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금융계 M&A, 미국식 빅뱅의 시작인가

조선비즈
  •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대표
    입력 2016.04.21 04:00

    최근 KB금융그룹이 현대증권 인수자로 결정되어 그동안 매물로 나왔던 대형 증권사 3곳이 새로운 오너와 함께 새 출발하게 되었다. 2014년에는 NH농협금융그룹과 우리투자증권이, 올 연초에는 미래에셋그룹과 대우증권이 새 출발했다.

    최근 몇 년 동안 10개 정도의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고, 올 들어 바클레이스, 골드만삭스 등이 은행업 면허를 반납했으며, 알리안츠생명은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되었다.

    이런 와중에 국내 금융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이은 빅딜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세 인수 회사 모두 M&A(인수합병)를 통하여 성장 요인을 확보했고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가 된다.

    이번에 성사된 빅딜들은 정부에서 구조조정 차원에서 추진한 빅딜들이 아니고 시장논리에 따라 진행됐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줄 만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된 대형 M&A는 시장논리보다는 부실기업을 정리하기 위한 인위적인 M&A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은 대주주가 정부기관에서 민간금융그룹으로 바뀌었고, 현대증권은 일반 대기업그룹에서 민간금융그룹으로 대주주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M&A를 통하여 1+1은 2가 아닌 3, 4 또는 5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과 글로벌 IB(투자은행)로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대형 M&A 뒷전에는 항상 인수 가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근 빅딜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M&A 가격은 크게 자산가치기준, 예상수익가치기준, 시장가치기준으로 결정되는데 인수자와 매각자가 합의에 도달한 가격인 시장가치기준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자산가치기준이나 예상수익가치기준은 단편적이고 M&A를 통해서 창출될 수 있는 전략적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기업을 인수하는 CEO는 없을 것이다.

    M&A를 통해서 CEO가 창출하고자 하는 기업 비전과 경영전략이 인수 가격을 결정하는 데 핵심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비전과 M&A 전략을 계량화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산가치기준과 시장가치기준을 병행해서 인수 가격을 결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미국에서 2003년부터 2013까지 진행된 은행권 M&A 통계를 보면 PBR은 평균 1.6배에 거래되었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순자산 비율을 의미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2.1배였던 것이 금융위기 이후에는 1.2배로 하락했는데 최근 미국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다시 평균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0.7배, 대우증권은 1.3배, 현대증권은 1.6배에서 인수 가격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매각 당시 시장 여건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셋 모두 적정선에서 인수 가격이 성사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014년에 완료된 우리투자증권 매각은 당시 유럽 금융위기와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돌이켜보면 타이밍이 절묘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인수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을 더 안고 위험을 감수한 결과물이다.

    인수 가격의 핵심요소인 합병 시너지 창출만을 고려한다면 KB금융그룹-현대증권을 필두로 미래에셋그룹-대우증권, NH농협금융그룹-우리투자증권이 순차적으로 돋보인다.

    국내 금융권도 최근의 빅딜을 시발점으로 M&A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규모와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세계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JP모건 등 글로벌 IB들과 대적할 수 있는 한국판 글로벌 IB가 나와야 한다.

    글로벌 IB는 수신을 기반으로 하는 은행업과 손실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는 증권업의 결합체다. M&A를 통한 글로벌 IB들의 성장 역사를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메릴린치도 1914년도에 설립된 이후 1940년도에 이에이피얼스(E.A. Pierce) 와 합병하여 초창기 증권업의 기반을 다졌다. 1960년대부터는 M&A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오늘날의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탈바꿈했다.

    동사의 대표적인 M&A 사례는 1964년에 씨제이더바인(C.J. Devine) 채권투자전문회사를, 1974년에는 화이트 웰드(White Weld) IB전문회사를, 1995년에는 영국계 스미스뉴코트(Smith New Court) 증권사를 M&A한 것을 들 수 있다. 메릴린치는 또 1997년에는 53억달러를 들여 영국계 머큐리(Mercury) 자산운용사를, 1998년에는 캐나다계 미들랜드월윈(Midland Walwyn) 증권사를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수많은 M&A에 실무자로서 업무를 접한 나의 경험에 의하면 메릴린치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M&A를 통하여 성장동력을 꾸준히 확보해왔다. JP모건,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모건스탠리 등 뉴욕 금융가를 군림하는 글로벌 IB들 또한 비슷한 전략을 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 금융사들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M&A를 성장전략의 큰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 금융권에서도 글로벌 IB가 배출돼야 한다.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최근 진행된 빅딜들이 금융빅뱅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빅뱅이라는 큰 안목에서 보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모 금융그룹의 인수 가격에 대한 논쟁은 곳 사라질 것이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AT커니의 최근 한국 보고서에 의하면 10년 내 은행 지점 3분의 2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향후 금융시장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구도로 진행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각에서 지적하는 소위 ‘적정가격’에만 매달렸다면 아마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업은 대한민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금융업은 지식산업이다.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우리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영국도 대처 수상 시절에 금융빅뱅을 추진하여 런던을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만들었다. 우리 정부도 영국을 전례로 삼아 금융빅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때마침 금융위원회도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안’을 상반기에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진행된 M&A가 성공적으로 안착되길 바라면서, 새로 탄생된 주체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글로벌 인재육성, 제도개혁, 위험감수투자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요구된다. 끝으로 서울 금융권에서도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렝크페인 회장, 블랙록의 레리 핑크 회장, JP모건의 제임스 다이아몬드 회장 같은 인물들이 나오길 기원한다.
    /이코노미조선 4월20일자(146호)에 게제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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