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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은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에서 '비극적 결혼'의 주인공으로...노소영 관장의 인생역정

  • 설성인 기자

  • 전효진 기자
  • 입력 : 2015.12.31 07:43 | 수정 : 2015.12.31 16:22

    ‘대통령의 딸, 굴지의 재벌가 안주인, 대학교수, 미술관 관장, 세 아이의 엄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 노소영(5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재계 안주인 중에서도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라는 배경, 거침없는 성격으로 국민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노 관장이 2015년 연말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남편인 최 회장이 29일 “노 관장과 결혼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그 분’과 여섯 살 난 딸을 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국민과 재계의 시선은 노 관장에게 모아지고 있다. 그의 결심에 따라 자산총액 165조,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의 경영권 또는 주요 계열사의 운명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현재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책임은 제 자신에게 있다. 남편은 피해자이고, 내(노 관장)가 남편(최 회장)의 감정을 읽지 못했고 상처를 입혔다. (최 회장의) 혼외 자식을 직접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경이 있더라도 가정을 꿋꿋하게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도 30일 "최 회장이 가정 불화를 고백한 이유는 자신의 오랜 부담을 털어내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혼)소송보다는 시간을 갖고 노 관장과 대화로 풀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혀, 합의나 조정을 통한 ‘아름다운 이별'을 원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대통령 장녀와 재벌 그룹 장남의 결합‘이란 동화 같은 결혼 스토리의 주인공에서 ‘비극적 결혼'의 주인공이 된 그는 누구일까? 노 관장이 걸어온 인생 스토리를 짚어봤다.

    2011년 3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DB
    2011년 3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DB
    서울대 공대‘퀸카' 출신…미국 유학 시절 최태원 회장 만나

    노 관장은 1961년생이다. 최 회장보다는 한 살 어리다. 1980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그녀는 장군의 딸이자 공대 ‘퀸카’로 명성이 자자했다.

    서울대 섬유공학과 출신 한 기업인은 “당시 학과 정원이 40명 정도였는데, 이 중 여학생은 3명 미만이었다. 노 관장은 외모와 성격 탓에 인기가 많았다. 노 관장을 흠모하는 남학생도 제법 있었는데, 집안에 대해 모르고 집까지 쫓아갔다가 경호원에게 제지당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 관장의 출신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기에 신군부의 실세였던 노태우 장군의 딸이라는 것은 학교생활 적응에 장애물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대 80학번인 한 졸업생은 “여학생 치고 큰 키(170cm)와 세련된 패션으로 그녀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입학 후 도시락을 혼자 먹는 등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은 결국 서울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2학년때 미국 윌리엄앤드메리(William&Marry)대로 유학을 갔다.

    198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13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소영 관장(왼쪽 두번째)과 노소영씨의 할머니 김태향 여사, 노소영씨의 외할머니 홍무경 여사, 남동생 노재헌씨가 앉아있다. /조선일보DB
    198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13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소영 관장(왼쪽 두번째)과 노소영씨의 할머니 김태향 여사, 노소영씨의 외할머니 홍무경 여사, 남동생 노재헌씨가 앉아있다. /조선일보DB

    노 관장이 최 회장을 만난건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때였다. 노 관장과 최 회장은 금반지를 나눠끼고, 소박한 연애를 즐겼다고 한다. 테니스를 함께 치면서 유학 시절의 외로움을 달랬다.

    노 관장은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 회장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겨울 방학 때 기숙사 식당이 문을 닫아서 며칠을 굶었다. 차도 없고 누구한테 빌붙는 것도 싫었다. 굶고 있었는데, 친한 선배가 불러서 나간 자리에 최 회장이 있었다”

    최 회장은 당시 기억을 종종 이야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이 직접 요리를 해서 노 관장을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유학 시절 연인에서 발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세기의 결혼에 골인했다. SK가의 장남과 대통령의 큰 딸이 한 식구가 된 것이다.

    대통령 딸과 재벌가 아들의 결혼생활,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결혼 후 1남 2녀를 낳았다. 장녀 최윤정씨를 1989년에, 차녀 최민정씨를 1991년에 봤다. 1995년에는 장남인 최인근씨가 태어났다.

    노 관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1997년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부인 박계희 여사로부터 워커힐 미술관을 물려받았다. 아트센터 나비의 모태였다.

    하지만 노 관장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최 회장이 2003년 분식회계, 2013년 횡령 등으로 수감생활을 반복하면서 부부는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노 관장은 정기적으로 최 회장을 면회했다. 2003년 최 회장의 첫 수감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면회를 했다고 한다. 취재진이나 세간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채 묵묵히 공판 때도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3월 3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노소영 관장 /조선일보DB
    2003년 3월 3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노소영 관장 /조선일보DB
    노 관장은 2003년을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한다. 남편의 수감은 물론 장남이 소아당뇨병 때문에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 회장 역시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남편 실형 선고에 눈물…최 회장 이혼 시도 “처음 아니다”

    두 사람은 가정에 닥친 악재에 서로를 의지하기보다는 잦은 의견 충돌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 생활에 차츰 엇박자가 난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별거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이혼 결심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전인 2013년 초 이혼 소송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해 최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또 다시 감옥에 가면서 소장은 제출하지 못했다.

    노 관장은 2013년 9월 최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 당시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최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14일 노소영 관장이 서울 광장동 워커힐 비스타홀에서 열린 SK최종건 창업주 40주기 추모식에 입장하고 있다./조선일보  DB
    2013년 11월 14일 노소영 관장이 서울 광장동 워커힐 비스타홀에서 열린 SK최종건 창업주 40주기 추모식에 입장하고 있다./조선일보 DB
    노 관장은 가정생활에서는 불화가 있었지만 왕성한 대외 행보를 보였다.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학교수로도 강단에 섰고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노 관장은 디지털 아트라는 분야를 개척,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중국 칭화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서울예술대 디지털아트학과에서 강의를 했다.

    2012년에는 학력과 상관 없이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통섭인재양성소 ‘타작마당’의 개관도 주도했다.

    노 관장은 당시 “예술적, 창의적 소양을 가진 한국인은 많은데 예술교육 기관들이 이를 못 따라간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고 집요하게 쫒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녀 앞에서 남편인 최 회장은 이제 공개적으로 이혼 의사를 밝히고 사실혼 관계인 A씨와 혼외자식을 공개했다.

    노 관장은 답답한 심정이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불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재계의 관심사였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27년의 결혼생활은 이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SK그룹의 운명에도 어떤 식으로든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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