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략에 능한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한국명 신격호)가 프로야구의 덫에 걸린 게 아닐까? 방울 달린 고양이 움직임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바라 보는 일본 재계의 시선이 묘하다. 일본 롯데 사정에 정통한 한 일본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외견 상 한국과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 홀딩스의 과반 지주가 아닌 이유를 프로야구단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찾았다.

한국 국적을 가진 신 총괄회장이 일본 소비자에게 껌과 과자를 팔기 위해선 일본 최대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구단 운영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 '비정상적인 지배 구조'를 유지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는 경영권 다툼 이전, 일본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 신씨 일가 롯데홀딩스 지분 40% 불과
 
이번 다툼 과정에서 밝혀진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는 독특하다. 1대 주주는 28.8%의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光潤社)로 밝혀졌다. 광윤사는 신 총괄회장의 재산 관리 기업이다. 하지만 광윤사와 신 총괄회장의 가족 보유 지분(7.1%)을 다 합쳐도 신씨 일가(一家)의 지분은 일본 롯데 홀딩스 전체 지분의 40%를 넘지 않는다.

롯데홀딩스 지분 구조.

나머지 60%가량의 지분은 종업원지주회사(27.8%), 관계사(20.1%), LSI(10.7%), 임원지주회(6%) 등 일본인 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상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인들이 다수 지분을 가진 일본 기업이다.

물론 일본인 직원들이 대주주라 해도 신 총괄회장이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를 사실상 좌지우지 했기 때문에 한국인 기업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일본 롯데홀딩스 관계자는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가 보유한 지분이 많더라도 과거엔 신 총괄회장이 절대적으로 지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본인의 건강이 나빠지고 훗날 아들들이 본인의 의사를 어기고 싸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日 야구단 소유하려면 외국인 지분 49% 이하여야

일본야구기구(日本野球機構)가 정한 야구 협약 제 6 장은 '자본 총액의 51% 이상을 일본 국적을 가진 자가 소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 자본이 일본의 국기나 다름없는 프로 야구 구단을 소유할 수 없도록 막아 놨다. 구단 운영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국적이 아닌 대주주 지분율이 자본 총액의 49%를 넘어선 안된다.

결국, 일본인이 지배하는 기업만이 일본 프로야구 구단을 소유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시장과 기업 소유 구조를 가진 일본임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세계를 주름잡는 삼성과 현대가 일본에서 철수한 이유를 잘 봐야 한다"며 "거미줄같이 복잡하고, 강철보다 단단한 일본의 규제망을 뚫고 한국인으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이 재계의 존경을 받은 이유"라고 했다.

일본야구기구 야구협약 6장 28조.

◆ 66년 전통의 일본 롯데 프로야구단

지바 롯데 마린스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구단 중 하나다.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 로고 및 마스코트.

지바 롯데 마린스는 1949년 설립돼 재팬 시리즈 4회, 리그 우승 5회를 달성한 명문 프로 야구단이다. 가장 최근 우승한 때는 주니치 드래건스를 꺾고 통합 챔피언에 오른 2010년. 올해는 73 승 69 패 1무로 퍼시픽 리그 3위에 올랐으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창단 당시 이름은 마이니치 오리온스(?日オリオンズ).

일본 롯데그룹은 1969년 마이니치 오리온스와 업무 협약을 맺었고, 2년 뒤인 1971년 구단을 인수했다. 오랫동안 롯데 오리온스로 운영하다가 1992년 공모를 통해 힘찬 바다를 상징하는 '마린'을 추가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는 QVC 마린 필드를 전용 구장으로 쓰고 있는데, 유명 선수를 다수 배출했다. 언더핸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한 이구치 타다히토 등 일본의 국민 스타가 그들이다.

국민 타자 이승엽의 첫 일본 진출팀도 지바 롯데 마린스였고, 한화이글스의 4번타자 김태균 선수가 뛴 곳도 지바 롯데였다.

현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단주 대행 자격으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 선수들.

◆ 신격호 회장의 야구 사랑...야구를 통해 소비자의 입을 열고 마음을 얻어라

신격호 총괄회장의 야구 사랑은 한국과 일본에서 널리 알려졌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롯데 자이언츠를 창립,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1984년 이만수와 타율 1리 차로 타격왕을 겨뤘던 홍문종을 영입하는 등 재일동포 야구 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진출하는 문을 열기도 했다.

그의 야구 사랑은 '무일푼 조선인 사업가'로 시작, 일본 굴지의 기업집단을 일군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프로 야구를 통해 소비자의 입을 열고 마음을 얻은 그의 성공 체험이 밑거름이란 뜻이다.

신 총괄회장은 1942년 혈혈단신으로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면서 고학 생활을 했고, 1944년 커팅오일 제조 공장을 세우면서 경영자로 발돋움했다. '조센징' 이라는 멸시를 뚫고 일본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입속의 연인'인 껌으로 대박을 쳤고, 프로 야구단을 운영하면서 팬과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껌·과자·아이스크림 등 소비재가 주력 사업인 롯데는 프로야구단 운영으로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뒀을 것"이라며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규제를 뚫기 위해 만들었던 각종 장치가 지금은 신 총괄회장의 족쇄로 작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