, 서울시도 삼성동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MICE)로 개발하기로 하는 등 개발 호재가 많다.

안명숙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장은 “작년에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있는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3030.63㎡짜리 뉴욕제과 빌딩이 3.3㎡당 5억1700만원, 총 1050억원에 팔렸는데, 일부 자산가들은 이를 두고 강남역 인근 중소형 빌딩이 더 이상 (가격이) 오르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며 “상당수 자산가들이 앞으로 개발 가능성이 높은 삼성동 일대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특히, 포스코사거리에서 탄천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는 중소형 건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