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부산의 한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관우는 심각한 ‘부조리’를 목격했다. 교내 발명 대회에서 다른 반 학생의 작품을 발명반 교사가 대신 만들어주는 모습을 본 것이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유독 심했던 학생이었다. 어린 관우는 억울했다. 교내 대회에서 우승해야 교외 발명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기장 6장에 걸쳐 부조리를 적었다. 일기를 보고 문제를 알게 된 관우의 담임 교사는 이 일을 공론화했다. 결국 관우는 교외 발명 대회에 출전했고, 이듬해인 1996년 특허청이 주최한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에서 1등을 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통령상을 받은 그의 발명품은 현관문 고정 장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명 ‘노루발’이라고 불리는 문 하단 고정 장치가 쉽게 부서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문 아래가 아닌 위에 철사로 연결해 손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때 처음 고안한 모델을 일기장에 적은 뒤, 3~4년에 걸쳐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간 끝에 완성품을 만들었다. 대통령상을 받은 관우는 단숨에 ‘스타’가 됐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러 격려했고, ‘공개 발명 아이디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그로부터 20년, ‘어린이 발명왕’ 이관우는 이토프(2004년), 포스트윙(2008년), 데일리픽(2010년), 버즈빌(2013년) 등 네 개의 회사를 만든 연쇄 창업가로 성장했다. 이 중 이토프와 데일리픽은 각각 네이버와 티켓몬스터에 매각했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버즈빌 본사에서 이 대표(33)를 만났다. 그의 옷차림은 다른 벤처 기업 CEO들과는 사뭇 달랐다. 셔츠와 벨트, 바지까지 검은색으로 단정하게 맞춰 입었다. 또렷하면서 활기찬 말소리에는 부산 억양이 강하게 묻어났다.
-어릴 때부터 발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초등학생 때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인 물리학자 이용후 박사가 고(故)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해서 더 흥미로웠죠. 저도 그 분처럼 세상의 본질을 파헤치고 제 아이디어로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발명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기술은 매각했나요.
"해외 바이어들이 찾아와 2억원을 줄테니 라이선스를 팔라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너무 어린 나이에 돈맛을 보고 붕 뜨면 좋지 않다고 판단하셨어요. 제안을 거절하고 라이선스를 무료로 개방하셨어요. 텔레비전 출연 제의도 모두 거절하도록 하셨죠."
-부모님이 사업을 하는데 영향을 주었나요.
"아버지는 7남매 중 장남이셨는데, 고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빈 땅에 공장을 세워 사람들을 고용해 경영하는 것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예술 활동'이라고 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어릴 때부터 옆에서 지켜보며, 사업가를 동경했죠."
그는 중학생때 아버지 공장의 금형 기계로 현관문 고정 장치를 2만여개 생산해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배우기 위해 경영대에 진학한 것인가요.
"네. 고등학생 때 이과였는데 교차 지원을 해서 서울대 경영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막상 경영대에 진학하고보니 사업을 가르치진 않더군요. 그래서 공과대학, 미술대학 수업도 들으면서 기술과 산업 디자인 등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경영대생이 공대 수업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요.
"경영대생이라는 점이 개성이자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한 학기 동안 로봇을 만드는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공대생들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로봇을 설계하고 제작했는데, 저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라 낙원상가에서 과학상자를 사다가 실제 로봇의 20분의 1 크기로 모형을 만들었거든요. 경영대생이 프리젠테이션은 잘 하잖아요. 그 모형을 영상으로 촬영해 발표했더니 공대생들이 신기해하더군요. 저희 팀 성적도 좋았어요."
2004년, 이 대표는 동아리 선배와 함께 첫 회사 ‘이토프’를 창업했다. 이토프의 사업 모델은 데워 먹는 즉석 식품에 바코드를 부착하고 전자레인지에 바코드 인식 장치를 달아,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정해진 시간만큼 자동으로 조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약 1년 간 바코드 인식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기술을 개발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어요. 국내 전자레인지 업체들의 생산 공장이 대부분 동남아시아에 있다는 것이었죠. 즉석식품의 바코드 인식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자레인지에도 바코드 리더를 부착해야 했는데, 공장이 모두 해외에 있으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전자레인지와 관련된 사업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관련 기술을 응용해서 QR코드와 유사한 모바일 코드를 SMS(단문 메시지)로 보내는 사업을 했어요. 당시 모바일 코드는 기차표·항공권 대신 사용되거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할인 쿠폰으로 활용되기도 했어요. 그때까지 모바일 코드는 SMS가 아닌 MMS(사진과 동영상을 첨부할 수 있는 장문 메시지)로 전송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MMS 가격이 200원으로 SMS(10원)의 20배였죠. 이토프가의 기술을 적용하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어요."
이 대표는 이토프를 2009년 7월 네이버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35억원. 당시 이 대표의 나이 26세였다. 첫 번째 회사는 성공적으로 매각했지만 그 다음 창업은 실패했다. ‘포스트윙’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저작권법을 위반한 콘텐츠를 찾아내는 기술을 선보였으나 예상보다 수요가 없어 2년만에 법인을 청산했다.
-창업 초기 단계부터 회사 매각을 염두에 뒀나요.
"미국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캐피탈은 벤처 기업에 투자할 때 세가지 요소를 고려한다고 합니다. 기업 가치가 2조원이 될 수 있는 회사인지 알아보고, 구글과 페이스북이 진출할 신사업 분야에서 1위를 할 수 있는 회사인지 따져본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투자할 회사 CEO에게 구글과 페이스북의 조직도를 보여주고 '아는 사람 이름에 표시하라'고 한답니다. 대부분의 벤처 기업을 구글과 페이스북이 인수하니, 이런 요소들을 따져본다는 것이죠. 창업을 할 때 매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면 조금 더 매력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셜 커머스 업체 데일리픽은 어떻게 창업하게 됐습니까.
"대학에 다닐 때 경영대학 내 컴퓨터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그 동아리에서 훗날 봉봉을 창업하는 김종화 선배를 만났습니다. 김 대표가 저보다 7살이 많아요. 제가 1학년일 때 김 대표는 병역특례를 마치고 돌아온 까마득한 선배였죠. 사업을 할 때마다 김 대표에게 자문하곤 했는데, 어느날 소셜 커머스 사업을 같이 하자더군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나요.
"김 대표는 매우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에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전략적으로 사업하는 타입이죠. 그래서 사업 전략은 김 대표가 짜고, 영업 등 발로 뛰는 역할은 제가 맡았어요."
데일리픽이 설립됐던 2010년, 국내 벤처 업계에는 여러 개 소셜 커머스 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티켓몬스터가 5월에 출시됐고 데일리픽은 7월, 쿠팡은 8월 출시됐다. 세 개 업체는 이용자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도 세 회사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루폰에서 데일리픽도 접촉했나요.
"당시 유럽 최대 인터넷 기업인 로켓인터넷의 올리버 샘워 CEO가 소셜 커머스 '시티딜(City Deals)'을 창업해 그루폰에 매각한 뒤, 그루폰에서 M&A를 맡고 있었어요. 한국에 와서 데일리픽에도 전화를 했죠. 그런데 독일식 영어 발음이라서 저희 여직원이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끊어버린 거에요. 이메일도 스팸 처리를 해버려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 날 오후 4시에 회사로 다시 전화가 왔고, 제가 받았더니 "한국 소셜커머스 업체에 투자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8시에 출국하려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 얘길 듣고 김종화 대표와 둘이서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인천 국제공항 인근 호텔로 달려갔어요."
두 사람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샘워 CEO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데일리픽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한 뒤 “회사를 매각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샘워 CEO는 그들의 ‘고집’에 반해 일주일 뒤 데일리픽 사무실에 홀로 찾아와 투자를 제안했다. 회사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가격 수준)을 기존 대비 2배로 높여줬다.
-그루폰에서 투자를 받기로 했는데, 왜 티몬에 회사를 매각했나요.
"그루폰과 투자 논의 중이라는 얘기가 티몬의 신현성 대표 귀에 들어간 거에요. 신 대표가 제게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나갔죠. 마침 그 날이 데일리픽을 설립한 지 3개월 되던 날이었어요. 제가 회사 창업 당시 직원들에게 '3개월 안에 티몬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였죠. 실적으로는 따라잡지 못했으니 술로 (신 대표를) 쓰러뜨려야 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 날 밤 이 대표와 신 대표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 사업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티몬의 초기 투자자였던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가 데일리픽을 찾아와 인수를 정식으로 제의했다.
-티몬의 인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티몬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데 사업 경험이 없다보니 기틀이 안 잡혀있더군요. 척추가 없는 오징어 같았어요. 반면 데일리픽 멤버들은 사업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아, 두 회사가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2010년 12월, 티몬은 데일리픽을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90억~100억원 사이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데일리픽을 매각한 뒤 티몬에서 운영 총괄 이사를 맡아 3년 간 근무했다. 이 대표가 합류했을 당시 티몬의 임직원이 200명에 불과했는데, 그가 회사를 나올 무렵 1200명으로 증가했다.
-회사를 티몬에 매각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사실 쿠팡에서도 매각 제안이 들어왔었요. 김범석 쿠팡 대표가 티몬이 데일리픽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듣고 밤 10시에 제게 전화를 했어요. 쿠팡에도 인수 기회를 달라고요. 그 때는 티몬과의 M&A 절차가 너무 많이 진행됐다는 이유로 거절했는데, 지난해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5조원 밸류에이션으로 투자하는 것을 보고 살짝 후회되더군요(웃음)."
-티몬을 퇴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티몬이 성공하면서 유학생들 사이에서 신현성 대표가 '롤모델'이 됐어요. 유학생 출신으로 고국에 돌아와 사업을 해 성공했으니 말이죠. 저는 반대로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해외에서 성공해보고 싶었어요. 순수 '국내파' 사업가들이 글로벌 벤처기업을 만든다면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이 대표는 티몬에서 받기로 한 스톡옵션 일부를 포기하고 퇴사한 뒤, 대학교 후배인 이영호 공동 대표와 함께 버즈빌을 창업했다. 버즈빌은 2013년 1월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이용한 광고 플랫폼 ‘허니스크린’을 출시했다. 잠금화면을 해제할 때마다 광고주가 제공하는 포인트를 지급받고, 이를 적립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서비스다.
버즈빌은 설립 초기부터 수월하게 투자를 유치했다. 2013년 5월 게임회사 위메이드로부터 10억원을, 같은 해 10월 일본계 벤처캐피털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30억원을 투자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LB인베스트먼트 주도 하에 KTB네트워크, 포스코기술투자, 컴퍼니케이파트너스, ES인베스터로부터 130억원을 투자 받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투자를 먼저 제안했나요.
"티몬의 신현성 대표 결혼식에서 우연히 이은우 소프트뱅크벤처스 상무를 만났어요. 이 상무가 당시 버즈빌의 경쟁사인 NBT('캐시슬라이드' 운영 업체)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버즈빌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캐시슬라이드와 허니스크린을 비교해본 거죠. 결국 허니스크린을 선택해 버즈빌에 30억원을 투자했어요."
-버즈빌 입장에서 경쟁사인 NBT는 어떤 존재입니까.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사가 꼭 있어야 해요. 티몬과 쿠팡, 위메프가 치열하게 경쟁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소셜 커머스 시장이 성장했잖아요. NBT의 박수근 대표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에요. 박 대표가 과거 이토프에서 인턴 사원으로 근무했거든요. 박 대표가 캐시슬라이드를 출시하고나서 신현성 티몬 대표에게 엔젤(개인) 투자를 받으러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제가 신 대표에게 '박 대표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추천해주기도 했죠.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에요."
현재 버즈빌은 해외에도 진출해 일본 도쿄와 대만 타이페이, 미국 새너제이에 지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100억원의 매출을 냈으며, 올해 예상 매출액은 400억원이다.
-버즈빌의 성장 동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저는 모든 사람들이 CEO의 마음으로 일하는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임직원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늘 신경 써요. 두 달에 한 번 씩 사무실 내 자리를 재배치하는데, CEO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을 섞어서 추첨해요. 회식 메뉴나 야유회도 투표를 통해 결정합니다."
-만약 직원이 창업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가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아요. 미국 핀테크 업체 페이팔에서 나와 창업한 사람들을 가리켜 '페이팔 마피아'라고 부르잖아요. 버즈빌 직원들도 저보다 더 뛰어난 창업가가 돼서 '버즈빌 마피아'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티몬에서도 제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잡지 않았고, 저 역시 버즈빌에서 일하던 문성욱 매니저가 독립해서 블라인드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응원해줬어요."
-예비 창업가나 벤처 업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벤처 업계에 간혹 '대표 놀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텔레비전에 많이 출연하고, 본업보다는 책을 쓰고 강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저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강연 외에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요. 진정성을 갖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대외 활동보다는 본업에 집중합니다. 다른 데 많이 신경쓰다 보면 회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