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김용호, 스스로 빛나는 태양광 모던 보이로 살기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6.18 07:00 | 수정 : 2016.08.28 11:02

    사진 작가에서 설치 미술가로, 김용호의 ‘모던 보이’ 연작 시리즈
    2평 전시 공간에 60여 점 로봇 컬래버레이션 작품 전시
    판매 수익금은 제 3세계 태양광 모던 보이 설치 기금으로

    아티스트 김용호가 신사동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스스로 빛나는 존재, ‘모던 보이’ 컬래버래이션 전시를 하고 있다. 6월 11일부터 7월 2일까지./사진=박상훈 기자
    아티스트 김용호가 신사동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스스로 빛나는 존재, ‘모던 보이’ 컬래버래이션 전시를 하고 있다. 6월 11일부터 7월 2일까지./사진=박상훈 기자
    사진작가에겐 카메라 프레임 안의 세계가 자기만의 우주다. 찰칵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그들은 우리를 자기만의 신대륙으로 데려간다. 김중만이 아프리카와 꽃의 세계로, 배병우가 소나무와 알람브라 함의 궁전으로, 구본창이 백자의 우주로, 그리고 지금 김용호가 우리에게 ‘모던'이라는 신세계를 선물하고 있다.

    김용호의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신사동 코너아트스페이스는 내가 가본 전시장 중 가장 작았다. 2~3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모던 보이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작품은 사진이 아니다. ‘모던 보이’ 시리즈는 아티스트 김용호가 만든 일종의 ‘아트 상품'. 로봇 도자기는 몸통 위에 머리 대신 전구를 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티스트 장승효, 고낙범, 신철부터 전 아나운서 손미나,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심지어 7살 아이까지, ‘모던 보이'를 캔버스 삼아 60여 명의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펼쳤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모던 보이부터 천사 날개를 단 모던 보이, 목각으로 된 모던 보이, 침선장이 만든 모던 보이… 그중 가장 큰 작품은 사람 키만 한 ‘태양광 골목 지킴이 보던 보이'다.

    “일종의 공공 미술인데, 낮에 태양광으로 충전해서 밤에 골목에서 환하게 빛을 낼 거에요.” 시골 초등학교 교사 같은 흰 셔츠를 입은 김용호가 설명을 덧붙였다.

    15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 사람, 머리 위에 전구를, 손에는 모터를 달았구나. 무언가를 착상하고 그것을 얘기할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전구가 반짝였다. 떠오르면 스케치하고, 스케치하면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이 말한 것을 거의 99% 현실화시킨다는 거였다.

    추진력 절대 고수, 일 벌이는 데 이토록 주저함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모자부터 조끼까지 갖춰입은 옷차림은 1920년대 상하이의 젠틀맨처럼 근사했지만, 태도는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운동의 구호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번 전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의 어린이들을 위한 ‘태양광 모던 보이' 개발 기금 마련을 위해 기획되었다. 모던 보이의 가격은 작가별로 다 다르지만 대략 15만원~50만원 수준이다. /사진=박상훈 기자
    이번 전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의 어린이들을 위한 ‘태양광 모던 보이' 개발 기금 마련을 위해 기획되었다. 모던 보이의 가격은 작가별로 다 다르지만 대략 15만원~50만원 수준이다. /사진=박상훈 기자
    그 추진력으로 우리 시대의 명인들을 흑백 사진으로 장엄하게 기록한 ‘명인전'부터, 현대자동차 공장의 기계 장치와 그 흔적을 육중한 추상 판화처럼 기록한 ‘Great Modern’, 남녀의 누드를 한 덩이 바위처럼 차갑고 아름답게 기록한 대림미술관의 ‘몸' 사진전, 초여름 물속에 누운 채로 연잎의 풍경을 쳐다본 ‘피안' 등등 현대 미술사에 남을 인상적인 포토 신(Scene)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30년간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되었던 패션 광고계의 유명 인사가(영화 ‘여배우들'에 사진작가로 출연한 ‘자칭’ 남자 주인공이며, 그 이전과 이후에도 ‘보그'의 표지 사진과 기념비적인 패션 화보를 수없이 찍어왔다), 몇 년 전부터 설치 미술가로 변신했을 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모던 보이는 일종의 김용호의 아바타.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품위 있는 근대의 인류. 사실 사진작가로서 김용호의 눈은 늘 과거의 ‘모던'을 그리워했다. 그는 잘 차려입은 1920년대의 신사 숙녀를 피사체로 담기 좋아했다. 그 자신, 2000년대 초엔 시가와 와인, 슈트와 파티라는 서구 신문물을 청담동에 전파한 대표적인 트렌드세터인 채로.

    그렇게 타인들에게는 향수와 관음의 풍경에 불과했을 ‘모던'이, 드디어 ‘진취적 근위병의 자태’로 현대로 걸어 나온 것이다. ‘모던 보이’ 설치 미술의 공식적인 시작은 2013년 서울역이었다. 그는 문화역으로 변신한 서울역 역사에 202개의 모던 보이 조형을 설치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제목은 시인 이상의 시를 패러디한 ‘202명의 모던 보이가 서울역을 질주하오'. 머리에 전구를 단 흰 백자 로봇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 같은가 하면, 한국에서 촬영된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관을 이뤘다.

    김용호를 만났다. 전시장 안에 도열한 작은 ‘모던 보이들' 중 하나처럼 옷차림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졌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김용호, 스스로 빛나는 태양광 모던 보이로 살기
    -당신이 모던 보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주위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그럼 누가 모던 보이인가?

    “스스로 빛나는 존재.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새롭게 보고,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달려가는 사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자수성가형 인간들. 유명세는 상관없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다 모던 보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자수성가형 인물은 척박한 이 시대에 너무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첫 세대는 모두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흙수저 금수저 논쟁을 이어가면 끝이 없다. 내 자식에게 금수저를 물려주겠다는 사고가 모던 보이 기질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취지도 전시 상품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제 3세계에 태양광 모던 보이를 보급하겠다는 거다.

    예전에 방글라데시, 캄보디아로 봉사 활동을 갔었는데, 그곳엔 밤에 할 일이 없었다. 전기가 없으면 책도 읽을 수 없고,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나는 태양광 모던 보이로 빛뿐만 아니라, 모던 보이의 정신을 전파하고 싶다.”

    전시장에 있는 태양광 모던 보이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손전등, 건빵, 소화기, 방독면, 우산, 마이크 등등. 그는 깜깜한 섬마을이나 인적이 드문 외곽도시 골목 입구에 ‘골목 지킴이'라는 이름의 모던 보이가 하나씩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겠냐고 했다. 태양열로 충전된 모던 보이에서는 흥겨운 음악도 흘러나온다. 공공미술로서 모던 보이는 실용성보다는 그 동화적 경쾌함에 의미가 있을 듯싶었다.

    삭막한 도시를 밝히는 반딧불이처럼.

    공공미술 형태로 구현된 태양광 모던보이.
    공공미술 형태로 구현된 태양광 모던보이.
    전시장 한 코너에선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모던보이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이스탄불, 체코, 프라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여행지 곳곳에 모던 보이를 놓고 찍은 사진 동영상이다. 왜 찍었냐고 했더니, “그냥 찍었다"단다.

    앤디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부턴가 현대 미술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정교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가의 직관적이고 우연한 시도에 반하는가, 아닌가는 관람객의 자유. 영상 속의 ‘모던 보이'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방전되지 않는, 경쾌한 자가충전 여행자였다.

    -예전엔 시인 이상을 테마로 모던 보이 작업을 하지 않았나?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과 지금은 보그편집장인 신광호를 모델로 스토리 텔링 사진을 찍었는데.

    “이상은 모던 보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식민치하에 살았던, 어쩔 수 없이 무기력과 퇴폐에 빠졌던 한국 지식인을 대변하고 있다. 그에게 연민의 마음이 있다. 문학성이 풍부한 건축가였는데…. 총독부 건축 기사로 근무하다 탕아처럼 사라졌다. 살아있다면 근대 건축의 아버지가 됐을 거다.”

    -그 시대 긍정적인 모더니스트로 누구를 꼽는가?

    “안중근 의사는 시대를 바꾸려 했던 행동파 모던 보이다. 윤동주는 불명예의 삶에 안주하거나 기생하지 않고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려고 했다. 이상은 그런 면에선 아쉽다.”

    -1920년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때가 그즈음이었다. 보통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을 모더니즘의 원년으로 본다. 그 전까지는 국지전 형태의 전쟁이 있었는데, 2차 대전을 필두로 전 세계가 전쟁에 돌입하면서 세계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부자도 왕족도 몰락하고, 새로운 정치사상, 새로운 인간 유형이 나타났다.

    그들을 모던 보이라고 지칭하지만, 꼭 시대적으로만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연암 박지원이나 백남준 같은 분도 모던 보이라고 생각한다.”

    프라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아 만든 모던보이들.
    프라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아 만든 모던보이들.
    -개화기 신여성을 주제로 ‘모던 걸’ 작업도 했다. 외꺼풀 눈에 통통한 볼, 알듯 말듯 미소 짓는 얼굴의 신여성 사진이 꽤 인기 있었던 거로 안다.

    “모던 보이만큼 모던 걸에도 애착이 있다. 특히 근대 화가 나혜석 같은 인물에 관심을 두고 있다. 1920년대 동경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을 자세히 보면 여자는 처녀, 남자는 이미 정혼하고 유학 온 유부남이었다. 유학생들의 자유연애 풍속도에서 손해 보는 건 당연히 여자였다.

    나혜석은 시대를 넘어서는 선구자적인 행동을 한 여성이다. 결혼한 뒤 신혼여행도 옛 애인의 무덤가로 갔고, 이혼선언문까지 발표했다. 행려병자로 불행하게 죽었지만, 죽을 때도 자식들에게 ‘사랑하는 자식들아! 나를 원망 말고 시대를 원망해라'고 당당한 편지를 남겼다.

    그런 선대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있어 지금의 나와 당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는 어떤가? 그들은 모던 보이인가?

    “그들도 모던 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옷은 정말 끔찍하다. 패션도 자신을 표현하는 지능이고 재능이다. “오늘 무슨 옷을 입을까?”에는 한 사람의 감정과 계획, 과거의 흔적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런데 그들은 오로지 일을 위해서만 태어난 사람처럼 획일화된 옷을 입었다. 모든 것이 생산성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위험하지 않겠나.”

    -모더니즘 정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면 된다 모더니즘 정신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재 상태는 다 못하는 걸 배운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간단하다. 나는 사진작가였는데, 미술계 어떤 분이 연잎 사진인 ‘피안' 전시를 보면서 요즘은 평면뿐 아니라 입체로도 다양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마음을 먹고, 조형을 시작했다. 모던 보이를 스케치해서 도자기 공방에 가서 만들어보았다. 그게 시작이 됐다.”

    그의 ‘하면 된다.' 기질은 사실 예전부터 유명하다. 2000년대 초에는 교복 입은 김민희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자전적 소설집 ‘소년'을 내기도 했다. ‘명인전' 사진 전시를 할 때는 천장이 30m나 되는 강남 스타타워 로비에 백남준, 이매방, 김금화 등의 초대형 흑백 인물사진을 바닥까지 내걸었다.

    ‘하면 된다'와 더불어 또 한 축의 김용호식 ‘모더니즘 정신’의 근간은 ‘다르게 본다'일 것이다. 격식을 갖춰 형식을 뒤집는 행위. 나는 그것을 김용호 스타일의 성실한 ‘장난기’라고 부르고 싶다.

    김용호의 사진 작품 중 가장 부드러운 ‘피안' 시리즈.
    김용호의 사진 작품 중 가장 부드러운 ‘피안' 시리즈.
    가령 몸을 주제로 누드를 찍을 때 그는 으레 짐작되는 에로티시즘과 관음증을 걷어냈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몸' 사진전을 위해 그는 가슴이나 음부가 아닌, 그것을 감싸고 웅크린 등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늙은 할머니부터 아름다운 무용수까지, 제 몸을 둥글게 말고 뒤돌아 앉은 남녀의 몸은 구체적인 기능이 탄생하기 전의 원시적 ‘형태', 미니멀한 사각의 ‘디자인'으로 읽혔다.

    김용호의 ‘다르게 보기'는 연잎을 찍은 ‘피안'에서 극대화되었다. 모네의 연작 ‘수련’에서 짐작하듯, 연잎은 으레 위에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김용호는 연잎 연작 ‘피안'을 위해 물속에 누웠다. 눈앞에 개구리가 바라본 밀림 같은 고요한 세계가 펼쳐졌다.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서 현각 스님이 큰 대자로 누워서, 김용호의 고요한 ‘연잎' 사진을 감상했던 사건은 아직도 널리 회자한다.

    그는 최근에 한 전시 중 현대 자동차 공장을 조형 이미지로 기록했던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충돌 실험이라고, 새 차가 나오면 벽에 충돌 테스트를 하거든요. 저는 자동차가 아니라 그걸 버텨낸 벽을 찍었어요. 그런데 그걸 본 자동차 현장의 작업자들이 그래요. 선생님 사진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자부심을 느꼈다고. 고맙다고요.”

    전방위 예술가 김용호./사진=박상훈 기자
    전방위 예술가 김용호./사진=박상훈 기자
    -모던 보이 작업 이후 삶이 어떻게 변하고 있나?

    “일이 많아져서 살이 빠진다. 정신적 소모가 많다고나 할까. 말도 삼가고 언행을 조심하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모던 보이같은 아트 토이가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작가들 작품은 몇 백만 원 하니 비싸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모던 보이에 작품을 태우면 몇십 만원 수준이다. 조명등으로 쓸 수도 있고. 모양은 가볍지만, 나는 모던 보이가 담론의 시작이 됐으며 좋겠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 라는 계몽주의 사상을 세상에 널리 나누고 싶다.”

    사진작가 김용호를 가까이서 오래 본 사람들은 그가 내세운 ‘모던 보이의 세계'와 그가 살아온 삶이 일치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점점 더 거대해지고 간결해지는 김용호의 모던타임즈.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