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8%→2.7%로 하향조정…"금리인하·재정보강 성장률 0.2%P 올려"
"김영란법, 민간소비에 부정적"
한국은행은 14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현 2.8%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우리 경제는 지난해 2.6%에 이어 2년 연속 2%대 성장에 그치게 된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도 2.9%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춘 데 이어 중앙은행인 한은이 하향 조정 대열에 동참하면서 장기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질 전망이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는 2%의 시대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20년에 가면 2.0% 수준까지 떨어질 수도 있고, 2020~2030년 사이에는 1%대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0월 3.2%로 전망했다가 올 1월 3.0%로, 4월엔 2.8%로 내리는 등 수정 전망 때마다 성장률을 내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작년 1월 처음으로 발표했던 2016년 성장률 전망치 3.7%보다 무려 1.0%포인트나 낮은 것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수정함으로써 한은의 국민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 이주열 "통화·재정정책 없으면 2.5% 성장"
한은이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다시 낮춘 것은 하반기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한은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로 낮췄고 기획재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총 20조원 이상의 재정 보강 대책을 마련했지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등 불확실성이 여전해 성장률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우리 경제가 통화·재정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올해 성장률이 2.5%로 주저앉는다는 점도 밝혔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와 정부의 재정보강은 우리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며 통화·재정정책이 성장률을 0.2%포인트 가량 끌어올리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해석하면 한은이 지난달 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1.25%로 0.25% 전격 인하하지 않았고, 추경 등 20조원에 달하는 재정 보강책이 없다면 올해 우리 경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생했던 작년(2.6%) 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추경 집행 시기와 지출 내역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다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민간에서는 올해 성장률이 2.7%에 미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7%로 낮췄다. IMF는 당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대외환경이 취약하고 불확실한 데다 재정 지원을 조기 회수하는 경우 민간 소비 회복을 저해할 수 있어 하방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성장률이 2.7%보다 더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특히 지난 5월에는 국책연구기관인 KDI마저 3.0%에서 2.6%로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췄는데,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서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총재도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정부가 추경을 포함한 20조원이 넘는 돈을 하반기에 풀어도 올해 한국 경제가 2.5%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은 상당 규모의 재정이 하반기 투입되더라도 경제활력이 사라진 구조적 문제 속에 구조조정과 브렉시트 등의 대내외적 변수가 복합 작용해 경기는 하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 "잠재성장률 하락 가능성"…한국경제, '재정·통화 중독' 빠졌나
이 총재는 이날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할 수 있다며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성장률 추이와 잠재성장률이 1대1로 매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률 하락 추세가 지속되면 잠재성장률도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동력이 식어가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앞서 한은은 올해 1월 2015∼2018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3.0∼3.2%로 추산한다고 발표했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사용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뜻한다.
이 총재는 "저출산·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을 반영할 때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성장추세와 경제구조의 변화를 지켜보고 필요할 경우 잠재성장률을 다시 추산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최근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의 대부분을 재정과 통화정책에 의존하는 '재정·통화 중독'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활력을 잃어가는 민간 부문을 대신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간신히 성장률을 떠받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랏빚은 계속 늘고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게 된다.
지난 13일 KDI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장률 2.6% 중에서 재정의 기여도는 3분의1가량인 0.8%포인트였다. 구체적으로 공무원 월급 등으로 지출한 정부 소비의 기여분이 0.5%포인트였고, 도로·철도 공사와 같은 정부 투자가 보탠 부분이 0.3%포인트로 집계됐다. 재정이 기여한 부분을 빼고 순수 민간 힘으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만 따지면 성장률이 1.8%에 그쳤다는 뜻이다.
길게 보면 성장률은 서서히 낮아지고, 재정의 기여도는 계속 올라가는 추세가 뚜렷하다. 2011년에는 3.7% 성장했는데, 재정 기여도는 0%포인트였다. 정부의 도움 없이 순수히 가계·기업의 힘만으로 3.7%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재정 기여도의 비중이 2012년 0.4%포인트, 2013년 0.6%포인트 순으로 높아졌고, 작년에는 0.8%포인트로 확대됐다. KDI는 특히 올해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0.5%인데, 민간의 기여도는 제로(0)인 반면 재정기여도는 0.5%포인트라고 분석했다. 민간은 제자리걸음했고, 재정의 힘으로만 성장했다는 뜻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재정·통화정책은 수요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리기에 단기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이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멈추면 다시 성장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잠재성장률이 낮다고 생각하면 단기적 방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란법, 민간소비에 분명한 부정적 영향 미칠 것"
이 총재는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민간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영란법의 취지는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라면서도 "이 법이 종래 관련 법보다 적용 범위가 넓고 처벌조항도 강화됐기 때문에, 민간소비에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따른 한국과 중국의 교역관계 악화 가능성에 대해선 "비경제적인 사안에 따라 경제가 받을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에서 벗어나려면 세계 경제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최근 수출 부진은 국내 요인보다 해외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교역량 부진, 그리고 중국이 내수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바꾼 데 따른 글로벌 공급 체인의 변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출은 세계 경제의 회복세 여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선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접근하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를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