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지금은 법의 지도를 읽어야 할 때... 법학자 최승필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7.30 07:00 | 수정 : 2016.08.28 11:00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때론 1급 정의보다 2급 정의가 절실
    변호사는 이제 직업 아닌 자격, 서초동 중심 작은 소송 시장 벗어나야
    법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 따뜻한 눈 가져야

    한국외국어 대학교 법학대학원 최승필 교수. 최근 ‘세상의 질서를 찾아가는 합의의 발견'이라는 부제로 ‘법의 지도'라는 책을 펴냈다./ 사진=이태경 기자
    한국외국어 대학교 법학대학원 최승필 교수. 최근 ‘세상의 질서를 찾아가는 합의의 발견'이라는 부제로 ‘법의 지도'라는 책을 펴냈다./ 사진=이태경 기자
    1933년 외설로 기소된 제임스 조이스 소설의 ‘율리시스'를 해금 조치한 미국지방법원 남부지청 판사 존 M. 울지의 판결문은 아름답다. 판사의 판결문이 이토록 사려 깊고 문학적으로 깊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울지의 판결문을 읽고 처음 알았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의 옳고 그름을 언어로 다루는 일. 명확성을 목표로 한 심오한 논증이 판관의 골수를 쪼개고 나오면, 비록 100% 동의하진 않더라도, 결과에 승복하도록 만드는 힘이 거기에 있다.

    잠시 울지 판사의 판결문을 감상해보자.

    “(중략)책이 호색적이라면, 그것은 사실 심리의 끝이요, 압류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율리시스'에 있어서, 그의 비상한 솔직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능주의자의 추파를 어디에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런고로 본인은 그것이 호색적이 아님을 주장한다…(중략)

    그의 인물들의 마음속에 섹스라는 주제가 거듭 출현하는 것에 대해서, 그의 현장은 켈트적이요 그의 계절은 봄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조이스가 사용하는 이런 기법을 우리가 즐기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각자의 취미의 문제로서 그에 대한 불찬성 또는 논쟁은 무용한 것이요, 그러나 본인에게는 그러한 기법을 어떤 다른 기법의 표준에 맞추는 것은 거의 불합리에 가까운 듯 보인다.(중략)

    오랜 반성 끝에, 나의 신중한 의견은 ‘율리시스'의 효과가 많은 곳에서 의심할 바 없이 약간 메스껍다 할지라도, 어디에도 그것이 최음제가 될만한 경향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율리시스'는 합중국 내에 허용될 수 있다.”

    판결문 전문에는 울지 판사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평균적인 성의식을 지닌 일반 독자들과의 임상 상담을 비롯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다. 다소 장황하지만, ‘법 집행자'가 ‘법 조문'의 안과 바깥을 두루 살핀 통찰의 넓이와 고뇌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다.

    ’법의 지도'에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추천사를 썼다. 책은 다국적 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 외국의 포르노 사이트 차단, 조세 회피처를 활용하는 기업에 대한 대응, 유전자 변형 물질의 국가 간 이동 등 전방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법의 지도'에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추천사를 썼다. 책은 다국적 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 외국의 포르노 사이트 차단, 조세 회피처를 활용하는 기업에 대한 대응, 유전자 변형 물질의 국가 간 이동 등 전방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계통은 다르지만, 법에 관해서, 울지 판사만큼이나 폭넓은 지적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최승필이 쓴 ‘법의 지도'다. 그러나 이 책은 표지에 굵은 먹으로 돋을새김한 ‘법의 지도'라는 야심 찬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존의 룰'을 위반하고 집행되어왔던 수많은 한국 사회 ‘어둠의 룰'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체의 정비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터를 넓게 잡고 법이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성장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지를 ‘율사의 눈’으로 침착하게 보여준다. 로마에서 시작해서 빅데이터로 끝을 맺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매우 거대하고 광범위한 이 지도는 그리하여, 사실 구체적인 로드맵이 아니라 이 책의 영문 제목처럼 거시적인 ‘법의 지형도(The Geography of Law)’에 가깝다.

    그리하여 우리는 ‘돈을 갚을 때는 곰이 습지에 나타날 때'라는 소박한 규칙을 정했던 이동 민족 게르만의 점유권 발달사부터, 범죄를 저지른 자를 변방으로 추방하며 ‘평화상실'로 벌했던 ‘울프'제도, 국경 이동 중 울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서 ‘여권'의 시작 등 법과 함께 해온 인류 문화사를 탐사하는 지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범죄 영화에서 수갑을 던지기 직전 경찰이 읊어대던 ‘진술을 거부하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의 미란다가, 결국은 술집에서 제 이름 자랑하며 거들먹거리다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일화(그 범인에게도 미란다 원칙이 고지되었다)에 쯧쯧 혀를 차기도 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범칙금을 물리는 핀란드에서는 한 사업가가 단지 27km/h 과속했다는 이유로 1억 37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는 국가별 벌칙 사례를 읽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법에 대한 거의 최초의 인문학적 개론서 ’법의 지도'.
    법에 대한 거의 최초의 인문학적 개론서 ’법의 지도'.
    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 사회에서 숨 쉬고 밥 먹고 잠자고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지금도 우리는 보이지 않게 사방에 처진 법의 그물망을 통과하고 있다. 법은 합의이며, 합의는 서로 간에 이익 일부를 양보한 분쟁이 없는 상태라지만, 우리가 느끼는 법은 오류도 많을뿐더러 정의롭지도 않고, 게으르면서 고압적이고 논쟁적이다.

    ‘해도 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의 수만 가지 헤아림과 관용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일렬로 늘어서 육박하는 드라이한 성문법의 세상.

    그러나 없어지면 큰일 날 것 같은 간통죄도 사라지고, 환자의 고통 앞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했던 딜레마도 이제는 의사와 가족의 손에 맡겨져 있다. “우리가 남이가?” 접대와 청탁의 딜이 룰보다 앞섰던 지난 시대의 관행이 사소하고도 엄중한 ‘김영란법'의 실효 앞에서 어떻게 교정될 지도 관심사다.

    법학자 최승필은 법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고, 살아 있음은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조차 “악법도 법이다"라고 선언했거늘, 법을 다루면서도 책의 행간에 어떤 정치적 입장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주장하는 바는 단 한 가지.

    “제대로 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민이 법을 이해해야 한다… 좋은 법이든 좋지 않은 법이든 우리는 늘 함께했으며 더 나은 법들과 더 좋은 날들을 기대해 왔다… 그리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위대한 시민들이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공기 중에 스며들던 7월 어느 날,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범상한 용모의 사내가 홍대 카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법조 현장에 있었다면 판사나 검사보다 인권 변호사가 어울릴 것 같은 바르고 온순한 인상이었다.

    최승필 교수는 경제학과 법학, 역사학을 두루 공부했다. 한국은행에서 오래 일한 실무 경험도 소중하다. 숫자와 법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눈을 얻었다고./사진=이태경 기자
    최승필 교수는 경제학과 법학, 역사학을 두루 공부했다. 한국은행에서 오래 일한 실무 경험도 소중하다. 숫자와 법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눈을 얻었다고./사진=이태경 기자
    -승필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주셨습니까?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름입니다. 이길 승(勝)에 도울 필(弼)을 씁니다. 이기는 자가 아니라, 옆에서 이기는 걸 돕는 자인데, 결국 저는 앞서가는 리더이기보다는 참모가 어울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전방에서 법을 집행하는 전사가 아니라 후방에서 연구하는 법학자로 사신 것도 이름의 영향일까요? 같은 맥락으로 ‘법의 지도'를 보면 정의라는 ‘칼과 거울’을 목전에 훅하고 들이밀기보다, 칼에 녹이 슬진 않았는지, 거울에 때가 끼진 않았는지 사방에서 두루 살피는 여유가 보여 좋았습니다.

    “제가 호기심이 많습니다. 저는 법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경제를 공부하고 한국은행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정의에 대해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다 보니, 결국은 가장 시급한 것이 경제 정의더군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다양한 정의가 설 자리가 생길 수 있겠더라고요.

    청년 시절부터 법의 질서 체계, 동서양 제국의 흥망성쇠, 자본주의 경제... 3가지 분야에 두루 호기심을 느끼다 보니, 다소 전방위적인 법 개론이 나왔습니다(웃음).”

    -법대생이다가 졸업 후 진로를 바꿔 한국은행 외채 담당관으로 10년 넘게 일했고, 독일 바이에른의 율리우스-막시밀리안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진로를 다시 바꿔 경제 공법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실제로 법과 경제를 오가면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한국은행에서는 IMF 때 기업 분석 업무를 했어요. 기업 하나라도 더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게, 기업에 전화하면 여직원이 “사장님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울먹여서 무척 가슴이 아팠어요.

    새벽에 퇴근해서 집이 있는 남산까지 걸어갈 때면, 서울역 앞에 200여 명의 노숙자들이 구호 급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어요. 그때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경제를 하루빨리 회복돼서, 가급적 노숙자로 나오는 분들이 적어졌으면 좋겠다고.

    제가 공법을 하게 된 이유도 그래요. 민법이나 상법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쪽은 관심이 없었어요. 행정법 등 국가 관련된 법을 하게 된 이유도 공공의 이익에 대한 헌신에 가치를 두고 있어서죠.”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겪은 특별한 경험이 있습니까?

    “독일 대학의 경제학과에 들어가면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법학, 공법과 사법 수업을 이수하게 시킵니다. 경제 이윤을 추구한다해도 법이 정한 정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선생이 정의하는 법이란 무엇입니까?

    “법이란 사물의 이치와 시민의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복잡하게 분화되기 이전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맞았습니다. 도덕이라는 것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사물의 이치죠.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기술적인 법들이 주류를 차지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중요해졌어요. 사람 사이의 그 기준을 합의한 게 법이죠.”

    -법은 합의가 맞습니다만, 우리는 여전히 정의에 천착합니다. 선생이 생각하는 법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정의를 정의할 수 없더군요.

    “울피아누스라는 로마의 법학자가 말했습니다.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돌리는 항구적인 의지가 정의’라고 요. 자기가 얻은 것을 자기가 가지면 되는데, 그 이상을 가지려고 해서 분쟁이 발생하죠.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 교수와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신 책이 무척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렸다”고 말해줬더니 신기해하더군요. 그만큼 정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욕구는 큰 데, 정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 법의 역사에서 지금도 존경받는 홈즈 대법관과 핸드 판사가 어느 토요일 해 질 녘 나눴다는 인사는 유명하다. “안녕히 가세요. 대법관님! 정의를 실천하세요.”라는 핸드 판사의 인사에 대법관이 뒤돌아보면서 “그것은 내 일이 아니네. 내 일은 법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네.”라고 말했다고. 그만큼 정의를 실현한다는 말은 조심스럽다. 현실에서도 법정에서도.

    변호사는 자격이지 직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최승필 교수./사진=이태경 기자
    변호사는 자격이지 직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최승필 교수./사진=이태경 기자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판결문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옹호한 울지 판사의 판결문을 꼽습니다. 법관들에게 판결문은 정의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소양을 담을 기회이기도 할 텐데요. 개인적으로 좋은 판결문의 예가 있습니까?

    “좋은 판결문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결문은 사건의 당사자에 대한 선언이지만, 앞으로 그런 행동을 할 개연성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선언이기도 해요. 그래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합리적 사고에 부합해야 하고, 사람들이 준수할 수 있도록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죠.

    마지막으로 쉬운 말로 쓰여야 합니다. 울지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측면까지도 세세하게 살폈다는 것과 그것을 가슴으로 공감하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는 거죠.

    울지 판사의 판결문에는 그가 판결을 내릴 때 율리시스를 다룬 관련된 문헌을 모두 읽고 외설성을 판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순히 작품을 판사가 가지고 있는 외설성의 기준에 대입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는 매우 섬세하고 사려 깊게 판단을 해나갑니다. 알비삭스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판결문의 내용은 발견의 논리, 정당화의 논리, 설득의 논리를 거쳐 마음을 울리는 마무리로 끝나야 한다.’고요.”

    -정의에도 급수를 나눠 1급 정의와 2급 정의가 있다고 한 부분도 흥미롭더군요.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기에', 효용이 사라진 정의보다 차라리 효율적으로 불안정을 마무리하는 중재와 합의를 선택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읽었습니다.

    “소송에서 판사가 솔로몬처럼 단번에 멋진 판결을 내리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지루하고 긴 공방이 이어집니다. 재판을 통해 얻은 것은 ‘1급의 정의', 재판 도중 합의한 경우를 포함해 중재를 통해 얻은 것을 ‘2급 정의'라고 하는데, 승소하고 나도 별로 얻는 것이 없다면 차라리 2급의 정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거죠.

    더불어 오늘날 많은 사건은 어느 한 편이 정의롭고 다른 한편은 부정의한 경우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있어요. 내 정당한 권리가 타인의 정당한 권리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겠죠. 가령 정보공개청구와 경영상의 비밀이 충돌될 때도 있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지만 국가적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는 상황도 있고요.”

    -최근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씨 연애가 보도되면서, 사라진 간통죄보다 대중들의 여론 재판이 더한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유독 많아요. 좁은 국토에서 살다 보니 타인과의 접촉이 많고 타인과의 비교와 평가도 많이 하죠. 그래서 여론 재판도 많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여론은 논리보다는 감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 판단은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공공이 이익과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자신의 삶은 스스로 결정하도록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의 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의로운 판관이 되고자 하는 강박이 있지요.

    “정의의 강박은 특별히 경계해야 해요. OJ 심슨 사건도 대부분의 사람이 OJ 심슨이 범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OJ 심슨이 범인일 개연성이 매우 높지만, 당시에 재판했던 이토 판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 세계 사람들이 심슨의 손에 선혈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법은 이를 이유로 곧 그가 살인범이라고 판결할 수 없습니다.”

    정의의 강박에는 언론도 일조하고 있어요. 비슷해 보이는 사건에 형량이 다르면 ‘고무줄 판결'이라고 하는데, 사건을 들여다보면 법적 지위, 처해 있는 상황과 피해자와 가해자가 했던 행위 등이 다 다르거든요.”

    ’법의 지도'는 최승필 교수가 대륙법과 영미법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서 연구하는 동안 쓰여졌다./사진=이태경 기자
    ’법의 지도'는 최승필 교수가 대륙법과 영미법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서 연구하는 동안 쓰여졌다./사진=이태경 기자
    -법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추정'의 원리로 설명하더군요. 그런 사려 깊음의 원리가 현실에서 적용되어도 좋을 듯합니다. 갈등 상황이 벌어질 때, ‘단정'이 아니라 ‘추정'에 입각해서 반론의 여지를 남겨둔다든가… 법정 원리에서 일반인들이 도입하면 좋을 지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법에서 추정은 증명되지 않는 사실이에요. 반증하는 순간 그 효력을 상실됩니다. 세상일은 무엇이든 쉽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나름대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고 가정해 보세요. 그리고 반증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상대방과의 마음과 머리의 거리에 여백을 좀 두었으면 합니다.”

    -모든 상황은 단숨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렵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무죄 추정보다 유죄 추정을 선호하고,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분노의 입장'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빨리 집단적 의견 안에 소속되고 싶어서죠. 누군가와 네트워크를 맺고 같은 판단을 내린 상태여야 두려움에서 해방되거든요. 그런 경향은 사회가 변동성이 매우 클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에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인 성장을 하면서 남들과 같아야 안전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거죠. 안타깝게도 나 혼자 있어도 법이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없는 거예요.”

    -6·25 때 인민 여론 재판이라던가, 대표적인 사법 살인으로 알려진 ‘인혁당 사건' 같은 과거 어두운 기억이 잠재되어 법이 나를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의식이 뿌리 깊은 듯합니다.

    “우리나라 사법 신뢰 지수가 낮은 이유에는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법이 끝까지 국민을 보호한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을 지켜서 언젠가는 정의의 판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식민 시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그런 믿음이 깨져버렸죠.”

    -법학자로서 법조문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참 어렵다(웃음). 그리고 간결한 문장에 많은 의미를 넣으려고 고생했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타인의 권익을 침해한 자에 대한 제재,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규정들에서는 정의가 느껴지죠. 하지만 꼭 정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법들도 많습니다(웃음).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문구는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예요. 시민의 역할을 선언한 것이죠. 물론 현재에는 권력이 시민을 향하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고, 시민 자신도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죠.”

     호기심 가득한 법학자의 다음 책은 ‘세상의 모든 균형'이다./사진=이태경 기자
    호기심 가득한 법학자의 다음 책은 ‘세상의 모든 균형'이다./사진=이태경 기자
    -영화 ‘변호인'에도 나왔지만,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허공의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이상주의적이죠. 그런데 이상을 두는 것은, 추구하라고 두는 것이지요.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다.”

    -방향성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최근 법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김영란법’입니다. 실물 경기를 위축시킨다는 등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까?

    “어느 날 갑자기 법이 시행되었다고 그간의 삶의 패턴이 곧바로 따라오기는 어려워요. 당분간은 일선 현장에서 혼란이 생기겠지요. 법 위반 행위에 대한 판결 역시 양형의 탄력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뭐가 중요한가를 먼저 봐야지요. 김영란법 시행은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으로 있어온 부패 고리를 끊겠다는 중요한 합의이고 결정이에요. 시스템에 한 획을 긋는 거죠.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있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룰보다는 딜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해 온 우리의 구태적 사고 체계를 바꾸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가 투명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죠. 하지만 금액으로 보면 3만 원은 적지 않나 싶어요. 물가가 그만큼 올랐으니 조정이 필요하겠지요.”

    -법에 가까이 가면서 느끼는 건, 법이 지속해서 개인에게 ‘권리 의식'을 상기시킨다는 점입니다. 범법자에게도 ‘미란다 원칙’을 알린다는 게 한편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미란다가 술집에서 자신이 미란다임을 자랑하다가 죽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미란다 원칙은 경찰이 유아 성추행 범죄자였던 미란다를 체포하면서 ‘진술 거부와 변호인 선임 권리'를 현장에서 알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미란다의 자백도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던 사건이 계기가 돼서 자리 잡았어요. 그 이후 체포 전에는 반드시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는 게 중요해졌지요.

    출소 후 미란다는 술집에서 미란다 원칙이 적힌 카드를 팔고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술집에서 싸움이 났고 칼에 찔렸어요. 범인을 체포한 경찰관은 10여 년 전 미란다를 체포했던 그 경찰관이었고, 그 자리에서 ‘미란다 원칙'을 알렸죠.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카드게임에서 속임수를 썼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미란다가 자기 유명세를 과시하다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법이 처벌 만큼이나 구제에 공을 들인다는 건데요, 그런데도 우리가 법 문화를 후진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나라 법리 문화가 후진적이지는 않습니다. 시스템도 나쁘지 않지요. 문제는 시스템에 속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을 잘 활용을 못 하는 것이지요.”

    -플레이어들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합니까?

    “정부, 법원, 경찰, 국민이 되겠지요.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아직 하드웨어를 못 따라가는 거죠. 도로교통법을 잘 만들어도 출퇴근 시간에 여전히 끼어드는 차가 많고, 투명한 수사 절차를 강조해도 비리와 청탁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는 전자 정부와 전자 소송을 많이 활용해볼 것을 권한다. 벌금이 부과되거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권리 구제 신청을 해보는 것도 시민이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이다./사진=이태경 기자
    그는 전자 정부와 전자 소송을 많이 활용해볼 것을 권한다. 벌금이 부과되거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권리 구제 신청을 해보는 것도 시민이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이다./사진=이태경 기자
    -법조문이 의학 용어처럼 어려운 것도 문제지요. 플레이어들이 합의 하에 배타적 전문성을 유지하는 건 아닌지요? 마틴 루터가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내면서 신과 인간이 가까워졌듯이, 어떤 식으로든 법전 ‘번역 작업’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예를 들어서 법학자들은 ‘돈을 갚는다’는 말보다 ‘채무를 변제한다’는 말이 더 익숙해요. 더 편리한 거죠. 그래서 문제의식을 못 느껴요. 의사도 수술실에서, ‘씻어줘'라는 말 대신, ‘이리게이션'이나 ‘석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법률 용어를 쉽게 바꾸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로마의 유스티니아스 황제도 법전을 쓰면서 일부러 그리스어로 썼어요. 멋진 라틴어로 안 쓰고요. 과거에도 그런 현자들이 있었죠. 우리도 법률 용어를 한글화시키는 작업을 해야죠. 판결문도 점점 쉽게 써야 합니다. 피고든 원고든 소위 법률 서비스의 소비자 입장에서 써야죠.”

    -법률 소비자라는 용어가 생소하군요. 요즘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해 피해자들이 직접 환자들의 통계 자료를 찾아 소송을 제기합니다만.

    “소수가 활동하는 법률 시장에서 굳이 좋은 서비스를 해야 할 동기를 못 느끼기 때문이죠. 독일 유학 시절에 깜짝 놀랐던 게, 보험 회사에 법률 보험이 있어요. 한 달에 보험료 50유로를 내면, 자동차 사고에 보험 회사 직원이 오듯 변호사가 경찰서에 옵니다. 기초 단계부터 서비스를 받는 거죠.

    주치의 같은 변호사가 항시 존재해서, 자기의 권리에 맞는 최상의 주장을 할 수 있는 거죠. 보험료 금액별로 수사 단계만 도와주기도 하고, 소송 수행까지 같이 해주기도 해요.”

    -법률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네요.

    “소방서에도 변호사가 있어야 하고, NGO에도 변호사가 있어야 하고, 환경 단체에도 변호사가 있어야 하죠. 병원, 언론사에도 있어야 하고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지금은 법의 지도를 읽어야 할 때... 법학자 최승필
    -상주 변호사 시스템인가요?

    “변호사를 만나러 서초동에 찾아가는 패턴은 바뀌어야 해요. 변호사는 일종의 자격이지 직업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죠.

    “변호 행위를 직업 활동으로 할 수도 있지만, 변호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경찰관, 소방공무원, 금융회사 직원, 시민 단체 회원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어요. “서초동에서 벗어나라”고. 통상에 관심이 있으면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코트라에서 일할 수도 있지요.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군인으로 국방부에서 무기 도입 계약이나 군법무관으로 일할 수도 있고요. 더 많은 변호사가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러라고 로스쿨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소비자 입장에선 반갑지만, 서초동 법률 공동체나 예비 변호사 집단에서는 불편한 발언일 수 있습니다.

    “법률 서비스가 사회의 말단까지 충분히 공급된 상태라면 변호사 공급 과잉이 문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변호사가 많다고 느끼는 건 법률 시장을 서초동 중심의 작은 소송 시장으로 한정해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전관예우 법조 문화는 왜 개선되지 않습니까?

    “법조인들 내부에서 서로 언젠가는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고려가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일단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재량권이 합리적으로 통제되고 있지 않다면, ‘예우'라는 인자한 말을 붙여선 안 되죠. 로스쿨 제도로 법조 인력이 많아지면 서서히 개선되리라 봅니다.”

    -우리 법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뭐라고 보십니까?

    “법은 충격을 받았을 때 급격하게 변해요. 4·19 혁명, 5·16쿠데타, 12·12사태, 6.29 선언 등의 과정에서 법이 많은 변화를 겪어왔죠. 하지만 가장 큰 사건으로는 외환 위기를 꼽고 싶어요. 다른 사건은 정치 관련 이슈지만 IMF 사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죠.

    ‘위기 이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제 논문 주제로 미국 학회에서 발표도 했습니다. 이전 법률 시장에서 변호사들은 국제 문제, 외국인 투자에 관심이 없었어요. 기업 변호사의 영역은 오너들 업무처리였죠.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외국 법률 시장, 외국 변호사들, 소위 영미법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거죠.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에 ‘불투명한 경영 구조 고쳐라, 사외 이사 만들어라, 회계 구조, 세법 바꿔라.’ 등등 요구를 하면서 법이 경제와 만나게 된 겁니다. 외환위기의 핵심은 경제 문제였는데 경제 제도가 다 바꿔야 했죠.”

    -여타 다른 사회적인 법의 변화도 초래했나요?

    “당시에 가장들이 해고되면서 여자들이 대거 일터로 나오게 돼요. 여성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녀 고용 차별에 대한 조항들이 사라지고,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법안도 만들어져요. 육아 관련 법들도 많이 생기고.

    가정, 노동 시장, 기업, 법률 시장, 거기에 금융시장..., 그런데 금융시장 부문에서 또 정부가 외환보유액 충분하다고 했는데 털어보니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정보공개법 시행을 요구하죠. 그때부터 정보 공개 청구율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시민 단체 설립률도 함께 올라갑니다.”

    -부정적인 면은 없었습니까?

    “외국인 투자를 핑계로 해고를 쉽게 만든 노동법이라던가, 우회 인력을 활용하는 파견법 등 부정적인 법 개정도 있었어요. 명암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지금은 법의 지도를 읽어야 할 때... 법학자 최승필
    -요즘엔 어떤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법의 역할입니다. 사물 인터넷, 드론, 자율자동차, GMO 등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잖아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서점에는 이미 3D 프린터를 팔고, 드론에 총을 매달아 사격 연습을 하는 사례도 있었어요. 기술은 시시각각 변해가는데 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죠.

    안정성이 중요 가치이다 보니, 법이 선제보다는 뒤에서 논평하는 역할이 많습니다. 법 집행이 리뷰라면, 법의 형성은 선제적이어야 해요. 드론은 고도와 속도, 무게를 제한하고, 3D 프린터는 위험 물질을 생산을 금하는 방향으로 나가겠지요. 명확한 위험을 피하는 수준에서 4차 산업 전문가들이 의회로 들어가서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법령의 시작은 언제나 규제로군요.

    “규제라는 것이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규제라는 것은 시장의 질서라는 외형적 틀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뭘 해도 된다'를 모두 열거할 수 없으니, 안되는 것 빼고는 다 된다고 보면 됩니다(웃음).”

    -인터넷 시대에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유럽 사법재판소의 링크 중단 명령도 인상 깊었어요. 여전히 유럽에선 인정해도, 미국 구글에서는 검색 가능한 상태이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느낌입니다. 잊혀질 권리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잊혀질 권리에 대한 주장은 꾸준히 산발적으로 일어날 거예요. 하지만 포털 입장에서는 난감하죠. 권리 주장이 늘어나도 받아들여지는 일은 파격적으로 증가하지 않을 거예요. 결국, 이런 수요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사이트나 앱이 생기겠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스스로 올렸던 글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미국에서는 이미 잊혀질 권리를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생기고 있는데, 자칫 이게 정보의 왜곡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정치인들이 이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어요.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잊히게 하고 유리한 것만 남겨두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법과 뒤얽혀 살아가는 우리가 법을 유용하게 쓰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권리의식이죠. 법에 대해서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법이 그러니까 보다는 잘못된 법은 고치고, 잘못 집행되는 법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법의 최전선에 계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법이 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형식적으로 사건과 사람을 대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그 내면을 함께 보려고 노력해야겠지요. 울지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법조인들이 매번의 사건에서 이러한 가슴 따뜻한 고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