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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름다운 감정주의자 고현정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7.16 07:00 | 수정 : 2016.10.09 13:20

    “잘하는 사람은 많아. 내가 현정이 연기가 좋은 건 참 격이 있게 잘하드라"-배우 김혜자
    “혼자서 빛나는 길 마다하고, 기꺼이 이 힘든 드라마의 짐꾼이 되어준 고현정에게 감사한다"- 작가 노희경

    좀처럼 화장기를 들이지 않는 배우 고현정의 얼굴. 사람도 얼굴도 억지스러운 데 가 전혀 없다./사진=김지호 기자
    좀처럼 화장기를 들이지 않는 배우 고현정의 얼굴. 사람도 얼굴도 억지스러운 데 가 전혀 없다./사진=김지호 기자
    2008년 시끌벅적한 영화 ‘여배우들' 촬영장 한구석에서 고현정은 조심스레 말했다. ‘언젠가는 연령대별 여배우들을 모아 놓고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에너지의 칼이 창창 부딪히는 거죠. 진짜 칼 빼고 했을 때 등수가 나오지 않겠어요? 그런 팽팽한 연기 대결 속에서 기쁨도 참담함도 창피함도 우월감도 다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어떤 게 독이 되고 약이 될지는 또 인생에서 두고 봐야죠.”

    김혜자부터 나문희까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니어 여배우들이 다 모여 화제가 됐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 나는 당시 고현정의 소망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고현정은 8년 전 그 독특한 페이크 다큐 영화 ‘여배우들'에서도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건 우리가 여배우의 삶에서 훔쳐보고 싶은 모든 것들의 총합이라 할만하다. 최지우에게 “그러니까 쫓겨났지?”라는 대사를 하도록 부추기며 시비를 걸고, 신인 남자 배우를 거느리고 샴페인 파티에 등장하는 등, 아낌없이 몸을 던져 자신을 풍자한 결과, 그 영화의 몇몇 장면은 아직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고현정은 6명 여배우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골머리를 앓는 이재용 감독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채 극적인 ‘고현정'의 캐릭터를 제안했고, 샴페인 한 잔을 그러쥐고 최지우와 김민희 등 여러 배우들 사이를 오가며 실감 나게 드라마의 ‘각’을 만들어 냈다. 나는 가히 그것을 고현정식 ‘희생애'라 부르고 싶다. 그 당시 고현정은 이 영화를 하는 이유가 ‘보통의 우리 여자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세상엔 직업의 군상이 많잖아요. 배우도 그 중 하나고. 그런데 거기에 ‘여자’라는 게 붙으면 특별해지고 편견이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여자들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외로워 말라”고. 당신들이 기쁠 때 우리도 기쁘고, 당신들이 슬플 때 우리도 슬프다고.”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고현정은 한 번 더 나이 70에 가까운 이 시대 진정한 ‘여배우들'을 위해 아주 특별한 연결자가 되어주었다. 작가 노희경은 공식 페북 메시지로 “혼자서 빛나는 길 마다하고, 기꺼이 이 힘든 드라마의 짐꾼이 되어준 고현정에게 감사한다"는 땡큐 메시지를 남겼다.

    고현정을 만났다. 몇몇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를 제외하고는 공식 인터뷰를 일절 마다해왔기에, 고현정은 이번 만남을 신의를 바탕으로 한 ‘약속 이행’이라고 했다. 마른 장마가 끝에 잠시 불어오는 시원한 여름 바람 사이로 고현정이 들어섰다.

    클래식한 검은 의상으로 온몸을 휘감은 신성한 다스 베이더 스타일 대신 빈티지 풍의 검정 티셔츠에 견고한 모직 스커트, 8cm는 족히 될 것 같은 웨지힐을 신고 경쾌한 모습으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하면서 고현정은 시니어 배우들에게 티내지 않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사진=김지호 기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하면서 고현정은 시니어 배우들에게 티내지 않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사진=김지호 기자
    그리고 이번 드라마야말로 “한칼 하는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격전장"이었으며 “우연히 동참했지만, 희생이 아니라 참으로 감사한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비하를 곁들인 호통과 재담, 즉석 성대모사, 몸개그, 기차 화통이 울고 갈 정도의 폭소 곁으로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진중한 대사가 한 줄씩 흘러갔다. 몸에 밴 겸손으로 자신은 ‘인터스텔라'에 등장했던 다른 분들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라고 한없이 몸을 낮추며.

    -이렇게 경쾌하게 짧은 치마를 입은 모습은 처음 보네요

    “우리 아이들이(젊은 스태프들을 그렇게 불렀다) 제가 매번 검정 옷으로 가리고 다닌다고, 오늘은 꼭 팔다리를 보여주고 싶다고 지들끼리 작정을 했어요. 오늘 이 인터뷰 있다고 하니까, 어제 오후부터 일 마치고 하나둘 “현정 언니 집으로 모이자"며 우르르… 그래서 다 같이 잤어요(웃음).

    -젊은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친구들이 고현정 씨의 어떤 면이 좋답니까?

    “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면 민망한데, 아하하하, 미치겠다. 제가 제일 예쁘대요(웃음). 다들 핫한 스타 곁에서 꾸며주던 친구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저를 애써 꾸미질 않아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눈썹만 살짝 그려주고, 화장을 안 해줘요. 의상 하는 친구는 화려한 어른 옷 입히지 않아도 돼서 좋대요. 빈티지 풍 티셔츠에 디자이너 스커트 입혀도 초라하지 않다고.”

    -그럼 그 애정 있는 젊은 전문가들은 당신 곁에서 그럼 무슨 일을 하나요?

    “정말 중요한 건데, 저더러 힘을 좀 빼라는 거죠. 자기들이 아는 고현정은 약간 애 같고, 자연스러운데 공식 석상에 나가면 너무 힘을 준대요. 손 좀 흔들어 달라고 하면, 제가 (미스코리아 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하잖아요. 아니면 성화 봉송하듯이 손을 번쩍! 그러니까 사진이 엄하게 나온다며, 달려와서들 저를 교육하고 있어요.”

     스무 살부터 동국대 연극영화과 안민수 교수에게 ‘정통 메소드 연기’를 배운 고현정은 대본이 스케치한 캐릭터의 옷에 현재의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고 맞춰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사진=김지호 기자
    스무 살부터 동국대 연극영화과 안민수 교수에게 ‘정통 메소드 연기’를 배운 고현정은 대본이 스케치한 캐릭터의 옷에 현재의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고 맞춰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사진=김지호 기자
    -요즘 기분은 어떤가요?

    “1에서 10까지 레벨로 표현하자면 3 정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이유는(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모르겠는데 점점 더 어릴 때 성격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사실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오늘도 한 달 열흘 만에 나왔거든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가 고현정에게 심리적인 테라피 효과를 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음, 전 좀 많이 힘들었어요. 보통 극을 하면 실제 제 인생이 아니니까 작정하고 시원하게 연기를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디마프'는 저를 너무나 건드리는 거죠. 제 이야기, 다른 분들 이야기, 거기다 나레이션까지. 너무 위험할 정도로 분리가 안 돼서, 노작가님한테 막 대들기도 했어요.”

    -어떤 장면에서 노희경 작가와 갈등이 있었지요?

    “가령 어릴 때 엄마가 저한테 논두렁에서 약을 먹이잖아요. 그게 회상 장면으로 나온 다음에 엄마한테 따지면서 제가 그러죠. “왜 그랬어? 나한테. 엄마가 낳았으니까 엄마 맘대로 해도 돼?” 대본에는 그러고는 끝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엄마 딸이라서, 내가 엄마 거니까 이걸 먹어야 하는구나” 이건 이미 어른의 시각이거든요. 그때 그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 해내는 아이예요.

    (목소리가 높아지며) 정말로 그래요. 4~6살 때는 자존감이 형성되기 전이라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거예요. 제 어릴 때를 기억해봐도 내가 이거 하면 엄마가 좋아하시겠지 해서 하는 행동이 7~8할은 돼요. 그게 참 중요해요. 그래서 촌스러운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지금 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그걸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노작가님께 강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잘 받아 주셨어요.”

    애초에 고현정은 ‘디마프'의 출연 멤버가 아니었다. 시니어들의 드라마를 관찰하는 16부작의 ‘나레이션'만 부탁받았다가 일이 점점 커졌다. “노희경 선생님이 저랑 대화하시고 나서 “현정 씨가 말하는 게 ‘담담체(고요하고 담백하게 서술하는 어투)'가 있네요.” 하면서 출연 제의를 하셨어요. 그동안은 제가 오버하는 모습만 보셨나 봐요. 그리고 인성이랑 제가 서 있는 걸 보시더니 둘이 좀 더 많이 가야겠다고(웃음)...”

    고현정은 극중 이름이었던 ‘완'이 너무 좋았다며, 보석 목걸이를 손에 쥔 소녀처럼 웃었다. 드라마 ‘디마프'의 ‘완’은 어쩌면 어릴 적 헤어졌다 다시 만난 일란성 쌍둥이 같은, 또 한 명의 고현정이 아니었을까. 드라마에는 그녀의 경험담이 상당 부분 녹아들어가 있다. 고현정 자신의 에피소드뿐 아니라, 다른 어른들의 에피소드에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깊이 화해했는지, 작가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거든요. 제가 출연하게 될 지 모르고 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요.”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아름다운 여배우들. 왼쪽부터 박원숙, 고현정, 고두심, 나문희, 김혜자. 어른 잘 모시기로 유명한 고현정은 어휘도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거나 ‘심심하면 이빨도 뽑는다고'같은 옛 속담들을 일상에서 즐겨 사용한다. /사진=tvN 제공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아름다운 여배우들. 왼쪽부터 박원숙, 고현정, 고두심, 나문희, 김혜자. 어른 잘 모시기로 유명한 고현정은 어휘도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거나 ‘심심하면 이빨도 뽑는다고'같은 옛 속담들을 일상에서 즐겨 사용한다. /사진=tvN 제공
    -부모님들은 드라마를 보고 좋아하시던가요?

    “엄마 오늘 방송된 거 어땠어? 내 얼굴 또 크게 나왔나?” 하면, 그냥 “재밌드라” 그러세요(웃음).”

    부정할 수 없는 건 우리 모두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이 부모 인생의 2막 1장을 산다는 것.

    고현정은 처음 연기할 때 자기 연기의 감정의 원형을 어머니에게서 찾았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선생님 버전, 아이들 버전으로 세밀하게 스토리를 짜서 어머니 앞에서 연기했다던 소녀 고현정.

    중학교 1학년이 되자, 이미 키가 171cm까지 자라면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창경원의 원숭이’가 되기 싫다며 ‘미스코리아'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 세종문화회관 무대 위에 수영복을 입고 섰다. 1989년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었다.

    대부분의 미스코리아들이 쇼MC와 연속극 연기자로 나오다 사라지는 지루한 길을 걸었던 데 비해, 그녀는 스물세 살에 ‘모래 시계’라는 신화적인 드라마에 출연했다. 스무 살부터 동국대 연극영화과 안민수 교수에게 ‘정통 메소드 연기’를 배운 고현정은 대본이 스케치한 캐릭터의 옷에 현재의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고 맞춰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현정은 아름다운 여자는 멍청하다,는 통념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여배우는 재벌가의 여자가 된다,는 통념을 만들어놓게도 됐지만.

    -구구절절 하소연하지 않고 어른들에게 공손한 건 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기질이지요?

    “네. 나이를 한 살 한살 더 먹으면서 점점 더 아버지 어머니 딸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어요. 요즘엔 그런 생각도 해요. 내가 어떤 인간이고 내가 뭘 좋아하는 지, 그걸 들으시든 안 들으시던 부모님께 설명하고 한번 수다 떨면서 넘어가면 좋겠다고. 그 과정이 참 필요해요. 예전엔 엄마가 이 컵 쓰라고 내밀면, “그건 별로잖아. 저거!” 이런 식이었다면, 이젠 부정적인 소리는 빼고 “엄마, 난 저 컵이 진짜 좋다. 내가 오면 저 컵으로 줘! "이렇게 말해요.”

    -개성 강한 어른들이 모인 ‘디마프’ 현장에서 특별히 나랑 결이 맞다, 고 느낀 분들이 있으세요?

    “다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셨어요. 굳이 결이 맞는 분을 꼽으라시면 김혜자 선생님과 나문희 선생님. 그 두 분은 그냥 말 그대로 ‘정상'이세요(웃음).”

    -그 ‘정상'이 최고라는 표현도 되지만, 다른 한 편 앞뒤 복잡하게 재지 않고, 꼼수 쓰지 않고, 자기감정에 솔직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요. 신기한 건 드라마에서도 그 두 분이 가장 ‘이상 행동' ‘돌발 행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가장 공감이 되는 ‘정상인'으로 보였다는 거예요. 우리가 너무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린 채 살다 보니.

    “네. 그래서 그분들을 뵈면 안정감이 들죠.”

    -김혜자와 나문희 선생은 현정 씨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방긋 웃으며)김혜자 선생님이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어느 날 문자를 보내셨어요. “현정! 너 잘하드라. 근데 잘하는 사람은 많아. 내가 현정이가 하는 게 왜 좋으냐면 격이 있게 잘해서 좋더라.” 정말 행복했어요. 나문희 선생님은 또 나문희 선생님 스타일 대로, 현장에서 웃으시며 그래요. “(성대모사로)내가 딸 셋이랑 드라마를 같이 봤는데, 딸들이 너 잘한다 그러드라. 내가 앞에서 힘줘서 연기했는데, 뒤에서 네가 다 가져갔드라.”

    노처녀 작가 ‘완'을 연기하며 노희경 작가와 고현정 사이를 현명하게 오갔던 고현정. 드라마의 여러 에피소드엔 그녀의 실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사진=tvN제공
    노처녀 작가 ‘완'을 연기하며 노희경 작가와 고현정 사이를 현명하게 오갔던 고현정. 드라마의 여러 에피소드엔 그녀의 실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사진=tvN제공
    -최고의 칭찬이네요. 젊은이와 경쟁심이 없는, 순수하게 어른 다운 칭찬이기도 하고요.

    “이분들이 정말 살아온 날만큼 배려가 대단하세요. 빵 한쪽을 나눠줘도, 그냥 툭 주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거 골라서 좋은 상황에 주려고 망설이며 주세요. 박원숙 선생님은 촬영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계속 촬영하셨어요. 남에게 짐 되기 싫다고 오히려 분위기 업시키면서… 저는 이번 현장에서 티 안 내고 배려하는 건 확실히 배웠어요.”

    -어른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았지만,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인성하고 대화할 때, 말갛고 장식 없는 뾰로통한 얼굴들도 참 좋았어요.

    “아유~ 그런데 인성이랑만 나오면 댓글들이 아주 대단들 하세요. “나가 죽어라" “인제 그만 조인성을 놔줘라" “옛날에는 이모 같더니 지금은 엄마 같다.” 웃긴 건 제 측근 스태프들도 드라마 보고 나선 “언니, 그런데 사귀는 거 진짜 아니에요?” 그래요. 내가 정색하고 그랬어요. “몰랐어? 캐나다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어. 내가 작년에 왜 살이 쪘냐면 애 낳아서 그래(웃음).” 농담이고요. 저도 취향이라는 게 있고, 조인성이 제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 친구가 멋진 건 ‘로열티'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 같이 있으면서 좋은 영향 주고받는 거고요.”

    -키 큰 처녀가 어른들 사이에서 동동거리며 주눅 들지 않고 뛰어다닐 땐 1992년 데뷔작이었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말숙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저는 사실 혼자서 많이 어색해했어요. 어르신 배우들이 진짜 한 칼씩들 가지고 계신 데, 그걸 적기에 확 휘두르시면, (손사래를 치며) 진짜 입을 못 다물어요. 재미있는 건 모두 모여서 한 칼씩 빼 들어야 할 때, 보통은 ‘내 칼을 받아라.' 하면서 서로 안 지려고 피를 튀기는 에너지 싸움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철저하게 상대가 제대로 칼을 휘두르도록 집중해서 그 사람을 거드는 거예요. 그 빛나는 배려는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어떤 때는 어르신들끼리, “현정이 다음 신 중요하니까, 자꾸 웃게 하지 마" 그러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주현, 신구 선생님 같은 분들은 정말 다른 나라 같으면 연기로 기사 작위를
    받아야 할 분들인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태양의 후예'도 좋지만, ‘디마프'의 어르신 배우들을 청와대에 초청해서 예우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거죠.”

    -예전엔 예능 토크쇼 ‘고쇼'를 시작할 즈음, 나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이제까지 대중들로부터 혜택을 받고 살았으면, 이 시점에는 떨림의 장에 서서 대중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고. “스타가 너무 자기 혼자 안주하며 숨어 사는 건 대중들에게 의리가 없는 거다.”라고요. 작년에 SBS 플러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현정의 틈-보일락말락'이나 신혼 초 일본의 기억을 더듬는 여행책 ‘현정의 곁'은 다 그런 맥락으로 추진한 건가요?

    “네. 제가 레퍼토리나 재능이 많으면 더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은데…, 아쉬워요. 작년에 리얼리티 할 때는 윤상 선배 만나서 노래 연습도 꽤 했고, 그래서 버나드 박과 듀엣을 하기로 했었는데, 정작 당일 못하겠더라고요(웃음).”

    IOK 컴퍼니를 만든 후 그녀는 SBS 예능 토크쇼 ‘고쇼'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매니지먼트 부문에서 확장해서 화장품 브랜드 코이(koY)와 패션 브랜드 에띠케이(atti.k)를 현대 홈쇼핑에 런칭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고현정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사진 제공=tvN
    IOK 컴퍼니를 만든 후 그녀는 SBS 예능 토크쇼 ‘고쇼'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매니지먼트 부문에서 확장해서 화장품 브랜드 코이(koY)와 패션 브랜드 에띠케이(atti.k)를 현대 홈쇼핑에 런칭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고현정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사진 제공=tvN
    2015년 가을 출간한, 고현정은 여행 에세이 ‘현정의 곁’은 이런 문구로 시작했다.

    ‘연예계를 떠나 결혼을 하고 도쿄 니혼바시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0부터 시작하는 게 페어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자가 되어 다시 도쿄를 여행하기로 했다.’

    -신혼을 보냈던 도쿄를 다시 훑어본 여행 이후 특별히 달라진 게 있나요?

    “그때 제가 도쿄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이 다들 좀 특이했어요. 구두약 파는 멀티숍을 하는 뮤지션, 오직 한 권의 책만 전시해놓고 파는 서점 주인, 멋진 구제 헬멧을 사서 작은 가게 안에 전시해 놓는 잡화컬렉터… 다들 자기 직업이 있고 어찌 보면 좀 살만한 집안의 자제들이었는데, 그분들 의식이 그래요. “자기는 물려받은 게 있으니, 대중들에게 돈 버는 일보다 이렇게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요. 큰 욕심 없이 독특한 삶의 방식을 ‘셰어하는(Share)’ 자세 같은 게 있어요. 제가 코이(KoY)라고 화장품 브랜드하고 에띠케이(atti.k)라는 의류 브랜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 생각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살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노력해야만, (힘을 주어) 아주 많이 노력해야만 조금씩 성장할 수 있어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가려면 노력해야 하듯이 엄청나게 노력해야 다음 인격의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거죠.”

    -IOK 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자신감이 좀 붙었습니까?

    “네. 그전에는 연기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문득 전쟁이 나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겠구나 했죠. 전쟁 때 누가 드라마를 보겠어요? (웃음). 그런데 에띠케이를 하면서 무형의 연기와는 달리 옷이라는 제품이 유형으로 남으니까, 그게 참 뿌듯하더라고요. 내가 재봉틀을 박진 않았어도, 미술 도록 보고 연구하고, 샘플 모으고, 공들여 정한 스타일대로 생산 라인에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고현정은 이혼 후 다시 연기를 시작한 걸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사진=김지호 기자
    고현정은 이혼 후 다시 연기를 시작한 걸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사진=김지호 기자
    -제조업이 선사하는 색다른 기쁨이 있겠지요.

    “맞아요. 좋은 것을 더 많이 알고 공부해서 그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게 중요해요. 공정이 줄어들면 값이 싸지고, 좋은 물건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거든요. 하이엔드라는 게 정말 별거 아니에요. 과장되게 높은 선을 그어서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 꾸게 눌러버리는 거거든요. 그걸 제가 좀 아니까 합리적으로 풀고 싶다는 거죠. 어느 정도 공평하게 시작하자, 이거예요. 코이 화장품이나 에띠케이 옷이나 다 그런 꿈으로 가고 있어요.”

    -어쨌거나 IOK가 상장된 이후에 고현정 연관 검색어로 한동안 주식 부자가 뜨기도 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우회 상장을 한 거예요. 상장하고 투자를 받으면, 제 감정 기복을 견제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겠구나 했어요. 어쨌건 공식적인 CEO는 제 동생이지만, 상장 1년이 되는 연말까지 이것저것 결정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요. 보호예수기간이 끝나면, 그때부터 제대로 주식 가치가 생기는데, 거품 말고 진정한 가치판단은 더 가봐야죠. 그런데 저는 주식 부자가 돼도, 거지가 돼도 그것 때문에 들뜨거나 겁이 나진 않아요. 뭐든 제대로 해보자는 거죠.”

    -고현정이 겁나는 건 뭐죠?

    “저는 세상에서 오해와 누명이 제일 겁나요. 그것만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더라고요.”

    대의명분이 강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고현정에게 결혼과 이혼은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던 걸까. 1995년부터 2003년까지 8년 6개월간 연기를 떠나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오히려 연기에 대해 알았다는 고현정. 세상은 이부진과 임우재 이혼 공방으로 떠들썩한 가운데, 오래전 삼성가의 며느리 직을 떠난 그녀라고 왜 할 말이 없을까마는. 고현정은 “진심으로 현재 재혼한 그분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느릿느릿 말했다.

    맏딸 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남들이 피하는 일을 대의를 위해 자처하는 편이다./사진=김지호 기자
    맏딸 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남들이 피하는 일을 대의를 위해 자처하는 편이다./사진=김지호 기자
    -고현정에게 부족한 건 뭔가요?

    “남자(웃음). 저는 남자들이 성적인 쟁취를 이룬 후에도, 그다음 고지를 향한 흥미로운 자기만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루한 건 정말 지루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브래드 피트와 톰 하디를 좋아해요. 좀 웃기지만 저 혼자서는 국정원에 계신 분하고 사귀면 생활이 되게 극적이어서 지루할 틈이 없겠다, 그런 상상도 하고요(웃음).”

    그녀는 자칫하면 실타래처럼 엉키고 마는 남녀 관계를 경계하는 듯했다.

    -누가 제일 좋은가요?

    “우리 직원들이요. 회사에서 직원들이랑 고기 먹으면서 건의 사항도 듣고, “웃기시네. 그건 앞으로 5년 동안 못 해주겠어" 그런 대화도 나누고. 그렇게 서로 온전히 편안하게 이해받는 관계가 좋아요.”

    -홍상수 감독과 ‘해변의 여인'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 편을 찍은 후엔, 이렇다 할 영화 출연작이 없어요. ‘미스고'는 너무 급하게 넘어가 버렸죠. ‘해변의 여인'의 첫 대사가 너무 강렬해서일까요? “지랄하고 있네!" 였던가요?

    “아주 지랄을 해요, 였어요. 음… 제가 영화계에 아는 사람도 없고 좀 애매한가 봐요. 전 요조숙녀 역할도 할 수 있는데(웃음). 사실 ‘디마프'가 좋은 게 성인물이어서거든요. 우리나라 드라마는 하다 보면 아동극이 되잖아요. 영화도 베드신 나오는 그런 ‘성인물’이 아니라, 진짜 어른들이 각성하면서 감성을 깨우치는 성인물이 나오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본 영화 ‘비밀은 없다'는 연출이 참 특이하고 좋더라고요.”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나요?

    “아뇨. 집에서 혼자 봐요. 그래서 새 영화 업데이트될 때까지 눈 빠지게 기다려요(웃음).”

    -참 이상하군요. 늘 혼자 지내면서 자신이 만드는 패션, 뷰티,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의 핵심은 ‘셰어'라고 하는 것이요.

    “왜냐하면, 전 혼자 있어도, 늘 사람들과 같이 있을 것을 가정하고 집을 꾸며요. 혼자 있으면서 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거죠. 가령 제가 어디 여행 갈 때 마다 도마를 많이 사 모았어요. 하도 고현정 이름이 도마에 오르내리니까(웃음). 그런데 제가 요리를 하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묵직하게 힘 있는 도마를 죽 늘어놓고, 음식 나르는 트레이로 쓰고,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방문객들이 그걸 가져가요. 그런 게 혼자 지내는 사람이 생각하는 ‘셰어’인 거죠.

    한편으로는 ‘셰어'이면서도 동시에 ‘해체'일 수도 있는데, 가령 전 부엌이 누구 한 사람만의 공간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부엌을 해체하고 아이들 방에도 작은 싱크대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태프들의 염원으로 팔다리를 드러내고 캐주얼하게 입은 고현정./사진=김지호 기자
    스태프들의 염원으로 팔다리를 드러내고 캐주얼하게 입은 고현정./사진=김지호 기자
    -새로운 발상이군요.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심스레 마음 상태를 물어볼게요. 아이들이 둘 다 5월 생이라 돌상에 목단꽃을 한 아름 꽂아줬다고, 헤어질 때 후회 안할만큼 원없이 품에 안아주고 나왔다고 했지요. 훗날 그 아이들이 ‘엄마'라는 퍼즐을 찾아 맞췄을 때 혼돈을 주지 않기 위해, 앞뒤가 맞는 사람, 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지금은 어떤가요?

    “음…, 6살, 4살 때 헤어졌는데 그 어린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지금 아이들이 고2, 중3인데, 저는 그냥 잘 모르겠어요. 당시에 제가 참 어린 나이에도 야무지게 잘 결정했다고들 칭찬하시는데, 가끔 그 시절의 저를 생각해봐요.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왔다 갔다 하면 애들 맘에 우울이 생길까 봐 제가 자제를 했어요. 그런데 자라는 과정을 못 보고, 훅 커서 보니까 안 친해지더라고요(웃음).

    모성애로도 부재의 시간을 확 당길 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마음이 이젠 역전을 시키고 싶어요. 애들이 제가 좋아서 미치도록 더 멋진 사람이 되자는 거죠. 미안한 맘은 크지만, 슬픔이 있으면 한편으로 그만큼 단단한 존재가 되어간다고 믿어요. 게다가 아빠가 돈도 많잖아요(웃음).”

    -자신의 슬픔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슬픔을 만들면 이상한 공식에 빠져요. 내가 우주에서 제일 슬퍼, 이렇게 되는 거죠. 우울에서 슬픔으로 빠지면 사람들 앞에 두고 “안 보여? 내 머리 뒤로 늘어진 슬픔이 소련 땅 만큼이야.” 이렇게 외치게 되거든요. 슬픔은 남이 들어올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슬픔은 만들지 않는 걸로(웃음). 그냥 적막하고 고즈넉하게 있는 상태가 좋아요. 애들은 다 잘 될 거니까(웃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세 가지를 꼽아보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참을 생각한다)첫째, 연기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은 것. 이혼한 이듬해 준비해서 2005년에 ‘봄날'을 시작했는데, 참 잘 결정한 거 같아요. 둘째, 노력하다 안되면 망가지려다가도, 뭔가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 셋째, 혼자 지내기로 한 것. 딱 마침표는 못 내리겠지만,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고현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텔레비전, 꽃,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수다’라고 했다. 1995년 최민수와 함께 출연했던, 드라마 ‘모래시계'는 그때 이후로 보지 않았다고. “뭐하러 자꾸 봐요? 그걸(웃음).”

    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훑어 낸 ‘모래시계'는 한때 시청률 64.5%를 찍으며 ‘귀가 시계'라고 불렸고, 한국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어떤 거창한 의미보다, 나는 다만 그녀가 등장했던 몇몇 장면이 가끔 떠오른다.

    긴 머리 휘날리며 바람 부는 거리를 걸어서 박상원의 자취방으로 가서 하는 말. “있잖아, 걔네들은 굶으면서 데모하는데, 나는 배고파서 쌀 사 왔다.” 그 뒤 아버지의 카지노를 지키기 위해 숏커트에 빨간 입술을 바르고 따각따각 칩을 뒤집던 모습은 또 어찌나 차갑고 비장하던지, 그리고 ‘모래시계' 마지막 촬영 장소였던 여의도 한 빌딩 앞. 회전문을 빙그르르 돌리며 나온 그녀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연예 TV 카메라 앞에서 놀란 사슴 눈으로 말했다. “진짜? 이게 정말 마지막이에요?”

    얼마 뒤 턱밑까지 단추를 채운 정숙한 흰 드레스를 입고 전 국민의 축복과 질투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던 여자는 그날로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대물' ‘여왕의 교실'에서 그리고 예능 토크쇼 ‘고쇼'를 통해 우리는 고현정의 따뜻한 두목 기질에 익숙해졌다./사진=김지호 기자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대물' ‘여왕의 교실'에서 그리고 예능 토크쇼 ‘고쇼'를 통해 우리는 고현정의 따뜻한 두목 기질에 익숙해졌다./사진=김지호 기자
    그때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아 참 다행이다. 굳게 닫혔던 성문을 열고 대중 곁으로 돌아온 지 벌써 11년. 배우로서, 사업가로서 어쩌면, 그녀 자신 가장 고귀하게 생각하는 두 아이의 머나먼 ‘엄마로서' 고현정의 통렬한 순애보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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