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확대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숨죽이며 떨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옥시)의 경영진들을 소환 조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사망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은 10일 곧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유사 제품을 판매한 유통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은 아직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은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등 다른 유통 기업들도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등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물론,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등을 원료로 한 제품을 판매한 기업들도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피해자들의 조사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 4월 28 가습기 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를 열고 재조사에 나섰다.
◆ 검찰 소환조사, SK케미칼·롯데마트·홈플러스로 확대
검찰은 10일 PHMG 공급업체인 SK케미칼 직원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SK케미칼은 질병관리본부가 폐 손상의 원인으로 지목한 PHMG를 생산해 옥시 등에 공급해왔다.
검찰 수사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수사에서 원료 물질 제조사의 형사 책임을 묻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
SK케미칼은 1990년대 중반부터 PHMG를 생산, 판매해왔다. 옥시는 2000년 10월부터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을 PHMG로 바꿔 판매했다. SK케미칼은 “PHMG를 만들어 중간 유통상에 넘겼을 뿐 직접 옥시에 납품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 수사의 속도로 볼 때 유해 가습기 살균 제품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들도 이르면 이번 주중 소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롯데마트는 2006년부터 PHMG 성분의 자체브랜드(PB) 상품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했다.
홈플러스는 2004년부터 PB 상품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를 판매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PB상품으로 각각 32명,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소환 통보를 받지 못했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지난달 18일과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계획을 밝혔지만, 피해자들은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검찰 수사를 앞두고 검찰에 사과한 것이다. 사전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피해자 모임 회원은 “홈플러스는 보상 재원은 물론 보상 시점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과”라고 했고, 다른 회원은 “사과로 될 일이 아니다. 내 가족이 가습기 살균제로 죽었는데 죄를 묻지 못해 참담하다”고 밝혔다.
◆ 피해자들, 테스코 항의 방문…"애경, 이마트, GS리테일도 수사해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최근 옥시 영국 본사 항의 방문에 이어 홈플러스의 대주주였던 영국 테스코 매장을 항의 방문했다.
김씨 등은 “테스코가 15명의 한국 아기와 산모를 죽였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CMIT와 MIT를 원료로 사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애경, 이마트, GS리테일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주요 성분이 PHMG·PGH인 제품과 CMIT·MIT인 제품으로 나뉜다.
검찰은 지금까지 PHMG·PGH를 원료로 사용한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만 수사해왔다. 정부가 2012년 CMIT·MIT는 폐 손상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경우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등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인터넷 카페엔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상품 관련 피해 사례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 사과 않는 애경… 피해자·시민 단체 질타
애경은 CMIT·MIT를 주원료로 하는 가습기 메이트를 2001년부터 판매했다. 환경단체는 이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 중 사망자가 39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애경은 사태 발생 이후 단 한 차례도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적도 없다. SK케미칼이 제조한 완제품을 판매만 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애경은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이라며 “CMIT·MIT 성분을 사용한 제품 사용자 중 1~2등급 판정을 받고 사망하는 등 피해가 확인됐다.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애경은 정부의 구상금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구상금은 정부가 피해자에게 장례비나 치료비를 먼저 지원한 뒤 가해 기업으로부터 해당 금액을 징수하는 제도다. 애경처럼 유통만 담당했던 다이소가 정부의 구상금 요구를 받아들인 것과 대조된다.
애경 관계자는 “향후 검찰 수사와 환경부,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의 추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수사·조사 결과에 따라 판매원으로서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수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4월 28일 국회 본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 검찰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며 “CMIT와 MIT를 원료로 사용한 애경과 이마트도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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