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량 동결은 산유국 간 '휴전 선언'에 불과"…실효성 떨어져
이란·이라크, 산유량 동결 동참 불확실
사우디 석유장관 7년 만에 美 에너지 연례회의 참석

세계 석유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이 22~26일(현지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세계 에너지 회의에 7년 만에 참석하기로 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감산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유가 하락 충격이 커지자 최근 러시아와 산유량 동결에 합의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22∼26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IHS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 연례회의에 7년 만에 참석한다.

◆ 지난주 사우디-러시아 산유량 동결 합의

지난 주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카타르 도하에서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석유장관과 회동, 산유량 동결에 합의했다. 그동안 유가 안정 논의에 회의적이었던 사우디가 드디어 나서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주면서, 지난달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일시 반등했다.

하지만 산유량 동결이 산유국 간의 협력 수단으로만 이용될 뿐,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클레이즈의 미스윈 마헤쉬 애널리스트는 "산유량 동결에 합의한 4개국(사우디,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은 이미 산유량이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산유량 동결은 원유 시장에서 실탄이 고갈되었다는 (일종의) 휴전 요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지난해 하루 생산량을 추가로 50만 배럴 확대, 사상 최대인 1000만 배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그룹의 제프 커리 애널리스트는 "2위 산유국인 러시아 역시 지난달 하루 산유량이 배럴 당 1084만배럴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돼 더 늘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아르카디 드보르비치 러시아 부총리는 지난주 산유량 동결 합의에 대해 엄청난 결정은 아니라는 점을 시인한 바 있다. 대다수 석유 생산업체들이 산유량이 동결됐다고 해서 생산에 변화를 줄 정도가 아닌 데다, 산유량 자체가 현재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 산유량 늘리려는 이란·이라크, 동결 논의 '장애물'

이란과 이라크의 행보는 산유량 동결에 직접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 1월 서방의 경제제재가 풀린 이후 올해 하루 생산량을 최대 100만 배럴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라크는 IS(이슬람국가)와의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산유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리고 있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산유량 동결에 대해 공식적으론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산유량 확대 계획에 대해서는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나이지리아는 산유량 동결을 지지하면서도, 이란과 이라크에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기회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엠마뉴엘 카치큐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이란과 이라크는 경제 제재 영향으로 원유 시장에서 한참 떠나 있었다"며 "이들의 복귀로 현 수준의 동결은 어렵고, 지금보다 많은 수준에서 동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우디, 7년만에 IHS 에너지 관련 연례회의 참석 ‘주목’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22일부터 닷새 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IHS-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 연례 회의에 참석한다. 사우디 석유 장관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국제유가 하락을 야기한 '셰일혁명'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최근 1년 간 브렌트유 선물 가격 추이(자료=마켓워치)

사우디는 석유시장 점유율을 고수하기 위해 미국 셰일업계와 제살 깎기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2014년 고점 대비 70% 하락(브렌트유 기준)하는 등 가격 급락세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석유 감산에 대해 1년 넘게 침묵했던 사우디가 최근 산유량 동결에 합의한 데 이어, 이번 에너지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내놓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산유량 동결이 감산 조치로 진행되기까지는 최소 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오는 6월2일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OPEC 회의에서 감산 논의가 본격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컨설팅 회사 페트로매트릭스의 올리버 제이콥 이사는 "최근 산유량 동결은 과도기적 조치로, 추후 회의에서 새로운 생산량 할당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OPEC은 지난해 회의에서는 시장 점유율 유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산유량을 제한해 가격을 유지하는 조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