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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농사꾼도 헷갈리는 양파값, 왜?

  • 무안=양모듬 기자
  • 입력 : 2016.03.11 03:06

    [작년엔 ㎏당 1300원, 올들어 2700원으로 급등… 양파 파동 조짐]

    ①재배 면적 엉터리 예측 - 여의도 13배 규모 엇나가
    ②계약재배 확대 안돼 - 기금 부족… 약속 깨지기 일쑤
    ③농협보다 센 유통업자 지배력 - 저장 양파 60%는 상인들 손에
    ④수입 양파로 가격 조절 안돼 - 소비자들 중국산 꺼려

    지난 5일 국내 양파밭의 18.6%가 몰려있는 전국 최대 양파 산지인 전남 무안의 한 양파 농가. 하우스 주변 밭 4400평에는 양파와 마늘의 초록 줄기가 줄 맞춰 심겨 있었다. 그중 한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자 40㎝가량 자란 양파 줄기들이 보였다. 주인 윤미순(59)씨가 줄기 하나를 쑥 당기자 흙 속에서 어른 주먹만 한 양파가 튀어나왔다. 36년간 양파를 키워온 윤씨는 "올해는 양파를 어디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작년에는 양파를 직접 팔아보려고 했는데 가격이 폭락해서 내가 1억원 가까이 손해를 봤당께요. 그래서 작년에는 겁이 나서 한 마지기 160만~180만원 해서 미리 상인한테 팔았더니 양파값이 그렇게 올라도 이익도 못 봤으야."

    36년 양파 농사꾼도 헷갈리는 양파값의 향방. 요즘 이 양파가 생활 물가 고공 행진의 주범으로 도시 주부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10일 기준 양파 상(上)품의 ㎏당 평균 소매가는 2702원으로 1년 전(1343원)의 두 배다. 평년 가격(1889원)과 비교해도 43%나 높다.

    10년간 양파 소비자 가격 변화
    양파 농사는 보통 2년마다 '가격 하락→재배 감소→가격 상승→재배 증가'를 반복하며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진폭을 줄이려 정부는 예상 생산량 등 '미래'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작 농민을 움직이는 건 '과거' 경험이다. 재작년 양파 대신 보리를 심었다는 한 농민은 "재작년 헐값으로 수천만원 손해 봤는데 많이 심으란다고 하겄는가" 하고 되물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파 농가가 전국에 5만 가구나 돼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냉온탕을 반복할 것인가. 양파 가격의 급변동 요인을 찬찬히 따져보면 부실한 농정(農政) 탓도 적지 않다.

    ①엉터리 예측… 실제 양파 밭 면적과 여의도 13배 차이

    2015년산 양파 전망은 처음에는 '장밋빛'이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햇양파가 나오기 시작한 2015년 4월 초까지도 "올해 양파 재배 면적이 약 2만1900㏊(평년 약 2만2000㏊)로 추정된다"며 "생산량은 약 143만3000t"이라고 발표했다. 평년(약 140만t)을 웃돈다는 관측이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했다. "실측 결과 올해 양파 재배 면적은 1만8015㏊"라는 통계청 발표가 나온 것이다. 예측치보다 여의도 13배 정도 양파밭이 줄어든 셈이다. 이미 재배 가능 시기를 훌쩍 넘겼을 때였다. KREI는 "통계청은 전국 표본으로 사후 실측을 하지만, 우리는 주산지 위주로 사전 관측을 한다"며 "하지만 온난화 등으로 양파 재배가 늘어나 예측이 어려워졌다"고 해명했다.

    ②유명무실한 계약 재배

    대표적인 농산물 수급 안정책인 계약 재배가 힘을 못 쓰고 있다. 양파 계약 재배 목표는 전체 생산량의 30% 수준이지만, 현재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약 재배는 정부와 농협이 출자한 기금 8000억원의 이자로 운영한다"며 "이율이 높던 1990년대만 해도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저(低)금리 때문에 운용 폭이 줄었다"고 했다. 농협 관계자는 "일부 농민은 시장 가격이 예상보다 떨어지면 '계약한 물량보다 더 사달라'고 하고, 가격이 오르면 계약을 깨버린다"며 "하지만 선거로 뽑히는 조합장이 조합원을 제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 지역 농협에서는 계약 재배를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김병률 KREI 선임연구위원은 "계약 재배는 실제 수요처랑 연계돼야 완성되지만 지금은 정해진 팔 곳도 없으면서 산지 농협이 양파를 떠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③후진적인 유통 구조

    하반기 양파값은 '저장 양파'를 쥔 유통인과 정부 간 팔씨름이다. 수확 두 달 뒤인 8월부터 다음해 햇양파가 나오는 4월 전까지는 저온 창고에 있던 저장 양파가 출하된다. 물량 싸움에서 우세한 건 정부보다는 일명 '오대(거상을 뜻하는 업계 용어)'라고 하는 저장·유통업자들이다. 이들은 농민들에게 농협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밭떼기(계약 재배)' 등을 한 뒤, 대량으로 저장해서 시세 차익을 챙긴다.

    저장업자 협회인 한국농산물냉장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저장하는 물량이 전체 저장 물량의 60%에 이를 것"이라며 "지급 능력이 없는 지역 농협 대신 우리가 양파를 수매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간 창고에 들어가는 저장 양파 물량은 사실상 정부에서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해 '블랙박스'에 가깝다. 지역의 한 공무원은 "지역 창고와 가락시장 사이를 오가는 트럭 운전기사들에게 '창고에 양파가 얼마나 남았는지 봤느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했다. 한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 담합이 있다. 정부가 시장에 내놓기 위해 수매에 나서기라도 하면 '가격 인상' 신호로 읽고 물량을 더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④때늦은 중국산 양파 수입

    양파 농사의 풍년과 흉년이 갈리는 시점은 5월 10일 전후이다. 5만평 양파 농사를 짓는 김미남(50) 무안농협 조합장은 "그때부터 열흘 중 사흘 넘게 고온이 오면 양파가 성장을 딱 멈춘다"고 했다. 작년 5월이 그랬다. "평(3.3㎡)당 200개 나오던 양파가 130개밖에 안 나온 건 33년 농사에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중국산 양파 수입 증량 카드를 결정한 것은 7월이고, 실제 물량이 들어온 것은 9~10월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의 대표 양파 산지는 우리와 위도가 비슷한 산둥 지방인데, 기후가 비슷하다 보니 그쪽도 양파 작황이 나빠 물량 확보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또 긴급히 들여온 수입 양파 14만t은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소매가격 안정에는 큰 도움이 안 됐다. 김동현 이마트 채소 바이어는 "사실상 중국산 양파와 국산은 고객이 다른 시장"이라며 "대량 구매하는 업소는 수입품을 쓰지만, 양파를 소량 구매하는 가정에서는 비싸도 국산을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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