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서현민(35)씨는 요즘 필요한 물건을 주로 점심시간에 산다. 회사 근처 쇼핑몰에 들러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것이다. 식사는 간단히 해결하고,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황금 같은 주말을 쇼핑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아 평일 점심을 이용한다"고 했다.

서씨뿐만이 아니다. 실제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등 사무실이 많은 지역에 있는 백화점 점포에서 점심시간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그래픽 참조〉.

유통·패션·화장품 업체들이 '런치(lunch) 쇼핑족'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각종 이벤트를 열고, 직장인 밀집 지역에 매장을 늘리고 있다.

공짜 점심 주며 쇼핑 유도

주변에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쇼핑몰들은 점심시간에 쇼핑을 하는 직장인을 잡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서울 여의도 직장가의 한가운데 있는 IFC몰은 지난 2월 점심시간 직전 미니 샌드위치 같은 핑거 푸드(한입 거리 음식)와 쇼핑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었다. 고객에게 간단한 점심을 제공하면서 쇼핑을 유도하는 것이다. 지난달엔 평일 점심·퇴근시간에 한정해 일부 브랜드를 특별 할인하고, 직장인을 위한 패션 스타일링 강연도 진행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달 인근 직장에 다니는 20~40대 여성 중 구매 금액이 높은 3000명을 'H-오피스 레이디'로 선정해 20여개 브랜드를 최대 30% 할인해주고 있다. 비즈니스 의류로 소문이 난 신생 브랜드를 소개하는 임시 매장도 자주 열고 있다. 김영균 무역센터점 팀장은 "점심시간에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직장인들을 잡기 위해 원하는 사은품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 한복판에 대형 옷가게 등장

유니클로는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오피스 빌딩인 D타워에 대형 매장을 열었다. 직장인 밀집 지역에 SPA 브랜드(한 회사가 제조와 유통을 모두 맡는 초저가 브랜드) 매장이 들어선 것은 유니클로가 국내에 2005년 처음 진출하며 SPA 시장이 열린 이후 처음이다. 김지수 유니클로 매니저는 "과거 광화문의 경우 평일에는 구매력이 높은 유동 인구가 넘치지만 주말엔 썰렁해 패션업체들이 입점을 꺼렸다"며 "요즘 직장인은 직장 근처에서의 쇼핑을 꺼리지 않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장 이후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무렵 매장에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서는 경우가 종종 있을 만큼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문을 연 대형 의류 매장‘유니클로 광화문 D타워’. 점심시간 때 방문한 직장인들이 가득 들어차 발 디딜 틈 없이 매장이 붐비고 있다. 최근 유통·패션업계에서는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 쇼핑하는 직장인인‘런치 쇼핑족’을 잡기 위해 오피스 타운인 광화문·삼성동에 매장을 내고 있다.

색조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도 작년 8월 D타워에 출점했다. 백화점·쇼핑몰이 아닌 곳에 연 첫 매장이다. 베네피트 관계자는 "직장 여성들이 점심시간에 들러 '브라우(brow·눈썹) 바'에서 눈썹을 정리하고 쇼핑도 한다"며 "다른 매장과는 반대로 평일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문을 연 서울 삼성역 파르나스몰은 최근 '고급 직장인 상권'으로 뜨고 있다. 이탈리아 고급 문구 브랜드 몰스킨은 지난 22일 국내 첫 대표 매장을 파르나스몰에 열었다. 최근 '청담동 명품 요가복'으로 뜨고 있는 캐나다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도 청담동 1호점에 이은 2호점으로 파르나스몰을 택해 하반기에 개장한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노윤영 이사는 "파르나스몰은 구매력 높은 30~40대 직장인들이 대거 유입되는 곳"이라며 "고가의 브랜드 업체들이 입점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 1분기 전체 민간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0.3% 감소했다"며 "소비재 기업 입장에서는 그나마 소비력이 있는 직장인을 잡는 전략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