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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비싸게 살수록 좋은 투자…좋아하는 작품 아니면 손해"

  • 이용성 기자
  • 입력 : 2015.08.31 06:00

    고속버스로 충남 천안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은 터미널 인근 광장에 서 있는 개성 넘치는 조형물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푸른 원피스를 입고 곰인형과 모금함을 든 다리가 불편한 듯 보이는 금발의 소녀상도 있고, 수많은 파이프를 둘러싸고 있는 흰색 원형돌기들을 한데 묶은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도 있다.

     김창일 회장이 28일 충남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자신의 사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성 기자
    김창일 회장이 28일 충남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자신의 사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성 기자
    이들 작품은 모두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진품’들이다. 금발의 소녀상은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Charity), 원형돌기를 묶은 구조물은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다. ‘채러티’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10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니폴드’는 총 3년의 제작기간에 50억원의 설치비가 들어간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 밖에도 밝은 노란 금속재질로 춤추는 여성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와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템즈강변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에 설치됐던 허스트의 또 다른 작품 ‘찬가’(Hymm)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런 엄청난 작품들을 인구 60만명의 천안에 모아들인 주인공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컬렉터인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64)이다.

    김 회장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세계 1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미술품 수집가다. 미국의 유력 미술잡지인 아트뉴스의 200대 컬렉터(The ARTnews 200 top collectors)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2002년 천안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베이징, 2006년 서울, 2007년 뉴욕 첼시에 갤러리를 오픈했다. 지난해에는 제주도에 영화관, 모텔, 바이크샵 등을 개조한 5곳의 뮤지엄을 개관했고, 경매로 나온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옥을 150억원에 사들인 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오픈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상하이 갤러리를 확장 이전했다.

    그는 천안시 중심가에 6만6115㎡(2만평) 대지에 백화점(신세계 충청점)과 멀티플렉스(야우리시네마), 갤러리(아라리오갤러리), 식당가와 천안고속터미널까지 갖춘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보유한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신세계 충청점의 원래 이름은 ‘야우리백화점’이었지만 김 회장이 2010년 신세계백화점과 제휴를 맺으면서 신세계백화점 충청점으로 전환됐다.

    김 회장은 1999년부터 씨킴(CI Kim)이란 이름으로 예술가로 변신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오늘부터 11월 1일까지 두 달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The Road is Long’이란 제목의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연다.

    각기 다른 독립적인 영역이지만, 그에게는 세 가지 분야의 정체성이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작용’을 이끌어 낸다.

    사업가로서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객이다. 세계적인 컬렉터로서 애지중지 모은 허스트와 해링의 걸작들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장에 ‘내다 놓을 수’ 있었던 것도 누구보다 그의 고객에게 예술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예술작품을 통한 고객 만족의 노력은 김 회장의 고객은 물론 천안시민의 삶의 질까지 끌어올렸다. 세계적 경영 컨설팅 업체인 머서가 올해 3월 발표한 2015 세계 주요 도시 주재원 삶의 질' 조사 결과를 보면, 천안은 98위로 서울(72위)와 부산(90위)에 이어 국내 도시 중 3위를 차지했다.

    독일의 저명한 예술잡지 ‘Art’는 2년전 기사에서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천안이야말로 예술적으로 가장 핫(hot)한 도시”라고 평했다. “전 세계 미술지도에 반드시 표기돼야 할 곳”이란 극찬과 함께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았다.

     아라리오 광장에 서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이용성 기자
    아라리오 광장에 서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이용성 기자
    사업가와 컬렉터로서 그가 쏟아붓는 왕성한 에너지의 원천은 예술활동이다. 이제 경영자와 컬렉터로서 만큼이나 예술가로도 인정받기 원하는 그를 만나 예술과 경영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컬렉터가 작품활동까지 한다는 것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배가 부르면 예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예술에 필요한 가난은 정신적인 것인데 물질적인 풍요를 이야기한다는 건 이상하다. 다행히 나의 일상과 주변을 통해 접하는 소재와 대화, 형태 등이 내가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런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

    어린 시절에는 화가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다. 아직도 내가 왜 그림을 그리는지 전혀 모르지만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정신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갤러리와 뮤지엄을 오픈하고 개인전 횟수도 늘어나면서 예술가로서 느끼는 긴장과 압박의 수위도 높아졌다.”

    ―작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건 작품에 매겨지는 가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살아서 내 작품을 개인에게 팔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사업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작품 파는 순간 예술가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내가 사업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내 작품을 산다면 그게 정말 내 작품이 좋아서 사는건지 잘 보이려고 사는건지 어떻게 알겠나. 그런 부분을 포기하니 오히려 순수하게 작품활동에 집중 할 수 있어 좋다.

    사실 전시회 할 때마다 가장 힘든 게 작품을 사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없을 수는 없지만 죽어서도 보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같은 이유로 내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수보드 굽타(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이 내 작품과 본인들의 작품을 맞바꾸자고 했을 때도 전부 거절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돈을 모았나?

    “대학(경희대 경영학과)을 졸업하고 어머니가 빚 대신 떠안은 천안 터미널(당시 대흥동 소재)을 발판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수익을 올릴 곳은 매점 밖에 없다고 판단해 터미널 내 임대매점을 모두 직영으로 돌렸다.

    알루미늄으로 매점을 새롭게 꾸미는데 50만원이 들었다. 1979년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고민 끝에 코카콜라와 퍼모스트(‘빙그레’의 전신) 등 매점에서 취급하는 식음료 제품 회사 로고를 매점입구에 걸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매점 하나 바꿨을 뿐이지만 퇴근할 때 현금으로 박스를 가득채웠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89년 현재 위치로 터미널을 옮기면서 터미널·백화점·갤러리가 한 블록에 위치한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세웠다. 당시 천안이란 도시의 규모와 위상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다.

    “상권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천안에 250억원을 들여 대규모 사업을 벌이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의 생존이다. 생존은 어차피 현재가 아닌 미래와 관련된 문제 아닌가. 고통스런 시작이 없으면 미래의 행복도 없다. 반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결국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작은 도시에 상영관이 14개나 되는 멀티플렉스를 오픈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14개 상영관으로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우리를 뛰어 넘으려면 14개 이상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6개 상영관으로 시작했다면 8개를 운영하는 업체에 따라잡혔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숫자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열심히 준비하고 제대로 사업을 벌이는 이들에게 평균적인 수치로 보여지는 경제 상황이나 경기 변화는 큰 의미가 없다.”

    ―투자 수단으로 미술작품 수집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성공적인 투자에 필요한 노하우가 있다면?

    “미술작품도 주식이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경기가 좋지 않으면 가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예술품 투자만의 독특한 점도 있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 명품 가방을 100개 만들면 모두 같은 상품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제일 싸게 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비싸게 살수록 좋다. 높은 가격에 사는 사람이 뛰어난 수집가다. 10만달러 짜리 그림은 5만달러로 가격이 떨어질 위험이 있지만 100만달러짜리를 구입하면 언제든 최소 100만달러에 다시 팔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예술품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지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려 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청동 조각으로 만든 쇼핑백 모양의 오브제 작품들/이용성 기자
    청동 조각으로 만든 쇼핑백 모양의 오브제 작품들/이용성 기자
    ―작품을 고를 때 작가의 이름값도 중요한가?

    “이름값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림이 좋으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구입한다. 작년에 마리오 메르츠라는 이태리 작가의 작품을 10만달러에 샀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작품이 너무 좋았다. 구입하고 1년 만에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지금은 아마 25~30만달러에도 그의 작품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

    *김 회장이 세계적인 수집가 명단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영국 미술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2000년대 초 영국 작품들을 수집한 것이 컸다. 이후 독일 작품 등으로 이어지면서 유행에 앞서 수집 목록을 늘려갔다.

    ―그 밖에 어떤 부분들을 중요하게 보나.

    “작가의 나이도 확인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젊은 사람의 것이라면 투자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작가라면 희소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무엇보다도 작품성이 우선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사야 한다. 붉은색을 싫어하는 사람이 붉은색 그림을 집에 걸어 놓으면 즐거울 턱이 없다. 예술품 수집이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작품을 소장하고 감상함으로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소유한 그림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번 개인전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제주도에 뮤지엄 오픈을 위해 기존 건물들을 개축했는데, 그 과정에서 시멘트와 콘크리트, 흙과 나무 등 건축 재료의 속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시간과 인내의 중요성을 담으려 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물감통과 부표, 쇼핑백 등 오브제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직접 만져보니 색과 질감을 정교하게 살린 청동 조각들이다. 그는 이를 통해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에 대상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래전 출장 중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도 함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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