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는 아기의 똥냄새도 향기롭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상대에게서 나는 역겨운 땀냄새도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예전보다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처럼 냄새로 친구인지 적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냄새로 배우자를 찾고, 상대의 감정도 읽어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인간의 '냄새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 학교 땀냄새는 달라
우리 몸에서는 다양한 냄새가 난다. 대부분 고약하다. 인간은 뭉쳐야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냄새가 더 지독해진다. 인간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정답은 '냄새의 차별화'다. 같은 냄새라도 친구 몸에서 나는 것이라면 그리 고약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진화한 것이다.
영국 서섹스대의 사회심리학자인 존 드러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2일 국제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집단 소속감이 체취(體臭)에 대한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서섹스대 학생들에게 땀냄새가 물씬 나는 티셔츠를 제시하고 냄새를 맡게 했다. 티셔츠에는 서섹스대 또는 경쟁 대학인 브라이턴대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브라이턴대 로고가 있는 티셔츠에서 나는 냄새가 더 지독하다고 답했다. 실제로는 두 티셔츠의 냄새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이 실험 결과는 경쟁 대학이 싫어서 학생들이 일부러 나쁘게 말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연구진은 두 번째 실험에서 무의식적인 반응을 조사했다. 이번에는 세인트 앤드루대 학생들에게 자기 학교 또는 경쟁 대학인 던디대의 로고가 붙은 티셔츠를 제시했다. 그리고는 설문 조사를 하는 대신 그냥 손을 씻으라고만 했다. 자기 학교 로고가 있는 티셔츠의 냄새를 맡은 학생들은 경쟁 대학 티셔츠를 테스트했을 때보다 더 천천히 수돗가로 이동했고 비누도 덜 썼다. 경쟁 대학 티셔츠로 테스트한 경우 물비누통의 펌프를 한 번만 누른 학생이 9명인데, 자기 대학 티셔츠의 경우엔 30여명이 물비누 펌프를 한 번만 눌렀다. 연구진은 "같은 학교 학생의 티셔츠라고 생각하면 땀냄새의 역겨움이 훨씬 감소하는 것"이라며 "동료의 냄새를 덜 역겹게 느끼게 되면서 인간 사회의 협동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동료뿐 아니라 배우자도 냄새로 구별할 수 있다. 1995년 스위스 연구진은 여성에게 남성의 티셔츠 냄새를 맡고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게 하는 실험을 했다. 여성들은 면역 관련 유전자가 자신과 다른 남성의 셔츠를 골랐다. 연구진은 "냄새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배우자를 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부모의 면역 유전자가 다르면 자식의 면역 유전자가 더 다양해진다. 이는 질병에 저항할 무기를 더 많이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체취로 상대 감정까지 파악
인간은 냄새를 통해 상대방의 감정도 파악한다. 독일 아헨 대학병원 연구진은 남성들에게 권투를 하거나 일반 운동기구를 써서 땀을 흘리게 했다. 그다음엔 이들이 흘린 땀을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 냄새를 맡도록 했다. 권투를 한 사람의 땀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불안감이 높아졌다.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느낀 것이다. 일반 운동기구를 쓴 사람의 땀에는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연구진은 지난달 '화학 감각'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은 냄새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공격성을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상대가 화가 났거나 공격성을 가졌는지 미리 알아야 폭력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좋은 감정도 냄새에 실려 전달된다. 지난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군 세민 박사 연구진은 '심리과학'지에 "행복한 사람에서 나는 땀냄새는 주변 사람에게도 행복감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남성들에게 겨드랑이에 거즈를 댄 채 공포나 행복감을 주는 비디오를 보도록 했다. 이후 설문 조사를 통해 감정 상태를 파악했다.
연구진은 남성의 땀냄새가 밴 거즈를 여성들의 코앞에 제시했다. 여성이 행복감을 나타낸 남성의 땀냄새를 맡으면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지만, 공포감을 보인 남성의 땀냄새에는 이마를 찡그렸다. 인간의 땀 분비샘이 다른 영장류보다 많은 것도 냄새 커뮤니케이션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