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해외 이코노미스트](18) 심승규 도쿄대 교수 "노동유연성, 고임금자에 적용돼야…저임금자는 보호 필요"

조선비즈
  • 연선옥 기자
    입력 2016.05.17 09:15

    미국 노동 유연성, 2~3년 주기로 임금사다리 올라가는 고액연봉자 대상
    저성과자는 고용안정성 필요…기업과 정부는 안정성, 직업훈련 등으로 보호해야

    유능하고 업무 성과가 좋은 직원은 회사의 지원 혜택을 독점한다. 높은 연봉을 받고 연수 등 다양한 훈련 기회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누린다. 게다가 이들은 직장 선택의 폭도 넓다. 이 회사가 아니어도 그를 고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투자는 일종의 리스크(위험)가 된다. 기껏 키워 놓은 직원이 이직(移職)하면 기업은 그에게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 하지만 위험을 우려해 우수한 직원을 홀대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 기업은 성과 좋은 직원에게 높은 연봉과 훈련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일본 도쿄대에서 노동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는 심승규(41) 교수는 “기존 연구들은 노동자의 이직을 우려한 기업이 인적 투자에 소극적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연구 결과, 기업은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는 ‘이연임금제도(wage back-loading scheme)’와 직업훈련을 연계해 노동자의 이직에 선제적으로 대처한다”고 밝혔다. 이연임금제도란 연공서열 임금체계에서 숙련도가 낮은 젊은 노동자에게는 적은 임금을 지급하고 숙련도가 올라간 고참 노동자에게는 많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노동자가 장기간 숙련도를 높이게 하는 유인이 된다.

    서울대 경제학과(96학번)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심 교수는 노동경제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다. 연구 업력이 길지 않지만, 노동시장 탐색이론 분야 중 임금과 보상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을 미국 경제학회(AEA)와 세계계량경제학회(Econometric Society) 등 주요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아 발표했고, 현재 학술지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심 교수는 노동경제학 중 노동시장 탐색이론을 응용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박사 과정에서는 노동시장 탐색이론과 특정 임금 결정 이론을 접목시켜 새로운 이론 모델을 만들고, 데이터에서 여러 임금 상승 요인을 분리 추출해내거나, 직장 내 직업 훈련과 임금 상승의 관계를 재조명한 연구들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양육시설에서 자라는 한국 아동을 추적하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심 교수를 지난달 29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동경제학을 연구하는 그에게 한국 노동시장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질문했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아 의견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면서도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 문제나 이에 대응하는 정책 방향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하는 대신 미국 노동시장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시사했다. 심 교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이직할 수 있는 고임금 노동자(생산성이 높은 노동자)에 적용되는 것”이라며 “생산성과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는 낮은 임금을 받는 대신 직업 안정성이 오히려 높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시장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는 유연성을 잘못 받아들여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심 교수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 중 생산성 높은 근로자는 별로 없고 저숙련 근로자나 혹은 해고된 노동자가 많다면 기업의 채용 유인은 줄어들게 되고 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정부의 노동시장 해법은 임금사다리를 세우는 한편 저숙련 노동자에 대한 안전망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심 교수와의 일문일답.

    - 노동시장 탐색이론은 무엇을 연구하는 분야인가.

    “기존 노동경제학 연구는 대부분 시카고 학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게리 베커(Gary Stanley Becker) 교수의 ‘완전 경쟁적 노동시장’ 이론에 기반한다. 이 이론은 구인과 구직에 탐색 비용이 없다고 가정한다. 반면 2010년 노벨상을 수상한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 교수와 대일 모텐센(Dale Mortensen) 교수, 크리스토퍼 피사라이즈(Christopher Pissarides) 교수가 제안하고 발전시킨 ‘노동시장 탐색이론’은 구인과 구직 활동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을 도입했다. 이전 연구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노동경제학의 ‘마찰적 실업’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노동시장 탐색이론은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발전돼왔고, 지금은 실업 문제 뿐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를 분석하는 하나의 정형화된 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전통 이론은 모든 노동자가 정확히 자신의 생산 기여분을 임금으로 받고 기업 이익은 항상 제로(0)라고 가정하지만, 노동시장 탐색이론은 기업과 노동자가 특정한 임금 결정 이론에 따라 생산 기여분을 나눈다고 본다. 자연히 노동시장 탐색이론은 ‘임금’과 ‘보상’ 문제로 연결된다.”

    - 이 분야 연구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을 좋아했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인력 동원, 인력 배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때는 다른 대학과 함께 일일호프를 열고 ‘꾸러스’라는 야구팀을 만들어 학내 대회에도 출전했다. 서울대 금융경제 연구 세미나(SFERS)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이 조직은 지금 서울대 경제학부의 유일한 학술동아리로, 학생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또 김선구 교수의 조직 및 관리 경제학 수업을 듣고 조직 구성, 기업 구조 부분에 관심이 커졌다. 그리고 박사 과정을 거치며 관심 분야가 기업 내 임금 결정 이론, 기업의 직업훈련, 인적 자본 이론, 실업 문제 등으로 바뀌었다.”

    - 그동안 수행한 연구를 소개해달라.

    “미국 노동시장을 연구한 박사 논문을 통해 임금 상승분 중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인상분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고, 기업이 이연임금제도와 직업 훈련을 연계해 노동자의 이직을 효과적으로 줄인다는 사실도 이론적으로 밝혀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기업은 노동자의 빈번한 이직을 줄이기 위해 ‘생산성과 관계없이’ 점진적으로 임금을 인상한다. 이 점에 착안해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 ▲노동자의 이직 ▲기업의 이연임금제 시행이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각각 얼마나 기여하는지 나눠 분석했다. 연구 결과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임금 상승분은 전체 상승분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또 미국처럼 이직이 빈번한 경우, 기업들이 직업교육을 얼마나 활용하는지 연구했다. 기존 연구들은 노동자의 이직을 우려한 기업이 노동자의 인적투자에 소극적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연구 결과 기업들이 이연임금제도와 직업 훈련을 연계해 노동자들의 이직을 선제적으로 줄이고, 동시에 직업훈련 등 노동자의 인적투자에 공격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했다.”

    - 예를 들면.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시장을 예를 들어보자. 어느 강력한 기업이 구단 하나를 인수해 우수한 선수들을 공격적으로 모집하면, 다른 구단들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된다. 이 때 더 많은 선수들은 낮은 연봉을 감내하면서 마이너리그로 진입한다. 메어저리거가 되면 더 높은 보수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연임금제도인 셈이다.”

    다른 구단들의 마이너리그 투자는 기업들의 젊은 직원들에 대한 인적투자와 비슷하고, 많은 선수들의 마이너리그 진입은 초임이 낮은 직업에도 지원자들이 몰리는 것과 유사하다.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숙련도 높은 고참 노동자로 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숙련 노동자들의 과잉 공급이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억제한다는 연구도 눈에 띈다.

    “OECD 등에 따르면 한국, 일본, 캐나다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이른바 ‘묻지마 대학 진학’이 만연하면 대학을 졸업한 상당수 노동자들은 고졸자가 하던 업무를 맡는다. 이렇게 고졸자와 대졸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구분은 모호해지는데 왜 두 근로집단의 임금 격차는 확대되고 대학 진학률은 높아지는지, 그리고 노동자의 학력은 높아졌는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는지 살펴봤다.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기술 발달로 고급 인력 수요가 증가할 때 대학 교육이 질적으로 향상되기보다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대학 교육의 양적 팽창은 기업이 대졸 노동자를 우선 채용한 뒤 내부적으로 노동자를 능력에 따라 재배치 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대졸 노동자 비율이 증가하고, 고졸 노동자의 채용 기회와 실질 임금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계속 교육 투자를 하도록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기업이 같은 업무에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결과로 이어져 비효율을 가중시킨다.

    캐나다는 지난 20~30년 간 팽창적 교육 정책과 고학력 이민으로 대졸자 비중이 크게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대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1차 산업에 진입했다. 그 결과 해당 산업군 내 대졸 노동자 비중은 증가했지만, 전체 산업에서 해당 산업군의 고용량과 산출량 비중은 감소했다. 동시에 전 산업에 걸쳐 고졸-대졸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확대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 노동시장 데이터를 잘 알고, 함께 연구할 의향이 있는 노동경제학자를 찾고 있다.”

    -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최근 30년 사이 대학 진학률이 크게 증가했다. 한국에서 왜 학력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어떤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또 이런 현상이 비정규직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데이터가 확인되는 대로 연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를 함께 할 학자를 찾고 있다.”

    - 노동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비정규직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노동 시장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호봉제를 폐지하고 근로 형태를 계약제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고, 계속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 사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더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대신 미국의 사례를 얘기할 수는 있다. 미국에서는 100개 일자리가 생기면 60개는 현재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가 가져가고, 나머지 40개는 실직자들이 가져간다. 전체 일자리의 60%는 이직 수요인 셈이다. 또 미국 노동자들은 첫 10년 간 평균 7개 직장을 다니고, 미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백인 남성 고졸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2년 남짓이다. 평균적으로 첫 직장에서 3년이 지나기 전에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인데,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임금 사다리(wage ladder)를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 관련 논문이 있나.

    “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이직을 통해 임금 사다리를 올라가는 속도가 충분히 빠르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기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래서 다른 선진국보다 미국의 대학 진학률이 낮다고 분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생들은 졸업을 유예하면서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려는 성향이 강한 한국 노동시장에 큰 시사점을 준다.

    권위 있는 경제학술지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2003년 발표된 논문(Burdett and Coles)에 따르면 이렇게 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는 기업이 노동자의 이직을 막기 위해 장기계약에 기반한 호봉제, 이른바 이연임금제를 활용한다. 내 박사 논문에 해당 이론 모델을 확장하고, 구조추정 기법을 사용해 실증 분석을 수행한 내용이 실렸다. 나는 미국 패널 데이터를 이용해 미국 노동자 임금에서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임금 상승분을 제거해도 이직과 그로 인한 호봉제적 성격에 기인하는 임금 상승분이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을 분석했다. 호봉제를 경직된 노동시장의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버려야 할 유산이라고 인식했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 연구 결과다.”

    - 미국 노동시장의 상징인 ‘유연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유연성과는 다른 것인가.

    “그렇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은 노동자의 빈번한 이직에 따른 결과다. 한국은 ‘짧은 근속연수’라는 피상적인 것만 조급하게 따라 하다 보니 반대로 기업에 의한 유연화를 지향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성과가 우수한 노동자를 임금 사다리에서 올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낮은 노동자들을 임금 사다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노동시장 유연화 개념을 오인한 것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처럼 손쓰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 잘못된 노동 유연화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정리 해고된 구직자는 다른 기업이 선호하는 인력이 아니다. 그런 노동자는 결국 실업에 빠질 확률이 높다. 또 구직자 풀에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나 해고된 구직자가 많으면 기업은 채용 자체를 줄이게 된다. 소위 스펙이 좋지 않은 회원이 대부분인 결혼정보업체가 다른 회원을 모집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생산성이 낮은 구직자가 노동시장에 많으면 장기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장기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 부담은 사회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비정규직, 저성과자 문제는 시장 시스템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이들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들이 직업훈련을 받고 경험과 경력을 쌓아 생산성을 향상시킬 있는 기회를 주고 보호해야 한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 혹은 여성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 저성과자의 직업 안정성을 높이고, 정부가 실업급여를 지급하기보다 고용자가 기본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성과급을 도입해야 하는 대상은 높은 임금을 받고 언제든지 이직이 가능한 고성과자들이다.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여나가는 대신 정규직의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성과급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생산성 높은 노동자들은 임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는 임금 사다리 안에 머물며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이는 자칫 매칭 외부효과(matching externality)로 인한 시장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사실 우리 정부가 롤 모델로 삼는 미국 노동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그런 구조가 아니다.”

    - 일본에서 연구하면서 특별히 한국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있나.

    “일본의 체계적인 친일파 양성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일본은 개발도상국의 정부 관료를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일본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도록 지원한다. 이때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금은 일본의 개발도상국 원조에 포함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렇지만 수혜자들이 일본에서 머무르며 공부하기 때문에 지원금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일본에서 공부한 이들은 그들의 학진을 형성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높은 직책을 맡는다. 체계적으로 친일 인재가 양성되는 것인데, 이들은 일본이 해당 국가에 진출할 때 좋은 교두보 역할을 한다. 기회가 있어 이런 개도국 관료 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국립 대학에서 한 학기 강의를 했는데, 당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각 개도국들의 기획재정부, 중앙은행에서 온 전도 유망한 젊은 자원들이었다.(강의는 기재부반, 중앙은행반으로 구분돼 이뤄진다.) 친일파는 역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양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런 시스템이 교육 비지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 일본 학생은 받지 않고, 개도국의 젊고 유망한 관료와 그들에게 지원되는 국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설립된 대학, 대학원 과정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속 학교가 개도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일반 대학들도 장학금을 주며 외국인 일반 유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일본만큼 체계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개도국 관료 양성에 주력하는 시스템이라고 보기 어렵다. 교육 기관을 따로 설치할 필요 없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을 활용하고, 정부의 개도국 원조 자금을 활용하면 우리도 일본처럼 개도국의 젊은 관료들을 친한파로 육성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교육 비즈니스 모델로서, 대학 구조조정의 방안에 활용할 수 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현지 관료들 사이에서 ‘한국 ○○대학 동문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스콘신 박사 과정은 많은 학생을 컷오프(cut off)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같이 입학한 34명 중 최종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은 13명 정도다. 나는 한국에서 학부만 마치고 바로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시작해 고생이 심했다. 기본적인 영어, 수학이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에피소드가 있다. 위스콘신 첫날 거시경제학 강의를 들어갔는데 전혀 본 적 없는 동태 모형 분석 수식들이 쏟아졌다. 시간표가 수학으로 바뀌었는데 영어가 안 들려 공지를 알아듣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이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고학년이 되면서 따라잡고 적응하게 돼 졸업할 때가 되니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위스콘신이 아닌 조금 덜 어려운 학교에 갔더라면 내가 과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 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위스콘신을 추천한다.”

    - 앞으로 연구 계획은.

    “한국과 일본의 ‘학력 인플레이션’ 연구를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최근에는 환경경제학 분야도 공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해물질 배출권 거래제도 논의가 한창인데, 대부분 논의는 한 국가가 환경세(Pigouvian tax)를 부과하는 경우와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는 경우 두 가지를 비교해 두 제도의 기대 효과가 거의 비슷하거나, 혹은 어떤 특정 상황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 제도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나라가 환경세를 도입한 나라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것과, 점점 더 많은 나라가 배출권 거래제도를 도입하면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혔다. 배출권 거래제가 갖는 경쟁적 우월성과 관련된 후속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양육시설에서 자란 아동, 청소년들의 성장 과정을 추적해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가정,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야수유키 사와다 도쿄대 교수와 이정민 서울대 교수,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팀을 꾸려 한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실험을 병행하고 있다. 생물학적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동과, 인위적인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동, 그리고 가정이 아닌 양육 시설에서 자라나는 아동의 성장 과정을 추적해 가장 중요한 인적 자본 형성 시기에 가정이 하는 역할을 분석하고, 시설에서 자라는 아동에 대한 복지정책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학생과 경제학적 사고의 툴을 배우려는 일반인에게 경제학 입문서를 추천하고 싶다. 학부 1학년 때 읽고 인상 깊었던 책이 ‘공공 문제 경제학’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다. 공공 문제 경제학은 범죄, 매춘, 마약 등의 단속에도 적정 수준이 있다는 것, 법률의 집행은 도덕률을 떠나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분석해서 적정 수준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경제학적인 명제를 설명한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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