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여년 동안 비즈니스를 해온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인터넷 사업은 대포가 아니라 유도미사일입니다. 타깃을 잡아도 사용자가 계속 바뀌고 환경도 변하며 경쟁자도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표를 잡고 쏘는 대포가 아니라 끝까지 추격하는 미사일이어야 명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보기술(IT) 분야는 고객의 변하는 요구를 끝까지 맞춰가며 서비스할 수 있는 사업자의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하려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건 열정을 가진 사람의 몫입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이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에 데뷔한 15일,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의장이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데이터센터 ‘각(閣)’에 나타났다. 라인 가입자가 10억명을 돌파하면 기자간담회를 하겠다는 약속을 라인 일본 상장 당일날 지킨 것이다.
‘노타이’ 차림이었지만, 정장을 입고 나타난 이 의장은 “원래 이런 이벤트(기자간담회)가 있으면 한달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어젯밤 방송으로 라인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모습을 보는데 울컥하더라”고 심경을 전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는 라인으로 글로벌 진출 기업의 모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2의 라인 후보를 찾겠다. 웍스 모바일, 캠프 모바일, 브이, 웹툰 등이 제2의 라인 후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는 PC와 스마트폰에 집중했다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스피커나 스마트카 등 일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하반기에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공식 석상에 나온 것은 약 2년 만이다. 그는 지난 2014년 6월 25일 제주도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주최 리더스포럼에서 강연을 했다.
“인터넷의 승자 독식 법칙에 대해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네이버가 우리나라 검색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구글은 대부분 국가에서 80~90%까지 점유한 상태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분야는 굳이 2등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곳입니다. 구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네이버가 자국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진 의장이 2년전 리더스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 의장은 평소 “내가 만든 서비스가 1등을 하지 못하는데 잠이 오느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열심히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일을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는 KAIST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이 의장은 “삼성에서는 수십명씩 미국에 가서 인터넷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뒷전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한다. 삼성을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5년간의 준비 끝에 1997년 3월 네이버의 전신인 사내 벤처 ‘네이버 포트’를 만들고 신입사원이었던 권혁일, 김보경, 강석호씨와 본격적으로 웹 검색 개발에 뛰어든다. 이후 오승환, 최재영씨가 합류했다. 이른바 ‘네이버 창업 6인방’이다. 이후 1999년 6월 이 사내 벤처가 네이버 주식회사로 독립하면서 김정호, 김희숙씨가 추가로 합류했다.
최근 라인을 미국과 일본에 동시에 상장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의장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건 기술이 새롭게 나온다고 바뀌지 않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면서 “소통의 요구는 늘 있었으며 이는 라인에서도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10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회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름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 감출 수 없는 비즈니스 근성…한국 대표 인터넷 기업으로
―네이버를 설립한 뒤 2004년 대표이사 직함을 내려놓은 후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은둔(隱遁)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네이버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챙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집요하게 소비자의 요구를 파헤치라고 직원들에게 충고하는 편입니다. 이와 함께 서비스 출시 시기에 관한 조언도 자주 합니다. 핵심은 서비스 출시 시기는 소비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시점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요구에 서비스 출시 시기를 맞추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네이버를 창업한 뒤 17년 동안 20여 차례 굵직한 인수합병(M&A)을 단행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업을 사고파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서 무척 낯선 일이었습니다.
“2000년 7월 이준호 교수(현 NHN엔터테인먼트 이사회 의장)팀이 이끌던 자연어 검색 기술 기업 서치 솔루션의 인수, 한게임과의 인수합병, 2006년 6월 ‘스노우 랭크’ 기술을 앞세운 검색 벤처회사 ‘첫눈’의 인수가 대표적인 인수합병 사례입니다.
이번에 라인을 상장하게 되면서 많은 자금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처음으로 자금에 조금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힘들게 인수합병 등 서비스와 사업을 이끌어 오긴 했지만 이제는 좀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도 최근 여러 기술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분야는 좋은 서비스가 나오면 한순간에 사용자가 좋은 서비스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시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정말 투자 자금이 많아서 많은 곳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여유 자금이기 때문에 몇 개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당장 인수합병을 시도할 만한 타깃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라인 상장으로 자금을 확보하게 되면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최근 네이버 랩스에서 개발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올해 하반기에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구글이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시장이 바로 한국입니다. 네이버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부분에 대해 평소 자부심을 강조해 왔습니다.
“2002년 네이버가 코스닥 등록에 성공하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지식in 서비스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당시만 해도 검색 서비스에서 한국어 데이터와 콘텐츠 양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도록 한 것입니다. 한국의 검색 수요는 미국과 비슷했지만 검색 결과로 보여줄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사용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로 해결했던 시도였습니다. 네이버에 가면 재미도 있다는 인식이 함께 퍼지면서 어느 정도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 여진의 공포 속에 한일 합작으로 탄생한 라인…네이버 ‘내수 기업’ 꼬리표 떼다
―최근 신화를 만든 라인 서비스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인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있었습니다. 글로벌 사업을 위해 2000년 9월 한게임재팬, 2000년 11월 네이버재팬을 설립한 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2004년 한게임재팬은 일본 게임 사이트 중 인기 순위 2위에 오르는 등 실질적으로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의 일본 포털 사업은 기대한 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2006년 6월 ‘첫눈’을 인수하며 일본 검색 시장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신중하게 일본 검색 시장에 도전했지만 한국어로 쌓은 기술력을 통해 일본 시장에 적응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네이버재팬 개발팀에 새로운 제품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해 4월 네이버재팬에 모바일메신저 개발팀이 꾸려졌습니다. 일본 검색 서비스를 담당했던 첫눈 출신들과 일본 개발팀이 주축이었습니다.
도쿄에서 여진의 공포는 계속 됐고 한국인 개발자들의 가족은 고향으로 떠나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고 2013년 6월 23일 ‘라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정말 일본 비즈니스가 힘들었던 마지막 순간에 지진까지 덮쳐 일본에서 사는 것조차 공포스러울 때 끝까지 남아 있었던 친구들이 밤새워 만든 게 라인입니다.”
―한국 인터넷 기업으로 세계 무대에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창업주로서 네이버의 다음 단계나 청사진은 무엇입니까.
“매달 일본을 왕래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던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해외에서는 브랜드 파워가 너무 약하다는 점입니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미국 서비스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는 하드웨어와는 달리 브랜드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인 브랜드가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얻고 일본, 미국에서 상장되면서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겨나고 있는 많은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성과가 있는 도전이 되기 위해서는 한계를 명심해야 합니다.
네이버의 경우 또다른 라인 모델을 찾고 독립적으로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서비스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자체도 서비스나 브랜드로 진화를 하겠지만 네이버 안에 있던 서비스 모델들이 독립해 라인처럼 멋진 자회사로 성장해 나가는 일종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변모해 나갈 것입니다.”
◆ 네이버가 공룡이라면 구글은 고질라…경쟁 아닌 생존의 문제
―‘포켓몬 고’ 열풍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매번 이런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우리나라는 왜 못하냐’에 대한 지적도 많습니다. 혁신이 없다는 내용이 대표적인데요. IT 업계를 대표하는 창업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포켓몬 고 열풍을 보면 굉장히 괴롭습니다. 우리 기업에서 포켓몬 고 같은 서비스가 나왔어야 한다는 반성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 실리콘 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와 가장 강한 회사가 모이는 곳이어서 투자가 혁신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싸이월드나 지식in, 통합검색 등 많은 혁신적인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외에서 나오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굉장한 혁신으로 평가하는 반면, 국내에서 나온 서비스는 혁신의 노력 없이 시장을 지키려는 의도로 폄하하는 것을 보면 서운한 마음도 듭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라인이 성공적으로 상장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국내에서 경쟁자는 어떤 기업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네이버를 시작할 때부터 시장을 선점해서 성장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곳은 야후였습니다. 매우 강력한 브랜드였습니다. 라이코스도 있었습니다. 물론 다음, 네이트 등도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저마다 성장해 갔습니다.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미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기업들이었습니다. 17~18년 동안 인터넷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해왔는데 미국에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나타날 때가 가장 두렵습니다. 인터넷은 국경도 없고 시간 제한도 없어 이용자는 써보고 좋으면 바로 이동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중국은 정부가 시장을 보호하고 중국 기업들을 내부에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서운 존재들입니다. 네이버를 마치 국내 시장에서 공룡처럼 여기는데 구글이나 중국 인터넷 기업들은 고질라로 표현돼야 할 것입니다. 이는 최근 새로운 전략으로 혁신하고 있는 카카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자본과 기술로 밀어붙이고 있는 서비스와의 경쟁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절박함’과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국내 인터넷 분야의 서비스 경쟁력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으며,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터넷 분야에서 핵심 서비스가 카테고리별로 하나씩 해외 서비스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동영상 서비스는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페이스북, 사진 서비스는 인스타그램이 이미 주도권을 가져갔습니다.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 앞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가 큰 고민거리인 것입니다.
국내 사업보다는 이제 자체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해외로 서비스를 진출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스타트업과 함께 혁신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기술력을 확보한 스타트업이 굉장히 좋은 협력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가 갖고 있는 인프라와 자금, 서버, 기술력과 합쳐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연구개발에 이미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앞으로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네이버는 외부 회사의 인력에 투자하고 스타트업과 상생하는 모델을 갖추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진 의장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천재 프로그래머로 불렸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같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 의장 자신도 “나는 열심히 하는 프로그래머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기업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말했다. 이해진 의장과 컴퓨터공학과 동기인 양승현 코난테크놀로지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이 의장은) 합리적이고 온화한 학생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엔지니어 타입은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경영에서 그보다 더 좋은 자질은 갖춘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진 의장은 삼성SDS에 입사하고 뒤늦게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는다. 사내 벤처 아이템을 찾다가 한글 검색엔진 분야가 해 볼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의장은 삼성SDS 재직 시절,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전문가이자 KAIST 지도교수였던 황규영 전산학과 교수에게 전화한다. 황 교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산 검색엔진은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지 못해 속도가 느렸다”며 “이 의장이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DBMS 기술 ‘오디세우스’를 가져다 검색엔진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검색이 구글 검색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를 DB 검색이라고 꼽는 사람이 많다. 네이버 DB 검색의 뿌리는 황규영 교수 연구실이었다. DBMS 기술을 적용하니, 20초 만에 나오던 검색 결과가 2초 만에 나왔다. DBMS를 검색엔진에 적용한 글로벌 첫 사례였다고 황 교수는 평가한다.
1999년 네이버컴을 창업해 삼성SDS에서 독립한 이 의장은 M&A를 통해 엔지니어 네트워크를 넓혀갔다. 2000년 7월 그는 서울대 컴공과 83학번이자 KAIST 전산학과 선배인 이준호 당시 숭실대 교수(현 NHN엔터테인먼트 의장)팀이 운영하는 서치솔루션을 인수, 네이버 식구로 끌어들인다. 당시 이 교수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검색 전문가’였다. 이 교수 합류 후 네이버 검색의 상징과도 같은 ‘통합검색’ 서비스가 나온다. 지난해 9월 네이버가 이준호 의장의 NHN엔터테인먼트 지분 전량을 매각함으로써 두 회사의 관계도 정리됐다.
이해진 의장은 2006년 6월 검색 벤처회사 첫눈을 인수했다. 첫눈은 현재 본엔젤스 대표로 있는 장병규씨가 KAIST 인맥을 동원해 국내 검색 기술진을 모아놓은 회사였다. 당시 첫눈 CTO였던 신중호(현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씨는 KAIST 전산학과 자연어처리 연구실에서 10년 이상 음성 인식 처리를 연구해 온 검색 인재였다. 그는 첫눈 검색 기술을 네이버의 일본 검색 서비스에 반영했다. 현재 신 CGO는 라인의 자회사인 라인플러스 대표를 맡아 라인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