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대기업' 카카오, 자산 70배 삼성과 똑같은 규제

조선일보
  • 손진석 기자
    입력 2016.04.04 03:03

    [카카오·셀트리온 등 6곳 추가… 대기업집단 획일적 잣대 논란]

    8년째 자산 5조원 기준 적용, 대기업 지정 땐 30여개 법률로 규제
    업종별 특성 무시… 형평성 논란

    中企 적합업종에 투자할 수 없어 대기업 金産분리원칙 적용 받아
    카카오, 인터넷銀 참여 차질 우려

    "대기업으로 지정된 건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입니다. 저희는 바이오 의약 사업 한 가지만 하고 있어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춰서 지배구조가 투명합니다. 게다가 순환 출자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산 수백조원짜리 거대 기업과 똑같이 규제를 받아야 한다니 답답해요. 저희를 재벌로 묶는 건 우스운 일 아닌가요?"

    4월 1일자로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된 바이오 의약업체 셀트리온의 김형기 사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내내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사장은 "셀트리온은 한참 더 성장해야 하는 회사"라며 "전체 직원이 2000명도 안 되는데 벌써 대기업으로 간주돼 규제 대상이 됐다니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대기업집단 내에서도 자산 차이가 무려 70배

    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올해의 대기업집단에는 카카오·하림·셀트리온·금호석유화학·SH공사·한국투자금융 등 6개사가 새로 포함되고, 홈플러스·대성그룹 등 2곳이 빠져나갔다. 공정위는 2009년부터 8년째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그 결과 대기업집단이 2009년 48곳에서 올해 65곳으로 늘어나 '자산 5조원' 기준을 적용한 이후로 가장 많은 기업이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눈에 띄는 점은 벤처로 태동한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셀트리온과 카카오가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인 셀트리온은 자사 주가가 대폭 오른 덕분에 보유 자산이 5조원을 돌파했다. 카카오는 음원업체 로엔엔터테인먼트를,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덩치가 불어났다.

    대기업집단 지정 조건 정리 표
    그래픽=김현국 기자

    당초 정부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해 감시해온 취지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한 지나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상법·금융지주회사법 등 30여 가지 법률로 대기업을 규제한다. 부당 내부거래를 방지하고 특정 업종에 진출하지 못하게 막는 법률들이다. 문제는 기업 간 규모나 업종별 특성을 무시하고 '자산 5조원' 잣대로만 규제를 적용하면서 형평성 논란을 부른다는 점이다.

    자산 규모 1위 삼성(348조2000억원)과 65위 카카오(5조1000억원)의 덩치 차이는 70배에 가깝지만 같은 수위의 규제를 받는다. 2009년에 비해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40% 넘게 커진 현실을 반영하지 않다 보니 기업을 규제하는 그물이 지나치게 촘촘해졌고, 그러다 보니 성장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자산 5조원 미만은 단 두 곳뿐이었다. 자산 5조원 정도의 회사라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좀 더 성장해야 할 단계에 있는 것이다.

    피터팬 증후군 키우는 규제 일변도 정책

    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회사들은 그동안 해오던 경영 활동이 갑자기 가로막혔다고 호소한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해왔는데, 이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투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창업 초기 계열사들에 외부 투자를 유치해주곤 했는데, 벤처캐피털은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정을 적용받게 되므로 어렵게 됐다"고 했다. 정부가 금융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인터넷은행에도 대기업의 금산(金産) 분리 원칙 때문에 카카오가 대주주로 참여하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관절염 치료 복제약 '램시마'의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앞둔 셀트리온에도 비상이 걸렸다. 1999년 설립된 셀트리온헬스케어라는 계열사가 약품 판매와 수출을 전담해 왔는데, 이 회사에 판매를 맡기는 행위가 이제부터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돼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그동안 지주회사가 계열사들에 대해 채무 보증을 해서 자금을 조달했는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돼 난감하다"고 했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지난달 한 강연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다시 대기업이 되는 단계마다 수십 가지 규제가 더해진다"며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낡고 획일적인 ‘자산 5조원’ 기준 바꿔야"

    전문가들은 ‘자산 5조원’ 기준을 바꿀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공정위 규제가 큰 회사에는 느슨하고 작은 회사에는 엄격하다”며 “상위 10~20대 그룹만 규제해도 경제력 집중 현상은 억제시킬 수 있다”고 했다. 전경련은 지난해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기준을 끌어올려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30대 대기업 중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의 자산 비중이 53.3%로 나머지 26개 그룹을 합친 것보다 많다. 30대 그룹의 작년 순이익이 47조3000억원인데, 그중 95%인 44조8000억원이 4대 그룹 차지였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규모가 큰 거대 기업으로 한정해도 충분한 상황이다.

    공정위도 내년부터는 대기업집단 지정 요건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준을 상향하게 되면 최소 7조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지정 요건을 끌어올리고 싶지만 ‘재벌 봐주기’라는 반대 여론도 예상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규모가 큰 대기업은 현재처럼 규제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작은 대기업들은 공시를 철저하게 하게 하는 대신 갖가지 거래 행위 금지 조항은 면제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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