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서울 속 외국인]➂ 이태원 이슬람·아프리카 거리, 高임대료에 10년만에 휘청

조선비즈
  • 고성민 기자
    입력 2016.04.22 11:04 | 수정 2016.04.22 11:08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이슬람 사원 방향 언덕길을 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니 양옆으로 이슬람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케밥, 라마준, 사르마 등 이슬람 음식을 파는 이슬람 식당뿐 아니라 히잡, 토브 등 이슬람 전통 의류를 파는 옷가게와 이슬람 도서관까지 들어서, 간판만 보고는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착각할 정도다. 식당마다 ‘할랄(Halal·이슬람 계율에 따라 도축·가공한 고기·식품)' 인증을 받은 음식을 판다는 안내 표시도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태원 이슬람 거리에는 할랄 음식점, 이슬람 도서관, 이슬람 옷가게, 환전소 등이 있다. /고성민 기자
    이슬람 사원으로 올라가는 우사단로 초입 길을 가로지르는 옛 이화시장 골목인 보광로 60길은 ‘아프리카 거리’라고도 불린다. 사람들이 붐비는 인근 ‘이슬람 거리’와 달리 이달 초 찾은 아프리카 거리는 다소 침체된 분위기가 흘렀다. 아프리카계 상점들도 전과 달리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 외국인 모이며 자연스레 형성된 이슬람·아프리카 거리

    1976년 이슬람 사원이 들어설 당시 지금의 이슬람 거리는 유흥가였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이 지역이 한남동뉴타운지역으로 지정되고, 2008년 이태원 인근의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이태원 유흥 상권은 활력을 잃었다.

    대신 매일 이슬람 사원에 예배하러 찾아오는 무슬림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졌다. 서울시 통계자료를 보면 무슬림 분포가 높은 인도네시아, 터키, 이란 등 이슬람 국가에서 용산으로 이주한 외국인은 지난 2005년 110명에서 지난해 883명으로 크게 늘었다. 자연스레 사원 주변으로 이슬람 상점들이 들어섰고 10여년 만에 거리를 가득 채웠다.

    한 무슬림이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고성민 기자
    한국 물건을 자국에 판매하는 ‘보따리상’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2년 전 이태원으로 이사 왔다는 한 예멘인은 “두바이나 사우디,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에 한국 휴대폰 액세서리를 판매한다”며 “이렇게 하면 한 달에 100만~3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에도 이슬람 사원에서는 예배가 진행됐다.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40여명의 사람들이 사원으로 모여들었다. ‘알라후 아크바르’라며 경전을 읊는 소리가 사원 바깥으로 흘러 퍼지자 10분 만에 10여명의 무슬림이 더 모였다.

    아프리카 거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고 조성되기 시작했다. 다른 외국인 밀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형성됐다. 10여년 전부터 아프리카 거리에는 아프리카인이 운영하는 이발소와 음식점, 신발가게, 음반가게, 슈퍼마켓 등 상가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한 3층짜리 건물의 2층 상가 대부분을 아프리카 상점이 차지하기도 했다. 이곳이 잘 나갈 때는 한동안 ‘흑인들의 백화점’으로도 불렸다.

    아프리카 거리가 없어지기 이전인 지난 2010년 촬영한 아프리카 미용실. 이 상가는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아프리카인들이 옛 이화시장 골목으로 모여든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값비싼 음식점이 많은 이태원 해밀턴호텔 뒷골목이나 중심 상가쪽보다 물가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은 가죽공장이나 냉면공장 등에서 근무하는 저소득층이 많다. 해성공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평균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 정도의 원룸에 산다.

    이렇게 모여든 아프리카계 외국인은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거리를 형성했다. 서울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용산구에 주소 등록한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수단 등 아프리카인들은 지난 2005년 449명에서 작년 893명으로 늘었다.

    ◆ 임대료 상승에 아프리카 거리 없어져

    하지만 성행하던 이슬람·아프리카 거리 상권은 임대료 상승에 휘청이기 시작했다. 이태원이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자 중심 상권인 해밀턴호텔 뒷골목뿐 아니라 경리단길의 임대료도 급등했고, 경리단길에서 장사를 하던 자영업자들은 우사단길로 이동했다. 결국 이슬람·아프리카 거리가 있는 우사단길 주변 상권의 임대료도 뛸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거리 내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서 할랄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고성민 기자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태원 지역 상가 임대료는 2010년 4분기 1㎡당 2만9800원에서 2015년 4분기 1㎡당 4만3600원으로 올랐다.

    이슬람 사원 인근 한남센트럴부동산의 김정우 공인중개사는 “이슬람·아프리카 거리 주변 상가 임대료가 3년 전보다 평균 10~20% 올랐다”고 말했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결국 문을 닫는 점포들이 생겨났다. 이슬람 거리에서 할랄 식당을 운영하던 에디(40) 씨는 결국 4개월 전 음식점을 닫았다. 그는 “월 임대료 100만원에 전기·수도·가스요금까지 포함하면 가게 월 운영비로만 130만원이 빠져나갔다”며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더 올린다고 하기에 결국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거리에 아프리카 상가들은 없어졌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여전히 거리를 찾는다. /고성민 기자
    아프리카 거리는 이슬람 거리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이슬람 거리는 사원 덕택에 한국을 찾은 무슬림 관광객들이 꾸준히 점심·저녁 식사메뉴로 할랄 식품을 찾는 등 어느 정도 수요가 뒷받침을 했지만, 아프리카 거리 상점들은 임대료 상승을 견디기엔 수요가 부족했다.

    아프리카 식당, 식료품 가게 등 기존 점포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아프리카 식당 한 곳이 남았을 정도다.

    아프리카 상점은 없어졌지만 이곳을 찾는 아프리카인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골목 앞 환전소 주변이나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 식당 등은 이들에겐 ‘만남의 광장’이 되곤 한다.

    아프리카 거리에서 만난 차드인 모하(23) 씨는 “아프리카 거리가 없어져서 아쉽지만 그래도 이 골목은 저렴한 한국 음식점이 있어 자주 찾아오는 편”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전통 식당은 사라졌지만 이곳을 즐겨 찾는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선 닭볶음탕을 파는 식당이 인기다. 모하 씨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친구들과 자주 찾아온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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