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기술 둘러싼 생명과학 분야 최대급 특허 분쟁 촉발

조선비즈
  • 김민수 기자
    입력 2016.01.27 06:30

    지난해 가장 주목받았던 과학 연구 성과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 분쟁이 미국에서 촉발했다. 이 기술은 수억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 생명과학자들뿐 아니라 바이오 및 제약기업 등이 이번 특허 분쟁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위키미디어 제공
    27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연구 결과로 입증한 UC버클리대 연구진이 지난해 4월 미국 특허청에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 소송의 상대는 UC버클리대 연구진보다 늦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했지만 먼저 특허 등록에 성공한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이다. UC버클리 연구진은 MIT 연구진이 받은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미국 특허청은 최근 UC버클리대 연구진의 소송을 받아들여 특허 권리 재검토에 들어갔다.

    ◆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

    유전자 가위는 DNA에 각종 세포 질환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생기면 이를 잘라내고 정상 DNA를 붙이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기술은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로 기존 기술에 비해 정교함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원하는 특정 유전자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할 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하면 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미 많은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이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일례로 미국 기업인 ‘샌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혈우병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혈우병 유발 유전자를 교정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농작물이나 가축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어 이 기술이 지닌 잠재적 가치는 가늠하기 어렵다. 양대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2015년 최고 혁신 기술로 선정한 이유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은 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정교하게 붙일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사이언스 제공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특허분쟁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허 소송을 제기한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는 2013년 3월 가장 먼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다. 그 뒤 우리나라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권위자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공동 창업한 바이오벤처 툴젠이 9월, 펭 장 MIT 교수 연구팀이 10월 잇따라 특허를 출원했다.

    펭 장 미국 MIT 교수(왼쪽)가 지난해 12월 열린 ‘유전체교정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네이처 제공.
    문제는 가장 늦게 특허를 출원한 MIT 연구진이 미국 특허청의 ‘특별 리뷰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난 2014년 4월 가장 먼저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특별 리뷰 프로그램은 과학적 연구 관련 특허를 빠르게 승인하는 것이다. MIT 연구진이 이 제도를 활용, 발빠르게 움직여 특허 등록을 마무리했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권 분쟁은 UC버클리 연구진과 툴젠, MIT 연구진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길게 보면 특허 분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특허 분쟁을 지켜보고 있는 제이콥 셔코우 뉴욕대 법대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활용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사상 최대 규모의 특허 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이오벤처 ‘로열티 폭탄’ 가능성...대학·연구소도 주의해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등장한 이후 많은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등 투자회사도 이 분야에 수억 달러를 투자를 하고 있다. 독일 제약기업 바이엘은 크리스퍼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확보한 스위스 바이오벤처 ‘크리스퍼 세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와 합작법인을 설립, 5년간 신약 기술 개발에 3억유로(약 3800억원)를 투자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특허권 분쟁이 마무리되면 엄청난 규모의 ‘로열티 폭탄’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티 라이 미국 듀크대 법대 교수는 “기초 연구 기관이 이토록 강하게 특허권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례”라며 “통상 기초과학 분야 기술은 특허권리를 나누는 데 합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크리스퍼 기술 특허 분쟁은 훨씬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진수 단장은 “크리스퍼 기술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제뿐 아니라 곡물이나 가축 등 광범위한 분야에 두루 활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부가가치는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순수하게 연구 목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는 대학이나 연구소도 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통 연구 목적의 활용에 대해서는 특허 로열티를 요청하지 않지만 특허 분쟁이 심화할수록 이런 관례가 깨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로드니 스팍스 미국 버지니아대 바이오기술 특허 변호인은 “아카데믹 연구자들에게 특허 소송을 제기해 봤자 보상으로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통상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최근 특허 분쟁 흐름을 볼 때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하는 과학자들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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