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갈 길 먼 세운상가 부활…주변 지역 재개발도 요원

조선비즈
  • 김수현 기자
    입력 2016.02.01 06:40

    “보행교가 만들어지면 개장 직후에 구경은 오겠죠. 하지만 조명도 제대로 안 들어와 밤이면 지나다니기 꺼려지는 이곳에 과연 장기적으로 방문객이 오갈지 의문이네요.”-김종훈(가명) C전자 대표·세운전자상가 임차인

    1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전자상가 1층. 먼지 쌓인 길 위로 조명과 전자기기, 공구상가 수십여곳이 양옆으로 밀집해 있는 이곳은 한낮이었지만 해 질 녘 어스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2층과 3층으로 갈수록 문 닫은 점포는 더 눈에 들어왔다. 3층 복도 한쪽으론 전자기기가 들어 있는 박스가 어른 키 높이까지 쌓여 있어 오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재정비촉진지구로 묶여 있는 인근 골목 상권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로변에는 유동인구가 있는 편이었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나다니는 사람도 줄어 아예 셔터를 내리고 있는 점포들이 많았다.


    위쪽부터 세운전자상가 1층과 3층. 한눈에 봐도 시설이 낡았음을 알 수 있다. /김수현 기자
    서울시가 공중보행교 건설 등을 주 내용으로 한 세운상가 재생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인근 상인들은 회의적이다. 상인들은 상권활성화를 위해 낡은 주변 지역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아직 별 진척이 없다

    ◆ “다리 만든다고 상권 활성화되나”…고개 젓는 상인들

    서울시는 세운상가 재생을 위해 1단계 공공사업에 착수한다고 28일 밝혔다. 세운전자상가 앞 초록띠공원을 경사광장으로 재정비하고,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를 잇는 공중보행교를 짓는 것이 주 내용이다. 방문객들이 보행교를 통해 세운상가에서 대림상가까지 이어지게 해 유동인구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은 상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보행교가 설치돼도 상권이 침체하고 시설이 낡아 유동인구를 상가 안까지 끌어들일 흡인 요인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세운전자상가에서 12년간 오디오 기기를 판매하고 있는 W전자 사장은 “볼거리가 있어야 사람이 올 텐데 세운상가나 대림상가나 문을 닫은 상가들이 태반이고 밤에는 불빛도 없어 통행하기 위험할 정도니 누가 오겠느냐”라면서 “다리를 놓기보다 낡은 상가시설을 보수하고 주변 지역을 정비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임대료 상승을 부추겨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려된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세운청계상가에 입점해 있는 영화특수조명사 최성섭 대표는 “기계·공구·조명 등 세운상가에 입점한 업종 특성상 외부 방문객이 늘어난다고 매출이 뛰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매출은 그대로인데 상가 주인들은 다리가 생겼다며 임대료를 올릴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세운상가 재생사업을 발표하면서 소유자·상인 대표와 임대료 상승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상생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유자들의 자율적인 동참에 기대하는 수준이라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 슬럼화된 주변 지역, 당분간 개발 속도 내기 어려울 듯

    세운2구역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문 닫은 점포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김수현 기자
    서울시는 세운상가 재생사업을 계기로 주변 지역의 재정비촉진사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상가 재생사업과는 별개로 재정비촉진구역들이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어 사업이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는 2014년 당초 8개였던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 구역을 잘게 찢어 171개로 나눴다. 그동안 구역당 수백억원이 넘는 보상비가 걸림돌이 됐던 터라 부담을 줄여 개발이 쉽도록 한 것이다. 대신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기존의 도시 조직을 보전하는 범위 안에서 분할이나 통합 개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그러나 조정 이후 지금까지 사업 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전체 중 4%인 7곳에 불과하며, 착공을 계획 중인 곳도 2곳에 그친다. 구역이 작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져 민간 업체가 들어오길 꺼리기 때문이다.

    세운 6-2구역 인근 Y공인 대표는 “보상비 비싸다고 쪼갠 건데, 쪼갠 구역의 면적이 작다 보니 돈이 안 되고 층고 제한이 엄격한 구역도 있어 민간 개발업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서 “세운상가 주변 지역 대다수가 재개발과 관련해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개발이 지연되면서 이 일대는 노후화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매출도 부진해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운2구역에서 18년째 공구판매를 하는 강관규 사장은 “오늘 문을 연 뒤 오후가 되도록 손님 한 명 없었다”면서 “상가를 냈을 당시 13.2㎡ 점포를 권리금 8000만원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권리금이 제로”라고 말했다. 강 사장은 “이 지역에서 대로변을 제외하면 권리금이 있는 점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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