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국산 중형차 시장에 격전(激戰)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가 독주하던 중형차 시장에 다른 업체가 신차 출시로 도전장을 던지면서 시장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먼저 도전장을 던진 곳은 르노삼성. 5년 동안의 연구·개발 끝에 지난달 내놓은 SM6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10년 동안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왕자로 군림하던 현대차 쏘나타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GM도 현대·기아차 흔들기에 가세한다. 지난해부터 북미 시장에 판매돼 인기를 끌고 있는 신형 말리부를 다음 달 국내 시장에 본격 출시해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목표다. 현대차도 곧 2017년형 쏘나타를 선보여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도전하는 르노삼성·한국GM

올해 들어 국내 중형 세단 시장엔 대사건이 발생했다. 르노삼성의 SM6가 출시 첫 달인 지난달에만 6751대가 판매되면서, 기아차의 K5(4255대)를 누르고 단숨에 중형차 시장 2위를 차지한 것이다. 1위 쏘나타(7053대)와는 단 302대 차이였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체 판매량으로는 쏘나타가 앞섰지만, YF쏘나타와 택시 수요인 LPG 모델까지 합쳐진 수치임을 감안하면 르노삼성자동차가 쏘나타 독주 체제를 깼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SM6의 누적 계약 대수가 2만대를 넘어선 만큼 당분간 쏘나타와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SM6는 수입차로 발길을 돌리던 30~40대 구매자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요인은 디자인, 인테리어, 안전성, 주행 성능, 혁신 기술, 가격 등 총 6가지. 특히 SM5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은 가격이 강점으로 꼽힌다. 2325만원(개별소비세 인하 반영 후 가격 기준)부터 시작해 모든 옵션을 다 넣은 가격이 3250만원. 이는 SM5의 경쟁 모델인 현대 쏘나타, 쉐보레 말리부, 기아 K5와 비슷한 가격이다. SM6의 최고급 모델은 앞차와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 등까지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GM의 말리부도 쏘나타와 K5를 긴장시키고 있다. 말리부 구형 모델은 지난달 786대가 팔려 순위권 밖으로 밀렸으나 신형이 나오면 본격적인 순위 경쟁에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9세대 모델로 완전 변경된 신형 말리부는 미국에서 먼저 출시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신형 말리부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지난해 같은 달 구형 모델 판매량 대비 24.1% 증가한 1만4746대가 팔렸고 2월에는 53.3% 급증한 2만1418대가 판매됐다.

신형 말리부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개발됐다. 국내 동급 모델 중 가장 긴 4922㎜의 전장(차 전체 길이)에도 불구하고 구형 모델(1530㎏) 대비 130㎏ 이상의 무게 감량에 성공해 연비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내 디자인도 넓어져 뒷자리가 구형 대비 3㎝ 정도 길어졌다. 250마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2.0 터보엔진 등을 장착해 주행 성능도 강화했다.

수성 나선 현대·기아차

현대차는 그동안 국민차로 불리던 쏘나타의 상품성을 개선해 곧 2017년형 쏘나타를 출시한다. 2016년형 쏘나타를 출시한 것이 지난해 7월임을 감안하면 출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것이다. SM6와 말리부의 돌풍을 잠재우고 중형차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차량 자체의 큰 변화 대신 몇 가지 옵션을 추가한 뒤 가격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상품성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출시된 기아차 신형 K5도 지난달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20.2% 급증하며 중형 세단의 부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K5는 1월 3858대, 2월 3615대, 3월 4255대로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치열한 경쟁에 힘입어 한동안 위축됐던 중형 세단 시장이 다시 살아날지도 업계의 관심거리다. 중형 세단은 자동차 회사가 자존심을 걸고 싸움을 벌여온 핵심 분야로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판매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중형차 판매 비중은 2007년부터 점차 하락해 2013년에는 17.6%로 처음 20%대 밑으로 떨어졌고, 2015년에는 15.8%까지 하락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에 밀려 한동안 주춤하던 중형 세단 시장에 새 모델이 줄줄이 출시되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며 "SM6와 신형 말리부가 국민차 쏘나타의 아성을 어느 정도 깨뜨릴 수 있을지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