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미래일기]⑤ 완벽한 집을 떠나며 "직장에서 해고되면, 집값 하락 우려...이웃의 아파트 퇴출 압박"

조선비즈
  • 조선비즈 문화부, 편석준 작가
    입력 2016.06.07 07:00 | 수정 2016.06.07 08:36

    직장에서 해고되면, 해당 정보가 곧바로 이웃에게 전달돼 ‘퇴출’ 압박을 받게 된다. 무직자의 존재는 집값 하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내 점심 메뉴는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 부서원들의 손떨림, 심박수를 통해 정해진다. IT소설집 ‘10년 후의 일상’에 수록된 33편의 짧은 소설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26년 우리의 흔한 일상을 보여주는 단편 소설 7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실내에서 흡연하면 옆집에 암 발병률 수치 즉각 전달
    직장에서 해고될 경우 집값 하락 정보로 분류돼 이웃의 따가운 눈총받아


    엄성훈 그림
    김치볶음밥에 올릴 달걀프라이를 먼저 만들었어야 했는데, 아차 싶었다. 아들 명식이에게 꼭 달걀프라이가 올라간 김치볶음밥을 먹이고 싶었는데. 아들의 입맛은 나와 기이할 정도로 비슷했다. 나는 재빨리 하나밖에 없는 프라이팬을 설거지하고 달걀을 정성스럽게 깨뜨려 넣었다.

    “아빠,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동네 어둠과 이 동네의 어둠은 뭔가 다른 것 같아.”
    어딘가 철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시적인 것 같기도 한 얘기였다. 아들은 철학이나 문학에 소질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쓸 만큼,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 동네가 아들에게 괴리감과 이물감, 단절감을 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묵국물을 떠먹으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되뇌었다.

    원래 우리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은 신축된 지 1년밖에 안 된 한국 최고가 아파트였다. 달리 신식일까 싶게, 집 안 어딘가에서 몰래 담배라도 피우면 무조건 적발되었다. ‘니코틴 필터링 그물’을 둘러싸거나 아주 고도화된 전자담배를 피워도 소용이 없었다. ‘니코틴 필터링 그물’은 평소엔 마우스 크기로 접혀 있다가 하단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모기장처럼 펼쳐져 공기 중 니코틴 성분만 필터링해 주는 아주 획기적인 흡연 보조 제품이었다.

    그러나 흡연인들에게 일시적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주는 이 고마운 놈도 최신식 아파트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천장, 벽, 바닥에 촘촘하게 박힌 흡연 감지 센서는 단 1초라도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기만 하면 바로 적발했고 이웃주민들의 홈 시스템 디스플레이, 텔레비전, 등록된 스마트폰으로 즉시 경고를 보냈다.

    그뿐 아니라 몇 호에서 피운 담배 때문에 각종 암이 발병될 확률이 몇 퍼센트 높아지고, 그로 인해 건강보험료가 얼마나 올라가고, 게다가 민사소송을 청구할 경우 얼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까지 정보가 제공됐다. 아주 친절하게 환경전문가와 변호사를 바로 호출할 수도 있었다.

    담배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알레르기나 유전적 질환을 등록해 놓으면 이웃집에서 발생하는 음식 냄새나 소음으로 인해 내가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상의 피해를 어느 정도 봤는지도 분석해 알려 주었다. 변기에 오줌을 누면 자동적으로 당뇨병을 체크했고, 현관 바닥에 설치된 하중 센서와 천장에 설치된 적외선 센서를 통해 가족의 비만도가 실시간으로 계산됐다. 데이터들은 모든 세대에게 공유되었다. 이유는 집값이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건강관리를 넘어 신체도 완벽해야 했다.

    완벽한 사람들이 완벽한 방식으로 살아야 적어도 한국 최고의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입주자가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해도 기존의 입주민들이 투표해 전체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입주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운동하고 오래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식단 정보까지 이웃들과 공유되기 때문에 건강식으로 먹는 노력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잠시 가족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보다 빠른 속도로 상무까지 오른 나였지만, 전무가 되기까지는 그 속도가 매우 더디었고 결국 전무 직위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 역시 입주민들에게 공개되었다.

    나의 해고는 집값이 3% 하락할 수 있을 만한 정보로 분석되었다. 이미 입주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이웃의 건강과 생명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지속하지 않는 한, 강제로 내쫓을 수는 없었다. 입주민들 자신이 안 좋은 상황에 처할 때를 대비해 만든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눈치는 예외였다.

    “명식아, 맛있니?” “응, 아빠가 해주는 김치볶음밥하고 어묵국은 항상 최고야!” 물론 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떠나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엘리트로만 살아서 그런지 그 아파트에 계속 있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를 통해 명식이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맨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결국은 이렇게 될 거라 예감했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희 아빠 때문에 집값 떨어진대.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 들어올 수도 있댔어.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반드시 나쁜 짓을 한다더라. 너 그냥 다른 데서 살면 안 되냐? 우리가 무섭잖아.나는 최소한 중견기업의 전무가 되거나 중소기업의 이사는 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 2주 동안은 이력서를 보낼 곳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 명식이가 나를 보러 오는 바람에 만든 이 간단한 음식이 지난 일주일간 내가 했던 유일한 생산적인 일이다.

    떠나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고 해서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주위 평판에 신경 쓰고 아들의 교육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에게 차마 다른 곳으로 가족 전부가 이사하자고 말하지 못한 건 나였으니까. 부부가 별거해서 사는 것이나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은 집값 하락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아파트에서는. 그런 집에 살 정도면 돈은 충분히 있으니(실제로 나도 평생 놀아도 될 만큼의 자산은 갖고 있다)

    그보단 명예와 직위, 자리와 간판이 더 중요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차리면 그건 오히려 집값 하락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잡혔다. 요즘에 창업하는 사람의 99%가 2년 내에 망하고 마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도록 어묵 국물을 맛있게 떠먹는 것밖에는 없었다

    10년 후의 일상 | 편석준 지음
    근미래 소설 ‘10년 후의 일상'의 작가 편석준은 IT대기업을 다니던 회사원이었다가 스타트업 창업을 한 CSO였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작가로서의 시간을 올곧이 보내며 인공지능 시대의 IT소설집을 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최종심에 응모작 3편이 오른 적이 있다. 총 33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먼 미래의 과학 발전을 소재로 하는 기존의 SF소설보다는 가까운 미래의 과학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점심 메뉴 결정 앱’을 사용하는 정도의 근미래가 오히려 현실성있게 느껴져 줄거리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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