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책방] ⑤ 녹번동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조선비즈
  • 윤예나 기자
    입력 2015.09.19 08:00

    널찍한 책상과 소파를 마련해 북카페처럼 편안히 앉아 책을 읽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 이진한 기자
    헌책방에 따라붙는 일반적인 수식어는 아마 ‘고색창연’일 것이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같은 곳이 그렇다. 노끈으로 묶인 책더미 사이로 나이 지긋한 주인이 책을 척척 골라내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이 헌책방은 외관부터 수상하다.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에서 5분쯤 걸으면 푸른 줄무늬 차양 위로 사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흰 도화지에 검정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 같은 글씨체다.

    서울 녹번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입구 / 윤예나 기자
    작은 출입문 유리 위에는 책 읽는 고양이 그림이 들어간 안내문을 붙여놨는데, 무슨 동아리 모임 공지문 같다.

    헌책방_ (꽃 그림)
    세계문학, 역사, 철학, 예술
    2sangbook.com
    열고 닫는 시간_
    오후 3시~밤 11시.
    화, 일요일 휴식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로 오르는 계단이다. 그 옆 벽면에는 책들이 도열해 있다. 누렇게 바랜 헌책들이다. 나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머리 위 천장에도 책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아늑한 서재, 아기자기한 북카페 같은 공간

    헌책방으로 오르는 계단. 벽면에는 헌책이 쌓여있고, 천장에는 책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이진한 기자
    2층에 자리 잡은 책방 안으로 들어서면 정작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무색해진다. 서른 평 남짓한 공간이 아늑한 서재 같다. 어느새 귓가에는 은은한 재즈 선율이 휘감긴다. 벽에는 천장 높이 책장들이 서 있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쪽 책장은 어른 허리 높이 정도로 낮춰 시야를 확보했다.

    책방 곳곳에는 이런저런 소품들을 배치했다. 귀여운 캐릭터 인형, 낡은 타자기, 마치 유물 같은 느낌이 드는 컴퓨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대여섯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널찍한 나무 책상과 책 읽기 좋은 소파까지 갖췄다. 퀴퀴한 헌책방이 아니라 산뜻한 북카페에 온 것 같다.

    책방 주인이 애써 모은 희귀 수집품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관련 자료들이다. 윤성근(40) 대표가 대학 시절 원서로 읽은 ‘앨리스'에 빠진 후 20년 가까이 모은 것들이다. 책방 이름 ‘이상한 나라’도 그 책에서 따왔을 만큼 애정이 각별하다.

    책방 출입구 쪽에는 ‘무료나눔 코너’가 마련돼 있다. 누구든지 남에게 주고 싶은 것을 두고 가고, 필요한 것은 가져갈 수 있게 한 작은 상자다. 지금은 메모지와 수첩 같은 소품 몇 개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 주인이 읽어본 책만 권하는 책방

    이 책방은 도서 길잡이 역할도 겸한다. 이른바 큐레이팅이다. 윤 대표는 자신이 읽어 본 책만 권한다고 했다. 지금 진열해 놓은 3000여권의 책도 빠짐없이 윤 대표가 직접 읽어보고 고른 것들이다.

    책방에서 사들인 헌책은 윤 대표의 손길을 거쳐 단정한 모습으로 새단장한 뒤 책꽂이에 진열된다. / 이진한 기자
    윤 대표는 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이라 할 만큼 독서광이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헌책방에 드나들 정도였다. 지금도 한 달에 60~70권씩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책이란 옷이나 신발과 달라서, 책 내용을 모르면 손님에게 권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다. 억지로 잘 모르는 책을 팔기보다 내가 직접 읽어서 아는 책을 권하는 게 편하고 좋아 읽어본 책만 판매한다”고 했다. 헌책방의 특성상 ‘내공’이 쌓인 손님이 많아, 책을 팔기 위한 억지 사탕발림은 더더욱 피한다.

    그런 다독의 결실로 책도 여러 권 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심야책방’ ‘침대 밑의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 이어, 최근에는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은 오프라인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책 상태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직접 확인하고 사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설명이 따랐다. 책을 사들일 때는 원가의 20~30% 정도에 사고, 팔 때는 원가의 50% 선에서 책 상태에 따라 달리 책정한다. 희귀본이나 절판된 책이면 원가의 5~6배 이상 값이 뛸 때도 있다.

    ◆ 공연, 영화, 독서 모임까지 겸한 복합 문화공간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린다. 매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정기 공연에는 인디밴드부터 소리꾼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이 무대에 선다.

    매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저녁이면 헌책방이 스테이지로 변신한다. 이달 11일 공연한 ‘이웃집 음악가’의 연주 모습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제공
    무료 봉사 공연은 없다. 공연자의 개런티를 감안해 관객의 입장료(보통 현금 5000원을 내거나 5000원 이상 상당의 헌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대신)를 책정한다.

    설사 관객이 적어 적자가 나더라도 개런티는 윤 대표가 사비로라도 지급한다. 입장료 수입이 기대를 넘어가면 절반씩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윤 대표는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대가로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어야 건강한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책방'답게 독서 모임도 활발하다. 2011년에 시작된 ‘막막한 이들을 위한 독서 모임’은 참여 인원이 많아 요일별로 10명씩 6팀을 꾸릴 정도다. ‘막독'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이 모임은 기수별로 일정한 주제를 정해 관련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눈다.

    지금은 15기 회원들이 ‘상남자들’이라는 주제를 놓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인을 예고합니다’, ‘깨어진 거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1: 재능있는 리플리’,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 2’를 읽어 나가고 있다.

    윤 대표는 “이곳 독서 모임은 정말 진지하게 책 읽는 분위기를 유지하다 보니 오래 가고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전거, 도시’의 상영회 직후 공미영 감독과 관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제공
    100인치짜리 빔 프로젝터를 활용해 비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지난달 14일에는 공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전거, 도시’ 상영회가 열렸다. 영화를 본 후에는 감독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윤 대표는 “이 공간 자체를 손님들이 자주 기억하고 와 주시길 바라는 의미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 “책 찾을 ‘잉여 시간’ 부족한 노동 환경이 문제”

    윤 대표는 ‘헌책방 주인’ 하면 떠오르는 푸근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모습이 어딘지 예술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책방을 열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전공한 IT 회사 프로그래머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 닿았는지 들어봤다.

    책방 곁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헌책을 손질하던 윤성근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진한 기자
    -책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활자 중독이라고 할 만큼 책을 좋아했다. 워낙 책을 좋아했는데, 다니던 회사에 대한 회의도 일고 해서 그만두고 서점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큰 헌책방에서 일하다가 2007년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열게 됐다. 처음에는 지금 위치의 바로 길 건너 지하에 있었는데 올해 이사했다. 장서 규모를 5000여권에서 3000권 정도로 줄이면서 생긴 공간을 작업실로 쓴다.

    -왜 하필 ‘헌책방’을 차렸나?

    제일 큰 이유는 거짓말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원래부터 사소한 일까지도 거짓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헌책방이야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 같다고 느꼈다. 헌책방을 찾는 손님은 정말 독서에 내공이 쌓인 분이 많다. 내가 읽을 때 재미가 없는데도 굳이 사탕발림 하면서 억지로 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그런 말에 안 넘어가는 분들이니까. 그런 분이 주 고객이니 일하기가 아주 편하다. 팔리는 책이 어떤 책인지 감도 금방 잡곤 한다.

    -헌책만의 매력이라면?

    일단은 가격이 싸다. 나도 읽고 싶은 책은 헌책방부터 찾아본 뒤에 없을 때 새 책을 산다. 워낙 책을 많이 읽으니 기왕이면 싼 게 좋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될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서 읽어야 느릿느릿 읽어도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한두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니까.

    남이 봤던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다. 새 책은 마치 새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렇지만 헌책은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특히 책에 있는 메모나 밑줄도 매력 가운데 하나다. 미지의 전 책 주인은 왜 이 부분에 밑줄을 쳤을까, 왜 메모를 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밑줄 치려고 했던 부분에 이미 밑줄이 그어진 걸 보면 ‘왜 그랬을까’ 하고 또 공감해 보는 그런 매력이 있는 거다.

    -어떤 책이 잘 나가나?

    소설은 누가 뭐라 해도 필력 좋은 사람 책이 인기가 좋다. 이청준, 이문구, 하일지 작가 책이 잘 나간다. 여성 작가는 박경리, 박완서, 최윤 작가 책이 잘 팔리는 편이다. 반대로 안 팔리는 책은 참 안 나간다. 예를 들어 황석영, 이문열, 이외수 작가의 책이 잘 안 나간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읽을 때 재미있는 걸 고른다. 올해 이사하면서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낀 장르, 즉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한 사회과학 도서, 장르소설 등은 각 장르 전문 서점에 기증했다. 장서를 5000여권에서 지금은 3000여권 정도로 줄인 거다.

    지금 갖추고 있는 책은 문사철이라고 하는 인문학 계열 책이다. 철학은 내가 동양철학을 잘 모르다 보니 서양철학이 많다. 소설은 영미문학 혹은 일본문학보다는 유럽문학이 많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문학 작품들이다.

    독서에도 ‘리듬’이 있는데, 내가 읽기엔 영미문학, 일본문학 작품은 너무 리듬이 빠르다. 나는 느릿느릿한 걸 선호하는 편이다.

    책방 문 곁에 마련된 ‘무료나눔 코너’. 손님들이 오며가며 소소한 메모지나 수첩부터 필기구까지 다양한 물건을 나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제공
    -하루에 손님은 얼마나 되나?

    대중없다. 아무도 안 오기도 하고 많이 올 때도 있고.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그런 건 감이 잘 안오기도 한다. 만약 책방이 시내에 있다면 월세가 비싸니까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 신경이 많이 쓰일 텐데. 이 장소는 월세도 별로 안 비싸니까, 사람이 많으면 많은 만큼 좋고, 안 오면 안 와도 좋고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단골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40~50대 여성 손님이 많은 편이다.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만의 특색이 있다면?

    독서 내공이 많이 쌓인 만큼 취향이 분명하다. 그리고 TV나 영화 같은 멀티미디어 매체보다는 ‘텍스트’를 굉장히 신뢰하는 편이다.

    -전자책도 잘 보나?

    나도 손님들도 전자책은 잘 안 본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책의 내용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책의 촉감까지도 좋아하는 거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물성 자체를 사랑한다. 책을 넘기고, 만지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이 이성을 만날 때 단순하게 재미로 만나는 게 아니지 않나? ‘재미’보다 더 깊은 걸 사랑해야 사람을 깊이있게 사귀는 거다. 그와 마찬가지로, 책 역시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재미로 만나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책 자체를 사랑하는 수준이 되면 책과 더 진심으로 교류하게 된다.

    전자책에는 또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종이책처럼 ‘휘리릭 훑어보기’가 안 되는 거다. 책을 고를 때, 책등을 잡고 휘리릭 넘기면서 대강 파악해보지 않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글자를 이미지처럼 인식한다.

    꼼꼼하게 읽지 않고 그렇게 훑어보면서 그 책의 중요한 부분을 일별한다. 이렇게 눈을 잡아끄는 부분이 책을 고를 때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인 여건이 일반인을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거다. 독서란 기본적으로 ‘잉여' 행위다. ‘책을 읽어야지!’ 하는 큰 결심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아 뭐 할 것도 없는데 책이나 한 권 읽을까?’ 하면서 보는 거다.

    그런데 현대인은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자기 집 앞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으면 뭘 하나, 갈 시간이 없는데. 요즘 보면 세계여행 가는 사람들이 직장 그만두고 퇴직금 받아 간다고 자랑하곤 한다.

    그게 과연 자랑거리일까? 애초에 누구나 2~3개월쯤 휴가 받아서 여행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세계여행도 하고 놀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걸 다 해본 뒤에 “아, 이제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독서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독서 장려 운동보다는 노동 운동에 더 관심이 간다. 책 읽을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 독서 뿐만 아니라 동네 문화도 발전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모두가 회사에 묶여 있으면 동네 문화가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책방 정보

    주소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82-27
    전화 070-7698-8903
    메일 master@2sangbook.com
    홈페이지 http://www.2sang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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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시간 오후 3시~밤 11시, 매주 화요일,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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