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은 이달 4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고급 백화점 블루밍데일에 자사 브랜드 중 최고급인 '아모레퍼시픽' 매장을 열었다. 한국 화장품 매장이 이 백화점에 문을 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희복 상무는 "전 세계 트렌드를 좌우하는 미국 뉴욕에 진출하지 않고서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CJ그룹은 2012년 여름부터 미국 LA에서 열어온 한류(韓流) 문화 축제 'KCON'의 개최지에 올해부터는 뉴욕을 추가했다. 노혜령 CJ그룹 상무는 "LA 행사를 보기 위해 뉴욕 등 미국 동부에서 오는 한류 팬들이 많은 점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재·서비스 기업들이 세계 최대이자 최첨단 도시인 뉴욕에 도전하고 있다. 뉴욕의 핵심 일류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아야 글로벌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미국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이 진출 적기(適期)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화장품·호텔·빵집…앞다퉈 진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업종은 화장품이다. 2003년 처음 뉴욕 시장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2년 새 단독 매장과 취급점을 크게 늘려 현재 뉴욕 내 매장 수만 24곳이다. 지난해에는 라네즈가 미국 대형 마트에 입점했고, 최근에는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가 미국 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미국 법인 매출 성장률은 연간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 화장품 업체인 토니모리도 작년 8월 뉴욕에 진출해 현재 6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 가운데는 롯데그룹이 돋보인다. 롯데그룹은 최근 8억500만달러(약 8920억원)를 투자해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133년 역사의 최고급 호텔 '더 뉴욕 팰리스'를 인수했다. 국내 백화점 2~3곳을 살 수 있는 거금을 명품 호텔 인수에 쏟아부은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 SPC그룹은 올 들어 뉴욕 맨해튼에만 3개의 파리바게뜨 점포를 냈다. 김범성 상무는 "이미 낸 뉴욕 시내 매장들의 매출이 양호해 더 공격적인 전략을 펴기로 했다"고 말했다. KGC인삼공사는 올 5월 말 뉴욕 맨해튼에 홍삼 카페를 냈다. 2012년 2월 뉴욕 타임스스퀘어점을 낸 카페베네는 맨해튼에서만 10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뉴욕 성공은 글로벌 진출을 위한 필요조건"

뉴욕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최근 한인 사회는 물론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K뷰티' 열풍으로 불리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한국 화장품의 대미(對美)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62% 정도 늘었다. 작년 10월 뉴욕을 중심으로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글로우레시피'를 연 크리스틴 장 대표는 "작은 쇼핑몰이지만 1년이 안 돼 500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며 "회원 중 80%는 백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의 KCON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첫해에 1만명이던 참가자가 지난해 4만200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7만명으로 예상된다. KCON은 한류 스타 공연, 한국 음식 소개, 한국 춤 강습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들은 뉴욕 진출과 성공을 글로벌 기업이 되는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열려면 홍콩부터 들어가야 하듯이 북미와 중남미에 진출하려면 뉴욕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뉴욕 맨해튼은 세계 호텔의 각축장이기 때문에 롯데호텔도 여기 뛰어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뉴욕 진출 역시 장기적 시각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00년대 중반 뉴욕에 진출한 한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는 "현지 업자와 성급하게 계약을 맺는 바람에 지금도 바로잡느라 고생하고 있다"며 "1~2년이 아니라 5~10년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