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모멘텀]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에서 아폴로 계획을 만들었다"

입력 2016.03.16 06:00 | 수정 2016.03.18 00:07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은 카자흐스탄의 한 사막에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號)’를 발사했다. 극도의 냉전 상황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 위성을 쏘아올린 일은 미국 사회의 대단한 충격이었다.

2016년 3월 12일 대한민국은 ‘알파고(AlphaGo) 쇼크에 휩싸였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인간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에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빚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한 수를 발견했다. 바둑의 묘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창의의 공간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의 대결이 한국 사회에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 운명을 좌우할 인공지능 혁명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초대형 이벤트가 끝난 지금 이제 질문의 답을 숙고할 때다.

① 한국판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할 리더십과 역량은 있나

이세돌 9단(오른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이 9단이 싸인한 바둑판을 들어 취재진에서 선보이고 있다./구글 제공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 상황에서 국가적 과학기술 역량을 한데 모아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을 만들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전설의 시작은 스푸트니크라는 엄청난 사회적 쇼크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인중 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교수는 알파고 같은 성공을 원한다면 알파고 뒤에 있는 연구문화와 기업문화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딥러닝의 발전은 상호신뢰와 존중에 기반한 개방적이고 도전적인 문화 덕분이었다”면서 “선진 연구자들이 기술과 딥러닝 소스 코드를 빠르게 공개했다”고 말했다. 구글은 “장난같고 무모해보이는 난이도 높은 문제에 막대한 인력과 인프라를 투자했고 연구팀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고 덧붙였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도 “이번 쇼크의 주인공인 알파고 개발사 딥마인드가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대기업도 스타트업의 혁신을 인정해주고 구글처럼 좋은 기업을 제대로 된 값을 주고 사는 상생 모델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도 “구글이라는 큰 회사가 2014년 당시 직원 50명도 안되는 작은 회사인 딥마인드를 4억달러(4200억원)에 인수한 게 이제 이해된다”면서 “구글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가치를 딥마인드가 보여줬다”고 말했다.

소련이 인공위성을 최초로 발사하자 미국 사회는 소련의 미사일 위협이 현실이 됐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 당시 신문 기사.
② 인간과 기계가 협력하는 시대를 열 수 있는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이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인간과 기계는 경쟁의 대상라기보다는 협력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씨는 “이번 대국은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과정인데, 이번 사건을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몰고가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기계는 인간을 돕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알파고의 인공 지능 기술은 병을 치료하거나 주식을 예측하는 데 바로 쓰일 수 있다”면서 “인류 난제를 풀고 다양한 산업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③ 제2차 기계 혁명에 맞는 문화와 제도를 가꿀 수 있나

15일 제 5국이 끝난 후 바둑판을 정리하는 이세돌 9단 주위에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 구글 제공
‘기계와의 경쟁’ ‘제2의 기계 시대’ 등을 쓴 에릭 브린욜픈슨은 “사람의 육체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1차 기계 시대라면 이제 사람의 정신 노동을 대신하는 2차 기계 시대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일으킬 2차 기계 시대의 쇼크는 일자리를 없애고 부의 집중을 촉발시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친 이슈다.

장병탁 교수는 인간지능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로봇이 사람보다 자산을 더 잘 관리해주는 시대는 코 앞에 와있다”면서 “인공지능 때문에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화이트 칼라’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은 곧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타자치는 전문 인력이 사라졌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면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와 문화를 탄탄히 마련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김용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부의 불평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생산성이 커지면서 이들이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부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세대에 독(毒)이 될 교육제도를 이대로 유지할 것인가

영재교육센터 재원생들이 교구를 이용한 사고력 수학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엔 주입식 교육은 더 이상 안 된다”면서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지를 탐구할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지 말고 소프트웨어라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파고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는 교육 체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도전하고 보상을 받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탁 교수는 소프트웨어 인력 중에서도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분야에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공지능 분야의 인력도 양성하지 못했다”면서 “각 산업 분야의 인공지능 기술 인력 수요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지혜는 무엇인가

소설가 성석제씨는 “저는 3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의 발언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세돌 9단은 ‘인류가 진게 아니다. 개인 이세돌이 진 것 뿐’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인공지능은 절대로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성 씨는 “인간과 인공지능은 분명히 다른 데 마치 검투사처럼 무대 위에서 시합을 벌이게 하는 방식은 좋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톱이나 도끼가 장작을 더 잘 쪼갠다고 해서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이번 대회 방식에 대한 유감을 드러냈다. 성 씨는 “인공지능 시기가 오더라도 인간은 인간 본연의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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