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스벤처스는 흔히들 말하는 ‘대형 벤처캐피털’은 아니나 쟁쟁한 포트폴리오(투자한 회사 목록)를 갖고 있는 업체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원을 투자 받은 소셜커머스 ‘쿠팡’, 골드만삭스로부터 400억원을 투자 받은 ‘배달의 민족’, IPO를 추진 중인 ‘판도라티비’ 등 스타 벤처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이 외에도 알토스벤처스의 포트폴리오엔 대중에 친숙한 서비스들이 상당수 포함돼있다. 부동산 중개 앱 ‘직방’을 만든 채널브리즈, 화장품 전문 소셜커머스 ‘미미박스’, 회사 정보를 공유하는 ‘잡플래닛’과 무료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비트패킹컴퍼니’ 등에 투자했다.
1996년 알토스벤처스를 설립, 현재까지 이끌고 있는 한킴(한국명 김한준) 대표이사는 미국 컨설팅 업체 부즈앨런앤드해밀턴과 프록터앤갬블 등을 거쳐 벤처 투자가로 방향을 바꿨다. 모바일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주로 투자해왔으며, 최근에는 O2O(오프라인 투 온라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투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년 뒤 유망할 기술에 대해 묻자, 한킴 대표는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주로 본다”고 말했다. 그 기술을 통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의 발달과 시간 활용의 효율화 간 상관 관계가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며 더 강해졌다고 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재미있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① O2O + 빅데이터
김 대표는 가장 먼저 O2O 관련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에는 간단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해주는 게 전부였는데, 앞으로는 고객 개인에 대한 더 높은 이해력과 분석력이 필요해질 거에요. 이를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발달된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겠죠.”
O2O는 말 그대로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던 서비스를 온라인 상으로 옮겨온 것을 뜻한다. 종이로 된 식당 전단지를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만들거나(배달의민족) 공인중개사에게 직접 찾아가야만 이용할 수 있었던 부동산 소개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직방)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김 대표는 O2O 서비스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에 사는 어떤 연령대의 고객층이 어떤 구매 패턴을 갖고 있는지 조사, 분석해놓은 데이터가 있다면, 그걸 실시간으로 활용할 줄 아는 회사가 성공할 거에요. 그런 능력을 가진 회사와 갖지 못한 회사 간 격차가 향후 5년 뒤엔 훨씬 더 커질 겁니다. 실제로 저희가 투자한 회사 중 쿠팡과 잡플래닛, 배달의민족, 직방 등이 모두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쿠팡은 상당히 수준 높은 기술을 쓰고 있죠.”
김 대표에 따르면, 쿠팡이 어떤 상품을 어느 시간대에 어떤 식으로 노출할 지 결정하는 데 있어 상당히 오랜 시간의 실험이 뒤따른다. PC 시대엔 상품을 사기 위해 웹사이트에 접속해 여러 제품의 가격과 품질, 디자인 등을 일일이 비교하고 따졌지만 모바일 시대에는 좀 더 직관적으로 쇼핑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만큼, 상품을 앱상에 노출하는 방식을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소비 패턴의 변화는 뉴스 소비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김 대표는 “모바일에선 사람들이 뉴스를 첫 줄만 읽고 뒤는 생략하는 경향이 크다”며 “피키캐스트는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사람들이 편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최적화한 서비스로, 방향을 맞게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응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를 아주 많이 갖고 있어도 그 데이터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후에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어떤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데이터를 받고 활용하는 시점이 적절해야 합니다.
현재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스타트업이 굉장히 많은데, 이걸 어떻게 잘 정리하고 분석하느냐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겁니다. 그런 능력이 부족한 회사는 5년 후 뒤처질 거에요."
② 드론
김 대표는 5년 뒤 유망할 또 다른 기술로 드론을 언급했다.
드론은 무선 전파로 조종할 수 있는 무인 항공기로, 카메라, 센서, 통신 시스템 등이 탑재돼있다. 현재는 주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용으로 사용되는데 시장이 제대로 형성된 상태는 아니다.
“중국 어떤 회사에서 만든 드론은 매출이 거의 결혼식에서 나온다고 해요. 중국은 땅이 워낙 넓으니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드론을 띄워서 결혼식을 촬영, 실시간 방송하는 거죠. 5년 뒤엔 이런 서비스들이 상용화하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드론 자체보다 드론을 활용한 서비스에 더 큰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는 우리나라 벤처 기업들이 미국 벤처에 비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모바일 환경이 좋고 인구 밀도가 높아,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벤처 기업들이 기술 응용을 굉장히 잘하기 때문에, 드론 관련 서비스도 다른 나라 벤처들에 비해 더 많이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③ 핀테크
김 대표는 또 핀테크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제로 모바일 결제 서비스 ‘토스’를 만든 비바리퍼블리카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핀테크가 결제나 대출 등 간단한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투자나 보험도 가능해질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가 내는 보험료가 실제 보험 가치의 2배라고 해요. 영업하는 분들이 계시니 그런 추가 비용이 포함되는 겁니다. 핀테크를 통해 비용을 더 낮출 수 있다면, 못 할 이유가 없겠죠.”
인터뷰를 마치며, 김 대표는 벤처 기업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벤처는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런 의문을 갖고 복잡한 문제를 풀고자 하는 기업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집에 오는 전단지를 보고 음식을 주문해야 하나, 혹은 백화점에 가서 비싼돈 주고 물건을 사야 하나⋯. 이런 의문에서 배달의민족과 쿠팡이 탄생했듯, 모든 벤처의 출발점은 ‘왜’에 있습니다. 문제의식도, 그걸 해결해보겠다는 생각도 모두 이런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