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인쇄 공장터의 이색 변신"…'열정도' 골목, 장진우∙홍석천 거리에 도전장

조선비즈
  • 이승주 기자
    입력 2016.05.31 06:33

    저녁 시간이 되자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과 양복 차림의 직장인 부대, 대학생과 동네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골목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골목에는 문 닫은 인쇄소 공장 사이로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는 음식점과 카페들은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 87길 일대.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열정도 골목’ 주소다. 열정도란 ‘열정이 머무르는 섬’이라는 의미다. 높게 뻗은 깔끔한 용산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낡고 오래된 인쇄 공장들이 모인 열정도 골목은 밖에서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낡은 뒷골목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막상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낡은 공장들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엉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낡은 인쇄 공장이 이색 거리로…‘청년장사꾼’이 가게 6곳 동시에 내면서 시작

    이 지역은 지난 2001년 결정된 용산 제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의 일부로, 문배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해 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는 사이 주변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이른바 ‘죽은’ 골목으로 전락했다.

    활기를 잃어가던 골목이 활기를 되찾은 것은 지난 2014년 11월, 문 닫은 인쇄소 부지 6곳을 청년들이 한꺼번에 임차해 음식점을 선보이면서부터다. 김연석(34) 씨와 김윤규(29) 씨가 주축이 된 ‘청년장사꾼’은 ‘장진우 골목’이나 ‘홍석천 거리’ 같은 상권을 만들고자 6개의 가게를 한꺼번에 문을 열었다. 열정도 골목의 시초다.

    열정도 골목 입구. /이승주 기자
    용산구 경리단길 옆 회나무길은 청년 사업가 장진우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10여곳이 몰리면서 원래 이름보다 ‘장진우 골목’으로 더 유명하다. 이태원 해밀턴호텔 뒷골목(이태원로 27가길)도 연예인 홍석천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홍석천 거리’로도 불린다.

    청년장사꾼이 가게 문을 열기 전까지 백범로 일대는 사실상 상권이 전무한 곳이나 다름없었다. 인쇄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 두어 곳이 있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아스팔트 포장이 된 것도 최근 일이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임대료도 저렴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들이 가게를 임차할 당시 임대료 시세는 권리금 제로에 보증금은 3.3㎡(1평)당 100만원이 채 안됐고, 월세도 33㎡를 기준으로 70만~80만원 수준이었다.

    열정도 골목 주변에는 인쇄 공장이 많다. /이승주 기자
    김연석 청년장사꾼 공동대표는 “뜨는 상권에 가게를 빌려 운 좋게 입소문을 내고 ‘권리금 뻥튀기’로 돈 좀 벌고 가게를 접는 게 아니라 죽어있는 골목을 살리고 새로운 상권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홍대에서 가게 하나 얻을 자금으로 이곳에 가게 6개를 동시에 내면서 ‘열정이 머무르는 섬’이라는 의미로 ‘열정도’를 붙였다”고 말했다.

    ◆ 입소문 타면서 사람 많아져…타지 손님도 많지만 동네주민 발길 잦아

    저녁 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하나둘 열정도 골목으로 모여든다. /이승주 기자
    열정도 골목이 입소문을 타면서 상권도 많이 발달했다. 1년 반 사이 울퉁불퉁하던 비포장 도로가 깔끔한 아스팔트 길로 변했다. 열정도 골목에 새로 꾸려진 가게들도 15~20곳가량 된다.

    이색적인 분위기에 찾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초기엔 인터넷 블로그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동네 주민들이 더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김연석 대표는 “정확하게 계산해 본 것은 아니지만 초기에는 인터넷을 보고 찾아오거나 지인 소개로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동네 주민들이 더 자주 찾는 것 같다”면서 “손님 중 주민들과 외지인의 비율이 7대 3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열정도 골목을 찾은 숙명여대 학생 이현정(23) 씨는 “학교 주변에 이런 이색적인 공간이 생겨 친구들과 과제를 하거나 모임을 할 때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인근 용산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미국인 수잔 스피스(49)도 “아이들과 남편이 이곳의 흥겨운 문화와 분위기를 좋아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근처 가게에서 식사를 한다”며 “이태원처럼 북적이지 않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게 이곳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 임대료 오르고 매물 자취 감춰…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뜨는’ 상권이 되면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부작용이 있다. 임대료 폭등이다. 열정도 골목도 예외는 아니다. 백범로 일대 공인중개업소 얘기를 종합하면 열정도 골목의 임대료는 대로변 상권보다 저렴한 편이나 최근 2년 새 가격이 많이 뛰었다.

    청년장사꾼 가게 6곳을 직접 계약해 준 홍성수 프라임114공인 대표는 “당시만 하더라도 1층 전용면적 33㎡(10평)짜리 점포의 경우 권리금은 없고 보증금 1000만원 미만에 월세 70만~80만원이면 구할 수 있었다”며 “입소문을 타고 동네가 뜨면서 1년 6개월 만에 없던 권리금도 붙고, 월세도 30만~40만원이 올라 지금은 월 임대료만 100만~120만원은 내야 한다”고 말했다.

    골목 상권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매물도 씨가 말랐다. 가게를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 된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소의 설명이다. 홍성수 공인중개사는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매물이 없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하루 평균 2~3팀 정도는 가게를 알아보러 오는데 헛걸음만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임대료 상승 압박도 있다. H공인 관계자는 “뜨는 거리가 됐는데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 받고 싶지 않은 건물주가 누가 있겠느냐”며 “대놓고 (월세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는 아직 없어 보이지만 알음알음 조금이라도 올리려는 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C카페 사장은 “우리 가게는 아직 계약 기간이 좀 남아 있어 아직 임대료 인상 압박은 없지만, 주변에 월세나 보증금을 올려 달라는 얘길 들었다는 사람이 몇 있다”고 했다.

    K공인 관계자는 “인쇄 공장 중 일부는 이미 공장을 이전할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대료가 오르니 권리금이라도 많이 받고 괜찮은 곳으로 옮겨가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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