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닌텐도의 스마트폰용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실제 배경에 3차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 게임 ‘포켓몬 고(Pokmon GO)’가 출시와 동시에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장터 매출·다운로드 1위를 휩쓸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여러 AR 게임이 출시돼 화제를 모은 적은 있지만 콘텐츠가 부족해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대부분 게임 시장에서 사라졌다. 포켓몬 고는 AR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AR 및 게임콘텐츠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마리오, 포켓몬 등 강력한 캐릭터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한 닌텐도가 IP 파워를 토대로 포켓몬 고를 이용해 부활할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도쿄 증시에 상장된 닌텐도의 주가는 최근 사흘 간 주가가 38%나 급등했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펀드매니저는 “포켓몬 고는 강력한 캐릭터 IP를 보유한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사로 변신할 때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대박 친 ‘포켓몬 고’…54조원 포켓몬 시장에 기름 붓는다
포켓몬 고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박’ 수준이다.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에 출시된 포켓몬 고는 출시 5시간 만에 인기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슈퍼셀의 인기 게임인 ‘클래시 로얄’이 1위에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포켓몬 고는 애플 앱스토어 앱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며 게임 오브 워, 클래시 로얄, 클래시 오브 클랜 등의 오랜 기간 상위권을 유지하던 앱을 순식간에 제쳤다. 호주와 뉴질랜드 앱스토어에서도 다운로드,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포켓몬 고 앱 다운로드는 무료다. 하지만 대다수 모바일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앱 내 결제를 통해 각종 아이템을 유료로 구입하는 ‘부분유료화’ 방식을 채택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포켓몬 고를 발판으로 닌텐도의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현재 포켓몬스터의 저작권은 포켓몬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998년 닌텐도와 게임프리크, 크리쳐가 공동출자해 설립됐다. 포켓몬 고의 개발은 AR 게임 ‘인그레스(Ingress)’로 잘 알려진 미국 AR 게임 전문업체 ‘나이언틱(Niantic)’이 맡았다. 이 회사는 포켓몬 고의 개발을 위해 닌텐도, 포켓몬컴퍼니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포켓몬스터는 닌텐도의 대표 인기 캐릭터다. 포켓몬컴퍼니에 따르면 포켓몬스터 관련 소프트웨어는 지난 5월까지 전 세계에서 2억8000만개 이상이 판매됐다. 만화는 전 세계 95개국에서 방송됐고 극장판 영화의 경우 약 7237만명이 유료 관객이 관람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포켓몬스터 관련 시장 규모를 4조8000억엔(약 54조5356억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포켓몬 고 ‘대박’이 더해질 경우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 가상·현실세계의 ‘융합’...의도치 않은 사건사고도 급증
포켓몬 고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150여 종류의 포켓몬스터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방대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포켓몬스터 캐릭터가 모바일 게임으로 등장한 적이 없는 만큼 희소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포켓몬 고의 인기비결은 모바일 속 가상현실과 현실세계 간 융합이다. 디스플레이 속에서만 포켓몬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집 밖에서도 포켓몬을 찾아다니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광화문에 있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 뒤 종로1가에 숨어있는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발견한다면 종로1가까지 직접 이동해 포켓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식이다. 향후 스마트글래스 등으로 연결될 경우 사실감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나라와 지역별로 모두 다른 포켓몬이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재미 요소다.
또 포켓몬 고는 ‘포켓몬고플러스’라는 블루투스 장비로 몰입감을 더욱 높일 수 있어 전세계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포켓몬고플러스는 일종의 포켓몬스터 탐지기다. 빛과 진동으로 주변에 포켓몬스터가 있음을 알리며, 이를 통해 이용자는 현실에서 포켓몬의 위치를 찾아 상대하거나 포획하는 등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현실에서도 구현한 것이다.
포켓몬 고를 즐기려는 이용자가 몰리면서 사건사고 소식도 늘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벤처비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포켓몬 고를 하다 넘어져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은 사용자도 등장했다. 또 포켓몬 캐릭터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서, 병원 등 공공건물에 무단침입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포켓몬스터는 어린이는 물론, 20~40대까지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캐릭터로 국내에서도 포켓몬스터 빵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며 “그동안 포켓몬스터의 IP가 모바일 게임에서 활용된 적은 거의 없어, 포켓몬 고의 인기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 ‘망하지 않는’ 닌텐도, 마리오 등 ‘수퍼 IP’ 기업으로 변신
포켓몬 고의 인기에 경영 위기를 겪고 있던 닌텐도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일본 도쿄 증시에 상장된 닌텐도의 주가는 최근 사흘 간 주가가 38%나 급등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닌텐도 주가 급등은 포켓몬 고의 원작인 포켓몬스터를 비롯해 수많은 캐릭터의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한 닌텐도의 경쟁력이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모바일 게임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닌텐도가 보유한 강력한 캐릭터 IP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닌텐도는 패미콤 등으로 90년대 전성기를 누리다 3차원(3D) 그래픽을 구현하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세턴 등에 밀리며 비디오콘솔게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다행히 지난 2004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NDS)’를 출시하면서 상승세를 탔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다시 위기를 맞았다. 비디오 게임기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대응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가 뒤늦게 시대 흐름을 받아들였다. 최근 닌텐도는 포켓몬스터, 수퍼마리오, 젤다 등 캐릭터를 활용하는 지적재산권(IP)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만 해도 150가지나 된다.
과거 닌텐도는 IP를 외부 개발사에 개방하지 않고 자체 게임 개발에만 사용해왔다. 수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등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개발을 비롯해 캐릭터 IP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개방하면서 미국 마블, DC코믹스와 같은 ‘수퍼 IP’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실제 수퍼마리오, 젤다, 포켓몬스터 등 닌텐도가 보유한 캐릭터 IP는 닌텐도의 위기 때마다 큰 힘이 돼줬다. 지난 2006년 비디오 게임콘솔 ‘위(Wii)’와 휴대용 게임기 NDS 출시 때도 이들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게임을 전면에 내세워 초기 정착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닌텐도는 올해 포켓몬 20주년을 맞아 오는 11월에 닌텐도DS의 최신 기기인 3DS용 ‘포켓몬 선’과 ‘포켓몬 문’도 내놓는다.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를 3DS 게임과 연동시킬 계획이다.
닌텐도는 지난해 일본 모바일 게임사 ‘DeNA’와 손잡고 모바일게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닌텐도는 오는 3분기 롤플레잉게임 ‘파이어 엠블렘’과 커뮤니티게임 ‘동물의 숲’을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닌텐도가 지난 3월 출시한 첫 모바일 게임 ‘미토모(Miitomo)’는 출시 1개월 만에 1000만명 이상이 내려 받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들은 닌텐도가 캐릭터 사업을 본격화할 경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만큼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4년 ‘대란(大亂)’을 일으켰던 맥도널드 해피밀 수퍼마리오 장난감 품절현상도 닌텐도의 캐릭터 IP 경쟁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최근 게임업계의 화두는 IP다. 인기 IP를 활용한 게임은 무조건 뜬다는 ‘성공공식’이 나올 만큼 IP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IP의 유명세에 힘입어 큰 마케팅 없이도 게임 이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가 지난 2014년 웹툰 업체인 레진코믹스에 50억원을 투자한 것도 캐릭터 IP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캐릭터 IP의 경우 게임, 영화, 만화 등 콘텐츠 뿐만 아니라 각종 악세서리, 전자제품, 식료품, 테마파크 등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며 “닌텐도의 캐릭터 IP는 하드웨어 이상의 값어치 높은 숨은 원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