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과 벌인 소송에서 법원이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김용대 수석부장판사)는 1일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의 주주총회 소집·결의금지 및 주식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주주가 이사의 부당한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상법상 유지청구권을 보전받아야 한다는 엘리엇 측의 주장은 부적법하다고 각하했다.

◆“합병비율 산정 문제 없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비율이 관련 법령에 따라 적절하게 정해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에서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가액 및 비율을 정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 산정 기준이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행위가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달 19일 열린 심문기일에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비율로 제시한 1대 0.35는 삼성물산에 지나치게 불리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엘리엇 측이 한영회계법인에 의뢰해 산정한 결과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1대1.6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당시 “두 회사 자산과 매출 등을 고려하면 삼성물산 주가는 10만원 이상, 제일모직은 7만원 이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사 주가는 투자자들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거래한 결과 형성된다”며 “공개시장에서 주가는 특정시점에 상장회사의 가치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반면 제한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특정 수치를 함부로 적정주가나 회사의 공정한 가치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엘리엇이 제시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 주가는 각 회사가 상장된 뒤 시장에서 한번도 거래된 적 없는 가격”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물산 측이 “엘리엇 측이 제출한 한영회계법인 산출 자료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한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셈이다.

◆ “오너일가 이익만을 위한 합병 아냐”

엘리엇 측은 당초 제일모직 매출액이 삼성물산의 20%에 불과한 점, 두 회사의 업종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합병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만에 하나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7조8000억원을 넘는 자산이 제일모직 지배주주인 오너 일가에 속하게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은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위한 수단에 불과해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합병 공시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상당히 오른 점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시장이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을 감안하면삼성물산 측에 손해, 제일모직 측에 이득만 주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삼성물산 경영진이 삼성그룹 총수일가인 제일모직과 그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다고 볼 자료는 없다”고 판단했다.

◆ 자사주 매각금지 신청은 “주총 전 결정”

재판부는 엘리엇 측이 상법상 유지청구권을 보전받아야 한다며 삼성물산 이사진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각하결정을 내렸다. 상법상 유지청구권은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해 불이익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 주주가 그 행위를 중지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재판부는 “개정된 상법에 따르면 유지청구권은 자본금 1000억원 이상인 상장회사로서 6개월 전부터 계속 발행주식 총수 10만분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한 자가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며 “엘리엇은 6개월이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유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고 이 권리를 보전할 이익도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엘리엇이삼성물산이 KCC에 자사주를 매각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이날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자사주 매각과 관련한 법원 결정은 삼성물산 주주총회일인 오는 17일 이전에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은 앞서 지난달 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불공정하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데 이어 사흘 뒤 자사주 매각을 금지해달라고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