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해외 이코노미스트]⑥ 김병철 조지아공대 교수 "한국, 속도만큼 질적 성장 못해"

조선비즈
  • 김종일 기자
    입력 2016.02.02 10:00

    조선비즈는 지난해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있는 30대, 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2016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40대 한국인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미경제학회(KAEA) 전현직 임원진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韓 더 발전하려면 잠재력 끌어낼 수 있는 조직문화 변화 중요"
    "'철저한 계획'보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가 성공 이끌어"

    "한국을 가끔 가는데, 갈 때마다 그 빠른 변화 속도에 놀랍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빌딩의 개수나 그 높이만큼 우리 생활의 질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열망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만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급변하는 경쟁 상황 속에서 '철저한 계획'보다는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가 기업의 성공을 이끌어 냅니다. 우리나라가 더 발달하려면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조직 문화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병철 조지아공대(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두 차례 걸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38)는 '인터넷 경제' 전문가다. 지난 2010년 응용미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인정받는 랜드(Rand) 저널에 '망 중립성과 투자 유인'(Net Neutrality and Investment Incentives)이라는 논문을 게재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논문은 200차례 가까이 인용 됐다.

    '인터넷 경제' 전문가답게 그는 '협업'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8년간 8편의 논문을 SCI급 저널에 게재했는데, 모두 협업을 통한 성과였다. 김 교수는 "새로운 연구는 아이디어의 충돌에서 나오게 되는데, 한 사람의 머리에서 충돌하는 아이디어보다는 팀에서 여러 동료들과 토론할 때 나오게 된다"며 "동료들과 토론할 때 더 빈번하고 큰 아이디어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5년 전미경제학회에서 한국과 미국의 경제학계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젊은 경제학자상'을 수상했다.

    표정이나 목소리를 직접 살필 수 없는 이메일 인터뷰였음에도 그의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은 그대로 드러났다. 인터뷰는 크게 두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지만, 이메일은 10차례 가까이 오고 갔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수평적인 관계가 창의성 시작…잠재력 끌어내게 조직문화 변해야"

    - 미시간 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조지아공대에 자리를 잡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여담(餘談)이지만 유학생 중에서 여러 대학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곳을 골라서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2008년(2007년 박사학위 취득)에 첫 직장을 구하려 할 때 미국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은 유일한 곳이 조지아공대였습니다.

    저는 소위 명문대 탑스쿨(top school) 박사과정에서, 노벨상을 수상하신 경제학자 밑에서 수학(受學, 학문을 배움)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저는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펴주시고,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지도해 주신 최재필 교수님의 제자입니다.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자랑스러운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한국에서는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가 상당히 수직적인데 비해, 미국에서는 수평적이고 또 공동연구자로 인식합니다. 저는 최 교수님께 영문으로 이메일을 쓸 때 'Hi, Jay'라고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실례라고 생각해서 늘 'Dear Professor Choi'라고 썼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교수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가 교류되는 것이 창의적인 논문을 쓸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해외에서 생활하고 근무하시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으셨나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영어입니다.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고 쓰는 게 많이 부족합니다. 학회에서 발표할 때도, 논문을 쓸 때도, 연구결과를 좀 더 잘 표현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계속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겠죠."

    - 해외에서 활동하시다 보면 한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으로 오실 계획이나 생각도 있으신가요.

    "한국은 제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영원한 나의 조국입니다. 몸은 미국에 있어도 아침에 일어나 한국 소식을 챙겨봅니다. 특히 신문 경제면에 나는 기사들을 읽습니다. 조지아공대에서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서 애틀란타로 오시는 여러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 또한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산업과 관련된 실증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가령 모바일 시대에 플랫폼 기반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에 관심이 큽니다. 한국의 경우 정부든 기업이든 아주 소중한 경제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많은 경우 데이터를 학자들에게 제공해 주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증 연구의 진작을 위해 연구용 데이터 지원이 좀 더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거나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는 것을 꿈꾸는 후학들을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주목받는 주제보다는 자신이 관심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걸 권합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지만 불확실성 자체를 낮추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그 불확실성을 새로운 무기로 활용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소중합니다.

    특히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려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 말씀을 드린다면, 경제학 교과서에 수록된 지식을 완벽히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많은 독서를 통해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또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해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 2003년 유학 이후 꾸준히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 사이 한국 금융이나 산업도 많이 발전했는데 외부에서 보시기에 어떤 부분들이 더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을 가끔 가는데, 갈 때마다 그 빠른 변화의 속도에 놀랍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빌딩의 개수나 그 높이만큼 생활의 질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열풍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만나는 분들의 의견을 늘 경청하던 중 제게 한 가지 힌트를 주는 관찰이 있었습니다."

    -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10년을 최고의 고과 점수를 받으며 근무한 대리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회사에서 억울한 일로 사표를 내게 됐습니다. 이후 아주 어렵게 한 미국의 텔러마케팅 회사에 하위급 관리직으로 재취업을 하게 됩니다.

    이 분은 텔레마케터들을 관리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해 냈습니다. 이에 남미 시장까지 사업을 진출시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입사 3년 만에 부사장까지 오르게 되죠. 매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승진했는데, 이러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업문화에 크게 놀랐습니다."

    - 어떤 차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사람이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데도 우리의 수직적 기업 문화에서는 한 사람의 영향력을 조직이 살려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냥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제게는 나름 의미있는 발견이었습니다."

    - 또 다른 예도 있을까요.

    "시카고대학 교수인 스티브 레빗(Steven Levitt)이 쓴 논문 가운데 '종합병원에서 최고의 의사를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수술 후 사망률이 낮거나 수술 후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더 좋은 의사일까요? 뛰어난 의사일수록 상태가 더 좋지 않은 환자들을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좋은 지표가 의사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에 주목한 연구논문입니다."

    - 흥미롭네요.

    "기업에서도 성과를 측정하기 쉬운 경우에는 성과를 가지고 누가 더 뛰어난 직원인지를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그럼에도 저는 아직 한국의 대형 종합병원에서 이러한 데이터를 통한 실증연구를 진행해서 가장 뛰어난 의사를 선정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집중하면서 모든 판단을 내리는 문화가 팽배하면, 잠재력을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더 발달하려면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조직문화로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철저한 계획보다는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가 기업 성공 이끌어"

    - 한국은 지금까지 대표적인 추격자 모델로 경제를 성장시켜온 나라입니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표기업들이 더 이상 이 모델로 과거와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고전적인 연구주제는 '선도적 기업이 연구투자를 많이 하는가, 아니면 추격 기업들이 연구투자를 더 많이 하는가'입니다. '기술개발에서의 동적 경쟁: LCD 패널산업의 경험적 시험'(Dynamic Competition in Technological Investments: An Empirical Examination of the LCD Panel Industry) 논문은 LCD 패널산업의 경우, 당시 추격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삼성과 LG는 선두기업군을 이룬 일본 업체들보다 더 많은 시설투자를 통해 기술역전을 이루고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하신 것처럼, 한국은 이제 추격자에서 선도자가 됐고 새로운 추격자를 상대로 해야 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 전환기를 맞은 기업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선도 기업의 경우 추격 기업에 비해 신기술로 인해 시장 점유율을 올리는 방식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시장에서의 점유율 싸움이 아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연구개발이 요구됩니다."

    -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군요.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실패하면 추격 기업일 때가 더 좋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팀 하포드(Tim Harford)가 쓴 '어댑트'(adapt, 불확실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힘)라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급변하는 경쟁 상황 가운데서 '철저한 계획' 보다는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한 진화'가 기업의 성공을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구글의 성공은 철저한 사업계획에 있지 않습니다. 구글은 가장 많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또 가장 많이 실패합니다. G메일, 구글맵은 크게 성공했지만 구글플러스(Google Plus, 소셜 미디어), 구글 놀(Google Knol, 구글형 지식인 서비스)은 실패했지요."

    -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실패를 두렵게 하는 조직 문화, 완벽한 계획과 실행에서 성공을 구하려고 하는 현재의 방식을 벗어나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통해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큰 교훈을 얻어가는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현재의 대기업이 미래의 대기업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1912년 초우량 기업으로 선정된 43개의 기업 가운데 1995년 100대 기업 안에 든 기업은 단지 3곳(엑슨, 제너럴 일렉트릭, 쉘)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한 기업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현재 작업 중인 연구목록 중 'The Economics of the Right-to-be Forgotten'(잊혀질 권리의 경제학)이라는 연구 제목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혹시 공개가 가능하다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희 논문에서 말하는 잊혀질 권리는 좁은 의미의 잊혀질 권리로 검색엔진에서 자신의 이름과 관련된 검색 결과가 잘못됐거나 더 이상 상관이 없으면서 해당 개인에게 해를 주는 경우 해당 검색엔진을 상대로 그 결과를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유럽에서는 2014년 5월부터 이러한 종류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에 대한 자유를 들어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거의 독점적인 검색엔진인 구글은 유럽 내에서의 검색결과에 대해서는 지워주면서 다른 나라, 가령 미국에서의 검색 결과에 대해서는 삭제를 하지 않고 있어 현재 큰 논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논문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경제적인 모델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도 소개해주시죠.

    "특히 주목할 점은 저희 논문에서 보여주듯 글로벌 도메인에서 해당 검색결과를 지우지 않는 것이 반드시 개인의 사생활을 '적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검색엔진이 삭제를 거부했을 경우 최종적으로는 법률적인 판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글로벌 도메인에서의 검색결과 삭제로 인한 글로벌 유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법원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검색엔진이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있고, 수많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하는 오늘날 현재 유럽에서 인정되는 잊혀질 권리(사생활 보호 강조, 상대적으로 미국은 표현의 자유 중시)에 대한 관심은 다른 나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벌써 미국에서 진행된 한 서베이에서 미국인 10명 중 9명이 유럽식 잊혀질 권리를 선호한다고 했으니깐요. 곧 한국에서도 이러한 권리에 대한 관점이 높아질 것이고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 '예비적 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이라는 개념으로 쓴 논문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떤 개념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예비적 금지명령은 '가처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최종 법률적 결정을 얻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경우, 하지만 법원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면 한 쪽의 비가역적 손실이 클 경우 신청 2~3개월 안에 예비적인 법률적 결정을 내려주는 제도입니다."

    - 여전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개념이 노동법 등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는데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노동법의 적용사례로는 가령 한 기업에서 신규 직원을 채용했는데 해당 직원의 이전 회사에서 이 직원을 빼가는 것이 자신의 회사에 비가역적인 치명적인 손실을 미칠 수 있다고 볼 경우, 이전 회사가 법원에 이 직원의 이직을 불허하도록 신청할 수 있습니다. 특히 회사 중역일 경우 회사의 영업 비밀의 누설이 우려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수용여부가 최종적인 법원의 판단에 대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가처분 신청시 법원의 수용 여부가 원고와 피고의 소송전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협상에 미치는 사후적인 영향은 가처분 신청이라는 결정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논문에서는 이런 과정에 대한 이론적인 모형을 제시하고 몇 가지 실증적인 예측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 "규제당국, 혁신 일어날 수 있게 망 시장 생태계에 필요한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랜드 저널에서 'Net Neutrality and Investment Incentives'(망 중립성과 투자 유인)이라는 논문을 게재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논문의 내용과 의의를 설명해주시죠.

    "2000년대 중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망 중립성 논쟁은 10년이 넘도록 가장 중요한 규제 논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기 쉽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인터넷 망 사업자인 통신업체들과 주요 컨텐츠 사업자들의 엇갈리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망 사업자들은 아무리 시설 투자를 해도 컨텐츠 사업자들이 무료로 망을 사용하는 무임승차의 문제 때문에 투자를 할 유인이 떨어진다며 차별적인 요금 부과권이 투자 유인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컨텐츠 사업자들은 망 사업자가 차별적인 요금을 부과할 경우 자신들이 혁신적인 켄텐츠로 인한 부가가치를 망 사업자가 부당하게 빼앗아갈 것이 우려되므로 인터넷 발달의 핵심인 컨텐츠 혁신이 저하된다는 '홀드업'(hold up, 기업이 정부의 제도나 정책변화로 손을 들고 철수하는 경우) 문제를 지적합니다."

    - 서로 다른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네요.

    "무임승차론과 홀드업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죠. 랜드 저널에 실린 논문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하나의 통합된 경제 모형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입니다. 특히 논문에서 저희는 차별적인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망 사업자의 투자 유인을 항상 높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컨텐츠를 보내려고 하는 컨텐츠 업자의 지불 용의가 절대적인 인터넷 속도가 아닌, 해당 프리미엄을 내지 않고도 (컨텐츠를) 보낼 수 있는 속도와 비교한 상대속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망 투자가 많이 이뤄질수록 절대속도는 향상되지만 상대속도가 그럴 이유는 없기 때문에 망 중립성이 투자 유인을 빼앗아 간다는 논리의 헛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후 많은 후속연구들이 나왔고, 저희 연구가 후속연구의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 한국에서도 '망 중립성'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인터넷망을 공공재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정의도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국에서의 논란과 한국에서의 논란에 차이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인터넷 생태계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 유저 기준으로 볼 때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의 선택 폭이 크지 않습니다. 특히 중소도시의 경우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이 아주 큰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인터넷 속도도 한국보다 느린 지역이 많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속도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만큼 절대적인 속도가 높고 많은 지역에서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의 경쟁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논리를 한국적인 시장 상황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한국에서 망 중립성 논쟁은 KT와 삼성, 카카오와 이통사처럼 대기업과 대기업간의 논쟁처럼 보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망 중립성이 컨텐츠 생산자, 특히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 지 궁금합니다. 시장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궁금합니다.

    "예를 드신 KT와 삼성, 카카오와 이통사의 갈등은 한국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VoIP(인터넷전화) 사업자인 Vonage가 Madison River라는 통신업자의 사업 방해를 부당하다고 고소한 사건을 비롯, 망에 많은 부담을 주는 컨텐츠를 이용해서 사업을 하는 컨텐츠 업체들에 대한 인터넷 망서비스업자들의 방해를 '적절한 망 통제'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부당한 사업 방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적, 경제적인 논쟁이 진행되어오고 있습니다.

    망 중립성은 기본적으로 작은 규모의 컨텐츠 사업자를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가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소비자 선택으로 인해 짧은 시간에 다수의 유저층을 끌어들인 것과 같이, 혁신의 결과 시장구조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규제당국은 이런 혁신이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시장 생태계를 이루어가는 데 주목하면서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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