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한류(韓流)가 한국 대중가요(K-팝),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을 휩쓸고 있다. 세계 수준의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까지 겸비한 한국 화장품이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중국 업체의 경쟁력 강화로 화장품 한류, 즉 K-뷰티 열풍이 일찍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화장품 업체를 찾아 성장 배경과 경쟁력, 위기관리 능력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화장품 산업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 김희진(27)씨는 얼마 전 중국인 친구가 보내준 소포를 받고 깜짝 놀랐다. 친구가 보낸 것은 바나나 모양의 핸드크림으로, 국산 화장품 업체 토니모리의 제품과 거의 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든 ‘짝퉁’ 제품 뒷면에는 뜻을 알 수 없는 한글도 적혀있었다. 이 제품을 판매한 업체는 한국의 방송에 나온 토니모리의 PPL(간접 광고) 장면까지 그대로 가져다 광고에 할용하고 있었다.
김씨는 “중국산 가짜 제품을 사용해보니 용기 모양은 물론이고 내용물의 향과 촉감까지 토니모리 제품과 똑같았다”며 “중국 업체들이 모방을 잘하는 걸 보니, 몇 년 안에는 우리나라 화장품을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화장품 회사들이 한국 업체의 기술력을 따라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모방만 하던 중국 IT(정보기술) 업체들이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거의 따라잡았듯, 화장품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 화장품의 최대 시장인 만큼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 상승은 K-뷰티에 심각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K-뷰티 열풍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 화장품 수출액 3조원 넘어...中 비중 40%
최근 5년 간 한국 화장품 수출은 가파르게 증가해왔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출액(화장도구 등 부속품 제외)은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였다. 2011년과 비교해 보면 244% 증가한 것이다. 화장품 수출이 급증한 것은 중국 판매가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의 중국 수출 금액은 약 10억9000만달러로, 4년 전과 비교해 455%나 증가했다.
한국 화장품은 지난해 중국에서 일본을 꺾고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 1~7월 중국의 화장품 수입액 중 한국산의 비중은 22.1%였다. 프랑스(30.6%)에 이어 가장 높은 비율이다.
K-뷰티 열풍이 5년도 안 돼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화장품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K-팝과 한국 드라마 열풍에 발맞춰 또 하나의 한류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아이돌 가수와 한국 드라마의 유명 배우가 한국산 화장품을 사용하는 모습은 중국 등 외국 젊은이들 사이에 동경의 대상이 됐다. K-뷰티 열풍에는 한국 연예인들처럼 예뻐지고 싶은 K-팝과 한국 드라마 팬들의 열망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K-팝 가수들을 전속 모델로 내세워 ‘팬심(心)’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돌 그룹 ‘엑소(EXO)’를 전속 모델로 내세운 네이처리퍼블릭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4년 초 홍콩에 1호점을 열었는데, 개점 직후 하루 평균 3000명 이상 매장을 방문했다. 대표적인 제품인 ‘수딩 앤 모이스처 알로에베라 92% 수딩젤’은 개점 사흘 만에 초기 물량 3000개가 매진됐다.
◆ 中 경기 둔화·현지 업체 경쟁력 강화, K-뷰티 위협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최근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산 화장품 수출의 4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국에서의 위상 하락은 K-뷰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중국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다. 중국 화장품 업체들이 자체 생산 능력을 키워 한국 업체에 대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K-팝과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를 규제하고, 중국 드라마와 가요의 비중을 늘리면서 한류에 편승해 성장해 왔던 한국산 화장품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중국 화장품 업체들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최대 30% 정도로 5년 전과 비교해 약 5% 높아졌다”면서 “중국 업체들이 품질을 개선한다면 시장 점유율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 업계는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주며 중국 자체 화장품 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학수 코리아나 사장은 “중국 업체들이 한국 화장품 회사 연구원들에게 현재 급여의 2~3배를 주며 스카우트를 제의하곤 한다”며 “보통 3년 간 계약직 형태로 채용하는데, 이 기간 동안 연구원들이 보유한 기술을 모두 빼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도 K-뷰티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 첫날인 지난 3월 5일 정부 업무 보고에서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를 6.5~7%로 잡았다. 이는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6.9%에 그친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화장품은 아직 중국에서 생필품이 아닌 ‘사치재’의 성격이 강해, 경기가 둔화하면 수요가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체계) 배치를 논의 하는 등 국제 정세 변화도 K-뷰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치 이슈는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최근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방송에 출연해 대만 국기를 흔들자,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인들이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공연을 반대하는 바람에 행사가 잇달아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K-팝, K-뷰티와 같은 한류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 화장품 수출 증가세는 점차 둔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산 화장품의 월별 중국 수출액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을 살펴보면, 1월을 정점으로 점차 하락하고 있다. 2005년 1월 수출액은 2014년 1월 대비 290% 증가했지만, 12월 수출액은 4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다 보니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주가도 하락하거나 정체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090430)주가는 지난해 7월 초 45만원을 웃돌았으나 현재 40만원 안팎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00만원을 훌쩍 넘었던 LG생활건강(051900)주가는 올해 들어 81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코스맥스비티아이(044820)와 한국콜마홀딩스, 에이블씨엔씨(078520)등의 주가도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