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뉴스' 번역한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 소장
"지혜의 저널리즘이 살 길…구글의 기술, 언론의 위기 개선 기대"
저널리즘 역사 연구의 권위자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 뉴욕대학교 교수는 2014년 4월 펴낸 '비욘드 뉴스'의 서문에서 한 프랑스 화가 이야기를 꺼낸다.
1891년 사망한 에르네스트 메소니에(Ernest Meissonier)는 한때 파리 최고의 화가였다. 그의 정밀 묘사는 탁월했다. 대표작은 1807년 나폴레옹 군의 프리틀란트(Fridland) 전투. 그는 질주하는 말 수십 마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동시대에 활동한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는 메소니에를 "논란의 여지없는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19세기 말 사진이 보급되면서 메소니에의 아성에도 금이 갔다. 당시 고속 카메라와 트립와이어 시스템으로 무장한 미국 사진사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dweard Muybridge)는 달리는 말의 근육을 실물과 똑같이 담아냈다. 메소니에가 제 아무리 집중하더라도 그 차이는 두드러졌다. 결국 메소니에는 말년에 서 있는 말만 그렸다. 루브르박물관은 홀에 있던 메소니에 조각상을 철거하기에 이르렀다.
저널리즘은 메소니에의 전철을 밟고 있다. 19세기 회화는 사물의 세밀한 모습을 포착하던 관행에서 탈피해 인상과 관점을 제공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즉 초점이 객관에서 주관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저널리즘은 이런 변화를 놓쳤다. 누가 어떤 말을 했다고 전하는, 단순 속기 보도는 메소니에 그림의 약점을 그대로 갖고 있다. 독자들이 트위터, 유튜브로 실시간 소식을 접하는 상황에서 기자의 단순 사실 보도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겠는가.
'비욘드 뉴스'는 이러한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퍼나르기식 보도로는 더 이상 언론이 설 땅은 없다는 것. 저자 스티븐스 교수는 저널리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른바 해석과 분석을 내세우는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다. 미국 출판 주간지 퍼블리셔스 위클리(PW)는 2014년 출간 당시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고 평했다.
최근 비욘드 뉴스 한국어판이 번역 출간됐다. 역자는 저널리즘 관련서 10여권을 저술, 번역한 김익현(53) 지디넷 미디어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디지털 저널리즘 전문가이자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현직 IT 기자다.
설 연휴 전후로 김 소장을 만났다. 서울 서교동과 광화문에서 두 차례였다. 그 사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종이신문 발행 중단을 발표했고, 미국 경제전문 사이트 쿼츠(Quartz)는 대화형 뉴스 앱을 출시해 업계를 놀래켰다. 지난 17일에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청소년 채널 BBC3의 TV 채널을 중단하고 온라인 방송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급변하는 언론 시장을 잘 반영하는 사건들이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미첼 스티븐스(Mitchell Stephens)는 누구인가.
"뉴욕대학교 아서카터 저널리즘연구소(Arthur L. Carter Journalism Institute) 교수다. 미디어 동향, 기사 작성 등 저널리즘 관련서를 다수 썼다. (언론 종사자와 독자가) 뉴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알려준다.
비욘드 뉴스와 비슷한 시기에 '저널리즘 언바운드'(Journalism Unbound·국내 미출간)라는 책도 냈다. 디지털 미디어가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비디오, 오디오를 적극 활용한 보도 방식을 알려준다. 통계 전문가 겸 언론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 등 지난 수십년간 새로운 저널리즘 분야를 개척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스티븐스 교수의 웹페이지에 가면 저서, 기고문, 뉴욕대 커리큘럼(미디어 비평, TV·라디오 뉴스 보도,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 촬영 비디오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심지어 집 주소와 개인 이력까지. 덧붙여 2000년 12월부터 다음 해 9월까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A Journey Around World'라는 비디오 영상과 글도 남겼다. 그의 집요한 기록 습관을 엿볼 수 있다.
-번역하게 된 계기는?
"스티븐스 교수의 저작을 평소 눈여겨봤다. 1988년에 펴낸 '뉴스의 역사'(A History of News)를 흥미롭게 읽었다. 제목처럼 뉴스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적은 책이다. 이 분야에서 고전 반열에 올랐다.
2014년 외신을 뒤지다가 신작 '비욘드 뉴스'가 나온 걸 알았다. 뉴스의 과거를 주로 연구하던 스티븐스 교수가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원제는 '비욘드 뉴스: 미래의 저널리즘'(Beyond News: The Future of Journalism)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부제를 '지혜의 저널리즘'으로 바꿨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저널리즘은 위기, 뉴스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롭다.
"우선 저널리즘과 뉴스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저널리즘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스티븐스 교수는 '뉴스를 수집, 제시, 해석 혹은 논평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반면 뉴스는 '일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새로운 정보'다. 발전하는 IT 기술이 뉴스에 큰 혜택을 줬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도 뉴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뉴스는 오히려 기회가 많다.
반면 기술 혁명으로 언론사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과거 뉴스 채널이 언론사로 한정되었을 때에는 그들의 입지는 탄탄했다. 보도 형태, 수익 모델 둘 다 그랬다. 하지만 보도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언론사는 이제 뉴스라는 상품을 두고 비 언론사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공짜 콘텐츠도 넘쳐난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다.
본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요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세계 모든 슈퍼마켓뿐 아니라 온갖 가족 경영 식료품점과 농장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에서 식료품을 판매하려고 애쓰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공짜로 내다팔고 있는 상황 말이다."
-앞서 말한 지혜의 저널리즘이란?
"지혜의 저널리즘이란 직공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듯이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는 것 이상을 수행하는 저널리즘을 지칭하는 용어다. 저자는 저널리즘 품질의 새로운 표준으로 이 용어를 제안한다. 원서의 부제는 지혜의 저널리즘이 아닌 '뉴스의 미래'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키워드가 ‘지혜의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알고 제목을 바꿨다.
지혜의 저널리즘은 더 많은 연구, 지성, 분별력 그리고 독창성을 요구한다. 전통 언론에서 최우선 가치로 두던 5W,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저자는 지혜의 저널리즘의 요건으로 '5I'를 제시한다. 교양 있고(informed), 지적이고(intelligent), 해석적이며(interpretive), 통찰력 있게(insightful), 밝혀 주는(illuminating) 것을 의미한다.
단순 사실 보도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기자의 역할도 바뀐다. 사실만 전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통찰력을 담아서 부가가치를 더해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런 보도가 바로 지혜의 저널리즘이다."
-예를 들어달라.
"삼성 애플 특허 소송을 보자. 국내 매체 다수는 누가 이겼고, 졌고 하는 이야기를 주로 전한다. 삼성과 애플 간의 2차 특허 소송 항소심이 2월 초 시작됐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떤 배경인지 상세히 설명하는 기사는 적다.
1차 소송이 디자인 특허에 초점을 맞췄다면, 2차 소송은 실용 특허가 주요 이슈다. 데이터 태핑(data tapping) 기능이 특허 침해 여부의 핵심이다. 데이터 태핑이란 문서에서 전화번호를 클릭하면 곧바로 전화가 걸리는 기술이다. 기자는 이제 전문가 수준의 설명과 통찰력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븐스 교수는 객관주의에 치중하는 미국 저널리즘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관점의 실패' '숲을 못 본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한데 나무를 봐야 숲도 보지 않을까. 저자의 주장은 막연한 거대 담론 같다.
"정확한 지적이다. 저자는 객관 보도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객관 보도를 맛보기나 했던가.
스티븐스 교수가 객관주의 보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폐해와 한계를 지적한다. 사실에 굶주린 언론은 이용 당할 수도 있다. 언론은 관료들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다. "공산주의자들이 정부에 침투했다"는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미국 상원의원의 말을 그대로 적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기사는 1952년 4월 22일자 뉴욕타임스(NYT)에 등장했다.
당시 미 언론들은 형식적 객관 보도를 위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의 책임을 안 진다는 얘기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되면 언론 생리를 잘 아는 사람에게 이용 당할 수 있다. 비욘드 뉴스의 배경은 미국 언론 환경이다. 국내 언론에 저자의 비판을 적용할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저자는 분석, 탐사보도의 가치에 주목한다. 하지만 지금도 분석 기사는 넘쳐난다.
"언론은 심층 보도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저자는 단순히 보도 행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채용 방식, 인재상, 교육 모두 바뀌어야 한다. 지혜 저널리즘이 잘 구현되려면 기자들도 '잡 데피니션'(Job definition·직업의 정의)이 바뀌어야 한다. 취재원의 말을 단순히 전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사람,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목표를 높게 가져야 한다.
미국 최고로 평가 받는 뉴욕타임스도 예외는 아니다. 한 해 특종이 몇 건인지, 그 외 기사들도 다른 매체보다 월등한 수준인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스티븐스 교수는 본문 곳곳에 뉴욕타임스 전임 편집국장 빌 켈러(Bill Keller)의 말을 인용한다. 켈러가 강조했던 퀄리티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 즉 '경험 있는 기자들이 사건 발생 장소로 가서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을 뒤지며 뉴스원을 발굴하고, 사안을 확인, 재확인하는 활동'의 가치는 인정하나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역시 NYT 편집국장을 지낸 질 에이브럼슨(Jill Abramson)은 켈러가 주창한 퀄리티 저널리즘에 새로운 가치를 더했다. 바로 '분석한다(analyzed)'라는 말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좀 더 새로운 개념은 이 단어와 함께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분석 보도 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독점 보도를 비롯해 진취적인 보도, 탐사 보도가 중요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즉 다른 저널리스트들이 가지 않은 곳에 가며,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잔혹 행위를 목격하고, 부패를 폭로하는 자료를 뒤지는 활동도 중요하다고 적었다.
대개 보도 기사 형태로 등장하는 이런 폭로들은 '지식' 그리고 사회의 '미덕'을 향상시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저널리즘을 모두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용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스페셜리스트가 되라는 주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혜의 저널리즘은 고참 기자 고유의 영역일까?
"그런 비판을 많이 들었다. '지혜의 저널리스트와 아닌 저널리스트를 나눌 수 있는 거냐'라고 지적도 한다. 경력이 많으면 유리하겠지만, 연차의 문제가 아니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포커스드 엑스퍼티즈'(Focused expertise), 즉 집중된 전문 지식이 중요하다.
정치 보도를 예로 들겠다. 기자 한 명이 정치 전 분야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미국 정치인, 발명가이자 언론인이었던 18세기 벤자민 프랭클린 시대에는 가능했다. 사회가 분화되지 않았고 한 사람이 오만 영역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포커스드 엑스퍼티즈에 답이 있다. 종합지보다는 경제지, 전문지가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 집중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전문 사이트 쿼츠(Quartz)를 예로 들겠다. 지혜의 저널리즘의 대표 모델이다. 쿼츠의 페이지 qz.com에는 '오브세션'(Obsession)이라는 메뉴가 있다. 경제 금융 문화 과학 등 고정 코너가 아닌 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키워드로 기사를 분류한다(2월 22일 기준 오브세션에는 MESSAGING, BUSINESS OF SPORT, CHINA'S TRANSITION, SPACE BUSINESS, CONTAGION라는 키워드가 기사가 분류돼 있다). 굉장히 실험적이다. 최근 쿼츠의 혁신 사례를 자세히 소개한 번역물이 출간됐다. '디지털 뉴스의 혁신'이라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은 대형 언론사가 아닌 중소 매체에 해당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크다."
-뉴스 소비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독자가 분석 기사를 원하는 건 아닐텐데.
"분석 기사도 간결하고 쉽게 만들 수 있다. 역시 쿼츠를 예로 들겠다. 그들은 복잡 난해한 데이터를 차트로 보기 쉽게 정리하는 아틀라스(Atlas) 서비스를 2015년 6월 내놓기도 했다. 쿼츠의 콘텐츠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짧은 기사와 아주 긴 기사. 분량이 적은 건 영문 기준 400~500자밖에 안된다. 긴 건 아주 길다. 다만 원고지 몇십매 분량의 긴 기사가 해설 기사의 전범은 아니다.
지혜의 저널리즘의 전제가 반드시 고차원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번역을 하면서 호기로운 얘기가 아닌,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사실 전달 만으로 얼마나 경쟁력을 갖겠나. 사건 사고도 일반인들이 사진을 퍼나르고 커버한다. 기자들은 부가가치를 더해주는 쪽으로 가야한다."
-저자가 강조한 전문기자 활동을 몸소 십수년째 해오고 있다. 왕성한 저술 활동까지. 노하우가 있나?
"흔히 출입처 경력이 3년 이상 쌓이면 책 한 권의 노하우가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2003년 11월 출간된 첫 책 '인터넷 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은 석사 논문을 토대로 출간한 것이다. 당시 내 고민은 '왜 인터넷 기사는 종이 신문 형식을 벗어나지 못할까'였다. 논문 자료를 대중 학술적으로 풀어썼다.
집필을 작정하고 그 분야 기사를 집중적으로 쓰기도 했다. 자료를 모으면서 기사를 계속 썼다. 쭉 쓰고 중간중간 스토리를 구성한다. 그러다 됐다 싶을 때 딱 잡아서 쓴다. 대부분 책을 그렇게 썼다. 기자들이 어느 출입처에 가더라도 자기 분야의 키워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경제부 기자가 환율에 관심을 갖고 기사 작성과 저술을 병행하는 식이다."
김익현 소장이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편집국에서 글로벌 IT 기사를 쓰고, 지디넷미디어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심층 분석 보도를 주로 한다. 해외 이슈를 쓸 때는 외신 인용보다는 원소스를 바탕으로 쓴다고 말한다. 앞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 기사도 관련 논문과 판결문을 직접 참고해 썼다.
-저자는 저널리즘의 여러 현안도 진단한다. 지난 12일 미 경제전문 사이트 쿼츠가 대화형 뉴스 애플리케이션(앱)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채팅형 뉴스앱 출시와 맞물려 뉴스 플랫폼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2014년 10월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해봤다. 뉴스를 모바일 플랫폼에 유통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의 뉴스 서비스는 어떨까. 수년째 성장 중인 왓츠앱, 위챗이 뉴스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뉴스는 분명 매력 있는 콘텐츠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볼 만한 일상 소비 콘텐츠다. 대화는 인간의 기본적인 뉴스 소비 욕구에 가장 잘 들어맞는 형태다. 그런 측면에서는 양쪽이 계속 결합될 것이라고 본다.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와 언론사의 협업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지난 1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메시징 앱 라인을 통해 뉴스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 트위터의 큐레이션 '모멘츠'도 다 그런 맥락해서 시작한 서비스다."
-다른 매체도 대화형 뉴스앱으로 갈까?
"알 수 없다. 쿼츠 뉴스앱에 열광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뉴스 보기에 편할까'. 대화를 귀찮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대화 방식을 부담스러워 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트위터가 페이스북과 같은 알고리즘 기반 타임라인을 곧 공개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트위터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다. 초기 진입자들이 오면 할 게 없다. 미국 IT 전문 매체 리코드(Re/code)는 "텅빈 공간에 트윗을 날리는 건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시작하는 시스템이라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페이스북이 지향하는 바는 SNS이지만 트위터는 '정보 네트워크'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비즈 스톤은 출범 당시부터 '미래의 CNN'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것이 트위터의 기업 비전이다. 하지만 게시물이 죽 흘러가는 형식이니 흥미를 못 느낀다. 팔로워가 많이 있어야 그나마 재미있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탈자가 많다. 트위터의 이용자 수 성장률은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월간 이용자 수는 2015년 4분기 기준 3억2000만명. 페이스북 15억명, 인스타그램은 4억명이 넘는다. 트위터의 정체(停滯)는 플랫폼의 한계 탓이 크다. 트위터가 큐레이션을 접목한 알고리즘 서비스를 선보이려는 이유다. 볼 만한 콘텐츠를 골라주는 식으로 바꾸려 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 하지만 트위터가 페이스북의 뉴스 전략을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큐레이션을 안하지만, 트위터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플랫폼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다."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많은 플랫폼에서 '재미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 스토리텔링형 장편 기사,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을 예로 들겠다. 긴 기사라면 본문 곳곳에 '흥미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읽혀야 한다. 모바일에서 긴 글이 안 읽힌다는 것은 착각이다. 길어서 안 읽히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긴 글이 안 읽히는 것.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쟁사 기사만 읽을 것이 아니라, 잡지도 봐라. 미용실에 가면 여성 잡지들 봐라. 잘 쓴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도 챙겨보라고 말한다. 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을 익힐 수 있다.
기자들은 소설도 많이 봐야 한다. 소설가들은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기사에서 팩트만 전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소설 시 많이 봐야 한다. 그런 것들이 글에 녹아서 스토리텔링이 된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탐사 보도도 마찬가지다."
-지혜의 저널리즘으로 돌아가서, 저자의 주장은 저널리즘의 주 무대가 웹 플랫폼으로 바뀌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적어 아쉽다. 구글은 2014년 10월 '기술로 저널리즘의 신뢰를 복원하려는 야망'이라는 표제로 한 구글 트러스트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기술이 실제 굉장히 많은 효용을 창출하는 건 맞지만, 기술 만능주의도 우려된다. 기술이 저널리즘에 가져다 줄 공과 실을 내다본다면.
"구글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구글 기술, 알고리즘으로 많은 걸 해소해왔고, 인공지능에 굉장히 많은 걸 투자한다. 알고리즘에 가중치를 부과해서 매체와 기사 신뢰도를 기계적으로 평가한다.
언론의 신뢰는 기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혜택이 더 많을 것이다. 어뷰징을 예로 들겠다. 어뷰징도 알고리즘으로 할 수 있다. 기술력이 있다면 진짜 해보고 싶은 게 알고리즘을 활용한 어뷰징이다. 베껴쓴다는 게 아니다. 실시간 인기 키워드를 알고리즘으로 수집해 이슈가 되는 것을 자동으로 기사화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단순 처리 가능한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키울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구조 때문에 기자와 언론이 신뢰를 잃고 있다."
◆김익현 소장 주요 번역서·저서
비욘드 뉴스(미첼 스티븐스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더 나은 저널리즘을 위한 스티븐스 교수의 제안을 담았다. 그는 '과거'에서 미래 저널리즘의 모델을 발견한다. 18세기, 위트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글을 썼던 미국 정치인이자 언론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예. 프랭클린의 말을 빌리자면 지혜의 저널리즘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것이 될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밖에 1962년 출간된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논픽션 작가 조앤 디디언(Joan Didion)처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자기 의견 내놓기에 거침없었던 수많은 선배 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새 길을 제시한다.
글쓰기의 공간(제이 데이비드 볼터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미국 대표 하이퍼텍스트 이론가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가 디지털 글쓰기를 '활자 매체의 재매개'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책. 재매개란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양식, 인터페이스를 개선한다는 이론이다. 저자는 하이퍼텍스트가 인쇄의 종말이 아닌 '인쇄의 재매개'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에는 고대 그리스의 두루마리에서 필사본, 책과 컴퓨터에 이르는 '글쓰기 공간'의 변천이 소개된다. 저자는 사용자가 연상하는대로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하이퍼텍스트가 인쇄의 형식을 어떻게 바꾸고 재매개하는지를 설명한다. 영국 음악가 겸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전자적 글쓰기의 세계에서 이 책이 기여한 바는 전통적 인쇄의 세계에서 구텐베르크가 남긴 업적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 국내 출간.
1인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김익현 외 지음·한국콘텐츠진흥원)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전문 기자들이 1인 미디어 운영에 대해 공동 집필했다. 실전 취재, 기사·헤드라인 작성, 인터뷰, 동영상·그래픽 제작 기법을 설명한다.
7년 전 출간된 책이지만 공유 문화, 내러티브 글쓰기, 신문과 방송의 '크로스 미디어' 등 지금도 유용한 정보가 많다. 초상권, 저작권, 표현의 자유 등 1인 미디어 운영자들이 알아야 할 법률 상식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