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창업 당시만 해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받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23일 대전 카이스트(KAIST) 내 SK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센터)에서 열린 ‘드림벤처스타 데모 데이(Demo day)’ 현장. 이날 입주기업인 비디오팩토리의 황민영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SK텔레콤 미국 현지법인의 투자기획사 이노파트너스에서 화상 통신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들과 수차례 미팅을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투자 유치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난해 10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기업으로 선정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올해 카이스트를 졸업한 25살의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영상 제작 플랫폼을 개발해 회사를 세웠다. 그해 10월 센터가 주관하는 벤처육성 프로그램 ‘드림벤처스타 1기’로 선발됐다. 센터는 비디오팩토리의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실리콘밸리에서 진행되는 투자 전시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SK이노파트너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으로 비디오팩토리는 지난달 미국 벤처창업 기획사인 ‘플러그 앤 플레이’로부터 사무공간과 멘토링을 무상으로 제공받았고, 최근 국내 벤처캐피탈 쿨리지코너인베스트와 4억5000만원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날 센터에서는 비디오팩토리를 포함해 창업 아이디어가 있지만, 투자를 받지 못해 사업을 키우지 못했던 총 10개의 회사가 지난 10개월 간의 매출, 투자 유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지난 2월 취임한 임종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있어도 마케팅, 홍보 능력 부족으로 투자 유치 및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던 벤처기업들이 불과 10개월 만에 날개를 달았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벤처기업 세계로 보내는 대전 센터
“I have not failed. I’ve just found 10,000 ways that won’t work(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작동하지 않는 실험 1만 가지를 해봤을 뿐이다).”
대전 카이스트 나노종합기술원 9층에 마련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들어서면 사무실 통유리에 적힌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약 1157㎡(약 350평)의 공간은 개발자와 기획자, 디자이너 등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중앙이 탁 트여있고, 가장자리에는 입주 기업 사무실과, 시제품을 제작해볼 수 있는 3D 프린터실, 모바일앱 실험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한 켠에는 100여명이 한꺼번에 참석할 수 있는 회의실을 비롯해 벤처기업들이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입주기업들은 센터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공간으로 3D 프린터실을 꼽았다. 과거 석고나 주물을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면 수백만원의 비용은 물론 시간도 2~3주씩 걸려 효율성이 떨어졌지만, 센터에 설치된 3D 프린터를 이용해 몇 시간 이내에 무료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입주기업 더에스의 이민구 대표는 “주력 제품인 액션 카메라의 형태를 개선하기 위해 위해서는 다수의 시제품 제작이 필요한데, 센터에 최고 성능의 3D 프린터가 배치돼 시간, 비용면에서 큰 이득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더에스는 센터 입주 후 액션 카메라를 온라인 쇼핑몰에 출시하면서 월 2000만원, 누적 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사무공간, 기계 장치 지원 뿐 아니라 마케팅, 홍보 능력이 부족한 벤처기업을 위한 1대 1 멘토링 서비스도 센터의 큰 자랑거리다.
지난해 9월 창업해 센터에 입주한 산업용 3D 스캐너업체 씨메스의 이성호 대표는 “창업 전에 나름 준비를 착실해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문을 여니 매출이 나지 않았고 자본금으로 근근히 버텨야 했다”며 “센터 입주 후 경영 멘토링, 회계 처리 기술 등을 지원 받으면서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씨메스는 드림벤처스타 1기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누적 수주액만 12억원이며, 최근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과 1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수주도 성공했다.
입주 벤처 업체 테그웨이 이경수 대표도 “입주 초기에는 교육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귀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제품 마케팅 뿐 아니라 투자자를 만나 프리젠테이션 하는 방법 등을 배우면서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테그웨이는 얇은 유리섬유를 이용해 손쉽게 열(熱)을 전력으로 바꾸는 '열전소자(熱電素子)'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은 스마트와치 등 웨어러블 기기에도 활용할 수 있어 최근 국내외 IT기업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센터는 테그웨이에 2억원의 기술개발금을 지원했고, 한국과학기술지주는 10억원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기업의 멘토 대표를 맡은 조성주 카이스트 교수는 “대전센터의 기업 대표들은 대부분 연구자들이 많아 시장 수요보다 기술 발전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았다”며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객의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을 도왔다”고 말했다.
◆ 8월부터 ‘드림벤처스타 2기’ 발족…1기 기업들도 원하면 공간 제공
센터는 다음달 중순 총 10명의 예비창업자를 선정해 드림벤처스타 2기를 발족,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 9일 지원서를 마감한 결과 지난해(180명)보다 50% 증가한 267명이 지원했으며 현재 심사 중이다.
이번에 선발되는 2기는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된다. 센터 내 사무공간을 무료로 빌려주고, 초기 자본금 2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또 최고 2억원의 기술개발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임종태 센터장은 “지난달 15일 대전 대흥동에 입주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으며, 카이스트 내에도 사무공간을 확장할 계획”이라며 “2기 입주기업 뿐 아니라 이번에 졸업한 1기 입주기업도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스폰서로 활동하는 동시에 1기 입주기업이 프로그램을 '졸업'한 이후에도 사업 기반을 유지, 확장할 수 있도록 계열사를 통해 연계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씨엔테크, 엑센과 사업 연계를 계획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씨메스의 3D스캐너를 공장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동현 SK창조경제혁신추진단장은 "창조경제 활성화를 통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작업에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며 "이번에 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10개 기업의 성과를 더욱 늘리고, 2기 입주기업과 대전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과 지원 규모를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