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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곳 지금은]⑥ 반쪽 난 ‘동심 천국’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실효성 없는 지원 되레 골치

  • 이진혁 기자
  • 이선목 인턴기자
  • 입력 : 2015.11.08 07:03

    “엄마, 나 이거, 저것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시장 초입의 한 점포 앞에서 엄마와 아이의 실랑이가 한창이다. 대형 마트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는 인기 캐릭터 카드부터 어른들의 눈길을 끄는 드론 등 다양한 장난감과 문구류, 번쩍이는 파티 용품까지 한가득 진열된 가게가 분명 꼬마의 눈을 대번에 잡아끌었을 게 확실하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4번 출구로 나가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독일 약국’을 끼고 돌면 ‘동심(童心)의 천국’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이 펼쳐진다.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초입에 관광특구 지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초입에 관광특구 지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 국내 문구·완구 시장의 메카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의 시초는 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낱개로 볼펜을 팔면서부터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처음에는 문구류가 주를 이뤘다. 점차 업종을 확장한 상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국내 최대 문구·완구 전문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국적으로 업계 사정이 어렵지만, 창신동에는 아직 약 120개의 점포가 꿋꿋하게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에서는 각종 문구와 완구를 시중가보다 30~50% 싸게 살 수 있다.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을 바로 받아 중간 이윤이 없는 유통 구조를 가진 덕분에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국산 제품 외에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수입품도 취급하고 있다.

     창신동의 한 완구점에서 아빠와 아들이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창신동의 한 완구점에서 아빠와 아들이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최대 완구 시장답게 평일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에도 가족 단위의 손님이 꽤 많았다. 중국인과 동남아인 등 외국인도 종종 눈에 띄었다. 특히 요즘은 장난감에 관심이 많은 ‘키덜트족’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평소 장난감 수집이 취미인 원인혜(27)·곽형준(24)씨 커플은 이날도 희귀 장난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레고 상자 하나와 캐릭터 인형 몇 개를 골랐다. 원 씨는 “창신동 시장에 오니 대형 마트에서도 보기 힘든 장난감들을 시중보다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자본주의 공세와 복지 정책 역풍에 ‘휘청’…점포 절반 사라져

    대형 마트에서 싼값에 대량의 문구류가 판매되고, 2011년부터 교육부 주도의 복지 정책인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시행되면서 문구업계가 정면타격을 맞았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란 일선 학교가 각 시·도 교육청의 예산을 지원받아 125개 품목의 학습 준비물을 최저가 입찰제도를 통해 일괄 구매하여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제도다.

    통계청이 전국 도소매업 사업체 수를 조사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6년 2만583개였던 문구 용품 소매업체 수는 2013년 1만3496개로 약 35%가 줄었다. 종사자 수도 같은 기간 3만3943명에서 2만3816명으로 약 30% 감소했다.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창신동 시장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오세인(64) 씨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시행되면서 문구 매출이 타격을 받았다”며 “한창 때와 비교하면 문구 전문 점포의 50% 정도가 문을 닫았고, 대신 잡화나 다른 업종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구·완구와 무관한 등산 용품 매장과 파티 용품점 등이 여럿 보였다.

     창신동의 한 문구점 앞을 손님이 지나가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창신동의 한 문구점 앞을 손님이 지나가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송동호(58) 창신동 문구·완구시장 번영회장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에 따른 문구업계 피해를 해결하겠다고 각 시·도 교육청이 쿼터제(학습준비물 예산의 15% 이상을 학교 인근 지역의 문구점에서 구매하도록 한 제도)를 시행하고, 대형 마트의 문구류 판매도 제한했지만, 아직 효과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05년에는 창신동 일대가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면서 문구·완구 시장은 존폐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이곳은 2013년 서울시 최초로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됐다. 그러나 상인들은 “언제든 다시 재개발할 수 있는 상황이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 실효성 없는 보수 사업에 상인 ‘몸살’

    지난해 12월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2015 관광특구 활성화 지원 사업’ 대상으로 뽑혔다. 종로구청은 올 4월부터 문구·완구 시장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동대문 보물섬, 문구·완구 거리 특화 사업'을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사업의 하나로 문구·완구 거리의 도로를 새로 포장하고 캐릭터 디자인을 입힌 ‘캐릭터 디자인 도로’가 조성될 예정이다. 종로구청도 지난 10월 12일 ‘19일 오후 7시까지 가판 및 매대 등의 도로 점용물을 철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렸고, 13일에는 구청 공무원이 직접 시장을 돌며 해당 내용을 감독·지시했다.


     창신동 한 문구점 입구 바닥에 붙은 자진 정비 안내문. /이선목 인턴기자
    창신동 한 문구점 입구 바닥에 붙은 자진 정비 안내문. /이선목 인턴기자
    상인들은 “오래된 천막이나 간판을 정비하는 사업 정도로 알고 있었다”며 “도로 정비보다는 비나 눈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을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박모(52) 씨는 “손님도 없는 마당에 캐릭터 도로를 만든다고 가판을 치우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불이행 시 벌금까지 내라는데,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관광특구 활성화 지원 사업인지 알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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