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금융지주 저축銀으로 中금리시장 개척 노렸지만 실패
빅데이터 활용한 신용평가 모델 구축해야 "100등급 체제 도입-공공정보 풀자"

정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중(中)금리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중금리란 10% 안팎의 신용대출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신용등급 1~3등급을 대상으로 한 시중은행 신용대출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연 금리 30% 안팎의 대부업체 대출도 전화 한통화로 30분만에 300만원 가량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유독 중금리 대출시장만 빈약하다.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은 곧바로 연 20~30%의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게 한국의 금융환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희망홀씨, 햇살론, 바꿔드림론, 미소금융 등의 서민금융 상품이 쏟아지듯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지시하는 방식으로 서민금융 상품을 내놓다보니 유명무실해지거나 이용자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중금리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면서 지금과 같은 저금리시대에서도 서민들은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가 답이라고 말한다. 주재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은행권이 중금리 대출에 나서지 않는 것은 평판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신용등급자 데이터가 부족해 부실이 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활로를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축은행 통해 서민금융 노렸지만 실패…이유는?

금융지주사들은 지난 2011~2012년 등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했다. 저축은행 사태로 넘어진 부실 저축은행들을 사들일 곳이 금융지주사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지주들은 "저축은행을 통해 그동안 미진하다고 평가받았던 중금리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은 중금리 시장을 개척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소극적 영업이다.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은 제1금융권인 모회사의 평판이 중요하다보니 보수적으로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추심으로 인해 논란이 발생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 때문에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 차별화되지 못했다. 공공연히 "우리는 큰 사고 없이 경영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이 있을 정도다.

두번째는 신용평가 모델이 고도화되지 못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1~3등급에 치중하고 있으니 결국 저축은행이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제2금융은 그럴만한 시스템도, 여력도 없다"면서 "그러다보니 한정된 대출 모형으로 중금리시장에 나서야 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만약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고객만 대상으로 영업하라고 한다면 대출금리가 확 뛸 것"이라며 "현재의 시스템은 저신용등급의 부실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대부업체가 자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대부업체 이용자의 47% 가량은 신용등급 4~6등급의 고객이다. 조금만 더 신용등급을 관리하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업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대부업체에겐 불리한 얘기지만 중금리시장을 개척하려면 자금력이 있는 1금융이 나서야 한다"면서 "신용평가 모형 개발 과정에서는 빅데이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금리시장 노리고 위비뱅크 출범한 우리銀…P2P대출업체도 도전장

우리은행은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의 시범모델 격인 위비뱅크를 출범했다. 위비뱅크가 공략하고자 하는 지점이 바로 중금리시장이다. 우리은행은 보유중인 신용거래정보와 서울보증보험 신용도 평가를 기반으로 연 5.94~9.74%의 중금리 대출을 실시키로 했다. 출범 20일만에 1109건, 45억원의 대출 실적을 기록했다.

위비뱅크의 강점은 크게 2가지다. 일단 공인인증서만 탑재돼 있으면 스마트폰에서 곧바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기존의 대부업체나 카드론과 비슷한 수준으로 편리하다. 게다가 위비뱅크 대출을 받아도 신용도에 악영향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아직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되지 않아 성공할 것이라고 평가하긴 이르지만 추후 실적이 쌓이면 부실패턴을 분석해 신용도가 높은 고객엔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인터넷 전문은행의 시범 모델 격인 ‘위비뱅크(WiBee Bank)’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본점에서 열린 ‘위비뱅크 출범식’에서 고객과 상담하고 있다.

P2P대출업체들도 중금리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렌딧은 행동모형 평가를 통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의 신용등급을 계산해 대출을 집행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김성준 렌딧 대표는 "신용거래정보가 적다는 이유로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서 "해외사례를 보면 비(非) 신용정보로도 충분히 적절한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도 "8퍼센트의 주요 목표 고객은 신용등급 4~6등급의 서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도 P2P대출업체를 중심으로 중금리 시장이 개척되고 있다. 은행은 신용평가모형을 바꿀 때 마다 금융당국, 바젤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반면 P2P대출업체는 운신의 폭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미국 P2P대출업체 렌딩클럽, 온덱의 대출채권펀드를 운용하는 디스커버리의 김민수 과장은 "미국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은행의 문턱이 높아 P2P대출업체가 활성화돼 있다"면서 "금융소외자가 많았던 미국 입장에선 P2P대출시장을 육성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 정부, 非민감 개인정보는 풀어야…"100등급 체제 도입하자" 주문도

전문가들은 신용등급 모형 개발과 관련해 핵심 과제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민감 개인정보를 신용정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스비, 전기료 연체 내역 정도만 추가로 공개해도 신용등급 모형을 훨씬 더 강화할 수 있다"면서 "어차피 대출 연체 등의 금융정보가 신평사들에 제공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공공정보도 일부분 넘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현재의 신용모형은 대출자의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는데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는데 소득 정보는 국세청이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서 "금융위가 '사전 규제'에서 '사후 규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으니 소득 정보도 넘겨주고 추후 유출시 처벌하는 방식을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평가 모형 개발업체 솔리드웨어의 엄수원 대표는 "현재의 신용거래정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축적돼 있어 10등급 체제를 넘어 100등급을 고려해볼만 하다"면서 "100등급 체제를 도입한다면 본인의 신용등급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등급에 자신 있는 금융소비자는 신용정보를 더 관리해 은행에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에 대해 이의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외국계 신평사의 관계자는 "본인 신용등급이 낮게 나왔다고 생각될 경우 소득이나 부동산 보유 자료를 증빙해 신용등급 상향을 꾀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