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달인]④ 노정석, 구글·탭조이에 회사 매각..."미래 먹거리는 AI(인공지능)"

조선비즈
  • 노자운 기자
    입력 2016.05.13 06:00 | 수정 2016.06.10 08:51

    1996년 4월 6일, 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의 전산 자료가 통째로 지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사 자료가 모두 삭제됐을 뿐 아니라 비밀번호까지 변경됐다. 시스템 작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포항공대의 ‘뇌’에 침투한 사람은 라이벌 학교인 한국과학기술원(이하 카이스트)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노정석이었다. 그는 카이스트의 해킹 동아리 ‘쿠스(KUS)’를 이끌고 있었다. 당시 카이스트 전산망이 뚫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포항공대 해킹 동아리 ‘플러스(PLUS)’의 도전으로 여기고 보복에 나선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노정석은 40일 간 구치소에 수감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해킹 전쟁 이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노씨는 모두 다섯개 회사를 창업했다. 그 중 보안 업체 인젠은 2002년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켰고 테터앤컴퍼니는 2008년 구글에 팔았다. 2014년에는 파이브락스를 미국 최대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업체 탭조이에 매각했다.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CSO /노자운 기자
    연쇄 창업가로서 성공한 노 대표는 최근 가상현실(VR) 콘텐츠를 만드는 벤처 기업 리얼리티리플렉션을 창업했다. 손우람씨가 CEO를 맡고 있다. 노 대표는 CEO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 최고전략책임자(CSO) 직함을 갖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잠원동 리얼리티리플렉션 본사에서 노 대표를 만났다. 프로 카레이싱 선수로도 활동 중인 그는 평소 자유롭고 편안한 옷차림을 즐긴다. 이날도 갈색 가죽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1996년 해킹 사건 이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당시는 아직 학생이었고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돈을 벌려고 한 건 아니어서 그랬는지, 주변 분들이 예상보다 좋게 봐주셨어요.”

    -그 사건 이듬해 보안업체 인젠을 창업했죠.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7년, 학교 선배들이 인젠의 창업 멤버로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제가 해커 출신이다보니 역으로 보안도 잘 할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거죠. 사실 그 때는 큰 포부나 비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공부를 못해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업을 게을리 해 학사경고를 여러 번 받다보니, 창업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인젠에는 얼마나 근무했나요?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2대 주주로서 2003년 초까지 약 5년 동안 근무했어요. 인젠이 2002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는데, 이듬해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나왔습니다.”

    노 대표의 창업이 매번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젠에서 나온 뒤 보안 업체 젠터스를 창업했으나 1년만에 청산했다.

    -젠터스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번째 회사에서 기술자 역할을 맡고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니, 경영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 후엔 바로 창업하지 않고 대기업에 다녔죠.
    “SK텔레콤에 1년 간 다니며 ‘개인화 서비스’를 담당했어요. SK텔레콤은 저에겐 학교와 같은 곳이에요. 학교 다닐 때 워낙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것을 모두 회사에서 배웠죠. 파워포인트와 엑셀 만드는 방법도 전부 SK텔레콤에서 배웠어요.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회사 내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2권씩 완독했어요. 프라할라드 교수의 저서 ‘경쟁의 미래’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CSO /노자운 기자
    -SK텔레콤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왜 그렇게 빨리 나온 건가요.
    “그 무렵 장병규 선배(현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파트너)가 검색 엔진 업체 ‘첫눈’을 창업하고 제게 해외 사업을 맡아보라고 했어요. SK텔레콤에 입사한 지 정확히 365일이 되던 날 퇴사했습니다. 회사에서 잡을까봐 퇴사 면담 전 노트북부터 반납해버렸죠. 지금도 당시 회사 선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첫눈에 근무하던 노 대표는 당시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 시장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색 엔진을 잘 만드는 일보다 검색할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합류한지 두 달도 채 안 돼 장 파트너에게 “다시 내 회사를 창업해야겠다”고 말했다.

    -첫눈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장 파트너의 반응은 어땠나요.
    “당연히 싫어했죠. 합류한 지 얼마 안 돼 이탈하면 회사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내 회사에 들어왔다가 자기 사업 하겠다고 나간다면 말리지 않고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제 밑에 있다가 사업하겠다고 나간 후배들도 상당히 많아요.”

    2005년, 노 대표는 테터앤컴퍼니를 설립해 블로그 제작 도구인 ‘테터툴즈’를 개발했다. 테터툴즈는 “창작물의 소유권을 창작자에게 돌려주자”는 이념을 갖고 있었다. 당시 네이버·다음 등 포털 업체들의 블로그가 사용자의 콘텐츠 소유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테터툴즈를 기반으로 탄생한 블로그가 ‘티스토리’다.

    -테터앤컴퍼니가 구글에 매각됐을 때 얘기가 궁금합니다.
    “인수가 결정된 직후 김창원 공동대표가 블로그에 “우리 회사가 구글에 인수됐다(We’ve been Googled)!”고 썼어요. 그러자 국내 매체보다도 외신이 먼저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아랍어 뉴스까지 나올 정도였어요. 구글이 아시아 회사를 인수한 첫 사례(일본 제외)였거든요. 그 후 지금까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벤처 기업 가운데 구글에 인수된 회사는 한 곳도 없습니다.”

    -테터앤컴퍼니 이후 구글에 인수된 한국 기업이 한 곳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때는 한국 벤처기업들이 여러 면에서 세계적으로 앞섰어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한국 벤처기업들은 기술적으로 앞서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나마 잘 나가던 게임도 최근에는 중국에 뒤처지고 있죠.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으로 클 수 있는 회사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두 번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이후 노 대표는 구글코리아에서 약 2년간 프로덕트매니저로 근무했다. 그는 “내게 SK텔레콤이 대학교였다면, 구글은 MBA(경영대학원)이자 어학원이었다”고 표현했다.

    파이브락스를 공동 창업한 노정석과 이창수(현재 탭조이 부사장). 이들은 파이브락스를 미국 탭조이에 매각했다. /노자운 기자
    노 대표의 창업 역사는 그 후로도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구글코리아를 나온지 한 달만에 카이스트 후배이자 SK텔레콤 동료였던 이창수 대표와 의기투합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사 ‘아블라컴퍼니’를 설립했다. 아블라컴퍼니는 이후 모바일 앱 사용자 분석 기업으로 변모해 사명을 ‘파이브락스’로 바꿨다. 파이브락스는 주력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1년 반만에 미국 탭조이에 인수됐다. 이창수 대표는 현재 미 탭조이 본사에서 프로덕트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끊임 없이 창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의미 있는 회사를 아직 못 만든 것 같아요. 그런 회사를 만든다면 저도 창업은 그만 하고 매일 코딩(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하며 살고 싶네요.”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어떤 회사입니까.
    “VR 기술 업체에요. VR에는 머신러닝(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등 AI(인공지능) 기술이 많이 들어갑니다. 사람의 동작을 일일이 학습해서 저장해둔 뒤 스스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원래 AI에 관심이 많았나요.
    “록펠러가 ‘나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 전에 살짝 들어간 것밖에 없다’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어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세상의 거대한 변화, 흐름을 잘 읽고 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약 10년 전 석유 산업과 AI 관련 머신러닝 산업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한 때 석유 산업에 푹 빠졌을 때는 석유가 어디서 많이 나고 하루 소비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어요. 올해 제가 한국 나이로 마흔 한 살이니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약 40년 남았는데, 그 40년 동안은 AI로 먹고 살 수 있을 겁니다. AI 산업에 뛰어들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잘 모르면 경쟁에 참여할 수도 없어요.”

    -AI 시대가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1970~1980년대에 기계가 자동화하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해고됐어요. 그들은 새로운 직업을 얻지 못하고 도태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대신 그들의 자녀 세대가 새로운 직업을 가진 ‘지식노동자’들이 됐어요. 이제는 지식노동자의 역할도 AI가 대체할 것입니다. AI 시대가 되면 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등장하겠죠. 지금은 다들 구글 ‘알파고’를 보며 신기해하지만 내년 여름쯤에는 훨씬 더 발전한 기술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킬 겁니다.”

    -AI 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에게 입시 위주의 공부를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업무 처리와 암기 등을 가르칠 게 아니라,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가르쳐야 해요. 아마 향후 5년 안에 모든 학생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영어 배우듯 공부하게 될 겁니다.”

    노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 중인 11살 난 아들(경민)에게도 “일단 뛰어난 엔지니어로 자라라”고 말한다고 한다. 옆에 두고 일일이 가르치지는 않는다. 유튜브의 프로그래밍 영상 주소(URL)를 아들에게 보내준 뒤 해결 과제를 던져준다고 한다.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CSO /노자운 기자
    -AI 시장은 구글과 같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인데, 벤처 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구글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구글과 ‘비(非)구글(구글이 아닌 기업)’ 간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구글만 할 수 있었던 일을 1인 기업에서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1인 기업이 직원 1000명을 가진 기업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지금 AI 업계에서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어느 단계까지 왔나요.
    “구글 딥마인드가 중학교를 졸업했다면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과 같아요. IT 업계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한 형이 일종의 ‘족보’를 써주고 떠납니다. 따라가는 후배들은 그 덕에 속성으로 학습할 수 있죠. 구글 같은 회사가 리더로서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게 ‘인류의 복’이라고 생각해요.”

    퇴근하면 집에 홀로 앉아 코딩하는 게 낙이라는 노 대표에겐 또 다른 취미 활동이 있다.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카레이싱을 하고 있다. 요즘도 2주에 한 번은 경기도 용인이나 강원 인제, 전남 영암 등 레이싱 트랙을 찾아 카레이싱을 한다. 아마추어 카레이싱 대회에서 총 3회 우승했으며 프로로 전향한 뒤 4위까지 올랐다.

    노 대표는 엔젤(개인)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다수의 스타트업에 5000만~1억원 수준의 초기 투자금을 출자해왔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의 초기 투자자로도 잘 알려졌다.

    -사업과 카레이싱, 투자까지 병행하려면 바쁘겠네요.
    “저는 이익을 기대하고 치열하게 투자하지는 않아요. 그저 스타트업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옆에서 구경하고 싶을 뿐이에요. 자동차를 워낙 좋아해서 좋은 차를 많이 사는데, 투자를 할 때는 아내에게 “올해는 차를 안 사겠다”고 약속합니다. 아내가 저의 최고재무책임자(CFO)거든요(웃음). 투자 한 번 할 때마다 포르쉐911 한 대를 안 사는 셈 치는 것이죠.”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이 창업도 잘 할 수 있을까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는 만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정말 대단한 사업(big thing)은 해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업이 실패할지 잘 알고 있어 지나치게 조심하기 때문이죠.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이 성공할 확률도 높아요.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분명히 뭔가를 배울 수 있거든요.”

    -창업해서 실패하기 쉬운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가졌나요.
    “논리적으로만 똑똑한 사람들요. 자신의 명료함에 스스로 감탄하는 사람들은 창업 초기 단계에 닥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워요. 대기업에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죠.”

    -요즘도 사업을 할 때 시행착오를 겪나요.
    “지금도 많이 겪죠. 실수하면서 많이 배운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너무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려 해요.”

    노 대표는 해외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할 때 아들 경민군을 데리고 다닌다. 아들에게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주일 간 강연을 준비하느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노 대표는 “겉으로는 멋져 보이는 결과의 뒤에는 그에 비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다”고 말했다. 여러 번 창업에 성공한 ‘창업의 달인’이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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