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보편화한 어느 먼 미래, 하비 박사는 감정을 지닌 인공 지능 로봇 ‘데이비드’를 만든다. 로봇 회사 직원이었던 헨리 스윈튼 부부는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 입원하자 데이비드를 실험 대상으로서 입양한다.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데이비드는 양부모인 스윈튼 부부를 사랑하게 된다. 부부의 친아들이 퇴원해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결국 숲 속에 버려지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001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인공지능을 뜻하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 중 한 장면이다. 로봇의 모습과 행동 방식이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된 걸 보면, 14년 전에도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은 꽤나 구체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비드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을 논하기엔 아직 멀었으나, 현재 인류의 인공지능 기술은 상당한 단계까지 발전했다. 스마트폰은 사람의 음성을 인식해 해답을 내놓거나 명령을 수행한다. 어떤 로봇은 사람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 왜 슬프냐고 물을 줄 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인공지능을 ‘미래의 컴퓨터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본다. 향후 5~10년 뒤면 인공지능 컴퓨팅의 상당 부분이 실현 가능해질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처리하는 데이터 사이언스 역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말한다.
송 대표가 이끄는 캡스톤파트너스는 2008년 설립된 벤처캐피털이다. 네시삼십삼분·플린트(모바일 게임 ‘별이되어라’ 제작사) 등 게임 회사를 비롯해 채널브리즈(‘직방’ 개발사)·프로그램스(‘왓챠’ 개발사)·비트패킹컴퍼니(모바일 음악 서비스 ‘비트’ 개발사) 등 다양한 ICT 서비스 업체와 소재·제조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왔다. 중소형 투자사임에도 상당히 많은 벤처기업에 대해 왕성한 투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인공지능 + 사물인터넷
송 대표는 “5~10년 뒤 유망 기술은 무엇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인공지능’이라고 답했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학습과 지각 능력 등을 컴퓨터로 실현한 기술을 말한다. 흔히 인공지능이라 하면 로봇을 떠올리기 쉬운데, 애플 ‘시리’의 음성 인식 기능이나 구글의 자연어 검색 역시 인공지능의 일종이다.
가령 과거에는 오늘의 환율이 얼마인지 알기 위해 구글에 ‘환율’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면, 현재는 “지금 환율이 얼마지?”라고 검색해도 정확한 답변이 나온다. 이를 자연어 검색이라 한다.
송 대표에 따르면, 현재 컴퓨터의 인공 지능은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단계까지 왔다. 뉴런네트워크(인간의 신경망을 컴퓨터로 모방한 것)에 특정한 과제나 기능을 학습시켜 컴퓨터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어떤 사진을 보여주며 ‘이건 A의 얼굴’이라고 인식켜놓은 뒤,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고 A의 얼굴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시킨다. 이를 가리켜 딥러닝(deep learning)이라 한다. 현재 사진을 통한 얼굴 인식 기능은 페이스북에서 제공하고 있는데, 정확도가 약 95%에 달한다고 송 대표는 말했다.
그는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단순히 학습하고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하면 모든 기기가 지능을 갖고 보다 수준 높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미래를 한 번 상상해보죠. 버튼을 눌러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의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기에 인공 지능을 가진 컴퓨터를 붙인다면,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져요. 의자가 지능을 갖게 되는 거죠. 의자 뿐 아니라 책상과 전등 등을 컴퓨터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그는 사물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는 게 가능해지면 ‘문맥’을 읽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사람의 행동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제가 친구와 같이 방에 들어온다면, 컴퓨터가 송은강이라는 사람이 방에 왜 들어왔으며 누구와 들어왔는지를 인식하는 거에요. 과거 이 사람의 경험을 살펴보니 친구와 같이 놀기 위해 들어왔을 경우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러면 커피 머신이 자동으로 커피를 만들겠죠. 이 외에도 사람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방 안의 온도를 미리 높이거나 낮춰놓을 수 있고, 아침에 주방에 들어가기 전 토스트를 미리 데워놓을 수도 있어요. 컴퓨터가 사람의 동선이나 문맥을 이해하고 미리 이것 저것 준비해주는 겁니다.”
송 대표는 5~10년 뒤면 이런 일이 상당 부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컴퓨터’라고 분류되는 것들만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의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센서와 사물인터넷 덕에 점점 더 많은 사물들이 ‘뇌’를 장착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문맥을 이해하면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향후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다면, 벤처기업은 어떤 분야에 진출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다.
“벤처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지 콕 집어 말하라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 분야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벤처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올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죠.”
송 대표는 다만 아직까지 경제(비용)적인 문제와 기술, 특히 센서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을 구현해 상용화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데이터 사이언스
송 대표가 두 번째로 꼽은 ‘미래 기술’은 바로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다.
데이터 사이언스란 빅데이터와 연관된 것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최근에는 ‘통계학’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일 정도로 대중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았다고 송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문맥과 상황을 인식해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선 데이터사이언스의 발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발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센서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넘쳐날테니, 이를 제대로 분석해 어떤 결론을 도출해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센서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전세계 어느 곳의 온도라도 매시간, 매분, 매초 실시간으로 잴 수 있어요. 한 집 안에서도 침실 안 구석과 주방 안 등 장소에 따라 온도가 제각기 다르겠죠. 이 모든 데이터를 모아서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든지 어떤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저장해 관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송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나라 벤처 기업가들이 좀 더 “필사적으로 뛰어들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선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가 낙후됐던 1970년대와 달리,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해 필사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며 그는 아쉬워했다.
“중국의 벤처 열풍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거워요.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자신의 미래와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게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 창업 열풍에 거품이 낀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얘길 들으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미래 성장 동력은 벤처 밖엔 없습니다.”