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GM 구조조정의 세 가지 교훈

조선비즈
  • 논설주간
    입력 2016.05.10 04:00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가 2009년 6월1일 뉴욕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당시 GM의 자산은 823억 달러인데 비해 부채는 1730억 달러나 됐다. 조기 회생은 고사하고 살아날 가능성조차 불투명했다.

    파산 신청 이후 GM은 두 개 회사로 분리됐다.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신설한 ‘뉴(New)GM’은 단독 입찰을 통해 구(舊)GM의 우량 자산만 골라서 인수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495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뉴GM에 투입했다.

    부실자산 처분과 채권·채무 정리 등 뒷처리는 모두 구GM이 떠맡았다. 뉴GM은 구조조정에 따르는 복잡한 문제에서 해방돼 부채 170억 달러의 ‘클린 컴퍼니(clean company)’로 출발했다. 파산 신청 한 달여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덕분에 GM은 2009년 235억 달러 적자에서 2010년 47억 달러 흑자로 실적이 급반등했다. 2004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이익을 냈다. 파산 신청과 함께 상장(上場) 폐지됐던 GM 주식은 2010년 11월 다시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GM 구조조정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GM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사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GM이 신속하게 경쟁력을 되찾고 다시 살아난 비결이 여기에 있다. 흔히 정부가 GM 구조조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GM을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분리하는 것은 구조조정 컨설턴트인 제이 알릭스의 아이디어였다. 알릭스는 여러 차례 GM의 혁신을 위한 컨설팅을 했고, 2년간 GM 자회사 CEO로 일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전문가이면서 GM의 내부 사정도 잘 꿰고 있는 인물이었다.

    알릭스는 당시 왜고너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GM 재무팀, 법무팀과 함께 세부 계획을 다듬었다. 뉴GM이 인수할 자산 목록을 세밀하게 작성했고, 왜고너 회장이 후임으로 헨더슨 부회장을 지명하는 시나리오까지 짰다. 실제 거의 모든 일이 그 구상대로 됐다.

    뉴GM 설립은 미국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방식이었다. GM 내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GM은 예상 가능한 상황에 맞춰 2개의 다른 대안을 더 준비했다. 미국 정부가 한 일은 3개의 계획 중 알릭스 팀의 방안을 채택하고,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이 거의 전부다.

    둘째, 손실 분담 원칙이다. GM의 기존 주주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채권자들도 큰 손실을 봤고, 노조와 퇴직자들도 임금과 연금·의료보험 문제에서 통 큰 양보로 회사 부담을 덜어줬다. 대신 이들에겐 뉴GM의 지분(持分)이 할당됐다.

    셋째, 공적자금 조기 회수다. 미국 정부는 495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지원하고 뉴GM의 지분 60.8%를 소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정부는 GM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경영진, 감사 자리에 ‘낙하산’을 투입하며 전리품을 챙기는 일도 없었다.

    정부는 당초 예정을 앞당겨 2013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GM에서 손을 떼면서 회수한 돈은 392억 달러에 그쳤다. 103억 달러의 국민 세금이 축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없었다. 공적자금 손실을 막는 것보다 GM이 최대한 빨리 민간기업 체제로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GM의 사례는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인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환경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GM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과 교훈은 국내 기업 구조조정에도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최근 논의 전개를 보면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대느냐 마느냐 하는 곁가지 문제에 온통 관심이 집중돼 있다. 나름 의미 있는 이슈이지만 그게 본질이 될 수는 없다. 한은이 출자하면 기업이 살고, 대출하면 기업이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최소 비용으로 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회생 가능성이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정리를 포함해 구체적인 계획과 전망이 나와야 구조조정의 비용도 계산할 수 있다. 손실 분담 방안과 함께 공적자금이든 뭐든 비용 조달 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 회생 계획도 없는 깜깜이 상태에서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문제가 해결되기는 하는 건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돈만 날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부실 경영 책임을 져야 할 기존 경영진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가 자기 이익만 챙기고, 전문 경영인은 그 수족 역할이나 하는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조선·해운업의 살 길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업계의 다른 전문가나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어찌됐든 조선·해운업에 대한 큰 그림이 나와야 구조조정의 방향과 수단을 결정할 수 있다. 지금은 정부와 한은이 핑퐁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