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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하정우, 이토록 귀여운 '웰메이드' 아저씨라니...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6.11 07:00 | 수정 : 2016.08.28 10:57

    “혹시 생리해요? 어디서 피 냄새가 나서요.”-영화 ‘추격자'의 살인자의 대사
    “그렇게 황홀한 초야는 어떤 책에도 묘사된 적이 없을 거예요.”-‘아가씨’의 백작의 대사

    영화’아가씨'에서 백작으로 분한 하정우. 하이퍼 리얼리즘에서 우화적이고 양식적인 연기까지, 하정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드넓다./사진=이태경 기자
    영화’아가씨'에서 백작으로 분한 하정우. 하이퍼 리얼리즘에서 우화적이고 양식적인 연기까지, 하정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드넓다./사진=이태경 기자
    하정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하정우를 지루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정우의 가장 큰 매력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뷔 이후 셀프 도보 다큐멘터리 ‘577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그가 참여한 영화만 25편이 넘는다. ‘천만 요정' 오달수 못지않게 하정우가 수많은 감독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가 오달수만큼 ‘귀엽기'때문이다.

    하정우의 귀여움이 얼마나 많은 감독을 홀렸는지는 열거하기도 벅차다.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은 초기에 그를 잘 알 지도 못 하면서, 부담 없이 데려다 썼다(‘시간' ‘숨'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홍진 감독은 하정우에게서 불안한 사이코의 피 냄새를 맡았으며(‘추격자' ‘황해'), 윤종빈 감독은 그와 뻔뻔하고 무자비한 수컷의 기질(‘범죄와의 전쟁' ‘비스티보이스')을 공유했다. 류승완 감독은 하정우의 맷집을 사랑했고(‘베를린'), 최동훈 감독은 낭만적인 제스처(‘암살')를 잠시 빌려 썼다.

    ‘찌질한 사내'로 그의 귀여움을 노골적으로 치하했던 이윤기 감독과 전계수 감독의 작업이(‘멋진 하루' ‘러브픽션’),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건 의외다.

    감독들은 이정재나 정우성에게는 육체적 경이를, 송강호나 최민식에게는 예술적 경외를 느끼지만, 하정우에게는 친밀함을 느낀다. 어떤 직업 장르에서건 실력도 출중하며 센스도 있는 ‘웰메이드 인간'과 일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 영화계 사람들은 그가 거물이 될 거라고 예언했다./사진=이태경 기자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 영화계 사람들은 그가 거물이 될 거라고 예언했다./사진=이태경 기자
    실제 하정우를 보면 그의 세련된 귀여움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의 유머 코드를 읽는 맞춤 응대, 온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피보다 진한 하이 코미디 기질, 감독에게 ‘만보기 사용법'이나 ‘족욕' 등 건강 생활 정보를 전하는 싹싹한 태도는 오랜 현장 생활을 함께하는 영화 동지로 안성맞춤이다.

    나 또한, 여러 번 그의 귀여움에 홀렸다. 한번은 “영화 ‘황해'를 촬영하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그의 전화를 받고, 하정우의 그림을 트럭에 잔뜩 싣고 신사동 스튜디오로 옮겨와 비평해준 적이 있다(화가로서 그를 세상에 알린 첫 비평이었다). 그의 그림은 하정우 안의 캐릭터와 현대 화가들의 뇌가 합성되어 잘린 채 떠 있는 ‘기억의 조각’ 같았다. 하정우가 연기한 바스키아, 하정우가 연기한 키스 해링...

    그림을 그릴 때나 연기를 할 때나 그는 주저함이 없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는 기질, 저 자신, 세상만사 ‘해프닝’의 일부로 보는 민첩한 능청꾼의 태도였다. 더듬어보면 신인 시절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의 보디가드로, ‘히트'에서 고현정의 상대역으로, 그녀들의 압도적인 기에 눌리지 않고 퍼덕거릴 때부터 하정우의 타고난 ‘생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는 2005년 자살하는 군인 이야기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연으로 영화계에 등장했다. 제작비 2천만 원, 디지털카메라 1대로 만들어진 한 영화학도(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은 칸 영화제에 초청돼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혜성처럼 나타난’ ‘치밀하게 준비된 신예’ 등등의 수사가 청년 하정우와 함께했다.

    그렇게 다시 2016년 여름, 하정우가 돌아왔다. 에너지를 변칙적으로 사용하는 데 능한 충동적인 ‘베테랑’ 유아인도 상대가 누구든 신사적인 매너로 흡수해버리는 ‘태양의 후예' 송중기도 잠잠한 지금, 사십 대를 눈앞에 둔 귀엽고 프로페셔널한 ‘아저씨'가 온 것이다!

    영화에서도 인터뷰 현장에서도 웃을 듯 말듯, 유머를 던지고 싶어 근질거리는 모습은 여전했다.

    영화 ‘아가씨'에서 하정우는 아가씨와 하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기꾼으로 분했다.
    영화 ‘아가씨'에서 하정우는 아가씨와 하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기꾼으로 분했다.
    영화 ‘허삼관'으로 제작사 new에 흥행 실패의 쓴맛을 안겨준 감독이며, 갤러리로 구름떼같은 인파를 불러들이는 인기 화가인 하정우가 이번엔 박찬욱 감독의 야한 성인 동화 ‘아가씨'의 백작으로 분했다.

    -칸은 즐거웠나요?

    “10년 동안 4번을 갔습니다. 경쟁 부문엔 처음으로 초청된 거라 외신과 인터뷰도 했지요.”

    -오호! 경쟁 부문! 그게 중요하군요.

    “공식 경쟁은 프렌치 식당에서 비싼 샴페인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어요. 촌놈처럼 낮에 앉아서 만취한 상태로 잡지 촬영을 했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 건은 진척이 있습니까? ‘국가 대표' 이병헌의 바통을 이어받을 다음 타자인데요...

    “ 모리스나 CAA같은 대형 에이전시가 아닌 단독으로 활동하는 사람과 일하기로 했어요. 두드리면 좋은 길도 열리겠지요.”

    -‘아가씨’ 팀과는 촬영 내내 재미있게 지냈겠지요?

    “박찬욱 감독은 배우들과의 사적인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싱글몰트 위스키, 레드 와인, 고량주를 직접 싸서 다니셨어요. 좋은 바를 섭외에서 위스키를 음식처럼 코스로 즐기기도 했죠.”

    -취향이 근사하군요! 현장 지휘 방식은 어떻던가요?

    “리딩과 리허설 등 준비 작업은 길고 완벽하게, 그리고 현장에선 계획된 분량만 짧게 찍었어요.”

    -완벽하게 통제된 아름답고 신사적인 공간이군요.

    “감독 입장으로 보면 제 스타일과 비슷했어요(웃음).”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하정우는 하정우만이 소화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대사를 던진다. “그래도 X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하정우는 하정우만이 소화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대사를 던진다. “그래도 X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아가씨들'과 함께 지낸 경험은 어땠습니까?

    “제가 아저씨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말을 시작했죠. “어제 이 아저씨가 말이야, 이 아저씨한테 물 좀 가져다주련?”

    -아저씨라… 내년이면 마흔이지요?

    “그래서 서둘러 ‘아저씨’가 되는 준비를 합니다. 누가 부르기 전에 공식적으로 선수를 치는 거죠(웃음).”

    -공식적인 아저씨라… 그건 포도주를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하고 싶어지는 나이인가요?

    “영화에서는 그 대사가 백작의 치부를 드러내는 장면이에요. 그저 멋있는 척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거죠. ”

    -아가씨 히데코와 사랑에 빠진 걸 후회하나요? ‘암살'에서도 상하이에서 만난 안옥윤과 사랑에 빠져 휘청거리시더니만...

    “분명 히데코와 사랑에 빠져서 마음이 흔들렸어요. 치밀한 협상의 기술을 지닌 자였는데 그만… 그러나 연민이 들더라도 악당이 심판을 받는 건 명쾌했다고 봅니다.”

    -음란 서적을 낭독하는 서재 장면 얘기를 해보죠. 김민희의 낭랑하고 초연한 음색으로 기괴하고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어땠나요?

    “아! 그 장면은 따로 찍어서 연출부가 읽어줬어요. 아무튼, 그 이야기들은 제 성적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하정우 씨는 서재에서 어떤 책을 읽습니까?

    “저는 명사들의 연설문을 읽습니다.”

    엄청 폼을 잡는 듯 해도 그에겐 항상 희극적인 릴리프가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엄청 폼을 잡는 듯 해도 그에겐 항상 희극적인 릴리프가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고상하시군요. 그 시절의 변태 신사들의 비밀 독서회 말고, 요즘의 신사들은 어떤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취향을 즐깁니까?

    “주인이 문을 잠그고 혼자 일하는 예약제 위스키 바 같은 곳이죠. 한남동 위스키바 H도 즐겨 갑니다.”

    -그곳에 가면 하정우 씨와 한잔 할 수 있나요?

    “사실 저는 주로 한강에 있습니다. 한강 다리 밑이나 근처 오래된 식당에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걷거나 제자리 뛰기를 하느라 사실 아방궁 같은 곳엔 갈 시간이 없죠.”

    -무슨 말이지요?

    “만보계를 차고 있으면 정말 깜짝 놀랄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하루에 2만5천~3만 보를 걸어요. 20Km 이상을 걷는 셈이죠. 하루에 얼마나 걷는 지 친구들과 기록 경쟁을 하면서요.”

    나중에 보니 박찬욱 감독도 인터뷰가 진행된 카페에서 수시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시작해서 ‘비스티 보이스' ‘추격자'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등 하정우에겐 기지, 용맹, 잔인함 같은 제어되지 않는 수컷의 힘이 있는데, 최근 ‘군도' 암살' ‘아가씨' 같은 영화들에선 절제되거나 멋을 부린 일종의 ‘양식화'된 연기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느끼나요? 백작님? 아니 아저씨?

    “시대물이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특히나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은 영화적이면서도 연극적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그분은 초기엔 문어체 대사로도 유명했지요. 이번엔 더 문학적이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더 딱딱하게 대사를 해야 붙는 경향이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양식적인 연기와 귀여운 연기를 동시에 해냈다는 것이 연기적 성과라면 성과겠지요.

    “체면을 갖춰 얄밉게 하면서도 한편 조금 어수룩하고 귀여운 느낌을 자아내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박 감독님이 제 귀여운 모습을 좋아했어요.”

    육체적으로 하정우의 배우 유전자는 투박하고 검은 피부, 조각한 듯한 기다란 콧날 그리고 미간과 눈가, 입주위에 잡히는 놀랄만큼 풍성한 주름으로 나타난다./사진=이태경 기자
    육체적으로 하정우의 배우 유전자는 투박하고 검은 피부, 조각한 듯한 기다란 콧날 그리고 미간과 눈가, 입주위에 잡히는 놀랄만큼 풍성한 주름으로 나타난다./사진=이태경 기자
    -한 편의 영화와 그 캐릭터를 그리는 화가로서 이중생활을 해왔는데, 이번에도 당연히 백작의 초상화를 그렸겠지요?

    “이번엔 영화 ‘아가씨'를 찍는 데 에너지를 꽉 채워 썼어요. 그림 그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어요. 지난 3월에 하와이에서 잠깐 15점 정도를 그리긴 했지만, 제 캐릭터인 백작의 초상화는 아니었어요.”

    -그림은 직접 그렸습니까?

    “물론이죠. 아버지와 조선족 아주머니가 재미 삼아 덧칠을 한 적은 있습니다(웃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굉장히 조심스럽네요.”

    -박찬욱 감독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어떤 컬러가 어울릴까요?

    “녹색이 생각나는군요. 녹색 바지에 흰색 티셔츠, 검은색 재킷 정도가 어떨까요?”

    -박찬욱 감독이 배우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친근하고 모호합니다. “이것과 저것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이 주를 이룹니다. 어떤 시선으로든 해석할 수 있어요. 단정과 이분법이 없죠. 그래서 모이면 계속 대화를 해요. 모호한 상황에서 모호하지 않게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요.”

    -첫 만남은 어땠지요? 그때도 모호했습니까?

    “수줍었지요. 종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커다란 방을 빌려 단둘이 만났는데, 너무 불편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도저히 해결이 안 돼서 중재자로 전계수 감독을 불러야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주류 감독들의 사랑을 받으며 동시에 그 많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사의해요.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나홍진, 류승완, 최동훈, 윤종빈 등등. 김지운, 봉준호, 이창동 빼고는 다 하정우라는 공통분모와 만나더군요.

    “하루빨리 김지운, 봉준호, 이창동 감독과 작업하고 싶습니다(웃음).”

    한편으로 거칠고 한편으로 싹싹한 하정우. 내년이면 마흔이다./사진=이태경 기자
    한편으로 거칠고 한편으로 싹싹한 하정우. 내년이면 마흔이다./사진=이태경 기자
    -김기덕 감독의 ‘시간'과 ‘숨',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는 대단히 원시적이고 주변적이며 모호하고 충동적인 하정우의 조각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민자 남자와 백인 여자의 사랑을 그린 ‘두 번째 사랑'에서도 영어 연기를 하는 이방인도 산뜻했죠. 감독이자 화가이자 배우로 1인 3역을 하고 있는 지금, 너무 바빠서 그 시절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요?

    “글쎄요. 어린 나이에 했던 거친 연기도 좋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저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어요. 아주 바쁘긴 하지만, 매 작품을 통해 진화하면서요. 박찬욱의 세계와 만나면서 제 생각이 또 달라졌죠. 저는 계속 탐구 중입니다. 함께 작업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얼마 전에 다시 ‘대부3'을 봤어요. 1부와 2부에서 젊었던 알 파치노가 늙었더라고요. 배우 입장에서 짠했어요. 저도 영화를 하면서 늙어가겠지요. 20대 후반에는 ‘비스티보이즈'와 ‘멋진 하루'를 했고, 30대 후반에는 ‘아가씨'의 백작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이 뭐가 달라졌나요?

    “흰 수염이 8개 나왔어요. 새치가 많은 집안이라 금세 은발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박찬욱 감독과 비슷해지겠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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